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넘치는 지방대 속사정

“유학생 없으면 문 닫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지방대가 외국인 유학생들로 넘쳐나고 있다. 학교마다 중국과 동남아 각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 수백명 이상이 캠퍼스를 누비고 있다. 국내 학생만으로는 신입생 확보가 어려워 외국 유학생들로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지방대로서는 외국 학생 유치가 당장 시급한 재정 확보와 대학의 국제화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졸속, 과열 양상으로 이뤄지는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2015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은 9만명가량이다. 이 중 서울을 제외한 경기·충청권 등 지방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은 5만명 정도. 비율로는 55%에 달한다. 외국인 유학생이 500명 이상인 지방대만 해도 모두 26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적은 외국인 유학생을 확보하고 있는 지방대는 셀 수 없이 많다.

정원외 입학
무한 늘리기

전체 지방대 중 외국인 유학생 수 1위를 차지한 부산대에는 56개국에서 온 1579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1487명보다 100여명 가량 늘어난 수치다. 국립대뿐만 아니라 지방 사립대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3위에 오른 우송대에도 모두 1470명에 달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대가 주로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방법은 외국에 있는 학교와의 자매결연을 통해서다. 자매대학을 중심으로 국내 학생들을 현지로 유학 보내는 대신 현지 학생들을 교환학생으로 끌어오는 방식이다. 우송대의 경우 23개국 81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또 현지에 대학 관계자들을 직접 파견해 유학·입학설명회를 가지기도 한다. 우송대 국제교류처 관계자는 “유학생 유치를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해당 대학만의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우송대의 경우 100%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솔브릿지국제대학 등 학과 특성화가 잘 돼 있는 게 유학생 유치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보다 물가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한국 유학수요가 많은 중국·베트남 등지에는 현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유학설명회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중국·동남아 학생들 캠퍼스 북적
재정 확보 목적의 불꽃 유치전

일부 대학은 해외 현지에 자체 홍보부스를 설치하고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기도 한다. 2013년부터 대전·충청 지역에서는 건양대, 대전대, 배재대, 우송대 등이 중국 우한에서 유학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설명회에서는 우한지역 고교 관계자, 한국어전공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전시의 교육 인프라, 유학생 지원정책 등에 대한 설명이 진행된다.

또 조선대는 중국 월수고, 베트남 쑤언록고·엥고씨리엔고 등과 유학반 운영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유학반 학생들은 조선대에서 파견한 한국어 강사로부터 언어 교육을 받으며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오게 된다.

호남대 역시 중국 민판실험학교·임천실험고 등과 잇달아 협약을 체결하고 유학반을 운영하고 있다. 유치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대학들이 내세운 혜택들이 골칫거리가 되어 되돌아오기도 한다.

등록금 전액 면제나 기숙사 관리비 면제 같은 각종 우대혜택을 제공하다 보니 정작 대학 측에 돌아오는 수익은 없다는 것.


특히 사립대의 경우 등록금이 절반 수준에 불과한 지방 국립대와 경쟁하기 위해 ‘등록금 반값’ 같은 무리한 혜택을 조건으로 내세운 곳이 허다하다.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중국, 베트남 등지의 유학생들로부터 등록금 전액을 다 받을 경우 유학생 유치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대전에 있는 모 대학 입학관계자는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판촉 경쟁을 벌이다 보니 실제로 얻는 수익은 미미한 정도”라고 털어놨다.

지방대들은 시설에도 상당한 투자를 들였다. 청주대의 경우 총 공사비 1106억원을 투입해 외국인 유학생 73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 빌리지’라는 기숙사도 만들었다.

2009년부터 사용된 이 건물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한국어센터도 들어서 있다. 우송대는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솔브릿지국제대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단과대를 아예 새로 신설하기도 했다.

학비 50% 감면
파격조건 제시

외국인 유학생들의 증가를 반기는 곳은 대학가 주변상가를 비롯한 지역상권이다. 지역 경제에 돈이 돌고 있기 때문. 특히 학교 주변의 원룸, 하숙집 등은 외국인 유학생 증가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후문이다.

대학가 주변의 유동인구가 수백에서 수천명씩 늘어나면서 기숙사를 구하지 못한 외국인 유학생들이 학교 주변에서 숙소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숙사에 머무는 학생은 50%가 넘지 않았다. 1000명이 넘는 외국인 유학생을 가진 학교의 경 500∼600명 가량의 학생들이 밖에서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은 일부 지자체에서는 외국인 유학생 전담 유치팀을 꾸려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대전시는 시비 44억을 포함 총 88억원을 투입해 ‘누리관’이라는 외국인 유학생 전용 기숙사를 건립하기도 했다.

이곳은 500여명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 달 10만원 정도를 내고 생활중이다. 대전시 국제교육담당관실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전시 관내에 4000여명이 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며 “이들 대부분은 자비유학생으로 지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는 별도로 시비를 배정해 대전 대학들을 대상으로 한 유학 홍보물도 제작하고 있다. 대전에 있는 한 대학의 입학 관계자는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유학생 9만명이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 밥값으로 1만원만 쓴다고 해도 하루에 9억, 1년에 3240억원 넘게 지역에 뿌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온 힘을 쏟는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보통 지방대들의 수익은 학생들이 매년 학교에 내는 등록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60%에 달해 미국 30%에 비해 2배나 된다. 하지만 해마다 입학원서를 제출하는 학생 수는 감소하고 있다. 특히 호남권의 경우는 신입생 감소로 대학 등록률이 75%를 밑도는 수준이다.

신입생 확보 어려워 해결책
졸속·과열 양상…부작용도

수도권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양호하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 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대학 실정을 감안할 때 재정위기로 인해 정상적인 대학 운영이 어렵고 생존도 불투명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방의 고등학교나 각 지자체에서도 서울 유학을 권장하는 현실에서 외국 유학생들은 지방대학의 공백을 메우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서울 시내에 지방 광역자치단체가 고향 유학생들을 위해 건립한 기숙사만 6개가 있다. 거기다 기초자치단체인 시·군 단위에서 건립한 기숙사까지 합하면 그 수는 20여개에 달한다. 지방 학생들도 지방대에 남기보다는 서울로 진학하길 바라고 있다.

충청지역에서 학생들의 진학지도를 맡고 있는 교사의 말에 따르면 전교생의 40% 정도는 서울지역 대학에 원서를 낸다. 주변 도시에도 대학은 많지만 어차피 집에서 통학이 힘들다면 취업이나 교육여건 등을 생각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즐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지방대가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목을 매는 또 다른 이유는 외국인 유학생 정원 늘리기가 국내 학생을 늘리는 것보다 제도적으로 쉽다는 것이다. 국내 학생 정원을 늘리는 것은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 정원을 늘릴 때에는 이러한 절차가 필요 없다.


특히 외국인 유학생은 ‘정원 외 정원’에 속하기 때문에 각 대학별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무제한 정원을 늘릴 수 있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등록금의 30~50% 정도를 깎아주기도 하지만 정원 외 모집인 만큼 유학생을 많이 유치할수록 학교에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국제화 필수?
문제는 ‘돈’

일부 대학에서는 지금보다 적극적인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학의 글로벌화에도 도움이 되고 적은 노력으로 대학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으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유학생 비율이 떨어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별별 교수’ 열전

‘교수’란 학습자에게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하고,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교육활동을 하는 자를 말한다.

그렇지만 교수라고 다 같은 교수가 아니다. 교수와 강사의 차이점과 교수들의 호칭을 정리해 본다. 먼저 대학에서 석·박사과정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박사학위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1년에 1만명 이상의 박사가 배출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수가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조교는 교수를 돕기위한 대학원생을 말한다. 교수의 연구나 업무를 보조하는 직책으로 교수하고는 상관이 없다.

교수의 단계는 보통 시간강사로 시작한다. 시간강사는 대학교에 위탁을 받아 일정한 시간만 학생을 가르치는 직위로 특정 대학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이대학 저대학을 맡은 시간에 따라 이동하며 시간수당을 받기 때문에 생활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돈을 받는다. 그래도 교수를 위해서는 일정시간의 강사경력은 필수인데다가 강사경력을 통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그 다음단계가 전임강사다. 교수칭호는 얻지 못했지만 특정학교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으며 장래 해당학교 학과에 교수자리가 비면 그 자리를 이어받아 교수가 될 사람이다. 정식으로 교수가 되면 경력 등에 따라 조교수나 부교수로 나뉜다.

조교수는 강사 등의 경력이 짧을 경우에 임용되며 부교수 이상에 비해 위치가 조금 불안하다. 계약직으로 몇년 계약하는 학교도 있다. 조교수나 부교수의 직위나 대우는 대학마다 상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위가 교수의 대명사인 정교수다.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일정한 경력과 연륜이 생기면 정교수가 되는데 이때쯤 되면 학교나 학과, 학회 등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해당 학문분야를 통해 외부에도 영향력을 가지는 교수들도 많다. 정교수가 은퇴하면 명예교수가 된다.

이 외에 타대학의 교수가 와서 일정기간 강의하는 교환교수나 외부의 관련업무 경력자가 일부시간만 강의하는 겸임교수 등이 별도로 있다. 보통 학교마다 다르지만 부교수 이상이 될 수 있는 대학도 있고 정교수만 가능한 대학도 있다. 교수 중에 행정상 간부직책이 있으며 이를 통틀어 보직교수라고 한다.

이의 첫단계가 전공이나 특정교양분야를 책임지는 주임교수, 학과를 책임지는 학과장, 공과대학과 같은 단과대학이나 전문대의 최고책임자인 학장, 그리고 대학내 주요부서를 담당하는 교무처장이나 입학처장, 학생처장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대학의 최고책임자와 2인자인 총장과 부총장이 있다. 요즘은 박사가 많아서 4년제 대학 교수를 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다. 특히 서울이나 지방국립대 같은 곳에서 교수를 하려면 박사를 따고도 수십 대 일 이상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때문에 일각에선 고시보다도 어렵고 험난한 길이라고 한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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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