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추적> 반기문-박근혜 밀월행보

친박계, 차기 대통령 만들기 시작됐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해 벽두부터 국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놨다. 반 총장이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새해 인사 통화에서 위안부 협상 지지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반 총장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밀월행보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해 벽두부터 국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놨다. 반 총장은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새해 인사 통화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해 “위안부 문제가 합의에 이른 것을 축하한다”면서 “박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례적인 인사치레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평소 민감한 질문을 잘 피한다고 해서 ‘기름장어’라는 별명까지 가진 반 총장임을 감안하면 정치적 의미가 작지 않다. 반 총장이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을 뻔히 알고도 박 대통령 힘 실어주기에 나선 셈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반 총장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는 데 반 총장의 발언을 적극 이용한 것이다.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밀월행보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라인 본격화
박근혜 편들기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반 총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대통령 취임 첫해에만 반 총장을 3차례나 만났다. 2014년 10월에는 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직후 친박 주류 의원들이 세미나를 열고 난데없이 반 총장 띄우기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세미나의 주제는 ‘2017년 차기 대선 지지도 판세’였고 부제는 ‘반기문 사무총장 출마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변수를 중심으로’였다.


반 총장이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친박 추류 의원들이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을 놓고 공개 세미나까지 연 것이다. 내용은 노골적인 반기문 띄우기였다. 발제를 맡은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가 “여론조사를 보면 반 총장을 제외하면 사실 정권 연장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운을 띄우자 국회 외통위원장을 지낸 안홍준 의원은 “당내 인사로 정권 창출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반 총장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유엔총회 기간엔 반 총장과 박 대통령이 모두 7차례나 직간접적으로 자리를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뉴욕 도착 이후 첫 일정으로 반 총장 관저에서 만찬을 진행한 데 이어 유엔개발정상회의 기조연설,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 기후변화 주요국 정상오찬, 유엔총회 기조연설, 유엔 사무총장 주최 오찬, 유엔평화활동 정상회의 등을 함께 했다.

특히 당시 반 총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행했던 새마을운동을 극찬해 눈길을 끌었다.

반 총장은 “한국사람 중 한사람으로서 유엔 역사상 처음으로 새마을운동이 회원국에 도입되고 실행되고 있어 감명을 받았다”며 “박 대통령의 노력으로 새마을운동을 개도국에 소개하고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맨해튼 중심에서 새마을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산불처럼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고도 말했다. 당시 반 총장의 발언을 두고 박 대통령을 향한 낯 뜨거운 구애라는 평가까지 나왔었다.

낯 뜨거운 구애?
친박과 상견례 중?

게다가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을 만난 지난 9월은 마침 추석연휴 기간이었다. 당시 국내 정치권은 정쟁에 한창 몰두하고 있을 시기였다. 반면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세계무대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쓰고 있는 그림을 연출했다. 지난해 추석 여론전의 승자는 단연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었다.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밀월행보의 절정은 지난 해 두 사람이 중국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나란히 참석한 장면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반 총장의 열병식 참석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일본 외무성은 반 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석은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를 유엔 측에 전달했다.


일본 외무성 고위 관계자는 “중국의 이번 기념행사는 쓸데없이 과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며 유엔 사무총장은 중립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일본 정부는) 강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항의했다. 또 일본은 “(중국 정부가 민주화 시위를 억압한) 톈안먼 사태가 발생한 장소에서 열리는 열병식에 유엔 사무총장이 참석해 군사 퍼레이드를 관람하기로 결정한 것에 (올바른 결정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반 총장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며 일본의 비판을 일축했다. 반 총장이 ‘역사’나 ‘교훈’ 등 일본 정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강경한 입장을 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시 열병식에는 중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서방국 정상들은 대부분 불참했다. 만약 반 총장마저 참석하지 않았다면 균형외교를 추구하며 서방 동맹국 중 거의 유일하게 참석을 결정한 박 대통령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을 것이다.

박 대통령에 위안부 협상 지지 발언
대선 앞두고 노골적으로…정치권 발칵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이 박 대통령의 수호천사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외교적 고비 때마다 박 대통령 뒤에는 반 총장이 있었다. 집권 4년차를 맞는 박 대통령이 여전히 40%에 가까운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외교 성과다.

실제로 신년을 맞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취임 후 3년 동안 가장 잘 한 것을 묻는 질문에 외교적 성과와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이라는 답변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일례로 반 총장이 박 대통령과의 신년 통화에서 위안부 협상 타결을 높게 평가한 것은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던 박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됐다. 반 총장은 박 대통령이 취임 후 북한과 맞설 때마다 대통령의 편에서 북한을 압박했다.

이처럼 두 사람이 밀월행보를 지속하는 것은 서로의 니즈(Needs)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직까지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는 친박계로서는 반 총장만큼 매력적인 카드가 없다. 현재 친박 진영에선 마땅한 차기주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수호천사?
지지율 상승

여권 내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비박계다. 친박계는 여전히 새누리당 내 최대계파지만 마땅한 차기 대권주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차기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는 비박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반 총장은 지역과 연령을 넘나들며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 총장은 양극인 호남과 영남에서 모두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20대와 60대 지지율에서도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여야의 차기 대선 후보들이 특정 지역과 특정 세대 쏠림 현상을 보이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게다가 반 총장이 대선 캐스팅보드로 불리는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도 큰 강점으로 꼽힌다. 최근 정치권에 불어 닥친 개헌론과 대입해보면 반 총장의 경쟁률은 더 높아진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혁신하기 위해 최근 정치권에선 이원집정부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외교와 국방 같은 외치의 경우는 대통령이, 나머지 내치는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담당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렇게 된다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외교부 장관 등을 거친 반 총장이 가장 적임자일 수 있다. 이미 전례도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은 1972년부터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뒤 1986년 본국으로 돌아가 대통령이 됐다. 오스트리아는 이원집정부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다.


임기 마지막해…본격적인 동행?
달라진 행보 확실한 친박 줄서기

지난해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콕 집어 언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개헌 논의는 여당 내에서 금기시되어 왔던 일인데 난데없이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홍 의원이 개헌을, 그것도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콕 집어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권력으로 힘이 쏠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력 차기 대권주자를 하루빨리 내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친박계가 비박계를 견제하기 위해 반 총장을 차기 대선후보로 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대권을 꿈꾸고 있다면 반 총장도 친박계의 도움이 절실하다. 아무리 반 총장의 인기가 높다지만 반 총장은 정치경험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국내에 정치적 기반도 없다. 선거는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하부 조직의 역량에 따라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물론 반 총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한다면 순식간에 수많은 인사들이 모여들겠지만, 짧은 기간 어중이떠중이 모여든 인사들로는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조직력을 기대할 수 없고 대선캠프를 운영하면서 상당한 잡음에 시달릴 위험성이 크다.

반 총장이 북한 방문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대권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 총장은 올해가 마지막 임기인데 한반도 평화 안착과 관련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대선이 실시되는 내년에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끝내고 금의환향하려면 올해에는 북한 문제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분석이다.

반기문 밀고
이원집정부제 실시?

정치권에서는 경색된 남북 관계 때문에 다음 대선에서의 최대 화두는 통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 총장이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다면 반기문 대망론이 더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반 총장은 대선 출마설이 불거질 때마다 그런 소문이 유엔 사무총장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정작 대선 출마설에 불을 지피고 있는 사람은 반 총장 자신”이라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기문은 친노 배신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다. 지난 2004년 6월 ‘이라크 김선일씨 피살사건’ 당시에는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정치권의 압박에도 자리를 보전하는 등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기까지 노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반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1년 반이 지난 2011년 12월에서야 노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를 해 친노계 인사들 사이에서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샀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반 총장이 대권을 염두에 두고 향후 변절자라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 ‘친노’ 및 야권과 거리를 두는 행보를 하는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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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