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전설의 주당들

정치인에겐 술 잘 마시는 것도 정치력?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최문순 강원지사의 음주실신 사건을 계기로 술에 얽힌 정치인들의 에피소드가 새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치인은 직업 특성상 누구보다 술자리가 잦고 불가피하게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도 많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과거 “정치하면서 가장 서러운 순간이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할 때”라고 토로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정치권 최고의 주당은 누구일까? <일요시사>가 전설의 주당들을 살펴봤다.

최문순 강원지사가 지난 14일, 강원도의회 도정질의에 대한 답변을 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날 최 지사는 보좌진의 부축을 받고 회의장을 빠져나가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 원인은 강원도의회가 초청한 중국 안후이성 대표단과의 공식 오찬에서 마신 술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 지사가 뒤늦게 사과했지만 새누리당 도의원들은 여전히 강력하게 반발하며 최 지사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상상초월
엄청난 주량

최문순 강원지사의 음주실신 사건을 계기로 술에 얽힌 정치인들의 에피소드가 새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치인은 직업 특성상 누구보다 술자리가 잦고 불가피하게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도 많다. 정치인에겐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중요한 정치적 능력이다. 그렇다면 정치권 최고의 주당은 누구일까?

정주영 회장도 술로 이긴 이명박
국내 최초 폭탄주 창시자 박희태?

정치인과 술에 얽힌 에피소드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는 주위 목격담이 전설처럼 회자된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이 전 대통령은 현대에 처음 입사했을 때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고 정주영 회장과 모든 신입사원들이 취해 쓰러졌을 때도 혼자만 멀쩡했다고 전해진다. 평소 술이 세기로 유명한 정주영 회장마저 이 전 대통령에게는 당해내지 못하고 먼저 술자리를 끝내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주량은 약 폭탄주 30여 잔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대선 때는 야당 인사들이 해당 에피소드를 병역비리 의혹의 정황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963년 폐질환으로 군 면제까지 받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 불과 2년 뒤 1965년에 있었던 현대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술도 능력?
애주가 정치인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술을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새누리당 대표 시절에는 회식자리가 생기면 친박계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흑기사(술을 대신 마셔주는 사람)’를 자처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과거 “폭탄주를 억지로 한 잔 마셔봤는데 힘들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최근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으로 화제가 됐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유명한 애주가다. 박 전 의장은 현역의원 시절 “술 없이 무슨 재미로 사느냐”며 당내 금주클럽 가입을 거부하기도 했다.

박 전 의장은 국내에 폭탄주를 처음으로 도입시킨 장본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폭탄주는 원래 미국에서 노동자들이 마시기 시작한 술이라고 추측된다. 술을 마음껏 마시고 싶어도 돈이 없어 위스키를 잔술로 산 후 싼 맥주에다 타서 마신 것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우리가 요즘 마시는 폭탄주가 국내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1983년 당시 춘천지검장이었던 박 전 의장이 춘천지역의 검찰과 경찰, 언론사 관계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선보였을 때라는 것이 거의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이후 검찰 내에서 폭탄주가 크게 유행했다는 후문이다. 박 전 의장은 맥주잔을 가득 채운 폭탄주를 연거푸 20잔 이상 마셔도 끄덕없을 정도로 술이 센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건 전 총리 역시 유명한 애주가다. 아버지인 고(故) 고형곤 박사가 평소 고 전 총리에게 ‘여자’ ‘돈’ ‘술’ 세 가지를 조심하라고 당부했지만 끝내 술 약속만은 지키지 못했다고 한탄한 고 전 총리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고 전 총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술자리를 가지면서 남들보다 먼저 취하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현역정치인 중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가장 대표적인 주당으로 손꼽힌다. 지난 2000년 한국담배소비자연맹이 16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에서 김 대표는 한 번에 소주 3병 이상을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피습을 당해 입원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문안한 자리에서도 김 대표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완쾌되면 소주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술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해 8월 강원도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 이후 뒤풀이 자리에서 한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휘말린 것이다. 만취한 김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옆자리에 있던 여기자의 허벅지를 짚고 일어났다는 것. 김 대표 측은 너무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사과를 거부하다가 뒤늦게 해당 기자에게 사과했다. 김 대표는 “다른 의도가 있었거나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달라진 음주문화
금주가 대세

이 일 때문일까? 애주가였던 김 대표는 달라졌다. 김 대표는 당 혁신 실천방안 중 하나로 금주를 제시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우리 정치권이 과도한 음주문화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해 왔다”면서 “과도한 음주문화는 수준 높은 토론문화를 없애고, 공부할 시간을 없애고, 체력을 약하게 해 정신을 흐리게 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또 “바로 제가 술을 제일 많이 먹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저는 절주를 한 후 체중이 6kg이 빠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야당 정치인 중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유인태 의원과 이상민 의원이 남다른 애주가로 알려져 있다.

유 의원은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지난 2004년 한 언론사 기자와 폭탄주 30잔 이상을 밤새 마시고도 멀쩡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상민 의원도 과거 젊은 기자 4~5명과 술을 마셨는데 그들이 주는 폭탄주를 연거푸 받아 마시고도 술자리에서 혼자 멀쩡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도 정치권에선 알아주는 주당들이다.

애주가들의 변신, 대세는 금주?
100대1 대작하고도 멀쩡한 주당들

현역 광역단체장들 중에서는 원희룡 제주지사가 주당으로 유명하다. 원 지사의 서울대 법학과 후배인 강용석 전 의원은 한 방송에 출연해 원 지사를 최고의 주당 정치인으로 뽑았다. 원 지사는 과거 한번 술을 마시면 소주 2병에 폭탄주 20잔을 마실 정도로 과음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지사에 취임한 이후에는 완벽하게 술을 끊었다. 원 지사는 이에 대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과거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술 마실 기회가 많았는데 2년 전부터 술이 한 방울도 안 들어간다”며 “그래서 농담으로 평생 마실 술을 미리 다 마셔서 총량제에 걸렸나 보다 이러고 있다. 특히 도지사로 업무를 하면서부터는 전혀 안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원 지사는 또 “도민들이 이해만 해주신다면 술 안마시고 맑은 정신으로 도지사 업무에만 집중하겠다”면서 “임기동안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실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음주 비결은?
정신력?

광역단체장들 중에서는 전현직 대전광역시장들도 모두 유명한 애주가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불출마를 선언하고 야인으로 돌아간 염홍철 전 대전시장은 술과 관련한 수많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염 전 시장은 지난 1994년 정부3청사 기공식을 끝내고 시민 100명을 초청한 자리에 일대일로 소주 100잔을 마시고도 멀쩡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 1995년 동장 85명과 저녁식사자리에서 150여 잔을 먹었던 일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권선택 현 대전시장 역시 술에 관해서는 지지 않는다. 대전시 부시장 재직시절 대전시축구동호회 선수, 임원 60명과 일대일로 60잔을 먹고, 트로피에다 시민화합주(소주+맥주)를 또 다시 만들어 한잔씩 했던 일이 아직도 회자 되고 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치인 술자리 추태 천태만상
"차라리 술 못하는 정치인이 낫다"

새누리당 최연희 전 의원은 술자리 추태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 전 의원은 지난 2006년 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을 당시 술자리에서 옆에 있던 언론사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는 성추행을 했다. 최 전 의원은 이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했다”고 말해 더욱 논란이 됐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술자리 추태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미에 동행한 윤 전 대변인은 현지 술자리에서 여대생을 성추행했다. 이 사건은 해외 언론에 ‘세계 8대 굴욕사건’으로 뽑혔다.

대표적 친박인사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도 과거 술자리 발언으로 인해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지난 2012년 당 대변인으로 내정됐을 당시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너희들 정보보고를 내가 다 알고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보고하지 말라. 우리한테 다 들어온다. 이런 식으로 기자질 하지 마”라고 말해 결국 대변인직을 사퇴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도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9월 김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들과 술을 마신 뒤 대리기사와 행인을 폭행했다는 시비에 휘말렸다.

곽성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도 국회의원 시절 심각한 술자리 추태 사건에 휘말렸었다. 곽 사장은 의원시절 지역구 상공인들과의 술자리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야당이지만 대구지역 국회의원 의석 12석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대구 상공인들이 열린우리당(현 새정치연합)에는 후원금을 내면서 한나라당에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등의 발언을 하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경제인들은 “40여 년 동안 한나라당을 도와줬지만 한나라당이 대구를 위해 뭘 했느냐?”며 반발했다. 그러자 곽 사장이 갑자기 맥주병을 벽에 던졌다는 것이다. 결국 당시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이 곽 사장과 멱살잡이까지 하는 소동이 벌어졌었다.

새누리당 심학봉 전 의원은 술에 취해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현역 의원이 성폭행 혐의에 휘말리기는 심 전 의원이 처음이었다. 검찰은 심 전 의원 측이 피해여성에게 성관계 이후 2000만원을 전달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는 다소 황당한 결론을 내렸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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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