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입국 부분은 제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닌듯합니다.”
주선의 확신에 찬 답에 두 사람 모두 표정을 밝게 했다.
“비자 문제는 어찌 처리하렵니까? 들은 바로는 영사관 요주의 인물이라 하던데요.”
강철의 질문을 받은 동일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어 문석원이 아닌 일본인 고타로 명의로 입국하리라는 사실에 대한 부연설명을 곁들이자 강철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를 살피던 동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본에서의 일 즉 문석원이 한국에 입국하기까지의 일은 차 사장께서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특보께서는 초청장을 포함하여 행사장에서의 일을 전적으로 책임져 주시고 저는 차 사장과 일본에서의 일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입국하여 8월 15일 행사 참석 전까지 일정을 소화해내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실장께서 차 사장의 의향을 타진하라 하셨는데 일이 마무리되면 어떻게 해드렸으면 좋겠습니까?”
강철의 질문에 주선이 답에 앞서 가늘게 한숨을 내쉬며 동일을 바라보았다.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일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이곳을 떠나려 합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추후 결정하도록 하지요.”
“이 역시 기간이 있느니 만큼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시고 오늘은 상견 겸해서 허심탄회하게 시간을 보내도록 하지요.”
“여하튼 대한민국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려 있으니 소신을 가지고 성심성의를 다합시다.”
동일에 이어 강철이 힘주어 말하자 세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문석원이 한날 저녁 아내와 아들을 대동하고 큰형 정수와 둘째 형 동원과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 집 이 층에서 어머니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석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며느리의 손을 잡은 손자의 모습이 보이자 서둘러 일층으로 내려왔다. 할머니의 모습을 확인한 신일 역시 제 어머니의 손을 벗어나 뒤뚱대며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가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지난해 말부터 어머니는 카바레를 운영하고 있던 터였다.
“너희들 온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그러니 어서 들어가자.”
어머니가 석원이 타고 온 페블리카 승용차와 손자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신수가 훤해 보이는구나.”
자리를 잡자마자 손자를 안아든 어머니가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 하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그건 나중에 알려드릴 게요.”
“왜?”
“걱정하실까봐 그렇지요.”
“내가 걱정할 일이라도 하는 거냐?”
“그게 아니라, 나중에 일이 완성되면 시원하게 말할 테니 조금도 걱정 말아요.”
석원이 어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소식을 접한 둘째 형 동원이 방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편치 않은 시선으로 석원을 바라보았다.
“너는 동생을 바라보는 표정이 어째 그러니?”
“오랜만에 보니 그러지요. 그리 먼 곳에 살지도 않는데 자주 찾아보지 않으니 그럽니다.”
동원이 애써 자신의 표정을 죽이며 얼버무렸다.
“큰형은 아직 퇴근 전인 모양입니다.”
“아직 학원 수업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얼추 끝나갈 시간이 되었으니 곧 올게다.”
큰 형은 오사카 시내에서 학원 강사로 근무하고 있던 터였다.
“지금 술상이라도 봐오라 할까?”
어머니의 질문에 석원이 동원의 얼굴을 주시했다.
“오래지 않아 형이 도착할 테니 조금 이따가 상을 차리시지요.”
동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기척이 들리더니 큰형이 들어서고 있었다.
조총련과 연대, 다가온 거사일
선생님 둘러싼 3국의 눈치작전
“형도 양반되기는 틀렸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
석원이 어색하게 말을 건네자 정수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지금 어머니와 둘째 형과 형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
정수가 싱긋이 웃어주며 잠시 대화를 나누다 삼형제가 술자리를 갖기 위해 옆방으로 이동했다.
“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위장이 조금 좋지 않아서.”
“네가 무슨 위장이 좋지 않다는 말이냐?”
동원이 의혹의 눈초리로 말문을 열자 정수 역시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신경성 위장병이라 하더라고.”
“그런데 근 한 달여를 입원 치료받았다는 말이냐?”
동원의 재차에 걸친 질문에 석원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너 요즘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냐. 들리는 바에 의하면 시도 때도 없이 조총련 사람들과 어울린다던데.”
“조총련이라니!”
정수의 목소리가 올라가는 시점에 정수의 처가 조촐하게 술상을 차려 들어오고 있었다. 삼형제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이어 술자리를 본 정수의 처가 물러나자 정수가 술병을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정수가 모두의 잔을 채우고는 혼자 잔을 들어 비워냈다.
“한청 관련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석원이 지금 조총련 사람들과 뭔가 큰일을 계획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동원의 설명에 정수가 손수 자신의 잔을 채우고 석원을 빤히 주시했다.
“별 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윤대중 선생을 다시 일본에 모실 수 있을까 고민 중에 있어. 그래서 그 일로 조총련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거야.”
“단지 그 사유 때문이냐?”
“그렇다고 해도.”
동원의 연이은 추궁에 석원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그러면 지금 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떻게 설명할래.”
“그게 무슨 말이야?”
“얼마 전부터 네 씀씀이가 이해되지 않아 그런다. 승용차부터 시작해서 네게 과분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냐.”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수가 다시 잔을 비워내자 동원 역시 잔을 비워냈다.
“석원아!”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석원을 부르는 정수의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 있었다.
“큰형은 또 왜 그래?”
“네 설명이 이해되지 않아 그런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네가 하도 윤대중, 윤대중 하기에 내 요로를 통해서 알아보았다. 그런데 남조선에서 일본에서 하도 시끄럽게 굴기에 윤대중이란 사람을 다시 일본으로 보내고자 했는데 일본 정부에서 거부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네 이야기는 무슨 소리냐?”
석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모르고 있다는 말이냐?”
“형은 그 이야기 어디서 들었는데?”
“어디서 들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그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거 나도 알고 있다.”
동원이 거들고 나서자 순간 석원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네가 지금 무슨 일 하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겠냐?”
“나는….”
“마저 말해봐!”
“방금 이야기한 대로 윤대중 선생 다시 일본으로 모시는 일을 하고 있는데‥‥‥.”
동원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석원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너 조총련 애들 어떤지 모르냐?”
“그 사람들이 어때서.”
석원이 분위기를 만회하려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달면 삼키고 쓰면 가차 없이 내팽개치는 그들의 속성을 정말 모른다는 말이냐!”
답변이 궁색한 석원이 기어코 자신의 술잔을 비워냈다.
“동원이 이야기 잘 새겨듣도록 해라. 지금 일본 내에서 조총련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지 않아. 일전에 벌어졌던 의장과 조카사위와의 일도 그렇고.”
“그리고 이제는 가족을 생각해야지 않겠냐. 잠시 전에 보니까 제수 씨가 임신한 듯한데.”
두 형의 이야기에 석원의 표정이 더욱 어둡게 변해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