<기획연재> 스러진 달 (30)자각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냉혹한 정치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입국 부분은 제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닌듯합니다.”

주선의 확신에 찬 답에 두 사람 모두 표정을 밝게 했다.

“비자 문제는 어찌 처리하렵니까? 들은 바로는 영사관 요주의 인물이라 하던데요.”

강철의 질문을 받은 동일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어 문석원이 아닌 일본인 고타로 명의로 입국하리라는 사실에 대한 부연설명을 곁들이자 강철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를 살피던 동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본에서의 일 즉 문석원이 한국에 입국하기까지의 일은 차 사장께서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특보께서는 초청장을 포함하여 행사장에서의 일을 전적으로 책임져 주시고 저는 차 사장과 일본에서의 일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입국하여 8월 15일 행사 참석 전까지 일정을 소화해내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실장께서 차 사장의 의향을 타진하라 하셨는데 일이 마무리되면 어떻게 해드렸으면 좋겠습니까?”

강철의 질문에 주선이 답에 앞서 가늘게 한숨을 내쉬며 동일을 바라보았다.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일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이곳을 떠나려 합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추후 결정하도록 하지요.”

“이 역시 기간이 있느니 만큼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시고 오늘은 상견 겸해서 허심탄회하게 시간을 보내도록 하지요.”

“여하튼 대한민국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려 있으니 소신을 가지고 성심성의를 다합시다.”

동일에 이어 강철이 힘주어 말하자 세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문석원이 한날 저녁 아내와 아들을 대동하고 큰형 정수와 둘째 형 동원과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 집 이 층에서 어머니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석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며느리의 손을 잡은 손자의 모습이 보이자 서둘러 일층으로 내려왔다. 할머니의 모습을 확인한 신일 역시 제 어머니의 손을 벗어나 뒤뚱대며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가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지난해 말부터 어머니는 카바레를 운영하고 있던 터였다.

“너희들 온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그러니 어서 들어가자.”

어머니가 석원이 타고 온 페블리카 승용차와 손자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신수가 훤해 보이는구나.”

자리를 잡자마자 손자를 안아든 어머니가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 하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그건 나중에 알려드릴 게요.”


“왜?”

“걱정하실까봐 그렇지요.”

“내가 걱정할 일이라도 하는 거냐?”

“그게 아니라, 나중에 일이 완성되면 시원하게 말할 테니 조금도 걱정 말아요.”

석원이 어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소식을 접한 둘째 형 동원이 방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편치 않은 시선으로 석원을 바라보았다.   

“너는 동생을 바라보는 표정이 어째 그러니?”

“오랜만에 보니 그러지요. 그리 먼 곳에 살지도 않는데 자주 찾아보지 않으니 그럽니다.”

동원이 애써 자신의 표정을 죽이며 얼버무렸다.

“큰형은 아직 퇴근 전인 모양입니다.”

“아직 학원 수업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얼추 끝나갈 시간이 되었으니 곧 올게다.”

큰 형은 오사카 시내에서 학원 강사로 근무하고 있던 터였다.

“지금 술상이라도 봐오라 할까?”

어머니의 질문에 석원이 동원의 얼굴을 주시했다.

“오래지 않아 형이 도착할 테니 조금 이따가 상을 차리시지요.”

동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기척이 들리더니 큰형이 들어서고 있었다.

조총련과 연대, 다가온 거사일
선생님 둘러싼 3국의 눈치작전


“형도 양반되기는 틀렸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

석원이 어색하게 말을 건네자 정수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지금 어머니와 둘째 형과 형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

정수가 싱긋이 웃어주며 잠시 대화를 나누다 삼형제가 술자리를 갖기 위해 옆방으로 이동했다.

“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위장이 조금 좋지 않아서.”

“네가 무슨 위장이 좋지 않다는 말이냐?”

동원이 의혹의 눈초리로 말문을 열자 정수 역시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신경성 위장병이라 하더라고.”

“그런데 근 한 달여를 입원 치료받았다는 말이냐?”

동원의 재차에 걸친 질문에 석원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너 요즘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냐. 들리는 바에 의하면 시도 때도 없이 조총련 사람들과 어울린다던데.”

“조총련이라니!”

정수의 목소리가 올라가는 시점에 정수의 처가 조촐하게 술상을 차려 들어오고 있었다. 삼형제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이어 술자리를 본 정수의 처가 물러나자 정수가 술병을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정수가 모두의 잔을 채우고는 혼자 잔을 들어 비워냈다.

“한청 관련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석원이 지금 조총련 사람들과 뭔가 큰일을 계획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동원의 설명에 정수가 손수 자신의 잔을 채우고 석원을 빤히 주시했다.

“별 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윤대중 선생을 다시 일본에 모실 수 있을까 고민 중에 있어. 그래서 그 일로 조총련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거야.”

“단지 그 사유 때문이냐?”

“그렇다고 해도.”

동원의 연이은 추궁에 석원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그러면 지금 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떻게 설명할래.”

“그게 무슨 말이야?”

“얼마 전부터 네 씀씀이가 이해되지 않아 그런다. 승용차부터 시작해서 네게 과분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냐.”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수가 다시 잔을 비워내자 동원 역시 잔을 비워냈다. 

“석원아!”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석원을 부르는 정수의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 있었다.

“큰형은 또 왜 그래?”

“네 설명이 이해되지 않아 그런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네가 하도 윤대중, 윤대중 하기에 내 요로를 통해서 알아보았다. 그런데 남조선에서 일본에서 하도 시끄럽게 굴기에 윤대중이란 사람을 다시 일본으로 보내고자 했는데 일본 정부에서 거부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네 이야기는 무슨 소리냐?”

석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모르고 있다는 말이냐?”

“형은 그 이야기 어디서 들었는데?”

“어디서 들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그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거 나도 알고 있다.”

동원이 거들고 나서자 순간 석원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네가 지금 무슨 일 하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겠냐?”

“나는….”

“마저 말해봐!”


“방금 이야기한 대로 윤대중 선생 다시 일본으로 모시는 일을 하고 있는데‥‥‥.”

동원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석원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너 조총련 애들 어떤지 모르냐?”

“그 사람들이 어때서.”

석원이 분위기를 만회하려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달면 삼키고 쓰면 가차 없이 내팽개치는 그들의 속성을 정말 모른다는 말이냐!”

답변이 궁색한 석원이 기어코 자신의 술잔을 비워냈다.

“동원이 이야기 잘 새겨듣도록 해라. 지금 일본 내에서 조총련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지 않아. 일전에 벌어졌던 의장과 조카사위와의 일도 그렇고.”

“그리고 이제는 가족을 생각해야지 않겠냐. 잠시 전에 보니까 제수 씨가 임신한 듯한데.”

두 형의 이야기에 석원의 표정이 더욱 어둡게 변해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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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