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호남 10월 쿠데타설 막전막후

금배지 20개만 모아 원내 신접살림 차리면 '성공'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10월 재보선을 주목하라.”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는 공공연히 10월 재보선을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정치권에서는 10월 재보선이 야권 재편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이 각각 전남과 전북에 포진하고 이미 재보선을 겨냥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정치권은 10월 재보선 이후 불어닥칠 후폭풍에 긴장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자신은 대권을 위해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어야 한다”며 “당대표가 못 돼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그 다음 제 역할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문 대표의 진짜 죽을 고비는 오는 10월28일 치러지는 재보선이라고 지적한다.

진짜 죽을 고비
넘을 수 있을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당 지도부는 10월 재보선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문 대표가 10월 재보선에서 참패한 후에도 그냥 뭉개고 넘어가려 한다면 비노진영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문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비노인사들은 당장 당을 뛰쳐나갈 것이고 빈껍데기만 남은 당에 친노인사들만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대표는 이미 지난 4·29 재보선에서 4대0으로 참패를 당하면서 당 안팎에서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10월 재보선마저 참패하고 나면 더 이상 대표직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주장이다. 친노진영에선 10월 재보선에서 패하더라도 내년 총선을 코앞에 두고 당 대표가 물러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버틸 가능성이 크지만 그럴 경우엔 친노계와 비노계가 갈라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10월 재보선, 신당 리트머스지 역할
기다리는 전남 천정배, 전북 정동영

대표적인 비노계 인사인 주승용 최고위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10월 재보선에서 호남 기초단체장선거 결과가 우리 당의 상당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는 기초단체장 재선거라고해서 10월 재보선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메시지로 풀이된다. 10월 재보선 결과는 야권 신당의 성공 가능성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역할도 하게 된다.

기초단체장 위주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공교롭게도 호남지역에 집중돼 있다. 전국적으로 총 11곳이 재보선 예상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가운데 그중 호남지역만 5곳이다. 호남에선 광주 동구, 전북 익산, 전남 장성·무안·장흥 등 5곳이 재보선 예상지역이고, 그 외 지역에서는 경기도 구리와 양주, 충북 진천, 경남 김해, 거창, 고성 등이 재보선 예상지역으로 분류된다. 


정치권에서는 새정치연합이 다른 곳에서 다 이기더라도 호남에서 참패하고 나면 그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당장 호남신당론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현재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신당론의 배경에는 ‘흔들리는 호남민심’이 자리하고 있는데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이 패하고 나면 호남의 민심이반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이니만큼 심각한 일이다.

호남 민심이반
전전긍긍 새정치

특히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이 각각 전남과 전북에 포진하고 이미 재보선을 겨냥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치권은 10월 재보선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역정가에서는 두 사람의 연대설도 제기되고 있다.

천 의원 측은 이미 호남에서 10월 재보선에 출마할 인재를 물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시간이 촉박해 신당 창당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무소속연대 형식으로 후보를 내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천 의원 측은 재보선을 앞두고 몰려드는 인사들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 4·29재보선에서 낙선 한 후 중국으로 떠났었던 정동영 전 의원은 최근 자신의 고향인 전북 순창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은 고향에서 지인의 씨감자농장에 머물며 칩거 중이다. 지역정가에선 이미 정 전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전북지역에 출마할 것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낙선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전북지역에서 정 전 의원의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10월 재보선을 겨냥한 전북지역 내 사전정지작업도 상당수준 진행되어 있다는 평가다. 이미 지난 3월 전북 출신 인사 105인이 정 전 의원이 몸담고 있는 국민모임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다. 이들은 “호남을 친노의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정치 행태는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과제”라며 “야당교체 없이는 정권교체도 없다”고 주장했다. 친노가 장악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각각 전북과 전남에서 바람을 일으킨다면 10월 재보선 판세는 크게 요동칠 것이다. 새정치연합 후보들이 재보선에서 패하고 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내 인사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고, 천 의원과 정 전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에 참여하려는 인사들이 줄을 서게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광주 동구청장 재선거가 실시된다면 광주 동구가 지역구인 박주선 의원이 또 다른 키맨이 될 수도 있다. 박 의원은 그동안 꾸준히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해온 인물로 탈당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역정가에서는 광주 동구에서 재선거가 실시되면 박 의원이 물밑에서 무소속 후보를 돕는 방식으로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들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박 의원과 당 지도부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다는 것이 당 안팎의 분석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 9일에는 호남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당직자 출신 당원 100여명이 탈당계를 내고 신당 창당을 선언했는데 이들의 기자회견 장소를 박 의원이 예약한 것으로 알려져 당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현재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의 입지는 매우 불안하다.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전남 22개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후보만 9명이다. 새정치연합은 텃밭이라는 전남에서 거의 절반의 지역을 무소속 후보들에게 내줬던 것이다.

최근 지역정세는 더욱 악화됐다. 새정치연합 전북도당이 도민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연합은 아직 창당도 되지 않은 신당과의 가상대결에서 지지율이 무려 12%p나 밀렸다.


가상정당에 밀렸다
악화되는 지역여론

새정치연합 중앙당은 당장 객관성이 결여된 여론조사였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더 큰 문제다. 중앙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전북도당은 이미 호남신당을 지지하는 인사들에게 장악되어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중앙당은 이번 여론조사가 새정치연합의 긍정적 측면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부정적 내용만 직설적으로 묻다가 가상 신당과의 지지율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지적한다. 여론조사 설문지를 살펴보면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가?’ ‘새정치연합의 혁신과제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이어가다 마지막으로 지지하는 정당을 묻는 식이다. 당연히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는 여론조사라는 지적이다.

또 도당 차원에서 여론조사를 했다면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는 굳이 공개할 이유가 없는데 이번 여론조사가 언론에 공개된 이유도 의문이다. 어찌됐든 호남정세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변수는 야심차게 출범한 혁신위의 혁신작업이다. 혁신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만큼 단 몇 곳에서 치러진 재보선에서 패했다고 해서 당대표 자리를 내놓으라는 주장은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신당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너나할 것 없이 신당 창당의 선제조건으로 ‘혁신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문재인 흔들기' 10월 이후가 적기?
'무공천' 정면승부 회피 위한 꼼수?

이미 무소속 연대를 추진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도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 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신당이 나와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고, 문 대표와 연일 각을 세우고 있는 박주선 의원도 ‘당 혁신이 최우선이다. 혁신이 잘 되면 탈당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혁신위의 전망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혁신위원회는 지난 8일 현행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직을 폐지하는 혁신안을 내놓았는데 이에 대해 비노진영에서는 당대표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이 집중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혁신위의 혁신안이 계파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현역의원 교체지수를 개발하게 될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의 임명권을 당대표가 행사하기로 하자 비노계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혁신위의 혁신작업이 지나치게 공천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은 누가 공천을 받든 관심이 없다”며 “혁신위가 우리 당이 신뢰받는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일각에선 혁신위가 최근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부정부패사건으로 재보선을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공천하지 않기로 하는 혁신안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호남지역에 당 소속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있다.

무공천 꼼수?
책임회피 불가능

하지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무공천 선거를 한 번 치러봤지만 누가 새정치연합 쪽 사람이고 누가 천정배 사람인지 다 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며 “무공천했다는 이유로 책임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정말 심각한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문 대표가 죽을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10월 재보선에 올인해야 한다”며 “흔들리고 있는 호남민심을 잡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기지 못한다면 문 대표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mi737@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