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홍’ YMCA 스캔들 막후

“그분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하면 떠오르는 건 젊음과 기독교다. 그런데 서울YMCA 내부는 젊지도 않고, 기독교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집행부의 비리 의혹이 연달아 터져 나오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YMCA가 내홍을 겪고 있다. 집행부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특정 인사들의 비리 의혹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그 중심엔 표용은 명예이사장이 있다. 원로들은 풍파의 근원으로 표 명예이사장을 지목했다.

표 명예이사장은 1988년부터 서울YMCA에서 이사직 1989년, 이사장직 16년 등을 지내며 장기 집권했다. 1933년생인 표 명예이사장은 1959년 감리교 신학대학교를 졸업했고, 1960년에 현재까지 시무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중앙교회(아들 표순환 목사 승계)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다. 평범한 목사였지만 표 명예이사장은 교계정치에 능했다. 당시 가장 손쉬운 세력 확대 방법은 감리교 내 계파 장악이었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군림
 

1960년대 이후 주요 계파로는 월남한 교인들이 주축이 된 성화파와 서울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한 정동파, 충청 지역 출신들로 구성된 호헌파를 꼽을 수 있는데, 얼마 뒤 호헌파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호헌파에 속했던 표 명예이사장은 1970년대 호헌파가 구파와 신파로 분열되고 1980년대초 신파 김창희 전 감독이 세상을 뜨면서 신파의 좌장으로 부상한다.

이렇게 세력을 형성한 그는 이미 197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운영위원, 1971년 KNCC 실행위원 부회장, 1973년 기독교 대한감리회 중부연회 실행위원, CBS(기독교방송) 이사장 등이 됨으로써 교계정치를 위한 든든한 기반을 마련한다.


표 명예이사장은 국내 교단의 주요 요직을 섭렵했다. 그리고 서울YMCA에 눈을 돌렸다. 1988년 서울YMCA 이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서울YMCA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자신들의 측근을 이사회에 앉혔다. 측근들은 서울YMCA 재단 이사회(9명)와 운영이사회(24명) 이사를 겸직하며 장기 연임했다.

심규성 감사는 “재단이사회와 운영이사회 대부분 명예이사장(표용은)에게 충성한 측근들로 채워졌다”며 “대부분 수십년째 서울YMCA이사로 지내고 있다. 새로운 인물이 이사회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점입가경’ 집행부간 갈등 심화
특정인사 비리의혹 연달아 터져

심 감사는 사실상 표 명예이사장이 측근들을 통해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설명했다. 이사 연임 제한도 없어 사실상 종신이사가 가능한 체제다. 때문에 이사회는 상당히 노후화 됐다. 서울YMCA 이사들의 나이를 보면, 표 명예이사장 84세 조모 이사장 84세, 양모(73)·이모(71)·조모(80)·강모(73)·조모(61)·안모(60)·박모(82·사퇴) 이사 등 평균 연령이 70대 이상이다.

문제는 표 명예이사장과 이들 8명의 재단 이사가 서울YMCA 운영이사회가 관리해야 할 자산운영과 인사 등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 명예이사장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자기 밑에 사람은 확실히 챙겨주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표 명예이사장의 사람 관리 방식은 철저한 논공행상이다. 20여년동안 집권할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서울YMCA의 일감을 몰아주거나, 측근의 지인들을 서울YMCA에 취직 시켜주는 방법이 대표적인 예다. 서울YMCA의 관계자는 “표 명예이사장 측근 이사들의 친인척들이 직원들로 많이 들어와 있다”며 “현 서울YMCA 회장도 표 명예이사장 조카”라고 말했다.

안창원 서울YMCA 회장은 표 명예이사장 여동생의 셋째 아들이다. 표 명예이사장이 안 회장의 외삼촌인 셈이다. 안 회장은 30여년 전 표 명예이사장을 통해 서울YMCA에 취직한 이후, 지난 2009년까지 기획행정국장으로 일하다 그해 9월 서울YMCA 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안 회장은 자질 논란으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요직에 핏줄들
조직 쥐락펴락

2008년 안 회장이 기획행정국장으로 있을 당시 서울YMCA는 고위험투자상품인 ELS(주가연계파생결합증권)상품에 30억원을 투자해 11억원을 날렸고,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잔액을 다시 고위험 선물옵션에 투자해 지난해 말 기준, 원금을 완전히 탕진해 통장 잔액은 18만983원밖에 남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안 회장은 그의 측근과 함께 자금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 3차례 이상 모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부동산 투자로 위장하거나 분식하는 방안을 강구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종로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재단 재산의 고위험 파생상품 투자로 인한 30억원대 손실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심 감사는 “재단법인이 기본자산을 고유목적 사업 이외의 곳에 지출하려면 주무관청에 신고해 허가받아야 하지만, 이런 과정이 없었고 내부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은 채 불법으로 투자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또 안 회장은 법인 소유의 대형승용차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한 의혹도 있다. 안 회장은 시민단체 책임자로서 어울리지 않게 에쿠스를 타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부 인사들의 이 같은 지적으로 타고 다니지 못했지만, 이 차는 아들이 물려받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안 회장 부인이 법인카드로 선물용품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등 직원들의 제보가 상당하다. 이에 대해 서울YMCA는 “해줄 말이 없다”며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않았다. 안 회장은 일본 출장 중인 탓에 연락이 닿지 않았다. 표 명예이사장은 안 회장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종조카인 고모씨를 서울YMCA 부설사회복지법인 삼동소년촌의 사무국장에 앉히기도 했다.

서울YMCA는 안 회장의 첫째 형 안태원 미환서비스 대표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환서비스는 청소용역 관리회사로 2007년 서울YMCA와 청소용역계약을 체결했다. 이전까지 서울YMCA는 CBS미환이라는 업체와 1997년부터 2007년까지 해왔으며, 이 계약기간 중임에도 계약을 해지했다. 이 자리를 표 명예이사장의 조카 회사인 미환서비스가 꽤찼다. 이 계약과 관련해 당시 이사장들이 서울YMCA에 2860여만원의 피해를 입힌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일감 밀어줘”
친인척 챙기기

서울YMCA는 미환서비스 산업에 매년 책정하는 용역비를 과대 계상한 의혹도 있다. 서울YMCA 내부 문서인 ‘2006∼2008년 용역현황비고’를 보면 CBS미환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계약금액이 상감됐다. 서울YMCA 종로 본관만 관리했다.

2007년부터 미환서비스는 종로 본관, 종로 별관, 강남·잠원스포츠 등 서울YMCA 시설등을 관리했다. 연간 시설 관리 계약금도 대폭 올랐다. 2007년 종로 본관 계약금액이 5921만원이었다면, 2008년 계약금액은 1억3605만원으로 2배 이상 인상됐다. 다른 시설 계약금도 배 이상 올랐다.

서울YMCA에서 근무 중인 한 관계자는 “여전히 미환서비스에서 청소용역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때 당시 미환서비스의 이사를 보면 ‘가족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이사에는 안 대표의 부인과 표 명예이사장의 친동생인 표모씨, 또 다른 종친인 표모씨가 있었다.

<일요시사>는 미환서비스를 통해 안 대표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회사 관계자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표 명예이사장은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김모 전 YMCA 이사의 처조카 회사인 도량기업에 수년간 일감을 몰아준 의혹도 있다. 페인트 전문 업체로 설립된 도량기업은 표 명예이사장이 취임한 이후 지난 20여년 가까이 서울YMCA 도색 및 리모델링, 기타 공사를 독점했다.

장기 집권 명예이사장 풍파 중심에
측근들 낙하산 인사…이상한 거래도

서울YMCA가 도량기업에 공사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공사 대금을 과대 계상한 의혹이 있다. 2007년 서울YMCA 본관 옥상방수 비용으로 도량기업이 1억2320만원을 지출했지만, 당시 관련 업체에서 최고가격으로 견적을 받아본 결과 3384만원으로 책정됐다.

최근 고양시와 서울YMCA 뒷거래 의혹이 있는 일산풍동 수련원부지 골프장 공사도 도량기업이 수주했는데, 당시 공사비용이 부풀려졌다는 의심도 사고 있다. 서울YMCA는 골프장 비용으로 142억원을 책정해 공사를 진행했지만, 시민들의 반발로 2010년 9월 고양시는 골프장 사업을 직권 취소했다. 그런데 이미 공사비의 60%인 80억원 이상 도량기업에 집행된 상태였다.

고양시는 ‘직권취소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에 대비해 이 공사에 대한 감정을 했지만, 공정률은 37%에 불가했다. 심 감사는 “공정률 20∼30% 수준의 공사에서 아무리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30억∼40억원 이상 투입될 이유가 없다”며 “하지만 이미 도량기업에 지출된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도량기업 대표는 “김 전 이사의 조카가 맞다. 그동안 서울YMCA 공사를 많이 한 것도 맞다”며 “하지만 이 과정 불법적인 것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표 명예이사장의 측근인 전현직 이사들의 비리 의혹도 상당하다. 이중 이석하 이사는 표 명예이사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이사는 원래 1980년대 서울YMCA 지하에서 파친코 사업을 했었다. 표 명예이사장을 통해 서울YMCA에 발을 들여 놓은 후 1991년부터 24년째 서울YMCA 이사로 지내고 있다. 2008년 개인비리 혐의로 이사회에서 사임했으나, 다시 일산 골프장 공사 건축위원장직을 맡으면서 복귀했다.

이 이사는 여성참정권문제(2005년 서울YMCA가 총회 투표권을 여성에게 주지 않자 소송까지 이어진 사건) 현안대책위원장직을 수행하며 성공사례비 1000만원도 받았다. 변호사도 아닌 그가 어떻게 성공사례비를 받았을까. 당시 이 이사는 “소송이 2년6개월 장기화되면서, 승소하면 변호사에게 성공사례비를 줘야한다”고 제안했지만, 2007년 9월 이사회에서 이 이사가 성공사례비를 횡령한 사실이 폭로됐다.

변호사 아닌데
성공보수 챙겨

2006년 이 이사가 마포구에 있는 강변한신코아 오피스텔의 대표회장으로 있을 당시 서울YMCA 이사들을 끌어와 대표회의를 장악하기도 했다. 이때 서울YMCA이사 7명이 총 14채의 오피스텔를 각각 소유했다. 이 이사는 당시 5채, 표 명예이사장은 2채를 부인 명의로 소유했다. 이 건물에는 현재 도량기업과 미환서비스가 입주해 있다.

서울YMCA는 1903년 설립돼 일제강점기 독립·계몽운동을 이끄는 등 11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민사회단체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정상 이유로 직원 급여 및 4대 보험금까지 내지 못해 고발 당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사들의 횡령, 배임, 일감몰아주기, 비자금 등 운영상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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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