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허벌라이프 'GMO 검사'해 보니 충격

전 국민이 속고 있는 건강식품의 불편한 진실①

[일요시사 경제2팀] 임태균 기자 = 최근 미국허벌라이프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및 기타 시장에서 일부 허벌라이프 제품은 GMO 작물에서 유래된 성분을 사용한다”고 밝힌 것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인 건강식품회사가 자사 제품에 유전자변형 원료를 사용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변형 원료를 뜻하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는 인위적으로 병충해, 살충제, 제초제, 추위 등에 강한 성질을 가진 유전자를 분리 또는 재조합해서 목적하는 특성을 갖도록 한 농산물을 말한다. 

GMO 작물은 아직 그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 상태다. 공정위 산하 한국소비자원이 연구보고서에서 “GMO는 인류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식품이라는 점에서 수천년간 섭취를 통해 검증된 다른 식품들과는 달리 근본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제초제 내성
유전자 성분”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다. 이미 전 세계를 경악시킨 광우병 사태를 보면 풀이 아닌 동물성 사료를 먹인 소에게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10년, 다시 동물성 사료로 키운 소고기를 섭취한 인간에게 광우병이 발생하기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바 있다.

단기간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특성물질이 체내에 장기간 축적되면 예상치 못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GMO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에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GMO에 대한 여러 연구와 동물실험 결과 잠재적 암세포 성장, 면역체계 손상, 불임, 간·신장 손상, 심장이나 뇌 등 주요 장기의 축소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안전성 논란이 분분하다. 이유 없는 불안감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미국허벌라이프가 일부 자사 제품에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식품인 GMO 작물을 원료로 사용했다고 한 발표는 파문이 클 수밖에 없다. 몸에 좋으라고 먹는 건강식품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회사의 고백을 허투루 들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질문 두 가지. 첫째는 허벌라이프가 말한 ‘미국 및 기타시장’에 한국은 포함돼있을까에 대한 의문이고, 둘째는 ‘일부 제품’이라고 밝힌 제품은 어떤 것들인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이에 대해 한국허벌라이프는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허벌라이프 제품은 유전자 재조합이 없는(Non-GMO)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은 본사에서 말하는 91개 ‘기타시장’ 중에 포함되고 있지 않으며, 어떤 제품이라고 할 것도 없이 ‘모든 제품’이 GMO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은 자체적으로 원재료를 수급하여 한국에서 생산한 것일까? 이 대목에 대한 한국허벌라이프의 답변은 “한국에서 판매 중인 상품은 미국에서 생산되어 완제품으로 수입된다”는 것. “완제품으로 수입되는 것인데 한국 수출용 제품은 GMO 작물이 아닌 재료로 생산한다”는 설명이다.

미국본사 GMO 작물원료 사용 시인
현지 파문 일파만파…한국은 과연?

이 답변이 <일요시사>가 직접 허벌라이프 제품에 대한 PCR검사(제품에 GMO 유전자가 있는 지 없는 지를 확인하는 성분검사)를 하게 된 배경이 됐다.


허벌라이프가 내 식구(미국소비자)에게는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고, 다른 식구(기타 국가)에게는 안정성이 입증된 재료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는 식의 해명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분검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인검사법에 따른 PCR검사로 식약처에서 인증한 복수의 공인검사기관을 통해 각각 2회 이상 진행했다. 검사 대상 제품은 ‘포뮬러1 뉴트리셔널 쉐이크 믹스 쿠키앤크림맛’(이하 쉐이크믹스)을 선정했다. 쉐이크믹스를 선정한 이유는 한 가지. 식사대용으로 최소 100만개 이상이 팔린 제품이기 때문이다. 작년에만 약 640억원 어치가 팔렸다.

함께 복용하기를 권하는 ‘퍼스널 단백질 파우더’ 매출 540억원을 포함하면 매년 1000억원 상당이 소비된 제품인 것이다.

체중조절을 원하는 사람에게 밥 대신 꾸준히 먹기를 권하는 제품인 만큼 향후 ‘특성물질이 체내에 장기적으로 누적되었을 때’의 영향을 파악할 때도 주요 평가 대상이 될만한 제품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검사에 사용된 제품은 한국허벌라이프 공식 온라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사업자를 통해 구입했다. 일반 소비자가 쉽게 접근하는 경로를 따른 것이다. 시험결과를 받는 데까지 3∼10일이 소요됐다.

식약처 인증 검사기관인 한국식품과학연구원과 ㈜코젠바이오택에 의뢰하여 받은 검사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두 검사기관의 검사결과 모두에서 미국 몬산토사에서 개발한 GMO 콩 ‘RRS’유전자와 ‘MON89788’의 유전자가 검출됐다. 두 유전자는 제초제 내성을 갖도록 변형된 유전자다. 이는 곧 쉐이크믹스 성분 42.1%를 차지하고 있는 분리대두단백이 인위적으로 제초제 내성을 갖도록 유전자 변형된 GMO 작물임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모든 제품은 유전자 재조합이 없는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던 한국허벌라이프의 답변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쉐이크믹스 PCR검사에서 제초제 내성 변형 유전자가 검출됐다”는 결과를 통보하자 한국허벌라이프는 검사 결과의 진위 여부를 의심했다. 그러면서 “설사 PCR검사에서 GMO가 검출됐다 하더라도 유통과정에서 비의도적으로 섞여 들어간 ‘비의도적 혼합치’에 해당하는 양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인근의 유전자 변형 작물 재배지에서 날아온 종자가 일부 섞여서 자란 경우에도 성분검사를 하면 GMO 유전자가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약간의 GMO 성분이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소량이면 관계없다는 입장이다.

먹는 것으로 장난?
소비자 기만 행위

그렇다면 관건은 쉐이크믹스에 과연 얼마나 GMO가 포함됐는가에 대한 사안으로 옮아간다. 복수의 기관에서 검사한 결과 쉐이크믹스에서 GMO 유전자가 발견된 이상 ‘GMO 원료가 사용됐다, 안 됐다’는 사안은 결론이 났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일요시사>는 두 검사기관에서 실시한 성분검사의 시험성적서를 근거로 허벌라이프가 보유한 함량검사 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국허벌라이프는 “쉐이크믹스는 제품에 대한 ‘구분유통증명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식약처로부터 유전자변형식품 표기를 면제받았으며,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답변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답변은 한국허벌라이프가 ‘비의도적 혼합치에 해당하는 양에 불과하다’는 해명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무슨 근거로 제품에 함유된 GMO 함량이 ‘비의도적 혼합치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주장하는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가 들었는지 90%가 들었는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미미한 양’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허벌라이프가 구분유통증명서를 공개하지 않은 탓도 있다.

한국법인 “한국의 모든 제품은 안전” 장담
쉐이크믹스 검사결과 ‘유전자변형 콩’ 검출

그러면서 분리대두단백에 대한 구분유통증명서를 거듭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립 검사기관의 구분유통증명서에 의해 식약처로부터 제품유통을 승인받았다”는 것.

문제의 구분유통증명서란 종자구입, 생산, 보관, 운반, 선적 등 취급과정에서 유전자변형 식품들과 구분해서 관리했음을 증명하는 서류다.


일종의 원산지 증명과 같은 성격의 문서인데 이런 증명서는 정부당국이 국내로 수입되는 모든 농수산물을 파종단계부터 수확, 보관, 유통 과정에 일일이 개입해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도입한 일종의 검증장치다.

문제는 이 구분유통증명서의 신뢰성이다. 공정위 산하 한국소비자원은 구분유통증명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구분유통증명서가 대부분 일부 민간기업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확인 과정에서 객관성 및 신뢰성 담보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 건강기능식품을 수입 판매하는 업계 관계자는 구분유통증명서에 대한 불신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구분유통증명서라는 것이 결국 원료상이 제공하는 증명서다. 사가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은 GMO 작물이 아닌 것을 찾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 발행한 구분유통증명서를 믿는 사람이 바보다.”

식약처 승인 왜?
구분유통서 논란

여기에 한국허벌라이프와는 달리 미국허벌라이프는 자사제품에 GMO에서 유래한 성분을 사용한다고 인정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해보면 식약처에 제출된 구분유통증명서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구분유통증명서를 덮어놓고 불신하기도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구분유통증명서의 신뢰성과 별도로 제기되는 문제는 또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제114호 ‘유전자변형식품 등의 표시기준’ 8조 표시사항의 적용특례에 대한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식품위생법 상에는 원재료의 5순위 안에 드는 성분이 유전자변형 식품일 경우 제품에 GMO 표시를 하도록 돼있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표시를 생략해도 되는 예외규정이 있다.

유전자변형농산물이 3% 이하로 포함된 경우다. 이 경우 구분유통증명서나 정부증명서, 검사성적서로 갈음할 수 있다. 한국허벌라이프가 ‘콩’이나 ‘옥수수’를 수입하는 업체일 경우라면 이 조항에 근거해 적용특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쉐이크믹스와 같은 가공식품일 경우는 식약처 고시 114호 8조 2항에 근거해야 한다.

다음은 8조 2항의 내용이다.

「수입하고자 하는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이 GMO 표시관리대상 식품(냉동식품, 음료, 식용유, 과자, 빵, 조림식품, 건강기능식품 등)이지만 구분유통증명서, 정부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로서 해당제품을 검사해 유전자변형 DNA가 전혀 남아있지 않음을 입증하는 검사성적서를 제출한 때에는 ‘유전자변형식품’ 표시를 생략할 수 있다.」

이 조항이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다. 가공식품에 대한 표시적용 특례는 검사성적서에 의해 유전자변형 DNA가 남아있지 않음이 증명될 때 적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분유통증명서나 정부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로서’라고 전제를 건 부분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 전제는 곧 가공식품이라도 원재료에 대한 구분유통증명서만 제출하면 GMO 검사를 생략해도 된다는 해석과 행동을 불러오고 있다.

그 결과 PCR검사결과 GMO 유전자가 검출됐지만 GMO 제품이라고 고지하지 않는 제품들이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허벌라이프 쉐이크믹스가 바로 이런 케이스다.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단체가 “GMO원료가 들어간 제품에 대해서는 완전표시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현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식품은 명백히 GMO 표시관리대상 식품이다. 그러나 구분유통증명서 제출만으로 검사성적서를 생략한 채 표시사항 적용특례를 받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상황은 법률이 보다 정확히 개정되거나 식약처의 적극적인 개선의지가 보이지 않는 한 ‘GMO 성분이 검출되고도 GMO 표시를 하지 않는 제품’은 국민들을 상대로 꾸준히 판매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허벌라이프는 다단계사업자들에게 “쉐이크믹스를 비롯한 모든 상품에 Non-GMO 콩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품 자체를 Non-GMO라고 하지는 않지만 원료는 Non-GMO라는 것이다. 나름의 접근방법으로 건강식품의 이미지를 쌓고 있는 중이다.

회사에 배신감
집단행동 역풍?

그러나 이 같은 한국허벌라이프의 행보가 앞으로도 순탄하게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업자들이 쉐이크믹스에서 GMO 유전자가 검출됐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분노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양서 허벌라이프 샵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업자 김모씨는 “고객도 고객이지만 당장 우리 아이들이 먹고 있는 상품인데 걱정이 앞선다. 회사와 스폰(상위사업자)이 GMO로부터 안전하다고 해서 믿었는데 배신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사업자 최모씨는 “그동안 회사가 우리를 속인 거라면 집단소송이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면서 “조만간 집단소송 카페라도 만들어서 사업자들의 의견을 모아야겠다”고 말했다. 자식에게 이유식으로 쉐이크믹스를 먹여왔던 박모씨는 10개월 된 아이를 끌어안고 눈물부터 터뜨렸다. “미안해, 미안해 우리 아들… 엄마는 몰랐어.”

※예고
<건강식품의 불편한 진실②> ‘몸에 좋으라고 먹었다가 큰일날 뻔한 사람들’ 편이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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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