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 비상' 캠퍼스 성범죄 천태만상

새내기 노리는 늑대오빠들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대학은 학문의 성과를 상아처럼 쌓아올렸다는 의미에서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렸다. 대학의 높은 지성과 고매함을 추켜세우는 말이다. 대학에 막 입학한 새내기 학생들도 이런 기대와 청운의 꿈을 안고 첫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빛나는 꿈이 무색하게 대학은 성범죄로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서울 유명 사립대 재학생 유정량(가명·25·여)씨는 “최근 대학 내에서 성 문제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민감하고 조심하는 분위기다. 오티에서는 성교육까지 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서강대학교 경영대 오리엔테이션(OT)에서 갓 입학한 새내기를 상대로 도 넘은 성희롱 문구가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마셔라, 부어라’
그놈의 술이 원수 
 
지난달 25일 서강대 경영대학 재학생과 신입생 300여명은 강원도 평창의 한 리조트에 2박3일간 오리엔테이션을 갔다. 재학생 선배들은 5개로 방을 나누고 여성의 신체를 빗대 ‘아이러브 유방’ ‘작아도 만져방’ 등 선정적인 이름을 붙였고, 그 아래 방마다 지켜야 할 규칙을 적었다. 
 
규칙 중에는 제일 어린 후배가 한 선배를 지목해 그윽한 눈으로 ‘라면 먹으러 갈래?’라고 말하기가 있었다. 이는 영화에 나온 대사로 “나랑 잘래?”라는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신입 여학생 필수로 대동해 섹시 댄스 추기’ ‘3초 이상 스킨십 하기’ 등 자극적인 문구로 가득했다. 곳곳에는 어린 학생들이 보기에 민망하고, 선정적인 표현이 가득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해당 학생회는 곧바로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 같은 성희롱이 개인의 일탈이 아닌 단과대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공분을 사고 있다. 서강대 경영대는 “다음날 바로 문제를 파악하고 학생회 차원에서 재발방지와 대응에 대해 논의했다”며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온 뒤 학생회에서 약식 사과문을 올렸고, 교내에 사과문을 대자보 형식으로 붙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학내 선·후배간 성범죄 사건 잇달아
십중팔구 술 때문에…핑계도 가지각색
 
요즘 대학가 술집은 갓 입학한 앳된 신입생과 술자리를 주도하는 학교 선배들로 꽉 차 있다.  
선배들이 나서 새내기들의 대학생활 적응을 도와준다는 취지로 만든 새내기배움터, 엠티와 각종 술자리는 새내기들의 성범죄의 취약지대로 지적받고 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위원은 “신입생들 경우 이전에 형성된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약자이기 때문에 성범죄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또 전문가들은 대학 내에서 성 관련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술·놀이 문화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술을 마시며 흔히 말하는 ‘왕게임’이나 각종 술 게임을 하며, ‘볼에 뽀뽀하기’부터 ‘키스하기까지’ 수위를 넘나드는 스킨십 벌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새내기들은 싫어도 티를 내지 못한다. 선배들에게 모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이다. 
 
올해 대학교 2학년인 정수민(가명·22·여)씨는 “초반에는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했다. 종종 술 게임을 하면서 ‘이건 좀 아니다’라고 싶었지만, 벌칙도 군말 없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 한국정책연구위원은 “술 게임이 벌어지는 분위기에서 집단의 놀이문화에서 소외되기 싫어서 성희롱 위험이 있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대 여성연구소에 의뢰한 대학생 성희롱·성폭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280건의 학내 성범죄 발생장소 중 술집 등 학외 유흥공간이 15%인 43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학내 공공장소(22건), 엠티·수련회 등 (20건) 순으로 나타났다.
 
“내가 챙길게”
오빠 본심은?
 
‘선배를 조심하라. 그 중에서 군대를 제대한 복학생 선배를 특히 조심하라’는 흔히 대학가에서 나오는 말이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 중 하나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김정순(가명·25·여)씨는 신입생 때 갓 군대에서 제대한 복학생 선배와 잠깐 사귄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과 술자리에서 처음으로 그 복학생 선배를 만났다”며 “당시 그 선배가 나한테 무척 잘해줬다. 내가 벌주를 마실 때 대신 마셔주며, 그날 집까지 바래다줬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 있지 않아 나한테 고백했는데, 나도 좋은 마음으로 사귀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학생 선배는 사귄 지 일주일이 되지 않아 김씨의 주요 부위를 스킨십 했다. 당시 김씨는 불쾌했지만, 사귀는 사이니깐 어느 정도까지는 허락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귄 지 한달 즈음 복학생 선배는 김씨에게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에 김씨는 이를 받아드릴 수 없어 결별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당시 느꼈던 게 “결국 나랑 그 짓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김씨는 영리하게 해결한 경우다. 
 
예나 지금이나 
“당하고 후회”
 
지난 6일 <국민일보>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학교 1학년인데 대학 선배랑 잤어요’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글쓴이는 “이틀 전 얘긴데 계속 뒤숭숭해서 글을 올린다”며 사연을 풀었다. 그는 “어쩌다 알게 된 25살 먹은 선배인데 ‘너를 왜 이제 만났느냐’ ‘너 같은 후배가 제일 좋다’하며 자신을 띄워주기에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며, “주량이 센 편인데 그 선배가 권하는 술을 받아먹다 취해버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같은 동네 사는 친구에게 챙겨달라고 부탁했는데 기억이 끊어졌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배가 나를 챙긴다며 모텔로 데리고 갔던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 “잠자리를 갖고 일어나 보니 선배는 사라지고 없고 동기를 통해 ‘바빠서 연락 못했으니 집에 잘 들어가라’는 내용의 카톡만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끝으로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술 때문에 몸을 챙기지 못한 자신이 한심해서 없던 일로 하려고 하는데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힘들어했다. 
  
지방의 모대학교 대학생 남녀 10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희롱 피해경험 규모를 보면 ‘술자리에서 남성 사이에 끼어 앉거나 술 시중을 들게 하는 경험’이 여성은 104명(21%), 남성은 16명(3%)이며, 여성에 대한 가해자는 선배가 가장 많았다.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신체접촉 당한 경험’은 여성은 86명(17%), 남성은 16명(3%)인데, 여성에게 가해행위를 하는 사람 중 62%가 ‘선배’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학 내 선·후배간 술자리에서 성 관련 문제는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암암리에 서로 덮거나, 혹자는 ‘쿨’하게 잊는다고 한다.
 
여전한 폭탄 음주문화

정신 차리니 게임 끝!
 
지난 11일 서강대의 논란에 대해 이상근 서강대학생문화처장명의의 입장 자료를 내고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하게 진상을 파악해 그 결과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서강대의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성범죄 관련 상담 건수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서강대 측은 “상담 실적이 한 건이던 두 건이던 개인의 비밀보장 차원에서 보호돼야 한다”며 “학교 정보 노출 우려도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3일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 소속 박주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3일 교육부에 ‘최근 5년간 대학 내 성범죄 현황’ 자료를 요청했다. 일주일 후 박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작년까지 4년제 대학의 성범죄 건수는 100건으로 집계됐다. 
 
숨기기 바쁜 학교
나몰라라 교육부
 
문제는 통계에 잡힌 대학이 78개교로 전국 4년제 대학(198개)의 39%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특히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대학에는 최근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서울대와 고려대가 포함돼 있다. 
 

자료 제출이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학교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교육부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교육부도 대학의 성범죄 통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성범죄에 관한 통계는 국회 등에서 요구할 때 자료를 취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대학 내 성범죄 정책을 세우려면 기본적 통계는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 의원은 “통계로 현실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정책대안을 만들 수 없다”며 “최근 대학교수의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교육부는 기초적인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2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시각 미술을 전공하는 에마 셀코위츠는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남학생에게 강간 당했다. 이후 그는 다른 피해 학생들을 만나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대학 당국의 조사위원회에 참석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상세하게 진술했다. 하지만 대학 측은 지난해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남학생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그는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대학 측에 항의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매트리스를 들고 다녔다. 자신을 강간한 남학생이 학교를 떠나기까지 매트리스를 들고 캠퍼스를 돌아다니겠다고 밝혔다. 
 
그의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람들은 이유를 물었고, 함께 매트리스를 들어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기숙사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나와 시위를 벌였다. 이 사실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의 다른 대학에 퍼졌고, 매트리스는 성폭행 피해 고통에 대한 연대의 상징이 됐다. 지난해 10월29일 전국 행동의 날에는 아메리칸대학 등 미국 내 다른 대학뿐만 아니라 헝가리 등 외국 캠퍼스에서도 침대 행렬이 이어졌다. 그런데 왜 침대일까.
 
설코위츠는 학내 언론 컬럼비아데일리스펙테이터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강간을 당한 뒤부터 그 경험은 내게 무거운 짐이 됐고, 어디를 가나 짊어져야 하는 것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침대는 아무도 상대하고 싶지 않을 때 물러나 있을 수 있는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이지만, 지난 1∼2년간 내 삶은 그 은밀한 곳을 모두 드러내 보여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니인터뷰] 캠퍼스 성범죄 심각성 알리는 원준재 인하대 성평등상담소장
“아직도 피해자 처신을 탓합니까”

 
▲대학 성범죄가 만연하는 이유는?
대학뿐만 아니라 사람이 만나는 곳이면 성범죄는 발생한다. 최근 대학의 사건들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지성의 상징이라는 캠퍼스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같은 수준의 범죄라도 대학이 아니고 기업체나 직장이라면 언론에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처신을 잘못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된 의식이 변화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성 관련 문제가 불거진다고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조용히 덮었던 사건들이 수면 위로 나타나고 있다. 마치 사건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성범죄 예방교육의 효과로 피해자를 바라보는 인식이 전보다 긍정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신고도 전보다 증가했다. 젊은 세대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주장이 이전의 세대보다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 을 방증한다. 
 
▲과거에도 많았나?
과거에도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했고,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지금 신고하는 사건 중에는 몇 년 전만 해도 신고 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다. 예를 들어 남학생 간의 성추행사건은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던 사건들이다. 또 피해자가 흔히 여성이라고만 생각하기에 남성 피해자들은 신고하지 못했다.
 
남성 피해자가 신고하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남자답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는 남성 피해자가 신고해도 ‘많이 괴로웠겠다’라고 이해하는 인식이 높아졌다. 과거에도 지금처럼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그 당시 피해자는 그냥 ‘재수가 없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하는 정도로 여기고 넘기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학교에서 선·후배 간의 성추행을 그냥 넘겼던 것과 같다. 
 
▲ 대학 내 성범죄 집계가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학 내 성범죄 집계가 어려운 이유는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칫 사건이 알려지면 피해 당사자가 사회적으로 2차 피해를 볼 수 있다. 2차 피해란 아직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냉기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공개해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게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피해 당사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담당자들은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비밀보호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 또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대학교나 기업이 성범죄의 온상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기 때문에 쉽게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최근 고려대나 서울대의 경우 성범죄 관련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두 학교가 다른 학교보다 성범죄 발생률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성희롱·성폭행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성희롱이 발생하였을 때 바로 ‘안 돼요! 하지 마세요! 그만두세요! 이런 행동은 성희롱입니다!’ 등의 분명한 표현을 상대방에게 해야 한다. 성희롱과 친근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적 행동에 대해서는 자신이 불쾌하다면 ‘그만하는 게 좋겠다’라고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폭력은 예방이 최고다.
 
원치 않게 사건이 발생하면 고민하지 말고 전문가나 전문기관에 연락해야 한다. 이는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에게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줄 수 있다. 또 신고를 통해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가 점점 팍팍해지더라도 인간으로서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계속 교육돼야 한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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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