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지난 4·29재보선 참패 이후 당을 혁신하겠다며 야심차게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당의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혁신안이 발표될 때마다 당내 갈등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고, 당의 혁신과는 관련 없는 제안들을 쏟아내면서 월권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대로 새정치연합의 혁신은 실패하고 마는 것일까?
당 혁신의 중책을 맡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표류하고 있다. 혁신위는 당초 4·29재보선 참패로 촉발된 당내 갈등을 강력한 혁신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혁신안이 발표될 때마다 당내 갈등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6월 출범한 혁신위는 어느새 활동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도 보이지 않는다. 비노진영에서는 혁신위가 당의 혁신보다는 친노진영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혁신위의 반 혁신
혁신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혁신위가 발표한 제 1차 혁신안의 경우 ‘재보궐 원인 제공 시 해당지역 무공천’ ‘부정부패 연루로 기소 시 당직 박탈’ ‘당무감사원 설립 및 당원소환제 도입’ 등이 포함됐는데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재보궐 원인 제공 시 해당지역 무공천 방침은 오는 10월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호남에서 패할 것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현재 새정치연합에 대한 호남의 민심이반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0월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또다시 호남에서 패한다면 당장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비노계의 공세가 본격화될 수 있다. 이를 미리 차단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후 발표된 2차 혁신안 역시 최고위원회와 사무총장직을 폐지하기로 해 문 대표의 권한만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당 혁신보다 친노 입지강화가 목표?
혁신 관련 없는 사안에만 눈독
지난달 24일에는 혁신위가 난데없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제안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반대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됐다. 당장 당내 비노계는 혁신위가 혁신과는 관련도 없는 오픈프라이머리 수용 여부에까지 입장을 밝힌 것은 월권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당내 비노계 인사들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계파갈등을 타파할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노계에서는 이 역시 혁신위가 문 대표의 공천권을 사수하기 위해 벌인 일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문 대표는 지난 2·8전당대회에서는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공약했었지만 혁신위의 발표 이후 혁신위의 결론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혁신위에 힘을 실어줬다.
혁신위에 대한 당내 불만은 지난달 26일 5차 혁신안 발표 이후 최고조에 다다랐다. 이날 혁신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국회의원 수 증원을 요구했다. 그러자 당내 대표적인 비노계 인사인 조경태 의원은 아예 혁신위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혁신위는 국민의 뜻에 반하는 국회의원 숫자 늘리기,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최고위원회 폐지 등 논란거리만 제공하고 있다”며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의원정수를 오히려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노진영에서도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체로 공감하지만 하필 국정원 불법도청 의혹으로 야권이 공세를 펴고 있는 시점에 갑자기 그런 사안을 발표해 논점이 흐려지고 새정치연합이 수세에 몰리게 됐다”며 혁신위의 활동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혁신위의 의원 정수 확대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문 대표조차 “지금 의원 정수 확대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조경태 의원은 의원 정수 확대와 관련해 문 대표와 혁신위의 교감설을 제기했다. 조 의원은 “문 대표가 과거에 의원 수를 400명까지 늘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혁신위의 발표가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혁신안에 반대하면 반 혁신세력으로 낙인찍힐까봐 두려워 하는 의원들이 많았는데 제5차 혁신안을 계기로 오히려 혁신위가 국민들에게 반 혁신세력으로 낙인찍혀버린 상황”이라며 “이제 비노진영 의원들도 혁신위에 대한 공격을 더 이상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니 혁신위 흔들기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투 쓰니 월권? 혁신위의 폭주
반 혁신세력 낙인찍힌 혁신위
실제로 지난달 28일 발표된 제6차 혁신안에 대해서는 비노진영의 반발이 유독 거셌다. 혁신위는 이날 ‘새정치연합을 민생 복지정당으로 만들자’는 내용의 당 정체성 관련 6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정치연합의 이념은 ‘민생 제일주의’이고, 당에는 ‘민생파’만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혁신위는 이를 위해 선(先)공정조세, 후(後)공정증세를 통해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사실상 부자증세 후 복지 확대를 요구한 것이다.
당 내에서는 왜 당 정책위에서 정해야 할 일을 혁신위가 발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중도층을 공략해야 한다는 비노진영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된 채 결국엔 좌클릭하자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쏟아졌다.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혁신위가 내년 총선 때 비례대표후보의 3분의1 이상을 민생전문가와 현장활동가로 공천해줄 것을 요구한 점이다.
혁신은 뒷전
혁신위는 비례대표후보 상위 순번에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를 배치해줄 것도 요구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과연 순수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가 비례대표후보로 공천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결국엔 운동권 출신이나 시민단체 사람들로 비례대표를 채우겠다는 것 아니냐?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친노계는 비례대표에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대거 공천해 정치투쟁만 일삼았다. 20대 총선에서도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전문성 있는 인사를 영입하겠다는 당초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혁신위는 당초 목표대로 당 혁신에 집중해야 된다. 현재 혁신위는 혁신위라는 감투만 믿고 평소 하고 싶던 자기 정치를 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며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아주 잘못 찾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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