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대담> '의원직 상실위기' 박지원 작심토로

"황당한 재판내용 알면 국민들도 내 편들 것"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로운 증거나 증언이 나온 것도 아닌데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결이 180도 달라진 '이상한 재판'이 있다. 바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에 대한 재판이다. 유일한 증거는 돈을 줬다는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뿐이지만 재판부는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박 의원은 곧바로 의원직을 잃고 내년 총선에도 출마하지 못한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강영수)는 지난 9일 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나 증언이 나온 것도 아니었지만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은 180도 달랐다. 법조계에서는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마침 야권을 향한 사정정국이 조성된 미묘한 시기였다.

이번 재판에서 인정된 유일한 증거는 박 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오문철 전 보해저축은행 대표의 주장뿐이다. 재판과정에서 오 전 대표가 의도적인 위증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재판부는 그의 주장만을 철석같이 믿었다. 2심 재판과정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기본적인 대원칙조차 전혀 지켜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재판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일요시사>가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는 박 의원을 만나봤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 지난 9일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심정이 어떤가?
▲ 새로운 증거나 증언이 나온 것도 아닌데 1심 재판부의 판결과 2심 재판부의 판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법조계에서는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2심 재판부는 물증도 없이 오직 오문철 전 보해저축은행 대표의 말만 믿고 유죄판결을 내린 것이다. 굉장히 황당한 심정이다. 재판부는 제가 오 전 대표에게 3000만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당시 보해저축은행은 이미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아무리 돈이 급해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회사에서 돈을 받을 바보 같은 정치인은 없다.

- 법원은 일부 유죄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 오문철 전 보해저축은행 대표의 일관된 진술을 꼽고 있다. 오 전 대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 오 전 대표와 관련된 또 다른 사건으로 구속됐던 썬앤문(현 라미드그룹) 김성래 부회장은 옥중에서 ‘매일 검찰이 불러서 박지원에게 돈을 주었다는 진술을 하라고 해 자살을 해서라도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국회 법사위원회에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 전 대표는 지금도 수감되어 있는 사람이다. 거의 매일 검찰청에 불려가 밤늦게까지 조사를 받으면서 검찰의 압박과 회유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 부회장의 폭로에 따르면 진술이 조작되고 연습되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 반면 당시 오 전 대표와의 만남에 동석했다는 한모 전 목포경찰서장은 박 의원님의 결백을 주장했으나 진술이 오락가락해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 오 전 대표가 저에게 돈을 줬다는 날짜가 2010년 6월이다. 기자님도 오늘 인터뷰를 하지만 5년 후에 제가 어디에 앉았고 배석자들이 어디에 앉았었는지 전부 기억할 수 있겠나? 당연히 기억을 더듬어 진술하다보면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한 전 서장이 그날 만남에 분명히 배석했었고, 오 전 대표가 (현금 3000만원이 담겼 을만한 가방 등이 없이) 빈손으로 왔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사소한 사실관계를 기억해내는 과정에서 진술이 오락가락했다는 이유로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하니 억울할 수밖에 없다.


물증도 없이? 무죄추정 원칙 내버린 재판부
"수사 중인 회사 돈 받을 바보 아니다"

- 오 전 대표는 당시 세부적인 상황까지 기억해냈나?
▲ 아니다. 오 전 대표 역시 저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만 일관되게 하고 있지 세부적인 내용은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오 전 대표의 진술만은 그대로 인정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중잣대다.

- 의원님과 오 전 대표가 만났을 당시 동석한 한 전 서장은 의원님과 가까운 사이라고 하던데, 재판부로서는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 제가 한 전 서장과 잘 아는 사이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당시 한 전 서장뿐만 아니라 오 전 대표의 측근인 김모씨와, 오 전 대표의 운전기사조차도 가방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오 전 대표는 현금으로 3000만원을 저에게 주었다고 하는데 현금 3000만원이 양복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나?

오 전 대표는 그날 저를 만나러 가면서 차에서 가방을 가져갔다고 진술했지만 오 전 대표의 측근인 운전기사조차 가방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2심에서는 오 전 대표의 진술만 신빙성이 있고 나머지 사람들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 운전기사나 김모씨의 진술은 왜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나?
▲ 모르겠다. 재판부가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들은 오락가락하지도 않고 지금까지 일관되게 진술을 했는데 2심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 당시 만남에 한 전 서장이 동석했다는 내용의 수첩기록에 대해 재판부는 수사가 진행되고 난 후 쓰여 졌다고 판단했다. 한 전 서장이 동석했다는 것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인데.
▲ 추가일정을 밑에 적는 것은 평소 메모습관이다. 공간이 없어 추가일정을 하단 빈칸에 기록한 것이다. 그동안 제가 써온 메모패턴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억울해서 국과수 판정을 받아보자고 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우리 측의 요구를 묵살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말만 믿고 메모가 뒤늦게 작성된 것이라고 했다.

- 당시 오 전 대표를 만나줬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오 전 대표의 회사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상황으로 두 사람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었다.
▲ 그날 면담은 한 전 서장이 오 전 대표를 데려와서 만났던 것이다. 당시 보해저축은행이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면담 전까지는 몰랐고 면담 과정에서 알게 됐다. 저는 지역에서 저를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라도 만난다. 국회의원으로서 제 지역구에 있는 저축은행 대표를 만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 오 전 대표뿐만 아니라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임건우 전 보해양조 회장 등도 의원님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만약 검찰의 짜맞추기식 기획수사가 맞다면 야권에 대권주자들도 즐비한데 왜 하필 박 의원님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나?
▲ 2012년 검찰의 기소 당시 여권 인사들이 비리사건으로 줄줄이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 검찰에서는 여야 균형을 맞추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을 것이다. 임석 전 회장은 저와 고향이 같고, 학교 후배다. 보해저축은행도 제 지역구에 있는 회사다. 제가 타깃이 되기 딱 좋았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제가 원내대표로서 저격수 역할도 하고 여권에선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래서 저를 타깃으로 삼은 게 아닌가 의심된다. 지금까지 검찰이 저를 탈탈 털었지만 아무 것도 나온 것이 없다. 이번에 유일하게 유죄를 받은 것도 오 전 대표의 증언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이미 위증 저질러 증언 신빙성 없어"
"2심은 분명한 오심, 끝까지 싸우겠다"

- 재판부는 오 전 대표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면서도 오 전 대표가 지난 2011년 3월 의원님에게 또 다시 3000만원을 줬다고 진술한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 오 전 대표는 지난 2011년 3월에 제게 3000만원을 주면서 청탁을 하니 제가 그 자리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에게 전화를 해 민원을 해결했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김 위원장은 같은 시간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있었다. 재판정에서 아예 김 위원장의 국회 출석 영상을 틀어줬다. 확실한 물증이 있다 보니 재판부도 그 부분은 어쩌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오 전 대표는 매우 악의적으로 위증을 한 사람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뇌물을 건넨 사람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그 진술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재판부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런 사람의 말만 믿고 저를 유죄라고 한 것이다.

- 이외에도 오 전 대표의 진술 중 오류는 없었나?
▲ 오 전 대표는 제가 3000만원을 받고 수원지검 검사에게 전화를 해 보해저축은행 관련 청탁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검찰에 제가 도대체 수원지검 누구에게 청탁을 했다는 건지 밝혀 달라, 같은 검찰식구니까 알 거 아니냐고 호소했다.

그런데 검찰은 제가 누구한테 청탁을 했는지 결국 밝혀내지 못했다. 이외에도 사소한 오류들이 많았다. 재판과정에서 재판장이 오 전 대표에게 ‘진술이 다른 피고인들과 전부 엇갈리는데 어떻게 박 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그 시점의 일만 세세하게 기억하느냐, 그러니까 피고인이나 변호인들이 검찰에게 회유 받은 것 아니냐고 의심을 하는 것 아니냐’고 호통을 칠 정도였다.

- 재판과정에서의 편파적인 진행은 없었나? 사정정국이 조성된 후 재판부의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었다고 보나?
▲ 변호인들이 항소심 재판정이 이상하게 굉장히 까다롭게 한다고 하더라. 1심에서 증인으로 나와 이미 증언을 한 사람들을 항소심에서 전부 다시 불러서 증언을 하게 했다.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아무리 까다롭게 해도 우리는 명명백백하게 돈을 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재판결과에 자신이 있었다. 변호인들도 전부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검찰에 기소만 돼도 당직을 정지시키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번 재판으로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 재판이 정치적 탄압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정해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 정권이 바뀌어도 늘 검찰의 정치편향성이 문제로 지목된다. 검찰의 정치편향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또 다른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저는 법사위원을 하면서 사법부를 존중해왔지만 이번 2심 판결은 분명한 ‘오심’이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에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겠다.

- 끝으로 3심 재판을 앞두고 하고 싶은 말씀은?
▲ 맨 처음에 검찰은 제가 10억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서 고작 3건에 8000만원을 받았다고 기소했다. 그나마 재판부에서는 1건 3000만원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 판결조차 물증은 없다. 일단 정치인이 법정에 서면 나중에 무죄를 선고받아도 국민들은 믿지를 않는다.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저를 욕할 땐 욕하시더라도 재판내용이 무엇인지, 증거가 무엇인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재판내용을 제대로 알고 나면 국민들께서도 제 편을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mi737@iyosisa.co.kr>

 

[박지원 의원 프로필]
▲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
▲ 미국 뉴욕한인회 회장
▲ 제14, 18, 19대 국회의원
▲ 제2대 문화관광부장관
▲ 김대중 대통령비서실장
▲ 민주당 원내대표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