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6)최동열 기륭전자 회장 & 한형구 코츠디앤디 대표

온갖 불법에도 검찰은 모르쇠?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26화는 66억1300만원을 체납한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과 한형구 코츠디앤디 대표다.

1895일을 싸웠다. 삭발은 물론이고 목숨을 건 세 차례의 단식과 다섯 차례의 고공농성이 이어졌다. 태어나서 처음 공장을 점거했고 포클레인에 맨몸으로 부딪혔다. 처음엔 꿈쩍 않던 여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끝내 그들은 투쟁에서 승리했다. 회사는 불법파견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에 서명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시킨 기륭전자 노조의 이야기다.

도망간 회장님

2010년 11월 기륭전자 노조는 조합원 10명을 정규직화하기로 사측과 합의했다. 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복직을 유예해달라고 한 것이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사측의 약속을 조합원들은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2년6개월 만에 복직한 회사는 1년도 못 가 문을 닫았다. 2013년 12월 회사는 어떤 예고도 없이 사무실을 무단 이전했다. 밀린 임금은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일터에 정착하려던 조합원들은 또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2000년대 중반 연매출 2000억원을 바라봤던 기륭전자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기륭전자의 소유주인 최동열씨(이하 최동열)도 잠적했다.

최동열은 고액체납자다. 2010년 9월부터 지방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3억9100만원이다. 최동열은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도 등재돼 있다. 2009년부터 양도소득세를 체납했다. 국세청이 거둬갈 세금은 34억5500만원이다.


국세청 명단에서 최동열은 거성엔지니어링 대표로 소개됐다. 거성엔지니어링은 최동열을 대표하는 이력이 아니다. 2008년 3월 최동열은 코스닥 상장사인 기륭전자 이사에 선임됐다. 그가 체납한 세금은 모두 기륭전자를 운영하던 무렵 부과됐다.

기륭전자가 폐업한 배경에는 최동열이 있다. 최동열은 회삿돈 수백억원을 동원해 자신 명의의 주식을 고가에 사들였다. 또 회사 자산을 차례로 매각해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자금 세탁 과정에 코츠디앤디란 회사가 등장한다. 코츠디앤디도 서울시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코츠디앤디는 2010년 10월부터 등록세 등 6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과세한 지방세는 27억6700만원이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코츠디앤디는 2008년 7월31일 설립됐다. 자본금은 5억원이며 주거용 건물 개발 및 공급업을 주업종으로 등록했다. 코츠디앤디의 대표이사는 '동업자' 이병택씨다. 이씨와 그의 동생은 최동열 일가의 자금을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27억6700만원 
국세청 38억4600만원
기륭전자 매각해 차익 남겼는데…

코츠디앤디는 기륭전자가 소유하고 있던 핵심자산인 서울 금천구 가산동 219-6번지 땅(1만1405㎡)을 매입했다. 2008년 10월31일 이 땅은 코츠디앤디 소유로 등기됐다. 그런데 매매 일시는 2008년 6월25일로 돼 있다. 코츠디앤디의 설립일보다 매매 시점이 앞선 것이다.

당시 기륭전자는 자본금 5000만원짜리 회사인 (주)희정과 405억원상당의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희정이 잔금을 납부하지 못해 계약이 파기됐고, 코츠디앤디라는 업체가 대신 계약을 맺었다는 해명을 내놨다.

문제는 두 회사가 사실상 하나의 회사가 아니었냐는 의혹이다. 이들 회사는 모두 기륭전자가 땅을 매각하기로 한 직후 설립됐다. 자본이 부족해 PF은행을 끼고 땅을 매입하려한 점도 같았다. 특히 코츠디앤디는 매입 전후 최동열과 '이면계약'을 한 것으로 의심됐다.


코츠디앤디는 부동산 등기에 앞서 아시아신탁주식회사로 가산동 땅을 신탁했다. 관련 부지는 2년 뒤 개발 호재를 맞았다. 2010년 8월 한라건설은 코츠디앤디와 628억원 규모의 아파트형 공장을 설립하기로 계약했다. 이때 최동열은 건물 2개층(6600㎡)의 분양권을 선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최동열이 기륭전자 대표로 올라선 2010년 3월 한라그룹 출신인 백삼열씨가 같은 회사 사외이사로 선임됐다는 것이다. 최동열과 백씨는 처남·매형 사이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가산동 개발 사업은 최종 공정율 7.84%로 중단됐다. 코츠디앤디는 '사업시행권 등 포기 및 양도각서'를 예금보험공사에 제출했다. 2013년 10월 가산동 땅은 공매에 넘어갔다. 매각은 토지 수탁자인 아시아신탁주식회사가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코츠디앤디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코츠디앤디의 등기상 대표는 한형구씨다. 한씨는 2012년 6월 전임대표 이씨로부터 권한을 넘겨받아 직무대행자가 됐다. 그러나 한씨의 주소지는 강원 고성군 토성면으로 코츠디앤디가 자리한 서울과는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다. 전후 사정상 코츠디앤디의 실소유주는 한씨가 아닌 것으로 추정됐다. 코츠디앤디의 옛 회사 내선으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기륭전자는 2012년 3월 기륭이앤이로 이름을 바꾼 뒤 2013년 9월 렉스엘이앤지로 상호를 변경했다. 기륭이앤이는 2012년 12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사옥과 토지를 62억원에 처분했다. 유동성을 완화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의 신뢰는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같은 달 최동열은 퇴직근로자 14명의 임금과 퇴직금 등 1억5700여만원을 체불한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됐다.

최동열은 기륭전자 이사로 재직할 당시 DSIT위너스, DSIT인포테크, DSIT원터치, 오즈리소스, 유니트존 등 5개 회사를 동시에 운영했다. 이는 자금추적 등 법망을 피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됐다.

앞서 최동열은 중국에 본사를 둔 광서대상신식과기유한공사(이하 광서유한공사)를 앞세워 기륭전자의 경영권을 장악했다. 광서유한공사를 소유한 DSIT위너스는 2007년 12월 395억원에 기륭전자로 매각됐다. DSIT위너스 주식을 보유한 최동열 일가는 거액의 매매차익을 챙길 수 있었다.

이와 관련 기륭전자 노조는 "광서유한공사의 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노조는 당시 중국에서 10명만 일하고 있었으며, 회사 자본금도 1억2000만원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광서유한공사는 적자를 거듭한 끝에 2012년 '부실 매각'됐다.

그러나 최동열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DSIT 주식 매각대금의 일부로 기륭전자를 사들인 그는 회사 자산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했다. 회사 상장폐지 후에는 감자결정을 통해 12억8000만원의 자본금을 6400만원으로 줄였다. 마지막 단물까지 빨아먹은 셈이다.

매매차익 챙겨

서울 동작구 상도로 320번지에는 중앙하이츠빌 아파트가 있다. 이곳은 세무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최동열의 주소지다. 최동열의 집 앞에선 주 2회 1인 시위가 벌어진다. 지난해 조합원들은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최동열을 합의 불이행 등에 의한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사건은 재정신청이 진행 중이다. '고액체납자'인 최동열은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을 둘러싼 여러 고소·고발 사건을 방어하고 있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까지 최동열의 동생인 최성열씨는 새누리당 중앙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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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