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혈세' 국회 애먼 돈 완전 해부

영수증도 필요 없어 "먼저 쓰면 임자"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정치권이 불투명예산 논란으로 시끄럽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국회의원 시절 국회 대책비를 생활비로 썼다고 밝힌데 이어,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도 재판 과정에서 상임위원장 직책비를 아들 유학자금으로 썼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영수증 처리도 필요 없는 불투명 예산이 국회 곳곳에서 집행되면서 국회의원들이 혈세를 개인 쌈짓돈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에서 한 해에 사용하는 불투명 예산이 많게는 9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국회 사무처에서는 해당 예산의 사용내역이 공개될 경우 국가 이익에 반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해당 예산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회가 무슨 국정원이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그런데 최근 국회의원들이 대단한 일에 쓰는 줄 알았던 불투명예산의 사용처가 속속 공개되고 있다. 성완종 게이트 사건에 휘말린 홍준표 경남지사는 국회의원 시절 받은 국회 대책비를 생활비로 썼다고 밝혔고, 입법로비 비리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새정치연합 신계륜 의원은 상임위원장 직책비를 아들 유학자금으로 썼다고 고백했다. 국회의원들을 믿고 불투명예산의 사용처를 묻지 않았던 국민들로서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의원님 쌈짓돈
혈세 낭비 심각

이번에 문제가 된 특수활동비는 국회의장과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 18개 상임위원회와 각종 특별위원회 등에 지급되는 돈이다. 특수활동비 중에는 정책 개발부터 의원 외교, 의원 연구 활동 지원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이 돈을 모두 합치면 연간 80억∼90억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특히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임하는 여당 원내대표에게는 연간 4억원 이상이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표 지사가 국회 대책비라는 명목으로 여당 원내대표 시절 월 4000∼5000만원을 받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직 여당 원내대표는 “그 돈을 원내대표가 혼자 다 쓰는 것이 아니라 당이나 상임위 등과 분배해서 쓰게 되어 있어서 정작 원내대표가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안 된다”고 반박했다.

어찌됐든 국회는 특수활동비 지출내역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가 지급되고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미스터리다. 이 돈은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어 개인 생활비로 유용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고, 사적으로 유용하다 적발된다하더라도 이번 사례처럼 처벌할 근거가 모호하다.

여의도는 감시 사각지대 "올해만 84억 증발"
대책비를 생활비로…직책비를 유학자금으로


국회의원들이 개인 비리 혐의로 자금 흐름에 대한 해명이 필요할 때 특수활동비를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떳떳하게 밝히는 이유다. 특수활동비가 주먹구구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국회의원들도 인정하고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의 경우 불법 사찰 국조 특위 위원장을 맡은 후 받은 9000만원의 활동비를 전액 반납하기도 했다. 
 


여야의 대립 속에 불법 사찰 국조 특위가 공전만 거듭했기 때문이다. 19대 국회 들어 여야는 무려 31개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렇다한 성과를 낸 특위는 없다. 한 달 평균 회의 개최 횟수가 1회 미만인 특위도 9곳이나 됐다. 그런데 활동비를 반납한 위원장은 심재철 의원이 유일하다.

 


국익 위해?
의원 위해?

국회의원들이 쌈짓돈처럼 쓰는 예산은 특수활동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대표적으로 정당 국고보조금이 있다. 정당 국고보조금은 지난 2012년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중간에 후보를 사퇴했음에도 보조금 27억원을 수령하면서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한 해에 각 정당에 지급되는 정당 국고보조금은 무려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청난 액수지만 정당 국고보조금은 선관위에서 서면 위주의 회계조사만 할 뿐 감사원 감사도 받지 않는다. 정치자금법에는 보조금의 30% 이상을 정책개발에 사용해야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정당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보조금의 대부분은 각 당의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 또는 여론조사 비용 등으로 사용된다. 국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는 비용인 셈이다. 반면 다른 국가에서도 정당보조금을 지급하긴 하지만 철저한 회계감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고 대부분 선거운동을 위한 보조금 등 제한적으로 지급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묻지마식 지원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미사용 정치자금 역시 국회의원들의 쌈짓돈처럼 사용되고 있다. 정치자금은 엄밀히 따지자면 국회의원들이 자발적 기부를 통해 모은 것이니 세금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 피 같은 돈을 사용한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정치자금법에는 정치자금을 ‘사적 경비’로 쓰는 것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사적 경비와 공적 경비의 구분이 모호하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식사비용을 정치자금으로 계산하고 정치활동을 위한 만남이었다고 신고하면 공적으로 비용을 사용한 게 되는 식이다. 또 쓰다 남은 정치자금은 임기 직전 다 써버리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남은 돈은 모두 소속 정당에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 의원들은 정치자금을 자신의 보좌진 퇴직금 명목으로 수천만원씩 지급하기도 했다. 

매년 반복되는 외유성 해외연수 비용 또한 국회의원들이 사용하는 애먼 돈이다.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 전진한)는 국회의원들의 해외연수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결과는 경악스러웠다. 대부분 의원들의 해외순방 일정이 해외 진출 기업들이나 동포들과의 만찬 중심 일정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의원친선협회 차원의 의원외교 역시 대부분 외유성 출장을 의심케 하는 일정들로 채워져 있었다. 지난 2013년에는 의원 외교라는 명분으로 동남아를 찾았던 의원들이 현지 국가 국회가 회기 중이 아니어서 방문지 국가의 의원들을 만나지 못하고 국장급 국회공무원을 대신 만나고 돌아오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의원들은 해외순방을 마친 후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보고할 의무도 없다.

게다가 국회는 19대 국회 들어 국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던 국회 의장단의 해외순방 일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사용된 예산내역까지 철저히 감추고 있다. 이 역시 공개될 경우 국가 이익을 해할 수 있다는 명분이다. 당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는 “외유성 논란이 일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정을 아예 비공개로 전환해버린 것 아니냐”는 반발이 있었다.

과거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어온 의장단 해외순방 일정을 살펴보면 대부분 현지 한인간담회, 현지 의장단 예방 등의 일정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일정들이 공개된다고 해서 어떻게 국익에 해가 된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시대 역행
묻지마 예산

물론 국회는 의장단의 해외일정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더라도 자체 감사와 감사원 감사를 통해 철저히 감사받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 전진한)’의 강언주 간사는 이에 대해 “그동안은 의장단의 해외일정에 대해 모두 투명하게 공개했고 문제가 있으면 직접 찾아가 영수증을 하나하나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살펴보면 너무 과다하게 예산을 사용한 부분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해외순방 경비의 경우 개인적으로 유용할 가능성은 적다고 하더라도 감시를 벗어나면 불필요한 예산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특히 예산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인데 국회만 오히려 기존에 공개되던 예산 사용내역조차 비공개로 전환한 것은 시대를 거꾸로 역행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국회서 의장단과 관련한 애먼 돈은 또 있다. 국회는 국회의장과 부의장에게 각각 150만원과 130만원을 주유비로 매달 꼬박꼬박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의장단이 아무리 일정이 많다고 해도 주유비로 지급되는 금액치고는 다소 많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의장단은 주유비로 사용하고 남은 돈을 반납할 의무가 없다.

일하라고 줬더니 개인 주머니에?
정보공개 거부, 투명 행정 역행


심지어 의장단이 사용하는 관용차량은 ‘국회사무처 공용차량 내규’에 따라 운행일지도 작성하지 않는다. 지급받은 주유비 중 실제 주유비로 얼마나 사용했는지 남은 돈은 어떻게 사용되는지 파악할 자료가 없는 것이다. 일반 업무용 관용차량이 차량운행일지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해외 출장과 관련해서는 국회의원들의 항공 마일리지 사용실태도 도마 위에 오른다. 매년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국회의원들은 피감기관의 항공 마일리지 사용실태에 대해 지적한다. 업무상 출장을 통해 항공 마일리지를 쌓아놓고도 쓰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지침위반이자 혈세 낭비라는 것이다.

현재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르면, 공무 출장자는 항공권 예약 시 적립된 항공 마일리지를 우선 활용하고 해당기관 회계담당자는 마일리지 활용 여부를 확인 후에 운임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국회의원들은 항공 마일리지를 잔뜩 쌓아놓고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년에 공개된 자료를 기준으로 19대 국회의원 중 일부는 약 2년의 임기 동안 10만이 넘는 항공 마일리지를 적립하고도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해당 국회의원의 임기가 끝나면 국가는 항공 마일리지를 회수할 방법이 없다.

노동의 대가?
꼼수의 대가?


국회의원들의 꼼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예정에 없던 임시국회를 소집할 때마다 특별활동비 명목으로 1인당 100만원에 달하는 돈을 지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들은 4월 임시국회 내내 파행을 거듭하다 5월 임시국회를 열었는데 겨우 법안 3개를 처리하고 1인당 100만원에 달하는 특별활동비를 챙겼다. 이를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회는 예산 심사권을 가진 기관이다. 따라서 국회는 국민들의 혈세를 아끼고 아껴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최근 서민들은 부족한 세수로 인해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담뱃세, 주민세 인상에 연말정산 파동과 공무원연금 개혁까지 모두 세수 부족 때문에 벌어진 사태다. 그런데 정작 국회의원들은 혈세를 개인 쌈짓돈처럼 사용한다면 국민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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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