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하면서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간 배우 류현경. 매 출연작마다 톡톡 튀는 연기로 극의 재미를 더한 그가 영화 <방자전>에서는 순수와 도발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인다. 지난 5월31일 서울 여의도의 카페에서 만난 그는 “어리바리하고 선머슴 같은 모습에서 시련을 겪은 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향단의 모습을 기대해 달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시종일관 조리 있는 말투와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순수’에서 ‘도발’까지 향단 역…“가슴에 와 닿아”
팔색조 연기 변신…오랜 연기생활로 탄탄한 내공
류현경은 고전 <춘향전>을 새롭게 해석한 <방자전>에서 향단을 연기한다. 여배우들의 ‘로망’인 춘향을 선택하지 않고 향단을 선택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너무 좋았어요. 인간을 담아 내는 이야기가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 사실 두 배역 모두 탐났지만 향단이가 더 가슴에 와 닿았어요. <방자전>은 많은 여배우들이 하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향단,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
향단이는 어느 날 몽룡과 함께 청풍각을 찾은 하인 방자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방자와 함께 춘향과 몽룡의 만남을 이어주면서 춘향을 향한, 춘향을 위한 방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조차 자신을 위한 것이라 오해를 한다. 결국 향단이는 큰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 방자와 춘향 사이를 모두 알고 있다는 이유로 청풍각에서 쫓겨난다. 영화는 춘향과 방자, 이몽룡, 변학도, 향단의 기이한 5각 관계가 펼쳐진다.
“향단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여자예요. 절대 춘향이를 질투하지 않아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캐릭터죠. 때문에 자신을 좋아했을 것이라는 착각이 방자에 대한 배신감을 크게 만들죠.”
오래 전부터 네티즌 사이에선 춘향 조여정과 향단 류현경의 노출이 화제가 됐다. 향단은 방자에 대한 배신감과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몽룡과 정사를 나눈다. 전라에 가까운 모습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개봉 이후 더 큰 화제를 낳을 듯하다. 그러나 배우 이전에 여자로서 부담이 될 장면이다.
“제가 아닌 향단이라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니 어려움은 없었어요. 야하지만 아름다운 장면이라 시나리오를 읽는 동안 가슴이 떨렸어요. ‘글로 이리 아름답게 묘사한다면 카메라로는 더 아름답게 담을 수 있겠구나’하는 믿음이 컸죠. 촬영할 때도 다들 특별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류승범 선배님과 호흡이 잘 맞아 어렵진 않았어요.”
데뷔 15년차, 베테랑
류현경의 올해 나이는 28살. 13살 때 연기생활을 시작, 데뷔 15년 차에 접어든다. 96년 SBS 설날특집극 <곰탕>에서 톱스타 김혜수의 아역으로 나와 깊은 인상을 남기며 첫 활동을 시작한 류현경은 이후 드라마 <학교2> <무인시대> <단팥빵> <떼루와>, 영화 <깊은 슬픔> <태양은 없다> <마요네즈> <비천무> <일단뛰어> <조폭마누라2> <동해물과 백두산이> <신기전> <물 좀 주소>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가 이처럼 많은 작품에 출연한 것은 연기의 매력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요. 너무 뿌듯해요. 연기란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제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을 체험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연기자의 길을 선택했지만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웃음)
류현경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팔색조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무인시대>에서는 화려한 외모와 요설로 주위 남자들을 파멸로 몰고가는 악녀 캐릭터를, <단팥빵>에서는 덜렁대고 푼수끼 넘치는 오버의 여왕 캐릭터를 선보였으며, 영화 <조폭 마누라2>에서는 왈가닥 여고생으로 나와 신은경을 내내 구박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눈총을 받았고,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도 대책 없이 사고만 치는 경찰서장 딸로 나왔다. <신기전>에서도 인상깊은 연기를, <물 좀 주소>에서는 싱글맘 연기를 펼치는 등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20대의 연기자라면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기가 다소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는 오랜 연기생활로 탄탄하게 쌓여진 내공으로 무난하게 이를 극복하고 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열심히 해야죠. 때로는 힘들 때도 있지만 제 연기를 보고 사람들이 웃거나 울 때 연기자로서 많은 보람을 느껴요.”
아역 때부터 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다져온 연기력 때문인지 류현경은 항상 드라마나 영화에 조연급 캐스팅 1순위에 올라있다. 캐스팅 1순위에 올라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혹시나 조연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들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들거나 하지는 않아요. 지금도 배우가 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뭐든지 때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는 빛 볼 날이 오겠죠. 30살이면 주연을 하지 않을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