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메카' 강남매매단지 내홍 전모

출구 없는 치킨게임…검찰 개입 부르나

[일요시사 경제팀] 이창근 기자 = 장안동과 더불어 중고차 거래의 메카로 불리던 율현동 강남자동차매매단지의 몰락이 예사롭지 않다. 월 5000대에 육박하던 중고차 거래가 내리막을 걷더니 최근에는 1300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창가를 연상시키는 길거리 호객행위와 소비자를 기만하는 허위매물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분노가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들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단지 내 사업자들 사이에 “이러다 망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매매단지 부흥을 위한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실 강남자동차매매단지(이하 강남단지)의 몰락에는 몇 년째 치르고 있는 내홍 탓이 크다. 단지 내 구분소유권자, 임대사업자, 관리단 사이의 갈등이다. 구분소유권자는 2001년 강남단지가 세워지면서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이고, 이 소유권자들이 단지 내 시설 및 부지관리를 위해 임명한 조직이 관리단이다. 그리고 분양받은 소유권자의 상가를 임대해 중고차매매 사업을 하는 이들이 임대사업자다. 현재 강남단지에는 활동하는 70개 상사 중 대부분이 임대사업자다. 
 
고소고발 얼룩
양측 최후 통첩
 
현재 강남단지의 내홍은 임대사업자와 관리단 사이에서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내홍의 유탄을 구분소유권자들도 함께 맞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7일, 강남단지 내 활동 중인 70개 상사 중 56개 상사의 모임인 ‘서울시자동차매매사업조합 강남지부(지부장 이기홍)’는 이사회 결의사항을 개별 소유권자들에게 발송했다. 핵심내용은 두 가지. 첫째는 지금의 관리단은 업무에 부적합한 이들로 각종 비리가 자행되고 있으니 임명권을 가진 구분소유권자들이 현 관리인의 해임 또는 직무정지가처분을 결의해달라는 것이다. 둘째는 현 관리인에 대한 시정조치가 11월까지 이행되지 않으면 이후 관리비 및 임대료 납부를 단체로 거부하겠다는 것. 
 

“지금처럼 강남단지가 운영되어서는 상인이나 고객은 물론 구분소유권자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관리단을 바로잡아야 강남단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참을 만큼 참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관리단에 대해 삭발투쟁을 선언한 이기홍 지부장(61)은 “강남지부 조합원들의 이번 결정이 결코 장난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분양받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관리단의 횡포 속에 사업을 꾸려나가야 하는 임대사업자 입장에서는 더 이상 관리단의 전횡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부장은 “강남단지의 부흥을 꾀해야 할 관리단이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입주상인들을 갈취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리단과 관리단장이 자행하는 비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대체 강남단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지부장은 속칭 ‘뻥카’라고 불리는 허위매물은 강남단지에서 절대 벌어지지 않아야 할 악덕상술인데 관리단장이 운영하는 매매상사가 앞장서서 허위매물 작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속해야 할 관리단장부터 허위매물로 장난을 치고 있으니 ‘뻥카’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정상적으로 사업하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새로 관리단장이 선출되어야 허위매물이 사라질 것이란 논리다.
  
이에 대해 관리단의 김용선 단장(57세)은 “일부 세력의 음해”라는 입장이다. “내가 운영하는 상사는 사무실만 컸지 직원이 거의 없는데 무슨 허위매물을 하겠냐”며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김단장의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상적인 매매상가는 직원들이 상시로 근무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허위매물은 다른 상사가 잡아놓은 매물정보를 베껴서 작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순진한 고객이 걸려들었을 때만 숨어있던 직원이 등장한다는 것. 사람은 없고 책상만 빼곡한 사무실 자체가 허위매물의 증거라는 논리다. 단지 내 상인 최 모씨는 “내 물건 가지고 지들이 마진 붙여 팔아먹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닌데 무슨 소린가. 이 단지에서 거기(관리단장 운영상사)에 작업당한 상인들이 수두룩한데 변명도 참…”이라며 혀를 찼다.
 
주자장을 둘러싼 잡음도 크다. 중고차매매단지의 속성상 개별 사업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주차공간이다. 현재 강남단지 내 공유공간들은 관리단이 줄을 그어 확보한 주차장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화단 앞은 물론 공용도로, 장애인전용 주차장도 일반 주차공간으로 변한 상태다. 건물 A동과 B동을 연결하는 지하통로는 물론이고 소방도로까지 주차장이 되었다. 자칫 불이라도 나면 엄청난 재산손실과 인명피해가 불가피해 보인다. 
 
강남지부 상인들이 ‘갈취’라는 단어를 써가며 지적하는 곳이 지하주차장이다. 매매단지 지하주차장은 입주식당이나 부대시설 임차인에게 당연히 제공되는 곳인데 관리단이 임의로 주차비를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파트 세입자에게 주차비를 별도로 받는다면 어느 누가 납득하겠느냐는 반문이다. 
 

아파트 주민에 
주차비 받는 꼴
 
관리단장은 “이전 관리단장 때부터 일부 힘 있는 사람들이 쓰던 곳을 정비한 것”이라고 했지만 상인들은 “공용부지와 지하의 법정주차장에 주차비를 부과한 것은 김단장 취임 이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확보된 주차비의 사용처를 둘러싼 잡음이 더 크다. 관리단이 2015년 3월 정기총회에서 보고한 문건에 명시된 주차비 수입은 년간 2억원 규모. 관리단은 이 주차비 수입을 주차관련 지출과 관리단의 공적업무 수행을 위한 차용금으로 집행했다는 입장인 반면 상인들은 주차비를 관리단 수뇌부가 착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년간 2억원의 주차비를 추가로 거뒀으면 영업환경이 좋아지던지 다소라도 관리비가 내려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상인들 틈에서 “매월 걷는 주차비 2000만원 중에 술 마시고 노름하는 데 없앤 돈이 상당부분일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관리단장은 “수년간 관리단이 엉터리로 운영되면서 적자가 발생했고, 전기세 같은 시급한 비용을 우선적으로 지급하기 위해 차용한 것일 뿐 횡령은 없었다. 수사를 받아야 한다면 받겠다”며 펄쩍 뛰고 있다. 한편, 강남단지 내 상가번영회 입장은 관리단의 주차비 징수와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쪽이었다.


   
번영회장 전희광(49) 씨는 “입주상인들에게 주차비를 부과할 때는 마땅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관리단이 임의로 과금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관리단이 상인들이 내는 주차비에 대해 세금계산서 한 장 발행해주지 않은 것은 관리단 스스로 탈세를 하고 있다는 것과 같고, 주차비를 어디에 썼는지 명확한 사용처를 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상인들로부터 횡령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작년에 시행된 매매단지 LED조명공사 건은 현 관리단이 불신 받는 큰 배경이 되고 있다. 상당수 상인들은 LED공사에 대해 “돈은 지들이 빼먹고, 공사비는 우리한테 나눠 내라고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조명공사 착공 전 회자되던 ‘공사비 리베이트 수수의혹’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당시 회자되던 소문은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LED조명업체의 백모씨가 “공사비 3억5000만원에 리베이트 20%”를 제의했는데, 이를 관리단장이 5억8000만원으로 부풀린 후 차액과 리베이트를 나눠가졌다는 것. 이 소문에 당시의 상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들었다는 상인들이 나타나면서 소문이 확산된 바 있다. 물론 관리단장 측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고 나선 상태다. 모함도 너무 질이 나쁜 모함이라는 것. 
“5개 업체로부터 제안서를 받았고 운영위원들과 함께 개봉해서 검토한 후 결정했다. 국내 10위권 업체를 선정했고, 하자보증까지 확보한 공사다. 리베이트 같은 것은 없었다.”
 
월 5000대서 1300대로 거래 내리막
호객·허위매물에 손님 급격히 줄어
 
김 관리단장은 이미 구분소유권자들은 물론 입주상인들에게도 충분히 해명한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단장의 해명이 입주상인들에게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형광등이었을 때보다 더 어둡다. 전기세 절감분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겠다더니 매월 전기세 외에 LED 전기공사비를 따로 걷는 것은 뭔가? 전기세는 예전보다 돈 1만원도 안 줄었는데 공사비 명목으로 매달 7만∼9만원 정도 애먼 지출만 더 생겼다. 이상한 공사다.” 
 
입주 상인의 말이다. 또 다른 상인은 “아는 조명업자 불러서 견적 내보니 2억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관리단 내 직원말로는 백 이사란 사람이 인증도 없는 중국산 제품을 사람 사서 공사한 것이라고 증언했다”고 덧붙였다. 직접 공사업체 관계자에게 확인해보니 업체는 “정품으로 직접 공사를 했고, 하자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답변해왔다. 상인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LED조명 공사 
사기의혹 제기
 
그러나 업체 관계자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현재 강남단지 사업자들 사이에 “사기 공사의 증거가 확보됐다”는 말이 돌고 있다. 한 사업자가 직접 한국전력을 방문, 강남단지의 전기세 내역을 확인해보니 월 3000만원 수준이던 전기세가 공사 이후 100만원 정도 밖에 절감되지 않았다는 것.
 
이는 공사 전 관리단이 전기세가 매년 50% 절감될 것이고, 그 절감분으로 공사비를 상환하다는 말 자체가 거짓이거나 공사업체가 하지도 않은 공사를 했다고 세금계산서를 끊어 준 반증이라는 견해다. 상인들은 관리단을 수서경찰서에 고발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관리단장과 시공업체의 해명으로 의혹이 사라져야 하는데 현실은 불신과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가 관계자들은 “관리단이 상인들에게 불신 받는 것은 일정 부분 관리단이 자초한 바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그 동안 관리단이 시행했다는 각종 공사에 대한 견적서나 시방서 같은 근거서류 열람을 요청할 때마다 매번 외면 받았다는 것이다. 강남지부 이정기 지부장의 말이다. 
 
“관리단이 서류작업은 잘한다. 각종 공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무슨 회의록 같은 것을 근거서류라고 내놓는다. 그런데 견적서나 시방서, 세금계산서 같은 자료는 왜 못 내놓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배전반 공사는 3000만원이 들었다는데 서류상으로만 공사했고 실제 공사는 하지도 않았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이밖에도 관리단장이 운영하는 상가가 부담할 관리비 3억원을 전산조작으로 완납 처리했다는 의혹과 신차전시장을 불법으로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 2014년 관리단장 선출 당시 부정투표가 있었다는 부분 등등 각종 의혹이 끝없이 제기되고 있다. 


   
김 관리단장은 단지 내 사업자들의 불신에 대해 “일부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음해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수차례에 걸쳐 구분소유권자나 상인들에게 관리단 사무실에 자료가 있으니 언제든지 와서 보라고 했지만 직접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비용은 세무사가 전부 회계처리를 하고 감사로부터 감사도 받는데 하지도 않은 공사를 했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되물었다. 한쪽에서는 “모든 것들이 불투명하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불순한 의도로 트집을 잡는 것”이라며 대치중인 상태다. 
 
임대사업자 “핍박, 참을 만큼 참았다!”
관리단 “열심히 하는 데도 딴죽 거나?”
 
금년 6월로 예정됐던 정기총회가 두 달 이상 연기되는 것도 또 다른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일전불사를 외치는 강남지부 소속 상인들은 “현 관리단장이 의도적으로 정기총회를 미루고 있다”며 날을 세우고 있고, 관리단장 또한 “메르스 여파로 총회가 연기됐을 뿐 조만간 일정을 잡을 것”이라며 응수하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임대사업자 연명으로 소유권자들에게 관리단 해임을 요구하는 통첩까지 보낸 이상 쉽사리 봉합될 것 같지 않다.
 
임대사업자를 대변하는 이 지부장은 “나이 육십에 머리까지 밀고 나설 때는 개인적인 이익보다 매매단지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중고차 메카로 거듭나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망한다. 반드시 정상적이고 투명한 관리단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반면 김 관리단장은 열심히 하는 데도 상인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상인들의 무조건적인 반발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작용한 여파로 판단하는 눈치다. 
 
“나보다 앞서 9년 동안 관리단장을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관리단의 재정과 체계가 엉망이 됐다. 외부회계감사 결과 큰 액수가 비어서 고소고발까지 한 상태다. 강남단지를 개혁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을 누군가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관리단을 둘러싼 잡음은 향후 개최될 정기총회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위임장 확보전’ 조짐도 보인다. 임대사업자는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결국 구분소유권자들의 위임장을 받아 총회에 참석하겠다는 생각이고, 투표권이 있는 현 관리단장 측은 전체 구분소유권자 중 우호세력을 결집하는 데 주력하는 움직임이다. 

“정기총회서 보자” 
서로 물밑작업 중 
 
한편, 세력결집을 위한 양측의 물밑작업에 의외의 변수가 부상하고 있다. 현 관리단과 예전 관리단장, 현 관리단장과 입주상인 간에 제기된 각종 고소고발 사건과 진정, 투서 등에 따른 잡음이 외부로 퍼지면서 급기야 검찰수사가 착수된 것이다. “참을 만큼 참았다”는 입주상인과 “열심히 하는데 무슨 트집이냐”는 관리단 사이의 갈등은 당사자들의 노력이 아닌 수사기관의 조사와 판단에 따라 향후 행보가 결정될 전망이다.
 

<manchoice@ilyosi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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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