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정치권이 정책적 소신보다는 그때그때 당리당략에 따라 말 바꾸기를 일삼고 있어 비판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장이 180도 달라지면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따라 말 바꾸기를 일삼고 있어 불필요한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정종섭 행정자치부장관의 ‘총선 필승’ 건배사 발언을 놓고 행자부 국정감사가 파행되는 일이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소속 안전행정위원회 위원들은 정 장관의 보고 직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건배사 발언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온 뒤로 국감일정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중적 태도
하지만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 장관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발언을 했지만 헌법재판소의 무죄판결을 받았다. 때문에 야권 내부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했던 야당 인사들이 정 장관의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추진이 정당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태도도 문제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탄핵까지 추진했던 새누리당이 ‘이정도 일은 별 거 아니다’라는 식으로 넘어가려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 장관이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 스스로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장관 교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말 바꾸기 정치의 가장 한심한 사례는 대통령전용기 무산 사건이다. 지난 2006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통령전용기 도입을 추진했지만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대통령전용기를 구입 하느냐는 논리였다. 하지만 대통령전용기를 구매하는 가격은 대략 3000억원 정도인데 반해, 현재 임대비용은 매년 임차료 1421억원과 연료비 등 부대비용 12억을 포함한 1433억원을 지출하고 있어 매우 비경제적이다.
때문에 당시 노 대통령도 “내가 타자는 게 아니라 다음 대통령이 타기 위한 것”이라고 호소했었다. 결국 한나라당은 이명박정부 들어 대통령전용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도입을 재추진했지만 이번엔 당시 전용기 도입을 추진했던 민주당(현 새정치연합)의 반대로 무산됐다. 여야가 당리당략에 따라 입장을 바꾸면서 대통령전용기 도입은 현재까지도 이뤄지지 못했다. 여야의 말 바꾸기 정치 때문에 매년 수백억씩 예산 낭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논란이 된 국정원 특수활동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특수활동비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나라당에 의해서였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5년 상임운영위에 참석해 “국정원이 쓰는 예산 중 불투명한 것이 많다”며 “베일에 싸여있는 국정원 예산에 대한 국회의 견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당이 된 후에는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이 같은 입장 바꾸기는 새정치연합 역시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개혁 요구를 묵살해놓고 이제 와서 특수활동비를 공개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국회법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정책적 소신 없이 당리당략 따라 움직여
불필요한 논쟁으로 국가경쟁력 발목 잡아
박 대통령은 국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또 국회법 통과를 추진한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해 배신의 정치를 했다며 표로 심판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과거 현 국회법 개정안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국회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전력이 있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에서는 “그때의 박근혜 의원과 지금 대통령은 다른 사람인가. 대통령이 되면 말을 쉽게 바꿔도 되는 것인가”라며 비판했다.
정치권은 주요 국가정책에 대해서도 말을 바꿨다. 한미FTA 비준 불가 방침을 선두에서 지휘했던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도지사를 지냈던 시절 한미 FTA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었다. 하지만 민주당 대표를 맡은 후부터는 갑자기 입장을 180도 선회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 출신으로 정체성 논란을 빚은 그가 당내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 한미FTA 반대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동영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 역시 과거 한미FTA를 찬성한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한 바 있지만 정권이 바뀐 이후엔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이들은 이명박정부에서의 재협상으로 이익불균형이 심화돼 반대한다는 주장을 내놨지만 같은 당 안희정 충남도지사조차 “노무현정부의 협상은 잘됐지만 이명박정부의 재협상으로 나빠졌기 때문에 (한미FTA) 비준에 반대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해군기지는 김대중정부 때 처음 구상을 시작해 노무현정부 때 확정된 사업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후 노무현정부를 계승한다는 야권은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앞장섰다.
정동영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은 제2차 해군기지 백지화 촉구 제주강정평화대회에 참석해 “해군기지는 우리가 정권을 잡았을 때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참담한 심정으로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속죄하는 의미에서 해군기지가 아니라 강정마을을 평화공원으로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소신 가져야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 정책적 소신을 갖고 행동하면 쉽게 풀렸을 일들이 당리당략에 따라 입장이 바뀌면서 꼬이고 있다”며 “이는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소모적인 논쟁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권이 반성하고 소신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