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2)변인호 전 J&B 대표

'수천억 사기범' 빼돌린 돈 어디로?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22화는 94억3900만원을 체납한 변인호 전 J&B 대표다.

"내 할아버지는 2공 때 외무장관을 지냈다. 어머니 집안은 삼성·현대도 좌우하는 사채시장의 큰손이다." IMF 직전인 1997년 말. 멀쑥한 얼굴의 한 사내가 검찰에 붙잡혔다. 그는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며 이곳저곳에 돈을 빌리러 다녔다. '증권가 큰손'으로 알려진 그의 실체는 사기꾼이었다. 할아버지 얘기도, 어머니 집안 얘기도 모두 거짓이었다.

증권가 큰손

변인호씨는 1990년대 초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유통업으로 돈을 벌었다. 변씨는 미국으로 컴퓨터 용품을 수출하는 소위 오퍼상이었다. 오퍼상은 해외에 있는 수입업자를 위해 국내에서 필요한 서류(물품매도확약서)를 발행하는 업무를 한다. 변씨가 다룬 제품은 반도체였다. 반도체 무역으로 변씨가 만진 돈은 알려진 것만 100억원이 넘었다.

변씨가 대표로 있던 회사는 J&B다. J&B는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자 설립 3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1996년 누적 손해액은 120억원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변씨는 한보그룹 어음에 배서(양도서명)했다가 '한보 사태'가 터지면서 120억원의 돈을 추가로 날렸다. 어음부도 후 변씨 앞으로 달린 은행 채무는 530억원까지 늘었다.

이 무렵 변씨는 불법에 손을 뻗었다. 오퍼상으로 세관 업무의 허점을 알고 있던 그는 '무역 사기'를 구상했다. 수출 장부를 허위로 작성해 돈을 빌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은행 채무를 다시 은행 빚으로 갚겠다는 일종의 '돌려막기'였다.

시중 몇몇 은행이 타깃으로 선정됐다. 우선 고가의 컴퓨터 부품을 거래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대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거래 내역은 날조했다. 실제 수출입하는 물품은 폐반도체와 공테이프 등 상품으로서의 효용이 없거나 부가가치가 낮은 것들이었다.

변씨의 두 동생인 성호씨와 병호씨는 각각 범행에 가담했다. 이들은 미국과 홍콩에 델콤반도체 등 5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변씨 삼형제가 악용한 법은 '수출입대금 선수금제'다. 흔히 '네고'라고 불리는데 수출업자가 신용장 등 선적서류를 은행에 제시하면 이를 근거로 수권 은행에서 미리 대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변씨는 델콤반도체 등 유령회사를 상대로 수출 규모를 부풀려 은행의 의심을 지웠다.

8개 은행 국내외 지점에서 수출입 결제가 이뤄졌다. 204차례에 걸쳐 2367억원이 변씨의 수중으로 흘러갔다. 이 과정에서 변씨는 일부 물품대금을 갚고, 다시 빼돌리는 수법으로 돈을 착복했다. 금융사기로 변씨가 올린 이득은 265억원으로 파악됐다.

또 변씨는 미국에 파견된 대기업 상사 2곳에 접근해 사기행각을 벌였다. 물품구입대금을 빌려주면 수출이 끝난 후 대금과 함께 고액의 수수료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변씨는 빌린 돈 110억원을 그대로 가로챘다. 수출보험공사도 5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서울시 15억8400만원 국세청 78억5500만원
3700억대 금융사기 변호사·경찰 매수해 도피

변씨 삼형제가 무역사기를 통해 빼돌린 물품구입대금은 425억원으로 확인됐다.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어느 누구도 가짜 컨테이너를 열어보지 않았다. 변씨는 빌린 돈으로 최고급 승용차를 굴렸다. 서류가방엔 항상 300억원대 주식과 증서를 넣고 다녔다. 지갑엔 30~40억의 채권을 넣고 다녔다. 이들의 범행은 1996년 1월부터 1997년 6월까지 계속됐다.

같은 기간 변씨는 어음사기도 벌였다. 자금난에 빠진 중견기업 2곳과 대학에 약속어음을 할인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960억원어치의 어음과 당좌수표를 받았다. 이 가운데 628억원을 임의로 빼돌렸다. 또 가짜 공시한 기업공개매수(레이디가구) 투자금 명목으로 대기업 상사로부터 332억원을 가로챘다. 같은 수법으로 변씨가 융통한 돈은 1385억원에 이르렀다. 변제한 돈은 347억원에 불과했다.

변씨의 범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변씨는 은행과 기업에서 차입한 돈을 (주)중원이란 회사를 인수하는데 썼고, 이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감행했다. 1996년 10월부터 1997년 7월까지 작전세력을 동원해 대원전선, 레이디가구, (주)중원의 주식시세를 조종했다. 은행 펀드매니저, 증권사 간부, 투자자문사 직원 등 7명이 공모했다. 변씨는 이들에게 사례금 명목으로 18억8000만원을 전달했다.

1997년 4월 중원 주식 37만주를 매입한 변씨는 중원이 일본 유명 전자회사 A사에 인수된다는 허위정보를 흘려 주가를 띄웠다. 변씨는 고가에 주식을 매도했다. 또 곧장 중원의 부도설을 유포해 주가가 떨어지자 싼값에 주식을 대량(48만주) 매집했다. 회사경영권을 장악한 변씨는 그해 8월 레이디가구 인수전에 뛰어들어 948명의 개인 투자자로부터 380억원 상당을 모금했다.

그러나 중원의 레이디가구 공개매수는 실패로 끝났다. 투자자 피해액은 300억원이 넘었다. 반면 변씨는 주가조작으로 71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지방종금사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자금융통이 어려워지자 직접 금융사를 사들여 피해액을 복구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

하지만 그해 11월 변씨는 주가조작과 어음사기 사건에 연루돼 구속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변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1998년 9월 변씨는 구속집행정지를 받기 위해 2억원을 주고 하모 변호사를 선임하는 한편 서울구치소 의무관 이모씨, 교위 안모씨, 의사 이모씨를 차례로 매수했다. 변씨는 같은 해 12월 고혈압 등 지병을 이유로 감옥에서 빠져 나와 병원에 입원했다.

변씨는 다시 한 달도 못가 병원 밖으로 도주했다. 국내에서 5개월간 은둔생활을 하던 변씨는 여행사 대표 김모씨로부터 위조여권을 받아 1999년 6월 중국으로 도피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김모 경사는 1000만원을 받고 변씨에게 추적팀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관련 조력자는 모두 사법처리 됐다.

그러나 변씨는 건재함을 과시했다. 중국 선양에서 머물면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그런데도 우리 사법당국은 변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변씨를 잡은 건 중국 공안당국이다. 2005년 변씨는 중국에서 별건의 사기 혐의로 체포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우리 법무부는 중국에 변씨의 송환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변씨는 2013년 형의 시효가 임박함에 따라 잠시 국내로 송환됐다가 다시 중국으로 보내졌다. 변씨는 2017년에야 국내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를 기다리는 건 15년의 잔여형기와 거액의 체납세금이다.

중국으로 도주

변씨는 1990년 3월부터 주민세 등 8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거둘 체납액은 15억8400만원이다. 변씨는 2001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10건의 세금도 체납했다. 국세청이 징수할 세금은 44억3500만원이다. 변씨가 대표로 있던 (주)중원은 2003년부터 법인세 등 9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된 국세는 34억2000만원이다.

변씨 앞으로 과세된 세금의 합은 94억3900만원이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변씨에게 체납 세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변씨가 해외로 빼돌린 돈을 확보할 수 없고, 추적할 동력도 없기 때문이다. 변씨의 최근 주소지를 추적한 결과 그의 주민등록은 말소된 상태로 확인된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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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