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 흔들 막판 변수6

'조심조심' 작은 돌부리에 걸려도 넘어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20대 총선이 불과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후보들은 막판 변수를 경계하고 있다. 여야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당수의 지역에서는 아주 작은 변수로도 승패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선거마다 판도를 뒤흔든 막판 변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요시사>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주목해 봐야 할 막판 변수들을 정리했다.

우선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야권단일화 성공 여부가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당 지도부의 거부감이 강해 당 대 당 연대는 무산됐지만 지역별 연대는 여전히 가능성이 열려 있다. 게다가 국민의당 지도부의 입장도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어 향후 야권단일화 성공 여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야권단일화가 실패하면 가장 많은 의석이 걸려 있는 수도권 선거에서 여당이 대거 어부지리 승리를 가져갈 공산이 커진다. 현재 수도권 122개 지역구 가운데 110여개 지역구에 2개 이상의 야당이 동시에 후보를 냈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야당이 불과 10% 이내 차이로 승리한 지역이 43곳이나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야권분열 시 수도권 선거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당 압승?
야권 선전?

따라서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야권 후보 간 단일화가 이뤄졌거나 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재 강원도 춘천과 경남 창원·성산, 경기 안양 동안을 등에서는 이미 야권단일후보가 확정된 상태다. 일여야다 구도에서 여유롭게 앞서가던 새누리당 후보들은 야권 후보들이 막판 단일화 움직임을 보이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맞서 새누리당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야권단일화는 야합에 불과하다며 의미를 축소하는 한편 야권단일화 힘빼기 작업에 돌입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야권단일화가 성공해도 선거 때마다 반복된 단일화에 유권자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선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실제로 박근혜정부 들어서 치러진 각종 재보선 선거에서 야권은 대부분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선거 결과는 참패였다.


두 번째 변수는 무소속 후보들과 소수정당들의 난립이다. 특히 새누리당 출신 무소속 후보들의 돌풍이 거세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된 유승민 의원은 친유승민계 무소속 후보들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현재 친유승민계 무소속 후보들의 지지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최대 15석 이상을 무소속 후보들이 차지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친유승민계는 아니지만 수도권에 출마한 임태희(경기 분당을), 강승규(서울 마포갑), 조진형(인천 부평갑) 후보는 이미 이번 총선에서 무소속연대를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이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여권표를 상당부분 잠식할 수 있어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야권단일화, 시너지 발휘할까?
무소속연대 돌풍…여권표 잠식

만약 여권 출신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으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에는 무소속연대 소속 의원들이 향후 국회 운영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이 자신들이 탈락시켰던 무소속연대 후보들에게 법안 통과 협조를 읍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수정당들의 난립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장애인 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폐지당’, 소외된 사람들 다수의 지혜를 모으자는 ‘거지당’ 등 다양하고 독특한 정당들이 출사표를 던져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공화당, 한나라당, 민주당 등 유명한 옛 정당명을 그대로 계승한 정당들도 있다.

이번 총선에는 24개 정당이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의석을 가진 원내 정당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민주당, 기독자유당 등 6곳뿐이다. 원외 소수정당들이 당장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기는 힘들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들이 얼마나 많은 득표를 하느냐에 따라 여야 후보들의 승패가 엇갈릴 수 있다. 결과에 따라서는 이들이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할 가능성도 있다.

일여다야
다여다야


세 번째 변수는 투표율이다.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치러지는 사전투표제와 선거 당일 날씨 등이 투표율을 좌지우지할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4월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치러지는 사전투표는 부재자투표와 달리 별도의 신고 절차가 필요 없다. 신분증만 소지하면 거주지와 관계없이 투표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선관위 측은 총선 투표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전투표제가 처음 실시된 전국 선거는 지난 2014년 6·4지방선거다. 당시 투표율은 56.8%로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사전투표제는 젊은 층의 투표율을 크게 끌어올리는 것으로 예상돼 야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총선이 임시 공휴일인 탓에 젊은 층들은 나들이 등을 떠나며 투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전투표는 이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야당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사전투표에 참여하면서 사전투표를 독려할 계획이다.

사전투표로 전체 투표율이 높아지면 야당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박빙지역의 경우 사전투표율에 따라 승패가 충분히 엇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표율은 선거 당일 날씨와도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날씨와 선거의 상관관계는 오래전부터 연구가 진행됐다. 실제 미국에선 선거일 날씨가 투표율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선거결과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었다. 미국 선거에서 날씨가 맑으면 공화당(보수 진영)이,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진보 진영)이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복잡한 선거구도
예측 힘든 승부

선거 날 날씨가 맑으면 중장년층의 투표참여가 늘어나고 젊은 층은 휴일을 즐기기 위해 선거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선거일에 날씨가 좋지 않으면 이동이 불편한 중장년층의 투표율이 떨어져 진보 진영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와 상반된 주장도 있다.

과거에는 투표율이 높아질수록 진보 진영에 유리하다는 통설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높은 투표율이 여야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알 수 없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일례로 무려 75.8%의 투표율을 기록했던 지난 2012년 대선에서는 보수 진영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대대적인 투표참여로 투표율이 올라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네 번째 변수는 네거티브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은 달콤한 유혹이다. 네거티브의 상당수는 당장 사실 확인이 어려운 데다 상대 후보의 이미지에 손쉽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네거티브로 선거판세를 단숨에 뒤집은 사례도 많다.

지난 2001년 16대 대통령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아들의 병역서류가 조작되었다는 병역비리 의혹이 제기돼 큰 파장이 일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후 증거자료가 위조된 것으로 확인돼 관련자들이 구속됐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보궐선거에선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1억 피부과 논란’으로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고배를 들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후 당시 나 후보가 피부과에서 사용한 금액은 불과 550만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네거티브는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미 선거가 끝난 후 허위사실이었음이 밝혀진다고 해도 피해를 복구할 수가 없어 문제다.

그렇다고 네거티브를 무조건 금지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선거 출마자에 대한 검증도 분명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거티브와 후보 검증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모든 공세를 네거티브로 싸잡아 폄하할 수도 없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네거티브는 가장 효과적인 선거 방법이기 때문에 선거 막판이 되면 각종 네거티브들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수정당 난립 “다당제 정착될까”
투표율 관심…사전투표제 결과는?

다섯 번째 변수는 안보 이슈다. 선거 때마다 북한과 관련된 안보 이슈가 터져 나오면 보수 정당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지난 1997년 대선 때에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회창 후보 측 인사가 이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 측 인사를 만나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선거 때마다 의혹만 무성했던 ‘북풍’이 실제로 드러난 사건이라 큰 파장을 일으켰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총선을 앞두고 북한이 돌발행동을 한다면 새누리당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역대 대선을 살펴보면 1987년 대선 때 KAL기 폭파사건, 1992년 대선 당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사건 등으로 보수정당 후보가 큰 반사이익을 얻었다.

새누리당은 총선을 앞두고 이미 색깔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더민주가 이번 총선 공약으로 국정원 폐지를 내놓자 이를 맹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20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자대회’에서 야당을 운동권정당이라고 폄하하고 맹비난했다.

김 대표는 “운동권정당은 (총선에서) 승리하면 테러방지법을 폐기한다고 한다. 운동권정당은 승리하면 개성공단을 재개하면서 북한에 동조하겠다고 한다”며 “이런 안보 포기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군사적 도발위협에 대해 전국의 경계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하면서 사실상 안보위기를 스스로 고조시키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이례적으로 ‘전군’의 경계태세가 아닌 ‘전국’의 경계태세를 언급하며 국민을 향해 비상상황에 각별히 유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 당장 더민주는 “대통령이 안보불안 확산과 북풍몰이를 4·13총선에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여섯 번째 변수는 선거법 위반 후보자들의 낙마다. 총선을 앞두고 벌써 900여명에 달하는 선거사범들이 경찰에 단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상당수의 후보자들이 당선되더라도 곧바로 의원직을 잃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일부 선거구에서는 유력 후보자가 중도 탈락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대선까지 영향
누가 승리할까?

이번 총선 과정에서 금품·향응 제공 등 이른바 돈 선거는 감소 추세에 있지만, 허위사실 유포 적발 건수는 지난 19대 총선의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상 선거운동이 상시 허용되면서 단기간에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운 묻지마식 음해성 유언비어 유포 등이 대폭 증가한 탓이다. 경찰이 선거사범에 대해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겠다고 밝힌 만큼 총선이 끝난 후 대대적인 법정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한편 20대 총선은 201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선거의 성격이 짙다. 이번 총선의 결과가 내년 대선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막판 변수들은 총선 판도를 어떻게 흔들어 놓게 될까? 여야의 총선 성적표에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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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