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금 도둑'으로 매도된 세월호특위 사무실은 기획재정부가 소유한 나라키움 저동빌딩에 마련됐다. 새누리당은 지난 1월 이 빌딩의 임대료를 정확히 '예언'했다. 입주를 주관한 해양수산부 정모 사무관은 특위 내부 문건을 정부·여당과 공유한 바 있다. 거듭된 문건 유출 배후로 해양정책실이 지목된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특위) 임시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본관. 지난 2일 세월호특위는 표결을 거쳐 정부가 입법예고한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안(이하 시행령)'을 철회시키기로 의결했다. 앞서 이석태 세월호특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행령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특위 파행 불가피
시행령에 따르면 세월호특위는 조직 규모가 대폭 축소(120명→90명)되고 진상규명을 비롯한 업무 추진 과정에서 정부의 영향(기획조정실장 파견) 아래 놓이게 된다. 또 상임위원(5명)을 제외한 파견 공무원의 숫자(42명)가 민간 조사·실무진(39명)보다 많아 독립성이 저해될 우려를 안고 있다. 시행령을 작성한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 김모 주무관은 이날 통화에서 "아직 시행령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의견을 반영하고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시행령 입법예고 기한은 오는 6일이다. 기한 종료 후 시행령이 확정되면 세월호특위는 파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장 이 위원장을 비롯한 다수 위원들은 시행령에 대한 위법·무효 확인소송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여당 추천 위원들은 '시행령 철회 요구' 표결에 불참하거나 반대표를 던지는 등 사실상 정부 안에 동조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추천한 조대환 세월호특위 부위원장은 지난 2월14일 4명의 여당 추천 위원과 함께 따로 해양수산부에 의견서를 보냈다. 정식 논의나 회의 없이 독자행동을 한 것이다. 김 주무관은 "(그들에게) 의견을 전달받은 것은 맞지만 별도의 법안(시행령)은 받은 적이 없다"라며 세간에 제기된 의혹을 부인했다.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권영빈 세월호특위 진상규명소위원장은 정부의 시행령 작성에 여당 측 위원이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시행령에 적힌 문장 가운데 일부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여당 쪽 안에서 봤다"라며 "정부가 그 안을 그대로 짜깁기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이 위원장은 세월호특위 실무진에게 특위 활동 중단 지시를 내렸다. 임시 사무실을 비우고 새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하려던 이들은 단원고 유가족과 함께 거리로 내몰렸다.
지난 1일과 2일 기자는 서울 중구 나라키움 저동빌딩을 찾았다. 이곳 7층과 9층에선 세월호특위 사무실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는 4일까지 사무용품을 들여놓겠다는 공고도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9일이 입주 예정이라 그 전에 공사와 집기 배치를 끝낼 것"이라고 귀띔했다.
사무실 내부는 회의 공간이 많았다. 일부 칸막이는 투명 유리를 사용해 로비에서 방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진상조사와 관련한 공간(조사실·녹취실·진상조사국 등)은 주로 7층에 있었다. 밀폐된 사무실 모퉁이 안쪽은 녹화와 녹음이 용이한 공간으로 전해진다.
사무실 예산만 삭감 없이 유지 왜?
새누리 문건 유출 정황 속속 드러나
위원장실과 부위원장실은 9층 양 모서리 끝과 끝에 있었다. 부원장실이 출구 쪽과 더 가까웠다. 부위원장실 옆에는 정책보좌관실이, 그 반대편에는 소위원장실과 비상임위원실이 있었다. 시행령이 강행 처리되면 진상규명위원장은 7층이 아닌 9층 사무실을 쓰게 된다. 특위 업무 정점에 있는 기획조정실은 설계 도면에 표시되지 않았다. 기획조정실장은 위원장이 아닌 부위원장(사무처장)의 지휘를 받게 된다.
인테리어 용역은 경쟁입찰이 아닌 '사후원가검토조건부 계약'에 따라 Y디자인과 D건축에 발주됐다. 관련 실무는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 쪽에서 세월호특위로 파견된 정모 사무관이 담당하고 있었다. 정 사무관은 "긴급한 사유가 있었고, 단가 등을 고려해 적합한 업체를 선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특위가 짠 최초 예산(240억원)에서 '사무실 임차보증금 등 청사 신설 및 확보비용'(이하 사무실 비용)은 65억8900만원이었다. 이후 특위는 내부 회의를 거쳐 예산 규모를 192억원으로 줄였다. 그런데 정부는 62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삭감해 130억원의 예산안을 통보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무실 비용만 예외로 뒀다는 것이다. 정 사무관은 "(예산안에서) 공사비가 아닌 (일반) 사업비를 삭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 규명' 및 '안전한 사회 건설'이 목적이지만 사무실 마련과 유지에 더 많은 돈을 쏟는 역설이 발생한 셈이다.
앞서 정 사무관은 지난달 20일 '주간업무보고' 형태로 세월호특위 내부 문건을 청와대·새누리당·정부·경찰에 전달해 물의를 빚었다. 정 사무관은 "그 일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라고 대답을 회피했다.
지난 1월16일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세월호특위를 겨냥해 "이런 세금도둑적 작태는 용서치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김 의원은 세월호특위에 파견돼 있던 해양수산부 소속 김남규 서기관을 통해 내부 문건(최초 예산안 등)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서기관은 지난 2일 통화에서 '김 의원 측과 연락을 주고받았냐'는 물음에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부인했다. 현재 김 서기관은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로 복귀했다.
놀랍게도 새누리당은 저동빌딩의 사무실 임대료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새누리당 김현숙 대변인은 "중구 청사 월 임대료가 1억2700만원"이라며 "진짜 조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실무자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브리핑했다. 확인 결과 세월호특위가 사용할 저동빌딩 사무실 임대료는 1억2730만원이었다. 유출된 자료가 없었다면 확언하기 힘든 내용이다.
시행령을 작성한 김 주무관, 문건을 유출한 정 사무관, 김 의원 측과 연락한 김 서기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혹은 해양정책실 산하 기관) 소속이다. 정 사무관에게서 문건을 전송받은 강용석 대통령비서실 부이사관의 직전 근무지도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국제협력총괄과)로 확인된다. 현재 해양정책실은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농림수산식품위원회)을 지낸 연영진씨가 실장(1급)을 맡고 있다.
연 실장은 세월호참사 당시 새누리당 '세월호사고 대책특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앞서 김 의원은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간사와 위원을 지냈다. 한 국회 출입기자는 "상임위 간사와 전문위원이면 서로 모를 리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기자는 '연 실장이 올 1월 정부로 복귀하면서 세월호특위와 관련해 김 의원으로부터 지침을 받은 것이 있는지' 물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 김 서기관은 "연 실장의 지시를 받지 않았다. 내가 판단해서 일했다"라고 주장했다.
거미줄 커넥션
연 실장이 정부로 돌아오자 그가 있던 국회는 대학 동문이 자리를 채웠다. 세월호사고 범정부대책본부 대변인을 지낸 박승기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은 연 실장과 한양대 토목공학과 동문이다. 박 전문위원은 지난달 20일 정 사무관으로부터 문건을 받아본 정부 측 인사다. 지난해 11월 청와대에 파견돼 있다가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로 복귀한 송상근 해양환경정책관 역시 정 사무관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해양정책실로 얽힌 수상한 커넥션이 세월호특위의 독립성을 흔드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