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정치권이 비례대표 확대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현 비례대표 국회의원 52명 중 단 3명을 제외한 49명이 내년 총선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 당선에만 관심을 쏟으며 본연의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일요시사>가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쟁탈전을 살펴봤다.
19대 국회 비례대표 국회의원 52명 중 단 3명을 제외한 전원이 내년 총선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이 비례대표 확대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례대표가 사실상 지역구 출마를 위한 교두보 역할에 머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무한 경쟁
우선 내년 총선에선 초선 비례대표 의원들과 거물급 중진의원들의 맞대결이 눈길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호남의 맹주로 불리는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박 의원은 새정치연합의 원내대표를 지냈으며 당대표 경선에서 문재인 대표와 치열한 대결을 벌였던 중량감 있는 인사다.
하지만 서 의원은 이미 박 의원의 지역구인 목포에 지역사무실을 열고 본격적으로 지역구 활동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 의원이 박 의원과 정면대결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박 의원이 불법정치자금혐의로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만큼 공천에서 원천 배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목포에 도전장을 던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 의원은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은 고향 인천에서 황우여 사회부총리와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홍 의원은 황 부총리의 지역구인 인천 연수구에 출마할 예정이다. 황 부총리는 이곳에서 내리 4선을 했다. 비례대표로 입성한 황 부총리는 내년 총선에서 6선에 도전하게 된다.
연수구에는 현재 두 사람 외에도 새누리당 비례대표 민현주 의원과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도 도전장을 내밀어 복잡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또 연수구는 인구가 31만명을 넘어 지역구가 분구될 가능성도 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새정치연합 김광진 의원은 친박 실세로 불리는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지역구인 전남 순천·곡성에 출마할 예정이다. 순천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나온 토박이인 김 의원은 이미 지난 1월 지역사무실을 열고 지역구 활동을 해왔다. 이 지역은 새정치연합의 텃밭이긴 하지만 이정현 의원이 워낙 거물급 인사라 김 의원으로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지역이다. 또 김 의원은 본선보다 어렵다는 치열한 당내 경선도 통과해야 한다.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은 대전 유성구에서 3선 중진이자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정치연합 이상민 의원과의 대결을 준비 중이고, 새정치연합 최동익 의원은 국회 외통위원장인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을에 출마를 선언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과 김제남 의원은 각각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경기 안양동안을·4선)과 이재오 의원(서울 은평구을·5선)의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져 눈길을 끌고 있다.
비례대표 52명 중 3명만 불출마
갈수록 비례대표 무용론 힘 실려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출마가 줄을 이으면서 비례대표 출신끼리 맞붙거나 같은당 비례대표 의원과 지역구 의원이 맞붙게 되는 지역구도 속출하고 있다. 일례로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강서을에는 새정치연합 진성준 의원과 한정애 의원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강서을에서는 현재 현역의원 3명이 동시에 활동하는 보기 드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진 의원과 한 의원은 새정치연합 지역위원장 경선에서 이미 한 차례 맞붙어 진 의원이 승리를 한 바 있다. 그러나 한 의원은 지역위원장 경선 승패와 상관없이 이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내년 총선에서 또 한 차례 맞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양천 갑에서도 현역의원 3명이 활동하고 있다. 비례대표인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과 새정치연합 김기준 의원이 각각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당 소속 의원 지역구에 출마를 준비 중인 비례대표 의원들도 상당히 많다. 과거에는 도의적으로 같은당 소속 의원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은 피했으나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은 같은당 문대성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사하갑 출마를 준비 중이고, 장정은 의원과 박윤옥 의원도 각각 같은당 이종훈 의원과 정용기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할 채비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과 새정치연합 배재정 의원도 같은당 의원 지역구에 출마를 준비 중이지만 해당 지역구 의원인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해당 지역 불출마 입장을 밝혀 충돌은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며 당당히 상대 진영의 텃밭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비례대표 의원들도 눈길을 끈다. 호남 몫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새누리당 주영순 의원은 국회 입성 직후부터 지역 사무실을 운영하며 표심을 다지고 있다. 주 의원은 전남 무안·신안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정치연합 홍의락 의원도 오래 전부터 대구 북구을 출마를 준비해왔다.
무주공산이 될 분구 예상지역에는 비례대표 의원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역구가 한 곳 늘어날 가능성이 큰 경기 수원에는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과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도전장을 냈고, 용인 또한 새누리당 이상일, 송영근 의원과 새정치연합 백군기, 임수경, 김기식 의원이 출마를 검토 중이다.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은 분구가 거의 확실시 되는 남양주에 자리를 잡았고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은 분구 가능성이 큰 부산 해운대에서 지역구관리에 들어갔다.
이처럼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출마가 줄을 이으면서 이른바 ‘비례대표 무용론’은 정치권에서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직능전문성을 발휘하라는 취지로 선발된 여야 비례대표 의원들이 임기가 고작 절반 정도 지난 시점부터 지역구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자신의 직능전문성을 살리는 활동을 하기보단 지역구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예산을 따내는 데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간 차이점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비례대표 나눠먹기?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지금 비례대표는 당권 잡은 사람의 전리품 아니냐? 국민들이 검증할 수 없는 불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출되는데 그 숫자가 전체 국회의원 정수의 5분의1이나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가 비례대표 순번을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다 보니 이와 관련해 금품수수 등 잡음도 끊이질 않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미 시작된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쟁탈전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이 씁쓸해하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