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근혜정부 들어 친박 의원들이 잇달아 국무위원으로 발탁되면서 전체 18명의 각료(장관급 포함) 가운데 무려 3분의 1인 6명이 국회의원을 겸직하게 됐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정치권에서는 차라리 의원내각제를 하자는 비아냥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지역구 의원들이 국무위원을 대거 겸직하면서 예산편성 때마다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관인 듯 국회의원인 듯 정체성이 모호한 그들의 지역구 퍼주기 실태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우리나라가 의원내각제(국회 내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하는 정부 형태) 국가냐? 대통령제 국가에서 총리와 부총리까지 국회의원이 겸직하는 경우는 없을 거다. 지금 내각 구성만 보면 외국인들은 우리나라가 의원내각제 국가인 줄 알 거다.”
이완구 국무총리, 최경환 부총리, 황우여 부총리, 김희정 장관, 유일호 장관, 유기준 장관까지…. 현재 우리나라 국무위원 18명 가운데 무려 3분의 1인 6명이 국회의원을 겸직하게 되자 정치권에서는 차라리 의원내각제를 하자는 비아냥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장관? 의원?
정체성 모호
박근혜 대통령이 지역구 의원들을 대거 국무위원으로 발탁하면서 발생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예산편성의 형평성 문제다. 장관을 겸직하고 있는 의원들은 아무래도 평범한 다른 국회의원들보다 예산편성 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특히 기획재정부장관이나 국토교통부장관의 경우는 국회의원들이 줄을 서서 찾아와 지역구 관련 예산을 편성해 달라며 읍소하는 자리”라며 “그런 자리를 지역구 국회의원이 직접 겸직하게 됐으니 직무공정성을 두고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지역구인 경북 경산·청도는 최 부총리 취임 이후 그야말로 ‘예산폭탄’을 맞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대구지하철 1호선 하양 연장 사업이다. 대구지하철 1호선을 지금의 종착역인 대구 동구 안심역에서 최 부총리의 지역구인 경북 경산시 하양읍까지 연장하는 이 사업은 총 2789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선출직보다 임명직 장관이 낫다?
그들만의 스펙쌓기, 전문성은 제로
그런데 이 사업은 지난 2008년 이명박정부 때만 해도 기획재정부가 실시한 예비타당성 평가에서 경제성이 없다며 퇴짜를 맞았었다. 하양읍의 인구는 고작 2만7000명 가량이고, 경북 경산시의 인구를 전부 합쳐봐야 24만이다. 수천억을 투입하는 사업인데 처음부터 수지타산이 맞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최 부총리가 그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하양역 예정지 북쪽에 경산지식산업지구를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은 산업단지개발을 총괄하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결국 대구지하철 1호선 하양 연장 사업은 재실시한 예비타당성 평가를 무난히 통과했다.
지난해 예산심사과정에서는 국토부가 대구지하철 1호선 하양 연장 사업의 노선 설계비로 요구한 예산 10억원이 기재부와의 조정과정에서 30억원으로 늘어나는 보기 드문 일도 벌어졌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보통 각 부처들이 올린 예산은 기재부와의 조정과정에서 깎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원안대로 통과만 돼도 성공인데 부처 요구안을 기재부가 오히려 증액시킨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장관 일도 바쁜데
챙길 건 챙겼다
이외에도 작년 예산심의 때 청도세계코미디예술제 예산이 4억원 증액됐고, 당초 보건복지부가 낸 예산안에는 없었던 ‘경산 글로벌 코즈메틱 비즈니스센터’ 건립비용 10억원은 난데없이 기재부가 편성해 통과시키기도 했다. 오죽하면 작년 예산심의 당시 국회에서는 최 부총리를 겨냥해 ‘초이예산’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자신의 지역구인 경북 경산·청도에서만 내리 3선을 한 최 부총리의 지역구 사랑은 유별나다. 최 부총리는 부총리 취임 후 바쁜 국정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지역구를 방문해 건의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지역구 의원이기 이전에 한정된 국가예산을 공평하게 배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제부총리이자 기획재정부장관이다. 그런 최 부총리가 특정지역을 유독 자주 방문하고 그 지역의 건의사항만 자주 청취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행보라는 지적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도 국무위원이 된 후 지역구 퍼주기에 몰두했다. 황 부총리의 2014년도 의정보고서에 따르면 황 부총리는 지난해 지역구예산으로만 약 6700억원을 확보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황 부총리가 교육부장관이 된 후 황 부총리의 지역구인 인천 연수구는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교육도시가 됐다.
황 부총리가 직접 2014년도 의정보고서에 적어 넣은 내용이다. 황 부총리는 19대 국회 전반기에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몸담긴 했었지만 후반기엔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했고 법관 출신으로 교육부장관 임명 당시에도 교육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황 부총리의 2014년도 의정보고서를 살펴보면 황 부총리는 유네스코가 주도해 온 기초교육 보급운동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15년간 교육발전 방향을 제시하고자 열리는 2015년 세계교육포럼을 송도에 유치했다. 이와 관련한 38억원의 예산도 이미 확보한 상태다.
2016년에 문을 여는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와 관련해서는 최초 신설비 214억원에 65억원을 추가해 총 279억원의 국비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국립대 전환에 성공한 인천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도 눈에 띈다. 인천대는 전년도 대비 무려 155%나 증액된 102억원의 국비를 지원 받았다.
또 2017년까지 인천 연수구에는 8개의 학교가 신설되는데 황 부총리는 이와 관련한 예산 724억원도 따냈다. 이외에도 황 부총리의 지역구인 연수구에는 해돋이공원 안에 40억원을 들여 해돋이도서관을 건립 중이고, 지난해 특별교부세와 교부금으로만 55억원이 지원됐다. 의정보고서에는 일부 부풀린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황 부총리가 현역 장관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지역구에 예산 퍼주기를 해줬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내년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황 부총리의 의정보고서를 살펴 본 정치권 관계자들은 현역 의원들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입을 모았다.
부러운 장관직
청와대에 충성
지난해 3월 취임한 후 그해 12월 퇴임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장관의 경우도 눈길을 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가 지역구인 이 전 장관은 취임 후 곧바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팽목항에서 거주하다시피 했지만 2014년도 의정보고서를 살펴보면 이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 와중에도 지역구 관련예산을 살뜰히도 챙겼다.
묻지마 예산에 멍드는 재정건전성
정작 꼭 필요한 예산은 후순위로
우선 이 전 장관은 마산로봇랜드 및 로봇비즈니스벨트 조성 예산 218억원을 확보했고, 마산~거제 도로 건설공사 예산 400억원을 확보했다. 마산 의료원 확장 신축 총사업비 600억여원 중 지난해에만 57억원을 확보했고, 마산자유무역지역 확장 관련 예산 1460억 중 168억원을 확보했다.
이외에도 이 전 장관은 지난해 가포신항만 진입도로 건설비 총 1900억 중 50억, 도심하천 생태화 관련 예산 108억, 마산항 워터프론트 조성사업 119억, 마산 도시재생사업 관련 예산 47억도 확보했다.
사실 이 같은 의원 겸직 장관들의 지역구 퍼주기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2년 전임 장관이었던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가평·양평에 문화부가 주관하는 개발사업 관련예산으로 무려 1600여억원을 지원하려다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당시 문화부는 해당 사업들을 진행하면서 공모절차조차 무시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됐었다. 그야말로 묻지마 장관 지역구 퍼주기 예산이었던 셈이다.
묻지마 예산
지역구선 영웅
이 같은 의원 겸직 장관들의 지역구예산 퍼주기 행태는 비록 중앙 언론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지역언론에서는 대서특필되고 지역주민들에게는 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원 겸직 장관들의 지역구예산 퍼주기 행태는 철저히 비판 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나열한 사례처럼 국가예산의 분배가 왜곡된다면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요가 없다는 타당성 조사마저 무시해가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나면 이후 발생하는 적자는 국가재정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또 정작 꼭 필요한 예산들은 후순위로 밀리며 국가발전을 저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정부의 유별난 현역의원 사랑이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