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입체 추적 ‘문정영농조합 조합원 갈등’ 내막 1탄

“지금 문정동에서 엄청난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

[일요시사 경제팀] 이창근 기자 = “문정동 영농단지에서 엄청난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도 문정영농단지의 조합원들에 의해서다. “조합설립 과정에서부터 정관의 변경, 처분총회에 이르기까지 정상적인 절차는 하나도 없고 조합장의 막무가내 식의 독단과 일부 동조세력의 서류조작에 의해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희생 위에 시대행업체만 배를 채우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송파구 문정동 일대는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도시개발 사업 부지로 선정, 고시하면서 투기열풍이 분 지역이다. 소위 ‘딱지’라고 불리는 토지매입권이 7000만원 상당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다. 일부 거래의 프리미엄은 1억2000만원까지 갔다. 이러한 열풍 끝에 3개 조합이 결성됐다. 각 조합의 사업지는 문정동 8-1블럭, 8-4블럭, 8-5블럭 등이다.

각 사업지마다 크고 작은 문제와 다툼이 만연했지만 문제의 8-4블럭은 “조합장의 전횡에 의해 조합원들이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 여러 건의 소송으로 비화되면서 심각성이 고조된 상태다.

설립단계부터
서류조작?

모델하우스 공개 이후 상가 및 오피스텔 분양까지 완료된 시점인데도 “조합을 새로 결성해서라도 조합원들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작년 말에 출범한 ‘조합원 권리회복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 새해 들어 다수의 조합원들이 가세하는 중이다.

비대위는 늦어도 2월 초순까지 현 조합장의 해임과 시대행사와의 계약파기를 위한 총회를 소집할 계획이다. 한 관계자는 “최근 조합원들의 합류가 이어지면서 그 동안 소문으로만 돌았던 조합장의 전횡 및 시대행사와의 결탁을 증명할 증거와 증인이 확보되고 있다”면서 “반드시 조합원들의 권리를 회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전횡 논란이 일고 있는 문정동 8-4블럭의 사업주체는 원래 문정영농조합(이하 문정조합)이다. 조합장은 대치동에서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는 문모(50)씨. 그러나 현재의 사업주체는 시대행사로 선정된 R사다. 문정조합이 SH공사로부터 받은 토지우선매입권을 R사에 양도함으로써 사업주체가 바뀐 것이다. 조합원들은 사업주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조합장의 불법과 전횡이 무수히 자행됐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시각이 단순한 마녀사냥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송파경찰서에 “문정영농조합 설립 당시 조합장의 지시로 25명의 서류와 도장을 위조했다”고 자백한 증인이 나타난 것이 단적인 예다. 이 자백을 예사로 넘길 수 없는 이유는 향후의 파장 때문이다. 수사기관으로부터 문서위조가 확인될 경우 위조를 지시한 조합장과 이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법적처벌이 뒤따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조합의 불법행위가 드러날 경우 사업권을 회수할 수 있다’는 SH공사의 규정에 따라 문정조합의 사업권이 박탈되는 수순이 뒤따르게 된다. 따라서 ‘문정조합 설립 당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자백의 등장은 8-4블럭의 사업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여기에 문 조합장이 조합정관을 손 댄 부분도 SH공사가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안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는 “정관의 기본 기재사항 및 대표자의 직무권한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SH공사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당초 SH공사가 8-1, 8-4, 8-5블럭 조합들에게 ‘대표자 직무권한 왜곡금지’를 못 박은 것은 조합관련 사업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조합장의 전횡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그런데 문정조합은 이 부분에 손을 댔다.
 

변경된 조합정관 11조를 보면 <조합장 및 임원의 직무> 4항 ‘시대행사 선정권(시대행사와 조합의 공동시행계약체결권)’과 5항 ‘시대행사가 개별조합원에게 지급할 조합원 배당금액의 결정권’을 조합장의 권리에 포함시켜 놨다. SH공사가 금지한 행위를 대놓고 저지른 것이다.

조합 처분총회 전
이미 사업권 넘겨


조합 사업에 있어 시대행사 선정과 배당금 조건에 대한 결정은 특정 개인이 결정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금기 사안이다. 조합원 개개인의 재산권이기 걸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와 같이 중대한 사안은 총회를 개최해서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는 의결을 거쳐야 한다.

조합원들 입에서 “시대행사 선정권, 조합원 배당금액 결정권을 조합장이 갖도록 정관을 변경한 것은 처음부터 조합원들의 권리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말이 도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조합원 박모(50)씨는 ‘SH공사 기만설’을 제기하고 있다.

“조합장이 SH공사에 조합설립 당시의 정관만 보내고 이후 변경한 정관은 일부러 감추는 방식으로 SH공사를 기만했다”는 얘기다.   

SH공사가 금지하는 정관변경을 강행한 이후의 조합장의 행보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시대행업체를 세 번이나 갈아치운 것이다. 조합원 김모(52)씨의 말이다. “처음 데려 온 H사와 두 번째 데려 온 U사는 조합원에게 개인당 9000만원 이상의 현금 보상을 약속했다. 그런데 조합장이 그 계약을 파기하더니 최종적으로 R사와 계약했다. R사의 조합원 보상금액은 7000만원으로 세 업체 중 최악의 조건이다. 이게 정상으로 보이나?”

게다가 시대행사 선정과정에서 낯 뜨거운 추문도 드러났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정모(46)씨의 증언이다.

“문 조합장이 H라는 업체로부터 뒷돈을 몇 억 받기로 한 모양인데 그것을 예전 임원 한 명이 알고 와서는 엄청나게 따진 적이 있다. 그 돈을 혼자 다 먹으려고 사실을 숨겼냐는 항의였다. 조합장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것을 나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봤다.”

이러한 추문은 현재 ‘문 조합장과 R사가 모종의 대가를 주고받기로 결탁한 것이 확실하다’는 조합원의 판단에 배경이 되고 있다.
 

여기에 조합원들이 제대로 화가 나게 한 사건이 터졌다. 작년 1월 경 “문 조합장이 조합원들 재산을 멋대로 팔아먹었다”는 말이 돌더니 뒤이어 문 조합장이 R사와 체결한 ‘사업권 양수도 계약서’가 공개된 것이다.

처분총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는 후 체결됐어야 할 계약이 사전에 계약서로 작성됐다는 것을 예사로 넘길 사람은 없었다. ‘처분총회 무산 시 배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도 조합원들을 크게 자극했다.

“말이 안 되지만 시대행사 선정권과 조건협상권이 조합장에게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내 동의 없이 맘대로 처분할 권리가 조합장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동의도 없는데 내 재산, 내 권리를 조합장 맘대로 넘기다니, 그런 게 어디 있나. 배임이고 사기다!”

조합원 김모(61)씨가 “조합원들이 조합장과 R사에게 사기 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리인에게 집 열쇠 맡겼다고 집안 물건을 다 팔아도 된다고 허락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조합원 재산권을 조합장이 독단 매각?
비상대책위 호소에 검찰개입 임박한 듯


사업권 양도 계약서의 유출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조합장을 파면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문 조합장과 그를 따르는 임원들이 “나중에 사후 추인을 받으려 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쉽지가 않았다.

이후 조합장이 개최한 처분총회에 조합원들이 ‘불참 전략’으로 대응한 것이다. 결국 계약서의 추인을 받고자 시도된 처분총회는 세 차례 모두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그런데 지난해 4월10일 열린 네 번째 처분총회는 달랐다.

문 조합장이 “직접 참석 17명, 위임장 제출 130건으로 성원이 됐다”고 선포한 이후 R사에게 사업권을 양도하는 계약서의 추인을 강행한 것이다. 개회선언 이후 3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처분총회는 현재 불법 논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처분총회 당시의 동영상을 직접 열람해보니 “정상적인 처분총회가 아니다”는 주장에 수긍이 갔다. 회의장 안에서는 의사발언 중인 감사가 퇴장당하는가 하면 조합의 총무이사는 입장조차 저지당했다. 위임장을 지참한 몇몇 조합원의 입장이 거부되는 장면에서는 “억울하면 소송해!”라고 소리치는 주최 측 사람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물론 이날 입장 거부된 일부 조합임원과 조합원들이 잠자코 있지는 않았다. SH공사로 공문을 보내 “서면동의서에 포함된 인감서류 날자와 동의서 날짜를 확인해 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절차적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처분총회 승인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요청은 수용되지 않았다. SH공사가 8-4블럭의 처분총회를 승인한 것이다. 첨부된 서류 중에 1년 전에 발급한 인감증명서가 무수히 나올 것이라는 주장도 SH공사 담당자를 설득해 내지 못했다.

‘추인 자체가 반칙"
"처분총회도 불법?’

조합원과 조합임원 명의의 공식적인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처분총회가 승인된 배경은 무엇일까. SH공사 담당자는 “인감증명서 발급 날짜까지 모두 확인했으나 이상이 없었다”는 답변을 내놨다. 총무이사 및 운영위원들이 요구한 승인보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 또한 “모든 것을 서류로 심사를 할 뿐 이해 관계자의 말을 일일이 검증할 수 없다”며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SH공사 담당자의 답변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합임원과 운영위원의 사전경고와 서면 요청이 있었던 만큼 제출된 회의록의 검증 또한 이뤄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위임장이 조작되었다고 나선 조합원도 5명이나 존재했다.
 

조합원들이 “전화 몇 통 돌려봐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을 SH 담당자가 의도적으로 안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름 근거가 있는 셈이다.

최소 14일 이전에 소집공고를 하도록 한 정관을 위반한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조합원의 권리가 침해당할 수 있는 개연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문정조합 총무이사 박순임(46)씨는 “앞서 시도됐다 무산된 3차례의 처분총회 과정에서 동일한 필적의 동의서 수 십 장과 1년 전에 발급된 다수의 인감증명서를 직접 목격했다”며 증언에 힘을 싣고 있다.

조합원 상당수는 문제가 많은 처분총회가 승인된 것은 SH 담당자와 조합장 간 혹은 SH 담당자와 R사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일요시사>가 SH공사 담당자에게 처분총회 관련 서류의 열람을 요청했지만 불허됐다. “조합원이 와도 보여줄 수 없고, 조합임원이 와도 열람이 안 된다”는 것이다. 감사원이나 검찰, 서울시 등의 개입 없이는 조합원들이 SH공사의 승인과정을 검증할 방법이 만무한 상태다.

시대행사 약속 불이행
조합원들 "역차별 발끈"

처분총회를 둘러싼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R사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모델하우스 공개 이후 실시된 사전청약에서 오피스텔과 상가 대부분이 절찬리에 마감된 것이다. 마감 결과 문정조합원들이 오피스텔이나 상가를 분양받은 케이스가 매우 적었다. 일반분양을 한 탓이다. 조합원들이 “10년 넘게 기다린 조합원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며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다.

“조합장이 제시한 R사의 문건에는 잔금의 상계처리가 약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다. 조합원들에게 상가나 오피스텔을 우선해서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말도 거짓말로 판명됐다. 조합원은 손가락 빠는데 R사는 이번 사업으로 200억원의 수익을 본다. 도대체 누가 이 지경을 만들었겠나?”

한 조합원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역차별 발언이 꽤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조합원 둘 이상만 모이면 “조합장이 업체로부터 이익을 나누자는 약속을 받고 엄청난 사기극을 저질렀을 것”이란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이러한 추측은 군중심리에 의한 조합원들의 막연한 추측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일련의 상황을 보면 터무니없는 마녀사냥으로 치부하기도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일부 조합원은 문 조합장이 자신과 관련한 여러 소송에서 대형로펌이 동원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딱지 한 장 가진 사람이 얼마나 이익을 본다고 그 비싼 로펌을 고용해서 대응하겠느냐는 것이다.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 R사가 조합장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했거나 정산 후 받기로 하고 빌려줬을 것이 분명하다는 게 조합원들의 판단이다.
 

신탁사가 발행한 수익증권이 204명 조합원의 개별 명의가 아닌 문정조합 명의로 통합발행 된 점도 조합원들에게는 야합의 증거(?)로 비춰지고 있다. 조합청산에 들어갈 때까지 조합원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조합명의 수익증권이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저지른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조합사무실이 사실상 폐쇄된 것도 의혹 증폭의 요인이 되고 있다. 조합원들이 받은 ‘조합사무실 이전’ 문자를 받아 찾아간 주소지에는 조합사무실이 발견되지 않았다. 건물 구석에 간판 없는 출입문이 하나 있었지만 그나마 잠겨있었다.

현재 조합원들의 시선은 ‘조합장과 R사의 야합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 수준에서 ‘분명히 야합을 했다’는 확신 단계로 이동 중이다. 그러나 정작 의혹의 눈총을 받는 조합장과 R사는 아무런 해명과 대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 않다.

<일요시사> 취재에 대해 “어떠한 것도 대답할 말이 없다(조합장)”거나 “귀 신문사의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R사)”는 입장만 알려왔다. “반론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문자에도 일체 반응이 없었다.

문 조합장과 R사가 취재요청을 회피하는 동안에도 비대위는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세력을 불리고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조합원이 조금만 더 모이면 문정조합이 아닌 다른 이름의 조합을 새로 결성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3주 이내에 총회를 개최해서 현 조합장의 해임, R사와의 계약 파기, SH공사에 신규조합 신고 등의 수순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정조합이 설립 단계부터 처분총회까지 무수한 절차적 하자와 비리가 있었음이 드러난 만큼 새 조합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새로 출범하는 조합이 직접 사업을 해야 R사가 도모하고 있는 200억원의 수익이 200여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명분이다.

새 조합 만들어
조합사업 재추진 

한편, 비대위의 행보와 별개로 주목되는 움직임이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최근 검찰에 문정영농조합과 관련한 비리제보가 계속 수집되는 만큼 조만간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언급하고 있다. 감사원 주변에서도 “문정동 사업부지와 관련해서 SH공사에 대한 감사 타이밍을 조율중”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조만간 문정동 일대에 한바탕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이 예견되는 이유다.

‘조합장 치고 감옥 안 가는 사람이 없다’는 속설이 문정동 일대에 회자되는 가운데 문정단지 조합장이 예외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