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2)변인호 전 J&B 대표

'수천억 사기범' 빼돌린 돈 어디로?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22화는 94억3900만원을 체납한 변인호 전 J&B 대표다.

"내 할아버지는 2공 때 외무장관을 지냈다. 어머니 집안은 삼성·현대도 좌우하는 사채시장의 큰손이다." IMF 직전인 1997년 말. 멀쑥한 얼굴의 한 사내가 검찰에 붙잡혔다. 그는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며 이곳저곳에 돈을 빌리러 다녔다. '증권가 큰손'으로 알려진 그의 실체는 사기꾼이었다. 할아버지 얘기도, 어머니 집안 얘기도 모두 거짓이었다.

증권가 큰손

변인호씨는 1990년대 초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유통업으로 돈을 벌었다. 변씨는 미국으로 컴퓨터 용품을 수출하는 소위 오퍼상이었다. 오퍼상은 해외에 있는 수입업자를 위해 국내에서 필요한 서류(물품매도확약서)를 발행하는 업무를 한다. 변씨가 다룬 제품은 반도체였다. 반도체 무역으로 변씨가 만진 돈은 알려진 것만 100억원이 넘었다.

변씨가 대표로 있던 회사는 J&B다. J&B는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자 설립 3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1996년 누적 손해액은 120억원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변씨는 한보그룹 어음에 배서(양도서명)했다가 '한보 사태'가 터지면서 120억원의 돈을 추가로 날렸다. 어음부도 후 변씨 앞으로 달린 은행 채무는 530억원까지 늘었다.

이 무렵 변씨는 불법에 손을 뻗었다. 오퍼상으로 세관 업무의 허점을 알고 있던 그는 '무역 사기'를 구상했다. 수출 장부를 허위로 작성해 돈을 빌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은행 채무를 다시 은행 빚으로 갚겠다는 일종의 '돌려막기'였다.


시중 몇몇 은행이 타깃으로 선정됐다. 우선 고가의 컴퓨터 부품을 거래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대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거래 내역은 날조했다. 실제 수출입하는 물품은 폐반도체와 공테이프 등 상품으로서의 효용이 없거나 부가가치가 낮은 것들이었다.

변씨의 두 동생인 성호씨와 병호씨는 각각 범행에 가담했다. 이들은 미국과 홍콩에 델콤반도체 등 5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변씨 삼형제가 악용한 법은 '수출입대금 선수금제'다. 흔히 '네고'라고 불리는데 수출업자가 신용장 등 선적서류를 은행에 제시하면 이를 근거로 수권 은행에서 미리 대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변씨는 델콤반도체 등 유령회사를 상대로 수출 규모를 부풀려 은행의 의심을 지웠다.

8개 은행 국내외 지점에서 수출입 결제가 이뤄졌다. 204차례에 걸쳐 2367억원이 변씨의 수중으로 흘러갔다. 이 과정에서 변씨는 일부 물품대금을 갚고, 다시 빼돌리는 수법으로 돈을 착복했다. 금융사기로 변씨가 올린 이득은 265억원으로 파악됐다.

또 변씨는 미국에 파견된 대기업 상사 2곳에 접근해 사기행각을 벌였다. 물품구입대금을 빌려주면 수출이 끝난 후 대금과 함께 고액의 수수료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변씨는 빌린 돈 110억원을 그대로 가로챘다. 수출보험공사도 5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서울시 15억8400만원 국세청 78억5500만원
3700억대 금융사기 변호사·경찰 매수해 도피

변씨 삼형제가 무역사기를 통해 빼돌린 물품구입대금은 425억원으로 확인됐다.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어느 누구도 가짜 컨테이너를 열어보지 않았다. 변씨는 빌린 돈으로 최고급 승용차를 굴렸다. 서류가방엔 항상 300억원대 주식과 증서를 넣고 다녔다. 지갑엔 30~40억의 채권을 넣고 다녔다. 이들의 범행은 1996년 1월부터 1997년 6월까지 계속됐다.

같은 기간 변씨는 어음사기도 벌였다. 자금난에 빠진 중견기업 2곳과 대학에 약속어음을 할인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960억원어치의 어음과 당좌수표를 받았다. 이 가운데 628억원을 임의로 빼돌렸다. 또 가짜 공시한 기업공개매수(레이디가구) 투자금 명목으로 대기업 상사로부터 332억원을 가로챘다. 같은 수법으로 변씨가 융통한 돈은 1385억원에 이르렀다. 변제한 돈은 347억원에 불과했다.


변씨의 범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변씨는 은행과 기업에서 차입한 돈을 (주)중원이란 회사를 인수하는데 썼고, 이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감행했다. 1996년 10월부터 1997년 7월까지 작전세력을 동원해 대원전선, 레이디가구, (주)중원의 주식시세를 조종했다. 은행 펀드매니저, 증권사 간부, 투자자문사 직원 등 7명이 공모했다. 변씨는 이들에게 사례금 명목으로 18억8000만원을 전달했다.

1997년 4월 중원 주식 37만주를 매입한 변씨는 중원이 일본 유명 전자회사 A사에 인수된다는 허위정보를 흘려 주가를 띄웠다. 변씨는 고가에 주식을 매도했다. 또 곧장 중원의 부도설을 유포해 주가가 떨어지자 싼값에 주식을 대량(48만주) 매집했다. 회사경영권을 장악한 변씨는 그해 8월 레이디가구 인수전에 뛰어들어 948명의 개인 투자자로부터 380억원 상당을 모금했다.

그러나 중원의 레이디가구 공개매수는 실패로 끝났다. 투자자 피해액은 300억원이 넘었다. 반면 변씨는 주가조작으로 71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지방종금사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자금융통이 어려워지자 직접 금융사를 사들여 피해액을 복구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

하지만 그해 11월 변씨는 주가조작과 어음사기 사건에 연루돼 구속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변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1998년 9월 변씨는 구속집행정지를 받기 위해 2억원을 주고 하모 변호사를 선임하는 한편 서울구치소 의무관 이모씨, 교위 안모씨, 의사 이모씨를 차례로 매수했다. 변씨는 같은 해 12월 고혈압 등 지병을 이유로 감옥에서 빠져 나와 병원에 입원했다.

변씨는 다시 한 달도 못가 병원 밖으로 도주했다. 국내에서 5개월간 은둔생활을 하던 변씨는 여행사 대표 김모씨로부터 위조여권을 받아 1999년 6월 중국으로 도피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김모 경사는 1000만원을 받고 변씨에게 추적팀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관련 조력자는 모두 사법처리 됐다.

그러나 변씨는 건재함을 과시했다. 중국 선양에서 머물면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그런데도 우리 사법당국은 변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변씨를 잡은 건 중국 공안당국이다. 2005년 변씨는 중국에서 별건의 사기 혐의로 체포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우리 법무부는 중국에 변씨의 송환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변씨는 2013년 형의 시효가 임박함에 따라 잠시 국내로 송환됐다가 다시 중국으로 보내졌다. 변씨는 2017년에야 국내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를 기다리는 건 15년의 잔여형기와 거액의 체납세금이다.

중국으로 도주

변씨는 1990년 3월부터 주민세 등 8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거둘 체납액은 15억8400만원이다. 변씨는 2001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10건의 세금도 체납했다. 국세청이 징수할 세금은 44억3500만원이다. 변씨가 대표로 있던 (주)중원은 2003년부터 법인세 등 9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된 국세는 34억2000만원이다.

변씨 앞으로 과세된 세금의 합은 94억3900만원이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변씨에게 체납 세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변씨가 해외로 빼돌린 돈을 확보할 수 없고, 추적할 동력도 없기 때문이다. 변씨의 최근 주소지를 추적한 결과 그의 주민등록은 말소된 상태로 확인된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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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