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당내 갈등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특히 혁신위가 10차 혁신안을 통해 총선 공천 선거인단의 국민참여비율을 현행 60%에서 최대 100%로 상향하기로 하자 비노계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혁신위가 혁신안을 가장해 ‘비노 제거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왜 그런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지금까지 발표된 새정치연합의 혁신안들을 분석해봤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를 둘러싼 친노계와 비노계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혁신위는 지난 4·29재보선 참패로 비롯된 당 내홍을 수습하기 위해 출범했지만 혁신안이 발표될 때마다 당내 갈등은 오히려 증폭됐다.
혁신하랬더니
트러블메이커
특히 혁신위가 당의 혁신과는 관련 없는 제안들도 마구잡이로 쏟아내면서 월권 논란까지 불거졌다. 대표적인 비노인사인 안철수 의원은 최근 “혁신위는 실패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 같은 안 의원의 발언에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성급하고 무례한 발언”이라며 반발하면서 볼썽사나운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혁신위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자 문재인 대표는 급기야 혁신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폭탄선언까지 하고 나섰다.
이 같이 친노계와 비노계의 극한 대립을 촉발한 것은 혁신위가 지난 7일 발표한 10차 혁신안이다. 혁신위는 이날 총선 공천에 참여하는 선거인단의 국민참여 비율을 현행 60%에서 최대 100%로 상향시키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당내 비노계 의원들은 “당원은 배제되고 고작 300명에서 1000명의 국민공천단을 선발해 후보를 뽑으면 열성 지지자를 동원할 수 있는 친노세력이 무조건 유리하다”며 “친노패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꼼수”라고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고위 폐지로 비노 중진 무력화
현역 평가위, 비노 호남 정조준
일반적으로 경선 선거인단에서 일반 국민의 구성 비율이 높으면 친노진영이 유리하고, 권리당원 비율이 높으면 당생활을 오래 한 비노진영이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 2·8전당대회에서 친노인사인 문재인 대표는 비노인사인 당시 박지원 후보에게 국민여론조사에서는 크게 앞섰지만 권리당원투표에서는 약간 뒤졌다. 그럼에도 혁신위가 내년 총선 공천에서 국민참여 비율을 최대 100%로 늘리기로 한 것은 노골적인 비노계 제거작전이라는 지적이다.
비노계의 한 인사는 “1차부터 최근 발표된 10차 혁신안까지 전부 다 문 대표와 친노계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며 “친노진영이 당을 혁신해야 할 혁신위를 이용해 오히려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려는 꼼수를 쓰는 것은 도덕적으로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비노진영에선 왜 이 같은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발표 된 혁신안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공정 혁신?
비노계만 손해
혁신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혁신위가 발표한 제1차 혁신안의 경우 ‘재보궐 원인 제공 시 해당지역 무공천’ ‘부정부패 연루로 기소 시 당직 박탈’ ‘당무감사원 설립 및 당원소환제 도입’ 등이 포함됐는데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재보궐 원인 제공시 해당지역 무공천 방침은 오는 10월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호남에서 패할 것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현재 새정치연합에 대한 호남의 민심이반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0월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또 다시 호남에서 패한다면 당장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비노계의 공세가 본격화 될 수 있다. 이를 미리 차단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혁신위는 또 부정부패 연루로 기소 시 당직을 박탈하고 공천에서도 배제하겠다는 입장인데 공교롭게도 대표적인 비노인사인 박지원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사정권에 들어있다. 박 의원은 저축은행 비리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김 의원은 새누리당 성완종 전 의원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후 발표된 2차 혁신안 역시 최고위원회와 사무총장직을 폐지하기로 해 논란을 일으켰다. 비노진영에선 최고위원을 없애면 문 대표의 권한만 더 강화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또 당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직을 없애면 당대표가 당무의 모든 권한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역의원 평가를 하게 될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구성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24일에는 혁신위가 난데없이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반대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됐다. 당장 비노계는 혁신위가 혁신안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오픈프라이머리 수용 여부에까지 입장을 밝힌 것은 월권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당내 비노인사들은 오픈프라이머리를 계파갈등을 타파할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노계에서는 이 역시 혁신위가 문 대표의 공천권을 사수하기 위해 벌인 일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문 대표는 지난 2·8전당대회에서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공약했었지만 혁신위의 발표 이후 혁신위의 결론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혁신위에 힘을 실어줬다.
권역별비례대표제 도입과 의원 정수 확대를 요구한 5차 혁신안도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새누리당은 의원 정수 확대 요구는 친노진영의 정치실업자 구제대책이라며 깎아 내렸고, 당내 비노인사인 조경태 의원도 “국회의원을 늘리는 것이 무슨 혁신이냐”면서 “결국 권역별로 나눠먹기를 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비노계의 한 인사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결과적으로 영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친노진영이 가장 큰 혜택을 받지 않겠냐”며 혁신위를 비판했다. 혁신위의 의원 정수 확대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문 대표조차 “지금 의원 정수 확대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선을 그었지만 조경태 의원은 의원 정수 확대와 관련해 문 대표와 혁신위의 교감설을 제기했다.
조 의원은 “문 대표가 과거에 의원 수를 400명까지 늘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혁신위의 발표가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발표한 제6차 혁신안에 대해서도 비노진영의 반발이 거셌다. 혁신위는 이날 ‘새정치연합을 민생복지정당으로 만들자’는 내용의 당 정체성 관련 6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김상곤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정치연합의 이념은 ‘민생제일주의’이고, 당에는 ‘민생파’만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혁신위는 이를 위해 선(先)공정조세, 후(後)공정증세를 통해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좌클릭 유도
비노는 무시
사실상 부자 증세 후 복지 확대를 요구한 것이다. 당내에서는 왜 당 정책위에서 정해야 할 일을 혁신위가 발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중도층을 공략해야 한다는 비노진영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된 채 결국엔 좌클릭하자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쏟아졌다.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혁신위가 내년 총선 때 비례대표 후보의 3분의1 이상을 민생전문가와 현장활동가로 공천해줄 것을 요구한 점이다. 혁신위는 비례대표후보 상위순번에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를 배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비노진영의 한 인사는 “과연 순수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가 비례대표후보로 공천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결국엔 운동권 출신이나 시민단체 사람들로 비례대표를 채우겠다는 것 아니냐?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친노계는 비례대표에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대거 공천해 정치투쟁만 일삼았다. 20대 총선에서도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전문성 있는 인사를 영입하겠다는 당초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역별비례제도는 영남 친노 유리
처음부터 끝까지 친노 위한 포석?
같은 맥락으로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후보 중 10% 이상을 청년 후보에게 할당할 것을 제안한 7차 혁신안에 대해서도 비노진영에서는 불만을 표출했다. 한 비노계 인사는 “지난 총선 때 청년비례대표로 입성한 김광진, 장하나 의원을 보면 된다. 두 사람은 대표적인 친노 강경파 인사로 분류된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대거 공천을 주자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혁신위가 발표한 8차 혁신안에 대해서는 ‘친노가 아닌 사람은 당을 떠나라는 최후통첩’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혁신위는 8차 혁신안을 통해 “100% 외부인사로 꾸리는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가 지지도 여론조사(35%), 의정활동, 공약이행(35%), 선거기여도(10%), 지역구활동(10%), 다면평가(10%·의원 간 상호 평가)를 통해 하위점수를 받은 의원 20%를 공천에서 탈락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조경태 의원은 “국회의원의 정치력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느냐”며 “게다가 평가위원장을 당대표가 임명하고, 점수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정 계파(친노)가 줄 세우기 등 패권정치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친노의 패권주의?
비노의 피해의식?
또 이 같은 혁신안을 대입하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자치단체장이 대거 당선된 호남지역구 의원들은 공천 탈락의 우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노진영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 같은 비노진영의 문제제기에 대해 친노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비노계가 어떤 피해의식이 있는 것 아닌가? 혁신은 결국 기득권 내려놓기고 그 과정에서 비노든 친노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어떤 의도가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실망”이라며 “진짜 혁신을 위해서는 자신들이 다소 피해를 입더라도 양보하고 선당후사의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비노진영의 한 인사는 “혁신안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전부 비노계인데 공정한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며 “만약 우리가 당권을 잡고 내년 총선 공천투표단 비율을 당원 100%로 하자고 해도 친노계는 아무런 불만 없이 따를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