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박' 거부한 안철수의 노림수

'새판' 짜든지 '친노' 빼고 헤쳐모이든지?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문(문재인) 안(안철수) 박(박원순) 연대’를 거절하고 당 내외 모든 야권주자들이 참여하는 혁신전당대회를 역제안 했다. 이로써 야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최대 분수령을 맞게 됐다. 정치권에선 문 대표와 안 의원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최악의 경우 안 의원이 탈당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안 의원이 문안박 연대를 거절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문(문재인) 안(안철수) 박(박원순) 연대’를 최종적으로 거절했다. 안 의원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3인이 당권을 분점해 총선을 치르자는 문안박 연대만으로는 당의 화합과 당 밖의 통합이 이루어질 지 미지수고 지지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며 문 대표의 제안을 거절했다.

혁신전당대회
문안박 연대

안 의원은 대신 문 대표에게 “더 담대하고 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문 대표를 포함한 모든 야권주자들이 참여하는 혁신전당대회를 개최하자”고 역제안 했다. 안 의원은 본인 또한 전당대회에 참여하겠다며 “꼴찌를 해도 좋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감당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표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안 의원의 제안을 공식적으로 거절했다. 혁신전대를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총선을 앞두고 전당대회를 열면 ‘공천 줄 세우기’ 전당대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내년 총선까지 5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정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안 의원은 문 대표 측이 제안을 거부하자 “더 좋은 안이 무엇인지 내놓아야 한다”며 거듭 문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의 최근 행보에 대해 “안 의원이 탈당의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안철수, 연일 강공드라이브
'복당녀' 박근혜 전술 따라하기?

실제로 안 의원은 문 대표의 문안박 연대를 거절한 다음날 야권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주를 방문해 의미심장한 행보를 이어갔다. 안 의원은 광주를 찾아 첫 일정으로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의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친노세력의 패권적 행태를 무너뜨려야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신당 지지가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했고, 패널로 참석한 호남지역 인사들이 ‘호남 홀대론’ ‘문재인 지도부 퇴진’ 등을 언급할 때마다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토론회를 지켜 본 한 당 관계자는 “주제는 야당의 혁신이었는데 마치 문 대표를 비롯한 친노세력에 대한 성토장 같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안 의원은 또 광주에서 청년사업가들과 간담회를 가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문안박 연대에 대해 “본인 입으로 얘기할 때는 적어도 (문안박 중) 자기 이름을 제일 뒤에 넣어야 하지 않겠냐”며 뼈 있는 농담을 던지는가 하면 사실상 문 대표와 친노진영을 겨냥해 “개인이나 각 계파의 이해타산이나 대선출마 욕심이 앞서면 공멸한다”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진흙탕싸움 시작?
문-안 정면충돌

지난 대선 이후 안 의원은 사실상 문 대표와 줄곧 대립하는 관계였지만 안 의원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문 대표를 겨냥한 행보를 이어나간 적은 처음이다. 대선출마와 신당창당 등을 포기하면서 이름을 빗대 ‘철수정치’를 한다는 비아냥을 들었던 안 의원은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나지 않고 ‘강철수(강한 안철수)’가 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문 대표에게 밀리기만 했던 안 의원이 내년 총선과 향후 대선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일각에선 안 의원이 문 대표를 압박해 결국 내년 총선에서 지분 챙기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고 평가절하 했지만 안 의원이 겨우 지분을 챙기려고 했다면 문안박 연대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내년 총선에서 지분을 조금 더 챙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친노세력이 주도하는 당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안 의원의 이 같은 행보는 내년 총선을 기점으로 친노세력보다 우위에 서겠다는 것이고 드디어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내 비주류 인사들은 안 의원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세 결집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안 의원이 광주를 찾았을 땐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이 대거 안 의원과 동행했다. 문 대표가 지난달 18일 광주 조선대 강연에 나섰을 때 광주지역 국회의원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안 의원은 광주를 방문해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호남 물갈이론으로 궁지에 몰린 호남 의원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안 의원은 “왜 호남만 물갈이 되어야 하느냐”며 “특정지역을 떠나 전체적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주류 인사들은 안 의원의 혁신전대 주장에도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호남 중진인 주승용 최고위원은 “안 의원이 제안한 혁신전대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치켜세웠고, 비주류모임인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은 안 의원의 혁신전대와 관련해 “문 대표가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기 위한 결단을 신속히 내려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안 의원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병호 의원은 심지어 “당 내에서 혁신과 통합의 실천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흐름을 선택할 수도 있다”며 안 의원의 탈당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문 대표를 압박하고 나섰다.

당내 비주류 의원들은 윤후덕, 신기남, 노영민 의원 등 공교롭게도 모두 문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중진 의원들이 최근 각종 구설에 휘말리자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당이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거센 공격도 퍼붓고 있다. 

이 같은 당내 움직임에 발맞춰 외부에서 신당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인사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을 탈당 한 후 각자 신당창당을 추진해온 천정배 의원과 박주선 의원, 박준영 전 전남지사, 김민석 전 의원 등은 최근 연대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빙부상을 당한 박주선 의원의 상가에 모여 신당통합 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고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상가에는 국민모임에 참여해 신당창당을 추진했던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도 방문해 신당 추진 인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신당 추진 인사들은 지난달 25일 광주에서 열린 토크쇼에서 다시 한 번 모여 문 대표를 성토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친노가 나가든지
우리가 나가든지

이날 토크쇼에는 신당 추진 인사들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비노인사인 조경태 의원과 유성엽 의원도 패널로 참석했다. 지난달 2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박주선 의원 주도로 열린 ‘통합신당 추진위원회’ 출범식에는 신당창당에 우호적인 발언을 해왔던 새정치연합 정대철 상임고문이 축사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 친노를 제외한 모든 야권세력이 외부에서 뭉치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이들이 외곽에서 신당창당 작업을 완료하면 결국 안 의원도 합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 본인도 혁신전대 제안을 문 대표가 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혁신전대를 제안하고 나선 것은 결국 문 대표와 갈라 설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겠냐”며 “신당 추진 인사들이 창당 작업을 마치고 나면 거기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키워나가려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곽에서 뭉치는 신당세력
비노진영도 내부서 세력화

신당 추진 세력의 구상은 내년 총선에서 원내 제3당 정도의 의석을 확보해 다당제 의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박주선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여당과 야당이 투쟁만 하는 국회보다는 다당제 하에서 양당의 충돌을 완화하고 또 조정하는 정치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신당이 비록 원내 제3정당에 머무른다고 해도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면 향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신당이 호남에서만 돌풍을 일으켜도 교섭단체 요건(20석)은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을 탈당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난 2008년 박근혜 대통령이 구사했던 전술을 벤치마킹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당시 총선에서 박 대통령은 측근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끝까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남았다. 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친박연대라는 신당을 통해 총선에 출마했고 친박연대는 돌풍을 일으켰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남아 그들의 복당을 꾸준히 요구했고 복당한 친박연대 인사들은 박 대통령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그때 측근들을 따라 당을 뛰쳐나갔다면 고작 제3당의 당수로 정치인생을 마감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될까?
문국현 될까?

이와 마찬가지로 안 의원 역시 당에 끝까지 남아 내년 총선을 치른 후 문 대표가 물러나고 나면 신당인사들과 통합함으로써 자기 세력을 키우려는 것 아니냐는 시나리오다. 문 대표가 물러나고 나면 가장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는 누가 뭐래도 안 의원이다.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이 패하고 나면 자연히 당권은 안 의원에게 넘어오게 되는데 안 의원이 탈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총선 패배 이후 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통합전대가 치러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에 한 관계자는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치러지는)20대 총선에선 새누리당에 패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21대 총선에선 제1당으로 복귀하는 것이 최종 목표 아니겠느냐”며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야권세력이 연대해야 하는 데 통합전대만큼 좋은 방법도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의원이 지금 이 시점에서 통합 전대를 제시한 것은 내년 총선을 위한 포석이 아니라 총선 이후를 겨냥한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과연 안 의원의 마지막 승부수는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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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