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호원재개발조합 비리 의혹 1탄> 사문서위조 사건 전말

너그러운 경찰…증거·증인 있어도 무혐의?

[일요시사 경제2팀] 이창근 기자 =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아닙니까!” 안양시 호원지구재개발조합에서 벌어진 사문서 위조 사건에 대한 동안경찰서의 수사결과를 지켜본 지역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조합장선거에 사용될 투표용지 조작 사전모의와 준비과정이 담긴 녹취파일이 존재하고, 행사된 투표용지가 위조되었음을 확인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서는 물론 위조행위에 가담한 일원의 양심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양시 동안경찰서는 ‘피고소인의 범죄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면서 불기소(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1동 주변 5만6000평의 호원지구는 2006년부터 최근까지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이다. 조합원만 1800명이 넘고, 재개발 후 입주세대가 4000세대에 육박할 정도로 대규모의 재개발 사업지다. 전체 사업비가 최소 7000억 규모다. 조합설립 인가는 2012년에 났고 현재는 사업시행 인가를 앞둔 상태다. 
 
선관위 간사 
양심선언에 들통
 
문제가 된 사건의 발단은 2012년 4월28일로 예정된 조합원 총회 즈음에 발생했다. 총회의 핵심이슈는 조합장, 감사, 이사를 뽑기 위한 임원 선출에 관한 건. 조합장 후보로는 장금덕씨를 포함한 3명이 나섰다. 세 후보는 나름 치열한 득표전을 돌입했다. 총회 당일 직접 투표하겠다는 조합원과 총회에는 참석할 수 없지만 선관위에서 발행한 투표용지에 기표하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겠다는 조합원을 상대로 유세를 펼친 것이다.
 
세 후보 중 그래도 당선이 유력해 보였던 후보는 1번 김 모 후보와 2번 장금덕 후보. 임대업을 하고 있던 김 후보는 지역 토박이라는 장점이 있고, 장 후보는 재개발 동의서 작업 당시부터 조합원들과 접촉이 많았던 점, 지역에서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해온 것을 바탕으로 한 두터운 지지층이 강점이었다.
 

호계동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던 또 다른 김모 후보는 정비업체 M사가 밀고 있다는 것이 강점인 반면 여성 후보라는 부분이 약점으로 꼽혔다. 1800명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조합원들과 소주 잔을 기울이며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면 아무래도 남자 조합장이 나을 것이라는 기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1835명의 조합원 중 1023명의 의사가 표현된 투표결과 가장 약세로 평가됐던 여성인 3번 후보가 최다득표자로 나온 것이다. 2위는 장금덕 후보, 3위는 남성 김 후보 순이다.
 
1, 2위 간 득표 차는 불과 16표. 일부 조합원들 입에서 “뭔가 잘못되지 않고서는 절대 이런 (투표)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투표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다. 결국 새 조합장으로 여성인 김씨가 취임을 했고, 투표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던 장씨는 본업인 환경관련 사업으로 복귀를 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지 3개월이 지난 2012년 6월 경 선관위 간사를 맡았던 김모씨가 장씨를 찾아왔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았다. 총회 전날인 4월27일부터 총회 당일 새벽까지 특정 후보를 조합장으로 만들기 위한 사문서 위조 즉, 투표용지에 대한 조작이 있었고 그 자신도 이에 가담했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한 양심고백만이 아니었다. 사건 당일 문서위조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파일을 장금덕 후보에게 주고 간 것이다. 
 
조합장선거 사용될 투표용지 조작
모의 담긴 녹취파일 있어도 불기소
 
“그 때 당선되었어야 할 조합장은 당신이었네. 미안해. 이 문제로 나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감수할게.”

선관위 간사가 남기고 간 파일을 들어 본 장씨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 “2012년 4월27일 녹취 시작합니다”로 시작된 파일에는 “투표용지 꺼내서 100개를 만들고….” “컬러 출력하면 티가 난다” “별로 안 난다” 등등 투표 위조과정이 실감나게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00 것을(으로) 속여야 할 것이 40개, 23개, 17개….”라는 대목에선  기가 막혔다. 
 
목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정비업체인 M사의 윤모 상무와 협력업체의 안모 이사, M사의 직원, 총회대행업체 D사의 임모 대표, 우모 이사가 등장했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녹취한 선관위 간사 김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4월26일 새벽 1시부터 4월27일 오후 6시까지 위조를 모의하고 준비한 6명의 동선이 고스란히 드러난 녹취파일을 통해 16표 차 패배의 원인을 알게 된 장씨는 곧바로 지인들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증거를 모았다. 녹취파일에 나온 조작과정을 염두에 두고 총회 당시 사용된 투표용지를 검수한 것이다. 그리고 검수과정에서 위조된 것으로 보이는 투표용지 130장을 추려냈다. 
 
투표조작으로 
당선된 것 무효 
 
위조에 참여한 간사의 증언, 위조과정이 담긴 녹취파일, 위조된 증거물(투표용지) 등을 챙겨서 조합원 김삼수 외 4명이 1차 고발하고, 이어 장금덕씨가 2차로 고소했다. 그러나 고소장을 접수한 안양 동안경찰서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2013년 10월에 접수한 고소사건을 별다른 이유 없이 해를 넘기더니 2014년 2월에는 담당형사마저 교체했다.
 
다행히 후임 수사관은 나름 열의가 있었다. 고소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주택조합이 보관한 투표용지를 일일이 조사한 다음 위조가 의심되는 투표용지 130장 중 82장을 추려냈다. 그리고 그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4개월 정도 지난 뒤,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나왔다. 82건 중 43건이 위조됐다는 것. 1, 2위의 표차가 16표 차이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위조된 43건의 득표를 힘입은 현 조합장의 당선은 무효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했다. 국과수의 결과는 조합장을 다시 뽑아야 한다는 지역여론 형성의 배경이 됐다. 
 
일부 위조는 
범죄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기안양 동안경찰서가 대표 고소인에게 보낸 사건처리결과 통지문에서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을 밝혀온 것이다. 그 통지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문서 82건의 위조여부에 대하여, 일부 43건은 위조(넘버링 숫자 형태, 인쇄물 색재류, 선관위 간사의 인장과 다름)된 것으로 감정결과를 회신 받았고, 나머지 39건은 위조사실이 없는 것으로 회신 받았음.’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후 경찰 측 의견 부분이 문제가 됐다.
 
‘피의자들(고소된 6명)이 전체 82건을 위조했다는 범죄혐의를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피의자들에 대하여 각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기록을 인계하였음.’말인즉, 고소인들은 82건이 위조됐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43건만 위조됐고, 위조되지 않은 것도 39건이나 있으므로 ‘82건이 위조됐다’는 범죄혐의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폭력배에게 82대 얻어맞았다고 주장하지만 멍 자국이 43개 밖에 없으니 고소인은 폭행당한 것이 아니다는 궤변과 똑같았다. 통지서를 읽어 본 장씨 일행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초 고소의 이유가 ‘82건이 위조됐다’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문서위조가 모의됐고, 실제로 행해졌으며, 조작과정이 담긴 녹취파일과 조작행위에 가담했던 사람의 양심선언이 있는 만큼 사문서를 위조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한 사람들을 처벌해 달라고 고소한 것이다. 82건 중 몇 퍼센트가 조작됐는지를 따져달라는 게 아닌 것이다. 
 
원래 사문서 위조는 한 건만 확인되어도 큰 문제가 되는 사안이다.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에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중범죄다. 게다가 위조된 문서를 실제로 활용했다면 가중 처벌을 받는다. 따라서 위조가 43건이나 행해졌다면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동안경찰서 수사과가 ‘82건이 전부 다 위조로 판명된 것이 아니다’는 핑계로 ‘혐의 없다’고 판단한 것은 문서를 위조한 일당의 손에 면죄부를 쥐어 준 것과 다름없었다.
 
당연히 경찰조직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동기와 정황만이 아니라 증인과 증거까지 다 갖다 준 사건까지도 불기소를 내리는 경찰이라면 다른 사건은 말할 것도 없다는 비난이 잇따른 것이다. 사건의 향방을 주목해 온 조합원들 입에서 “엄정한 수사? 지나가던 소가 웃겠다”는 비아냥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조합원들은 “일개 담당형사가 혼자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면서 결재선상에 있는 수사과장과 경찰서장의 압력행사를 의심하고 있다. 고소를 당한 M사와 D사 경영진들이 막후에서 경찰 고위급들에게 로비를 벌인 것이 확실하다는 시각이다. 
 

국과수 감정서 무용지물
경찰 중립성 훼손 자충수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을 찾아가 만났지만 그는 “수사과장에게 이야기하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대신 사건과 관련된 수사과 한 간부가 “사문서가 위조됐다는 (국과수)결과가 나왔으면 누가 위조했는지를 수사해야지, 그것을 (모두 위조된 것이 아니므로)혐의 없다고 해서는 안 됐다”면서 수사의 미진함을 인정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한 경찰과는 달리 문서위조를 진두지휘한 정비업체 M사의 입장은 달랐다. M사의 윤모 대표는 “이미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받은 사건”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취재를 회피한 것이다. 서류조작이 드러날 경우 호원지구 정비용역계약의 자동 파기는 물론이고 정비업체 면허 자체가 박탈될 수 있기 때문에 파장의 확산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무능한 거야?
부패한 거야?
 
그러나 정비업체 대표의 바람과는 달리 이 사건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려 더 커지는 모양새다. ‘경찰 조직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판단한 조합원들이 검찰 측에 전면 재수사를 탄원했고, 이를 검찰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승리를 빼앗긴 무관의 조합장과 조합원, 재수사를 회피하고 싶은 정비업체, 민중의 지팡이에서 견찰(犬察)로 추락한 경찰조직. 똑같은 밤을 보내도 맞이할 여명은 다를 것이 분명해 보인다.  
 
<manchoice@ilyosisa.co.kr>
 

<미니인터뷰> 경찰수사 지적한 장금덕씨
“조합장은 조합원 위해 일해야”
 
“새 조합장이 취임하자마자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비업체 간에 생긴 법적분쟁비용 30억원을 조합에서 보존해 준 일입니다. 그게 어떻게 조합 일입니까. 그런 일에 조합 돈을 사용한 것 자체가 배임이요, 횡령행위 아닌가요?”
 
안양호원지구 주택조합에서 벌어진 사문서 위조 사건에 대한 경찰의 황당 수사를 지적한 장금덕(54)씨의 일갈은 조합 집행부가 조합원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누가 조합장이 되든 모든 판단과 집행이 조합원의 이해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정비업체 M사와 D사의 분쟁비용 30억원을 시공사로부터 차입한 조합의 돈으로 지출해서는 안 됐다는 지적이다. 
 
“후원사 위해 조합 이익 훼손하면 현 조합장도 공범”
 
“시공사로부터 받은 돈은 차입금입니다. 나중에 조합원들이 다 분담해야 할 돈이죠. 그래서 책임감 있게 집행해야 합니다. 조합장은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일하라고 뽑는 것이지 자기 좋은 사람 밀어주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잖습니까?”
 
더구나 집행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합원의 경제적 부담을 주는 사안은 총회를 거쳐서 결정하도록 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를 위반해서 자금을 집행했다는 것. 그러면서 조합이 시공사로부터 차입한 120억의 사용처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불과 1년 만에 120억 차입금 중 110억이 사용되고 지금은 불과 10억 남짓 남았다고 합니다. 조합 돈을 그렇게 운용하면 안 되죠. 사업 후 정산할 수 있는 항목까지 집행해서야 되겠습니까. 자기 돈 같으면 그렇게 쓸까요?”
 
현 집행부의 반성과 태도 개선을 요구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조합원이라는 것이다. 사문서를 위조해서라도 원하는 조합장을 뽑으려 했던 업체들 장단에 놀아난다면 현 조합장도 공범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제대로 된 집행부를 구축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재개발 사업을 재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1800여 조합원 모두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저도 제 역할을 할 것이고요.”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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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