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정권-롯데그룹, 인연과 악연 풀스토리

"박정희 때부터 밀어줬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롯데그룹(이하 롯데)이 오너일가의 볼썽사나운 경영권 분쟁으로 연일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롯데의 수상한 성장과정도 새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롯데가 재계순위 5위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대 정권의 수상한 특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롯데는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현재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일까? 역대 정권과 묘한 인연을 맺어온 롯데가의 성장과정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재계순위 5위 롯데그룹(이하 롯데) 오너일가의 볼썽사나운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신동주·신동빈 형제와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벌이는 다툼은 마치 ‘한일 합작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이처럼 롯데가 연일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면서 롯데의 수상한 성장과정도 새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롯데가 재계순위 5위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치권과 결탁해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지적이다.

정치권과 결탁?
이상한 한일합작

이미 일본에서 롯데를 연매출 700억엔 규모의 종합과자회사로 키워냈던 신격호 회장이 한국에 진출한 결정적인 계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신 회장은 한일협정을 맺을 당시 일본 내 정치권 인맥을 활용해 대화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2005년 공개된 한일회담 외교문서에서는 신격호란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 일을 계기로 롯데는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고 각종 사업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1973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관광진흥정책 이후 신 회장의 국내 투자는 더욱 본격화된다.

당시 박정희정부는 해외자본 유치를 위해 신 회장에게 반도호텔을 인수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던 반도호텔은 서울에서 가장 대표적인 호텔이었음에도 해외 국빈급 인사 영접과 국제행사를 주최하기에는 시설이 매우 열악했다.

급성장 때마다 정치권과 묘한 관계
박정희정권때 명동 상권 장악 시작

박 전 대통령은 관광 사업을 진흥시키기 위해서는 호텔 산업부터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반도호텔을 정부 주도 아래 민영화 시키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반도호텔을 매입할 수 있는 기업을 찾기가 어려웠고 결국 신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호텔롯데 건설은 일사천리로 이뤄졌으며 각종 지원이 뒤따랐다. 게다가 신 회장은 외국인자본도입법의 혜택을 받아 부동산취득세와 재산세, 소득세, 법인세 등을 대폭 면제받았다.

신 회장은 한국 국적자였지만 일본에서 10년 이상 거주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국내법은 외국인이 49%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게 돼 있었는데 호텔롯데의 투자금은 100% 일본 롯데에서 나온 자본이었다. 박정희정부는 동일인인 신격호와 시게미쓰(신격호 회장의 일본이름)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황당한 편법을 묵인해주기도 했다.

편법 동원
정부의 밀어주기

또 당시 서울시는 강북 억제책으로 강북 지역에서의 백화점 건립을 금지하고 있었으나 정부는 롯데백화점을 롯데쇼핑센터라고 이름 붙여 건립을 허가해준다. 박정희정부는 당시 롯데제과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돼 제조 정지 명령이 내려졌지만 이마저도 눈 감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박정희정부의 롯데 사랑은 유별났다. 박정희정부에서 롯데는 현재 명동과 을지로 일대에 조성되어 있는 롯데타운의 기틀을 닦았고, 평화건설과 삼강, 호남석유화학 인수 및 롯데쇼핑 설립 등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다. 

롯데는 전두환정부 하에서도 각종 특혜를 받았다.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을 총괄했던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저서 내용에 따르면 당시 롯데월드 건설에 모든 공공기관이 총동원됐다. 손 교수는 저서에서 “모든 관련기관이 발 벗고 지원하고 모든 문서가 초고속으로 처리됐다”며 “롯데월드는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구청, 소방서, 시 본청, 건설부, 상공부, 재무부, 관세청 등 관계기관 공무원들이 모두 나서 적극적으로 지원한 전무후무한 예로 남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또 롯데가 롯데월드를 건립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신 회장의 친분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롯데는 전두환정권 시절 현재 제2롯데월드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이른바 5공 청문회에서는 신 회장이 전 전 대통령과 단독면담을 통해 해당 토지 매입을 성사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롯데는 전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1980년대 외형을 급팽창시켰다. 1980년에는 롯데쇼핑을 설립해서 롯데그룹은 유통서비스 산업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김영삼정권에서도 롯데와 관련한 각종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이자 소통령으로 불렸던 김현철씨는 당시 롯데물산 김웅세 전 사장의 사위였다. 김 전 사장은 신격호 회장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직접 추천을 의뢰해 영입한 인사로 알려줬다. 김 전 사장은 1990년 롯데물산 사장에 취임한 뒤 1991년부터 롯데월드 사장을 겸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2년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하자 롯데는 김 전 사장을 통해 본격적인 로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해 출간한 회고록에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1990년 3월 신 회장이 찾아와 잠실 롯데월드를 100층으로 지으려 하는데 못 짓게 한다면서 항의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신 회장은 김영삼정권이 들어서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다음 정권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제2롯데월드는 롯데의 숙원사업이자 골칫덩이였다. 1990년대 초에는 부동산 규제 강화로 비업무용 토지였던 제2롯데월드 부지를 강제 매각하게 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는 김영삼정권 시절이었던 1993년 소송에서 승리해 해당 부지를 지킬 수 있었다. 해당 소송 결과와 관련해서도 김현철씨가 롯데물산 사장의 사위라는 점에서 갖가지 의혹들이 제기됐었다.

롯데는 제2롯데월드 외에도 김현철씨의 장인인 김 전 사장을 통해 담배인삼공사 인수를 시도하다 불발되자 대신 주요 역전사업권을 독식하며 그룹을 계속 키워나갔다. 롯데는 또 1997년 2월 롯데백화점 부산본점과 롯데호텔을 나란히 세웠는데 당시 세금특혜의혹과 건축허가 과정에서의 특혜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편 의도된 것은 아니겠지만 롯데의 정치권 혼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롯데호텔 맹경호 상무의 딸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인 박주신씨가 결혼을 하기도 했다.

정치권 혼맥
노골적인 로비

롯데의 로비는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도 계속됐다. 제2롯데월드 건설은 신 회장의 숙원사업이었다. 노태우정부와 김영삼정부에서 그 시도가 번번이 좌절됐지만 롯데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대중정부 들어서는 신 회장이 직접 당시 총리에게 부탁했을 정도다. 하지만 총리의 검토 지시를 받은 국방장관이 “만약 추진하겠다면 장군들도 옷을 벗겠다”며 사표를 들고 와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제2롯데월드 사업은 노무현정부 때도 다시 추진됐지만 역시 국방부와 공군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롯데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부산 롯데타운 신축 허가, 맥주시장 진출 등 각종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경유착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롯데는 이명박정부 시절 정부 주관 행사를 대부분 독점하다시피 했고, 46개였던 계열사는 79개까지 늘어났다.


박원순 시장 아들 롯데임원 자녀와 결혼
이명박정부 시절 정부 주관 행사 독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롯데의 16년 숙원사업이었던 제2롯데월드의 인허가까지 내줬다. 당시 호텔롯데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 동기였다. 이 전 대통령이 제2롯데월드 카드를 들고 나오자 역시 군은 반발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들과는 달리 단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청와대에서 열린 민관합동회의에서 공개적으로 국방장관에게 “제2롯데월드 문제를 오래 끌지 말고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제2롯데월드 건설 반대에 앞장섰던 당시 공군참모총장은 임기를 6개월이나 앞두고 교체됐다. 당연히 이명박정부가 롯데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거셌지만 청와대 측은 “의심암귀(疑心暗鬼·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든 걸 의심스럽게 보게 된다는 뜻)”라며 의혹제기를 일축했다.


이명박정부의 제2롯데월드 인허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제2롯데월드에서 공군 성남기지(서울공항)는 불과 5km 거리다. 무려 555m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 비행 항로를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역대 공군참모총장들이 직을 걸고 제2롯데월드를 반대해왔던 이유다.

제2롯데월드
국가적 재앙?

공군 출신의 한 전문가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정부가 서울공항 활주로 방향을 3도 변경하는 조건으로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해줬지만 위험 요소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악천후와 기체 결함, 조종 미숙 등으로 비행조정이 약간만 안 돼도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전문가는 또 “만약 전시나 비상상황에서 비행할 때는 적의 공격을 피해 회피 기동을 해야 하는데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는 치명적인 장애물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놀라운 점은 롯데가 이처럼 역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특혜 시비를 겪었음에도 단 한 번도 법의 심판을 받은 적은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롯데에 대한 사정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롯데는 사정 칼날을 잘 피해나갔다. 지난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창립된 롯데는 어느새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롯데는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현재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일까?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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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국민의힘 솟아날 구멍

‘사면초가’ 국민의힘 솟아날 구멍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롭다. 여소야대 정국이 부담스러운 마당에 윤석열 대통령과 영부인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여당이 구석에 몰렸지만 정부도 크게 힘을 실어주지 못하는 모양새다. 상황을 반전시킬 ‘솟아날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다. 22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 협상이 공회전에 공회전을 거듭한 끝에 마무리됐다. 국회법에 명시된 상임위원장단 구성 시한을 17일 넘긴 시점에서다. 결국 국민의힘은 7개 상임위를 받아들였다. 여론전서 밀린 채 야당에게 주도권을 넘겼다는 평이 나온다. 108석 식물 정당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달 10일,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를 열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와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 등 주요 상임위의 11개를 차지했다. 국민의힘에게는 “남은 7개 상임위원장을 수용하지 않으면 18개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겠다”며 압박을 가했다. 국민의힘도 마냥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단독 선출한 11개 상임위원장에 대한 원전 재검토를 요구했지만 단박에 거절당했다. 법사·운영위원장을 여야가 1년씩 돌아가며 맡거나 운영위원장만이라도 국민의힘이 가져가는 등 여러 차례 협상을 시도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여야 원구성 협상 시도는 주말에도 이뤄졌다. 보다 못한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달 19일 “이번 주말까지 원구성 협상을 종료하라”며 최후통첩을 날렸기 때문이다. 이에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달 23일 우 의장과 함께 논의를 시도했지만 회동은 채 30분도 채우지 못하고 파행됐다. 추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우 의장이 어떤 중재안도 제시한 바 없고, 박 원내대표도 어떤 타협안을 제시한 바 없다”며 “이제 빈손 협상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고 강경한 어투로 말했다. 이어 “앞으로 (박 원내대표를)만날 일은 없다”며 “국민의힘에서 총의를 모아 우리 스스로 결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튿 날인 24일 국민의힘은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수용키로 했다. 의총서 논의한 결과 18개 상임위를 모두 민주당이 가져가는 건 저지해야 한다는 데 따른 것이다. 이로써 국민의힘이 맡게 된 상임위는 ▲외교통일 ▲국방 ▲기획재정 ▲정무 ▲여성가족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 ▲정보위 등 7개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추 원내대표가 의지 있게(7개 안을) 밀어붙였다고 들었다”며 “당내에서는 강경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분위기였는데, 여당이 국회를 공회전시킨다는 비판은 불가피하니 우선 국회를 가동시키자는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울면서 받아든 7개 상임위 날 선 청문회에 ‘난장판’ 의총 직후 추 원내대표는 입장 발표를 통해 “절대다수 의석을 무기로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폭주하는 민주당과의 원구성 협상은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했다”며 “작금의 상황에 분하고 원통하다. 저 역시 누구보다 싸우고 싶은 심경”이라고 전했다. 우 의장은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국민의힘이 22대 국회로 돌아온 것에 대해 “(여당 입장서)꽉 막혀 있는 국면이었고,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하고도 갈등이 있고, 거기에다가 특검법 등이 있었다”며 “모두 합쳐진 지경이어서 합을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텐데, 여당의 책임 있는 자세이자 현명한 판단”이라고 밝혔다. 18개 중 7개, 그것도 주요 상임위를 제외한 만큼 당내에서는 국민의힘의 활동 반경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아쉬운 소리가 나온다. 윤 대통령이 임기 3년차에 접어든 만큼 정부를 등에 업고 힘을 발휘해야 하지만 쏟아지는 민주당의 공세를 막기에도 급급하다는 평이다. “빈손 협상은 무의미하다”던 국민의힘이 하루 만에 입장을 선회한 데에는 지난달 21일 열린 국회 법사위 입법 청문회가 한몫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국민의힘이 보이콧으로 자리를 비운 탓에 온전한 민주당의 단독 무대를 만들어준 데 따른 반성이란 것이다. 이날 열린 청문회는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이하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였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주요 증인이 출석한 자리기도 했다. 하지만 세 명 모두 증인선서를 거부하자 야당은 크게 반발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이 전 장관에게 “증인선서를 거부하겠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이기 때문에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야당 의원 사이에서는 “대놓고 거짓말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고성이 터져 나왔다. 상임위를 놓고 여야가 기싸움을 벌이던 때라 여당 의원은 보이콧 기조를 내세워 청문회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자리하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을 질타하는 동시에 증인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정 위원장은 증인에게 호통을 치거나 10분간 퇴장 조치를 명하기도 했다. 마주치면 으르렁∼ 민주당이 상임위를 끌고 가자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여당인 만큼 장시간 국회를 비우는 것 또한 부담이 됐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힘이 국회로 돌아왔지만 ‘일하는 국회’가 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원구성 협상이 끝난 다음 날인 25일 국토교통위원회(이하 국토위)가 야당 주도로 ‘전세사기 특별법’에 대한 입법 청문회를 열었지만 국민의힘은 불참했다. 청문회 일정이 사전 협의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청문회 시작 전 여당 국토위 간사인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야당 간사인 민주당 문진석 의원에게 항의의 뜻을 전했다. 권 의원은 “우리가 이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 (야당이)일방적으로 청문회를 정한 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들어왔으니까 의사일정을 협의해서 정해야 될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결국 이날 청문회 역시 국민의힘을 제외한 야당 의원만 참석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상임위도 정해졌으니 국회가 제대로 가동되는 일만 남았다 생각했고, 다른 의원님들도 청문회는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런데 민주당이 협의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정을 잡아버렸다. 잡아당기면 끌려오는 그런 무력한 여당의 모습으로 비치는 데 우려가 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문턱서 버티는 걸로 국회 주도권을 잡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며 “좀 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같은 날 열린 법사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통위) 청문회에는 참석했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처음으로 여야가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지만 ‘난장판 국회’라는 비판 속에 서로 상처만 남겼다. 이날 법사위 회의 중 정청래 위원장은 여당 간사로 내정된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에게 “성함이 어떻게 되느냐”며 대뜸 질문했다. 유 의원도 지지 않고 “위원장 성함은 누구냐”고 물었고 정 위원장은 “저는 정청래 위원장”이라고 답했다. 이에 유 의원이 “저는 유상범 의원”이라고 말하는 이상한 장면이 연출됐다. 알고 걷는 가시밭길 이후에도 정 위원장이 유 의원을 향해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셔라”라고 질타하자 유 의원은 “공부는 내가 좀 더 잘하지 않았겠냐”고 받아쳤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고등학교 때 공부 잘했던 걸 환갑이 넘어서 자랑하고 있냐”고 쏘아붙이면서 낯뜨거운 설전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과방위에선 민주당 이훈기 의원이 MBC 사장 출신인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에게 위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김 의원이 MBC와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인 만큼 사적 이해관계에 의해 과방위 활동이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이 강하게 항의하며 퇴장했지만 15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도 발생했다. 7월은 이보다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용산발 악재가 겹겹이 터지는 가운데 각종 청문회와 대정부질문이 연이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우선 21대 국회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상병 특검법이 7월 본회의 처리 대상 1순위에 올랐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KBS 라디오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다음 주(7월 첫 주) 정도 본회의에 상정된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겠지만 재표결서 결국 통과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 청문회도 추진하겠단 방침이다. 민주당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4일 “(채 상병 등) 입법청문회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성원을 확인한 만큼 김건희 특검법 청문회를 지체 없이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2일부터 4일까지는 대정부질문이 이어진다. 민주당은 정치·외교·안보 분야서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수사외압 의혹과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고물가 시대에 따른 민생경제 위기에 초점을 맞춰 정부를 겨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사회·문화 분야에서는 국회 교육위원장인 김영호 의원이 직접 질의자로 나서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기간 격돌하는 의대 증원 갈등과 더불어 화성 화재 참사 피해 지원과 재발 방지대책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야당이 휘두르면 여당은 납작 줄줄이 특검에 울리는 경고등 8·9일에는 각각 민주당과 국민의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된다. 야유와 고성으로 얼룩지는 등 한바탕 진흙 싸움이 일어날까 벌써부터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극한으로 치닫던 21대 ‘혐오 국회’의 연장선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현재 상황서 국민의힘이 뾰족한 수를 내놓지 않는 한 여론의 주도권을 되찾기 어려워 보인다. 수적으로 밀리는 것은 물론 분위기를 반전시킬 마땅한 카드도 없다. 전당대회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4파전 구도서 내부총질 기류가 흐르면서 오히려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다. 반면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향후 당론으로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총선서 공약으로 제시했던 ‘대학생 천원 아침밥’ 정책과 교육비 세액공제 대상을 초등학생의 예체능 학원비까지 확대하는 ‘소득세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채택했다. 최근 보여줬던 강경 투쟁 이미지 탈피를 노렸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단순히 일하는 국회를 넘어 민생에 체감이 될만한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법사위 정 위원장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밝히면서 오히려 자충수를 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더러는 ‘정청래 방지법’을 발의해야 한다며 논의에 착수했다. 당장 눈앞에 놓인 ‘여의도 내 힘겨루기’에 치중한 탓에 민생은 뒷전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국회 폭거’에 따른 조치라고 항변한다. ‘식물 여당’ ‘무력한 여당’ 프레임을 깨고 싶어도 민주당이 의석수로 눌러버리니 일을 하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나 “반격의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상임위, 국회의장, 주요 일정 전부 ‘민주당이 휘두르면 국민의힘이 납작 엎드려라’라는 식”이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위기가 초래했다. 국민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도 상당히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대로 끝? 반전 카드 존재감을 과시하는 민주당은 앞으로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주요 상임위를 모두 가져갔지만, 나머지 7개를 국민의힘에 나눠줬으니 ‘국회 독식’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있게 됐다. 특검 정국을 이어갈 명분과 실리도 톡톡히 챙겼다. 총선 참패 이후 국민의힘은 단일대오를 강조해 왔다. 윤 대통령도 나서서 당의 화합을 도모했다. ‘원팀’ 타이틀마저 금이 간다면 식물 정당을 넘어 여권 분열로 이어질 것이란 불안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거대 야당의 집중 사격 속 가드가 풀리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부의장에 6선 주호영 여당 몫 국회부의장에 6선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최종 당선됐다. 4선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을 누르고 후보에 오른 주 의원은 “민주당 출신 의장·부의장의 독단과 독주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보다 선수가 낮은 5선인 점을 꼬집은 이들도 있었지만 주 의원은 “민주당 출신의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2대 1로 상대하는 자리이기에 부의장의 선수가 높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