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호원재개발조합 비리 의혹 1탄> 사문서위조 사건 전말

너그러운 경찰…증거·증인 있어도 무혐의?

[일요시사 경제2팀] 이창근 기자 =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아닙니까!” 안양시 호원지구재개발조합에서 벌어진 사문서 위조 사건에 대한 동안경찰서의 수사결과를 지켜본 지역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조합장선거에 사용될 투표용지 조작 사전모의와 준비과정이 담긴 녹취파일이 존재하고, 행사된 투표용지가 위조되었음을 확인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서는 물론 위조행위에 가담한 일원의 양심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양시 동안경찰서는 ‘피고소인의 범죄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면서 불기소(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1동 주변 5만6000평의 호원지구는 2006년부터 최근까지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이다. 조합원만 1800명이 넘고, 재개발 후 입주세대가 4000세대에 육박할 정도로 대규모의 재개발 사업지다. 전체 사업비가 최소 7000억 규모다. 조합설립 인가는 2012년에 났고 현재는 사업시행 인가를 앞둔 상태다. 
 
선관위 간사 
양심선언에 들통
 
문제가 된 사건의 발단은 2012년 4월28일로 예정된 조합원 총회 즈음에 발생했다. 총회의 핵심이슈는 조합장, 감사, 이사를 뽑기 위한 임원 선출에 관한 건. 조합장 후보로는 장금덕씨를 포함한 3명이 나섰다. 세 후보는 나름 치열한 득표전을 돌입했다. 총회 당일 직접 투표하겠다는 조합원과 총회에는 참석할 수 없지만 선관위에서 발행한 투표용지에 기표하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겠다는 조합원을 상대로 유세를 펼친 것이다.
 
세 후보 중 그래도 당선이 유력해 보였던 후보는 1번 김 모 후보와 2번 장금덕 후보. 임대업을 하고 있던 김 후보는 지역 토박이라는 장점이 있고, 장 후보는 재개발 동의서 작업 당시부터 조합원들과 접촉이 많았던 점, 지역에서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해온 것을 바탕으로 한 두터운 지지층이 강점이었다.
 

호계동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던 또 다른 김모 후보는 정비업체 M사가 밀고 있다는 것이 강점인 반면 여성 후보라는 부분이 약점으로 꼽혔다. 1800명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조합원들과 소주 잔을 기울이며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면 아무래도 남자 조합장이 나을 것이라는 기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1835명의 조합원 중 1023명의 의사가 표현된 투표결과 가장 약세로 평가됐던 여성인 3번 후보가 최다득표자로 나온 것이다. 2위는 장금덕 후보, 3위는 남성 김 후보 순이다.
 
1, 2위 간 득표 차는 불과 16표. 일부 조합원들 입에서 “뭔가 잘못되지 않고서는 절대 이런 (투표)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투표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다. 결국 새 조합장으로 여성인 김씨가 취임을 했고, 투표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던 장씨는 본업인 환경관련 사업으로 복귀를 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지 3개월이 지난 2012년 6월 경 선관위 간사를 맡았던 김모씨가 장씨를 찾아왔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았다. 총회 전날인 4월27일부터 총회 당일 새벽까지 특정 후보를 조합장으로 만들기 위한 사문서 위조 즉, 투표용지에 대한 조작이 있었고 그 자신도 이에 가담했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한 양심고백만이 아니었다. 사건 당일 문서위조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파일을 장금덕 후보에게 주고 간 것이다. 
 
조합장선거 사용될 투표용지 조작
모의 담긴 녹취파일 있어도 불기소
 
“그 때 당선되었어야 할 조합장은 당신이었네. 미안해. 이 문제로 나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감수할게.”

선관위 간사가 남기고 간 파일을 들어 본 장씨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 “2012년 4월27일 녹취 시작합니다”로 시작된 파일에는 “투표용지 꺼내서 100개를 만들고….” “컬러 출력하면 티가 난다” “별로 안 난다” 등등 투표 위조과정이 실감나게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00 것을(으로) 속여야 할 것이 40개, 23개, 17개….”라는 대목에선  기가 막혔다. 
 
목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정비업체인 M사의 윤모 상무와 협력업체의 안모 이사, M사의 직원, 총회대행업체 D사의 임모 대표, 우모 이사가 등장했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녹취한 선관위 간사 김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4월26일 새벽 1시부터 4월27일 오후 6시까지 위조를 모의하고 준비한 6명의 동선이 고스란히 드러난 녹취파일을 통해 16표 차 패배의 원인을 알게 된 장씨는 곧바로 지인들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증거를 모았다. 녹취파일에 나온 조작과정을 염두에 두고 총회 당시 사용된 투표용지를 검수한 것이다. 그리고 검수과정에서 위조된 것으로 보이는 투표용지 130장을 추려냈다. 
 
투표조작으로 
당선된 것 무효 
 
위조에 참여한 간사의 증언, 위조과정이 담긴 녹취파일, 위조된 증거물(투표용지) 등을 챙겨서 조합원 김삼수 외 4명이 1차 고발하고, 이어 장금덕씨가 2차로 고소했다. 그러나 고소장을 접수한 안양 동안경찰서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2013년 10월에 접수한 고소사건을 별다른 이유 없이 해를 넘기더니 2014년 2월에는 담당형사마저 교체했다.
 
다행히 후임 수사관은 나름 열의가 있었다. 고소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주택조합이 보관한 투표용지를 일일이 조사한 다음 위조가 의심되는 투표용지 130장 중 82장을 추려냈다. 그리고 그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4개월 정도 지난 뒤,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나왔다. 82건 중 43건이 위조됐다는 것. 1, 2위의 표차가 16표 차이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위조된 43건의 득표를 힘입은 현 조합장의 당선은 무효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했다. 국과수의 결과는 조합장을 다시 뽑아야 한다는 지역여론 형성의 배경이 됐다. 
 
일부 위조는 
범죄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기안양 동안경찰서가 대표 고소인에게 보낸 사건처리결과 통지문에서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을 밝혀온 것이다. 그 통지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문서 82건의 위조여부에 대하여, 일부 43건은 위조(넘버링 숫자 형태, 인쇄물 색재류, 선관위 간사의 인장과 다름)된 것으로 감정결과를 회신 받았고, 나머지 39건은 위조사실이 없는 것으로 회신 받았음.’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후 경찰 측 의견 부분이 문제가 됐다.
 
‘피의자들(고소된 6명)이 전체 82건을 위조했다는 범죄혐의를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피의자들에 대하여 각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기록을 인계하였음.’말인즉, 고소인들은 82건이 위조됐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43건만 위조됐고, 위조되지 않은 것도 39건이나 있으므로 ‘82건이 위조됐다’는 범죄혐의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폭력배에게 82대 얻어맞았다고 주장하지만 멍 자국이 43개 밖에 없으니 고소인은 폭행당한 것이 아니다는 궤변과 똑같았다. 통지서를 읽어 본 장씨 일행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초 고소의 이유가 ‘82건이 위조됐다’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문서위조가 모의됐고, 실제로 행해졌으며, 조작과정이 담긴 녹취파일과 조작행위에 가담했던 사람의 양심선언이 있는 만큼 사문서를 위조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한 사람들을 처벌해 달라고 고소한 것이다. 82건 중 몇 퍼센트가 조작됐는지를 따져달라는 게 아닌 것이다. 
 
원래 사문서 위조는 한 건만 확인되어도 큰 문제가 되는 사안이다.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에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중범죄다. 게다가 위조된 문서를 실제로 활용했다면 가중 처벌을 받는다. 따라서 위조가 43건이나 행해졌다면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동안경찰서 수사과가 ‘82건이 전부 다 위조로 판명된 것이 아니다’는 핑계로 ‘혐의 없다’고 판단한 것은 문서를 위조한 일당의 손에 면죄부를 쥐어 준 것과 다름없었다.
 
당연히 경찰조직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동기와 정황만이 아니라 증인과 증거까지 다 갖다 준 사건까지도 불기소를 내리는 경찰이라면 다른 사건은 말할 것도 없다는 비난이 잇따른 것이다. 사건의 향방을 주목해 온 조합원들 입에서 “엄정한 수사? 지나가던 소가 웃겠다”는 비아냥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조합원들은 “일개 담당형사가 혼자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면서 결재선상에 있는 수사과장과 경찰서장의 압력행사를 의심하고 있다. 고소를 당한 M사와 D사 경영진들이 막후에서 경찰 고위급들에게 로비를 벌인 것이 확실하다는 시각이다. 
 

국과수 감정서 무용지물
경찰 중립성 훼손 자충수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을 찾아가 만났지만 그는 “수사과장에게 이야기하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대신 사건과 관련된 수사과 한 간부가 “사문서가 위조됐다는 (국과수)결과가 나왔으면 누가 위조했는지를 수사해야지, 그것을 (모두 위조된 것이 아니므로)혐의 없다고 해서는 안 됐다”면서 수사의 미진함을 인정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한 경찰과는 달리 문서위조를 진두지휘한 정비업체 M사의 입장은 달랐다. M사의 윤모 대표는 “이미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받은 사건”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취재를 회피한 것이다. 서류조작이 드러날 경우 호원지구 정비용역계약의 자동 파기는 물론이고 정비업체 면허 자체가 박탈될 수 있기 때문에 파장의 확산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무능한 거야?
부패한 거야?
 
그러나 정비업체 대표의 바람과는 달리 이 사건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려 더 커지는 모양새다. ‘경찰 조직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판단한 조합원들이 검찰 측에 전면 재수사를 탄원했고, 이를 검찰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승리를 빼앗긴 무관의 조합장과 조합원, 재수사를 회피하고 싶은 정비업체, 민중의 지팡이에서 견찰(犬察)로 추락한 경찰조직. 똑같은 밤을 보내도 맞이할 여명은 다를 것이 분명해 보인다.  
 
<manchoice@ilyosisa.co.kr>
 

<미니인터뷰> 경찰수사 지적한 장금덕씨
“조합장은 조합원 위해 일해야”
 
“새 조합장이 취임하자마자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비업체 간에 생긴 법적분쟁비용 30억원을 조합에서 보존해 준 일입니다. 그게 어떻게 조합 일입니까. 그런 일에 조합 돈을 사용한 것 자체가 배임이요, 횡령행위 아닌가요?”
 
안양호원지구 주택조합에서 벌어진 사문서 위조 사건에 대한 경찰의 황당 수사를 지적한 장금덕(54)씨의 일갈은 조합 집행부가 조합원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누가 조합장이 되든 모든 판단과 집행이 조합원의 이해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정비업체 M사와 D사의 분쟁비용 30억원을 시공사로부터 차입한 조합의 돈으로 지출해서는 안 됐다는 지적이다. 
 
“후원사 위해 조합 이익 훼손하면 현 조합장도 공범”
 
“시공사로부터 받은 돈은 차입금입니다. 나중에 조합원들이 다 분담해야 할 돈이죠. 그래서 책임감 있게 집행해야 합니다. 조합장은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일하라고 뽑는 것이지 자기 좋은 사람 밀어주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잖습니까?”
 
더구나 집행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합원의 경제적 부담을 주는 사안은 총회를 거쳐서 결정하도록 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를 위반해서 자금을 집행했다는 것. 그러면서 조합이 시공사로부터 차입한 120억의 사용처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불과 1년 만에 120억 차입금 중 110억이 사용되고 지금은 불과 10억 남짓 남았다고 합니다. 조합 돈을 그렇게 운용하면 안 되죠. 사업 후 정산할 수 있는 항목까지 집행해서야 되겠습니까. 자기 돈 같으면 그렇게 쓸까요?”
 
현 집행부의 반성과 태도 개선을 요구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조합원이라는 것이다. 사문서를 위조해서라도 원하는 조합장을 뽑으려 했던 업체들 장단에 놀아난다면 현 조합장도 공범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제대로 된 집행부를 구축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재개발 사업을 재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1800여 조합원 모두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저도 제 역할을 할 것이고요.”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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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