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나몰라’ 배만 불리는 대학들 천태만상

학생은 배 쫄쫄 학교는 배 불뚝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최근 4년간 전국 사립대 적립금 규모가 1조원 증가했다. 문제는 많은 대학들이 교육여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지나치게 많은 적립금을 쌓아둔다는 것이다. 학문을 추구해야 할 대학이 돈에 눈이 멀어 점차 기업화 되고 있는 불편한 현실이다.

 
사립대의 과도한 적립금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문제로 부각된 지 오래지만 당국은 이를 규제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대안 마련은커녕 수수방관하고 있다. 2013년 기준 4년제 사립대 156곳의 적립금 총액은 9조979억원을 넘어섰다. 머지않아 10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 기업?
돈독 올랐다
 
최근 대학교육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립대 적립금은 갈수록 늘어 4년 만에 1조1090억원 증가했다. 이월·적립금은 다음해로 이월시키는 ‘이월금’과 특정사업 등을 위해 적립하는 ‘적립금’을 말한다. 대학 운영에 있어 이월금 발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월금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것은 예산편성이 비합리적이거나 사업 예측에 오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적립금 또한 대학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일정 정도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교육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과도하게 적립금을 축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지난달 29일 대학교육연구소가 2013년 기준 156개 사립대와 154개 학교법인의 교비회계와 법인일반회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사립대 적립금은 ▲7조797억원(2009년) ▲7조6677억원(2010년) ▲7조9463억원(2011년) ▲8조153억원(2012년) ▲8조1888억원(2013년)으로 매년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학교법인 적립금은 392억원 늘어 2013년 8816억원으로 조사됐다.
 
적립금은 적립 목적에 따라 연구·건축·장학·퇴직·기타 적립금으로 구분된다. 2013년 적립금을 내역별로 보면 대학은 건축적립금이 46.0%(3조 769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기타적립금 27.0%(2조 2117억원), 장학적립금 17.0%(1조 3934억원), 연구적립금 9.1%(7446억원), 퇴직적립금 0.8%(694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법인은 기타적립금이 87.8%(7740억원)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건축적립금 9.2%(813억원) 순이었다.
 
 
2009년 대비 2013년 적립금 증감 현황을 보면 대학의 경우 증가한 곳이 93교(61.6%)로 3곳 중 2곳에 달했다. 감소한 대학이 48교(31.8%), 동결 대학이 10곳(6.6%)으로 나타났다. 법인의 경우는 절반(75개 법인, 50.3%) 가량 법인에서 동결됐고 43개 법인(28.9%)에서 증가, 31개 법인(20.8%)에서 감소했다.
 
사립대 적립금 1조 돌파…복지는 ‘낙제점’
교육 여건 개선보다 몸집불리기에 눈멀어 
 
2009년 대비 2013년 대학별 적립금 증액 현황을 보면, 가장 많이 증가한 대학은 홍익대로 2009년 4858억원에서 2013년 6642억원으로 1784억원 늘었다. 이어 이화여대 1588억원, 성균관대 1291억원, 연세대 1205억원, 수원대 792억원, 고려대 791억원, 청주대 742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2013년 사립대가 보유한 총 이월·적립금 현황을 보면, 이화여대가 8447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연세대 6917억원, 홍익대 6687억원, 수원대 4582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상위 10개 대학이 보유한 적립금은 총 4조3055억원으로 전체 사립대가 보유한 적립금의 41.2%에 달했다.
 

이처럼 많은 사립대들이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놓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지난 6일 ‘2015 대학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소속 관계자들은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의 부당한 적립금 쌓기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자기 배만 불리는 대학을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날렸다.

쌓여 가는 곳간
비어 가는 지갑
 
연석회의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법원이 수원대 등록금 환불 판결을 내린 것을 환영한다”며 “이번 판결을 통해 다시금 자신들의 존재 의의와 역할을 자각하고 부당한 적립금 축적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정부 역시 제도 마련을 통해 대학의 적립금 규제에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연석회의 참여 단체 중 부당 적립금 쌓기 중단을 촉구하는 연세대, 이화여대 등 10개 대학 총학생회와 반값등록금 국민운동본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수원대에 대한 판결을 대학의 공공성과 학생의 교육권을 인정한 것이라 해석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학생들은 “향후 연석회의를 진행해 적립금이 많은 대학들이 모여 집단 소송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원대 등록금 환불 파문이 일부 대학이 아니라 전국 사립대로 점차 확산될 조짐이다.
 
앞서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부장판사 송경근)는 채모씨 등 수원대 학생 50명이 학교법인, 이사장, 총장을 상대로 낸 등록금 환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수원대가 원고 중 2013년 이전에 입학한 46명에게 각각 30만∼90만원씩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매년 느는 ‘총알’…어디에 쓰려고?
총액 1위=이화여대·증액 1위=홍익대
 
재판부는 수원대가 2010∼2012년 착공이 불가능한 건물의 신축공사비를 예산으로 잡는 등 세출 예산을 과다하게 편성해 적립금과 이월금을 부당하게 운영한 점을 지적했다. 수원대는 건물 공사비에 사용할 돈이라는 명목 하에 907억원을 적립했다. 적립금 사용계획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은 수원대의 적립금은 2013년 2월 기준으로 무려 3244억원에 이른다. 교육부는 2011년부터 등록금으로 적립금을 쌓지 못하게 막았지만 건축비만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곳간에 쌓아둔 적립금에 비해 학생 투자는 형편없었다. 등록금 대비 실험실습비와 학생지원비는 각각 0.88%와 0.25%에 불과했다. 수도권 4년제 대학 평균이 2%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학생복지에 인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2010∼2011년에는 기준상 100%를 넘어야 하는 교육비 환원율이 70%에 그쳤다. 2011∼2012년 전임교원확보율도 기준 미달이다.
 
 
재판부는 “수원대의 시설·설비 등이 현저히 미비할 뿐 아니라 원고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할 당시의 기대와 예상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어서 학생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고 할 만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학의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등록금 일부를 위자료로 인정했다”며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번 판결로 인해 교육 투자에 인색한 사립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유사 소송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수원대의 바통을 이어 받은 건 청주대다. 청주대는 3000억원대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형편없는 교육여건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청주대 총학생회는 청주대를 상대로 등록금 반환 소송을 내기로 했다. 여기에 청주대가 2010∼2013년 동안 박물관에 전시할 유물 10점을 구입하는 데 총 13억4000만원의 교비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
제2의 수원대
 
청주대는 2010년 고려시대 청자흑백상감국화문병과 청자음각모란문주자를 구입하는데 총 2억9000만원을 들였다. 또 2011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유물을 구입하면서 2억5000만원을 사용한 것을 비롯해 2012년 4억9000만원, 2013년 3억1000만원을 투자했다. 청주대는 자체 감정위원회를 열거나 공고를 통해 적법한 절차를 밟아 유물을 매입,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청주대가 적립금을 활용하는 데 있어 우선순위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지난해부터는 청주대가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선정되면서 유물 구입 예산이 따로 책정되지는 않았다.
 
청주대 유물 매입 사실이 알려지자 청주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통해 “대학이 등록금 13억원으로 고가의 유물을 사들인 경위를 밝히기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자”고 학교 측에 요구했다. 총학생회는 “황신모(현 총장) 교수가 보직교수와 부총장으로 일할 당시 유물을 사들이면서 펑펑 쓴 13억원은 학생 등록금을 2%가량 인하할 수 있는 금액”이라며 “유물구입 당시 학교 측이 감정위원회를 열었다고 하지만 유물감정과는 관련없는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공신력을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교의 1년 예산편성을 책임지는 등록금 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 황 교수는 교육과는 무관한 김준철 박사 우상화 작업(150억원), 체육관 건립(500억원) 등을 추진한 인물”이라며 “황 교수의 문제점이 속속 밝혀지는 만큼 총장직에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유물 구입 논란을 파헤칠 진상조사위원회를 가동해 감정위원회의 자격, 구입 근거 등을 파헤쳐야 한다”며 “교육목적과는 거리가 먼 유물구입에 등록금이 사용됐으니 유물구입비(13억원)는 즉각 학생들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주대는 김윤배(현 학교법인 청석학원 이사) 전 총장 재임기간인 2010년 10월∼2013년 10월에 고려청자, 조선백자, 조선전기 금속활자본 등 13억4000만원 상당의 유물 10점을 외부에서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지난 2009년 12월 사립대들이 과도하게 적립금을 쌓고 있다는 논란에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교비회계를 등록금회계와 기금회계로 구분하고 등록금회계에서는 건물의 감가상각비 상당액만 건축적립금으로 적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도 대학 적립금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교육부는 2013년 목적이 불분명한 ‘기타적립금(전체 적립금 규모의 30%)’을 ‘특정적립금’으로 바꾸고 학생취업 장려기금 등으로 쓰게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2013년 말 국회에 제출했지만 1년이 넘도록 국회에 발목을 잡힌 채 표류하고 있다. 기타적립금에 목적만 추가하면 자유롭게 적립할 수 있어 과도한 적립금 문제 개선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국 태도 어정쩡
팔짱 끼고 불구경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서울 및 수도권에 있는 대규모 대학들과 일부 지방대(수원대, 청주대 등) 적립금이 특히 높았다. 등록금이 동결되다 보니 대학들이 등록금에서 추가로 적립하기보다는 적립기금에서 나오는 이자 등을 다시 적립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 연구원은 “기존에 적립금을 과도하게 쌓은 대학들의 경우 교육부가 행정조치 등을 통해 교육여건 개선과 등록금 인하 등에 우선 사용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등록금회계에서 건물의 감가상각비 상당액을 건축적립금으로 적립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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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