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친노-비노 전면전' 치닫는 내막

"친노 돕느니 차라리 새누리 돕겠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친노 배제가 통합인가? 문재인 대표는 할 만큼 했는데 왜 자꾸 시비를 거는 건지 저의가 의심스럽다." 전당대회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게 하겠다던 문재인 대표의 공언은 이미 허언이 돼버린 지 오래다. 친노와 비노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8전당대회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행보는 한동안 큰 호평을 받았다.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해 중도 외연을 크게 넓혔고, 가장 큰 관심사였던 당직 인선도 무난하게 끝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신임 사무총장에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양승조 의원을 임명하고, 정책위의장에는 정세균계의 강기정 의원을 임명하면서 계파 안배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아울러 지명직 최고위원에도 비노계로 분류되는 추미애 의원과 이용득 전 최고위원을 지명했다. 취임 당시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게 하겠다”던 문 대표의 공언이 나름대로 잘 실천된 것이다.

계파 청산?
계파 대립!

이에 힘입어 문 대표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했다. 하지만 문 대표가 취임한 지 불과 19일 만에 다시 계파 간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문 대표가 친노계인 김경협 의원을 수석사무부총장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김한길 전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주승용 수석최고위원은 “그동안 수석사무부총장은 수석최고위원이 추천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문 대표가 관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친노인사를 임명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주 최고위원은 이에 항의하며 한동안 당무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표는 “반대를 위한 반대나 비판을 위한 비판까지 들어줄 이유는 없다”며 임명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비노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김경협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 당시 중립을 지켜야 할 선관위원임에도 알게 모르게 문 대표의 선거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인물”이라며 “그런 인물을 당 실무를 총괄하고 차기 총선 공천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무부총장 자리에 앉힌다는 것은 결국 친노가 다 해먹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친노계는 이같은 비노진영의 문제제기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친노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사무부총장은 공천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직책이 아니다. 사무처의 결정권자는 결국 사무총장이 아닌가? 이미 사무총장에 비노계 인사를 앉혀놨는데 사무부총장 한 명을 친노계 인사로 임명했다고 이렇게 반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문 대표는 비노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석사무부총장에 김경협 의원을 임명한 데 이어 조직사무부총장에도 친노계인 한병도 전 의원을 임명하려고 했다.

친노 챙기기
비노 반발

그런데 이에 대한 비노계의 반발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문 대표도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한병도 카드를 철회하고 조직사무부총장 자리에 김한길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관영 의원을 임명한 것이다.

문 대표가 한발 물러서자 문 대표의 당직 인선에 반발해 당무를 거부해 온 주승용 최고위원도 일단 전북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며 당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문 대표가 계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해 온 노력들은 이번 사건으로 완전히 묻혀버렸다.
 

비노계는 문 대표의 자업자득이라는 반응이다. 탕평인사를 하겠다더니 측근들을 공천의 핵심 실무자로 임명하려한 문 대표가 스스로 오해와 분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노계의 생각은 다르다. 한 친노인사는 “친노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탕평이고 통합인가? 이는 분명한 역차별이다. 문 대표는 지금까지 탕평인사를 위해 정말 많이 양보했는데 겨우 사무부총장 자리 하나로 이렇게 몰아세우는 게 말이 되나? 차, 포를 다 떼 준 것이나 다름없는데 왜 자꾸 시비를 거는 건지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도 격앙된 목소리로 “문 대표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당내 분란이 일어나면 자꾸 양보하며 넘어가려고 하는데 언제까지 당하기만 할 건가? (비노계의) 부당한 요구를 더 이상 들어 줄 필요가 없다”며 “그 사람들(비노계)은 차라리 집권을 못하더라도 우리(친노)가 집권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문 대표의 양보로 당내 갈등이 봉합되긴 했지만 문 대표의 양보가 거듭되면서 친노계의 불만도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친노 배제가 통합? 불만 폭발
탕평 약속 어디로? 비노도 불만

이번 사건은 현재 새정치연합 내 비노계와 친노계가 얼마나 서로를 불신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일단 봉합되기는 했지만 새정치연합 내에서 언제든지 계파 갈등이 다시 표면화 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게다가 당장 내년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어서 앞으로 공천권을 둘러싼 친노와 비노 간의 계파 갈등이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당대회에서 문 대표에게 석패한 이후 침묵을 지키던 박지원 의원도 할 말은 하겠다며 최근 문 대표를 겨냥한 작심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박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 지도부가 4월 재보선을 전략공천 없이 경선으로만 치르기로 한 것에 대해 “전략공천의 잡음을 두려워해 ‘이기는 선거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또 문 대표의 당직 인선에도 문제가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박 의원은 당 지도부가 재보선에서 1석만 차지해도 이기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그건 패배다”라며 돌직구를 던졌다.

비노계에서는 만약 친노계와 비노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박 의원이 비노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유력한 대권주자인 문 대표를 거의 이길 뻔했다”며 “전당대회 이후 박 의원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호남에서 박 의원의 영향력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모두가 실감했다”고 말했다.
 

전당대회에서 호남의 뿌리 깊은 반노 감정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만큼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비노계가 조금이라도 소외당하면 당장 호남이 들썩이기 시작할 텐데 여전히 호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박 의원이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 파괴력은 배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뜨는 박지원
문재인 위협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4·29재보선은 친노계와 비노계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분수령이다. 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 중원, 광주 서구을 등에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단 3곳에서 치러지는 초미니 재보선이지만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정치권에서는 비노계가 내심 새정치연합이 이번 재보선에서 참패하길 바라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재보선에서 문 대표가 이끄는 새정치연합이 승리하게 되면 당장 내년 총선에서 비노계가 설 자리는 없다.

반면 문 대표가 이끄는 새정치연합이 재보선에서 패한다면 비노계를 중심으로 한 야권 정계개편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친노계와 비노계가 이번 재보선의 승리 기준을 각각 다르게 잡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친노계는 이번 재보선의 승리 기준을 1석 이상으로 낮춰 잡고 있는 반면 비노계는 세 곳 모두 야권 강세 지역인 만큼 전승을 거둬야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끌어안으려는 문, 멀어지려는 비노
괜한 트집 잡기? 신당 준비하나?

특히 새정치연합의 텃밭인 광주 서구을 선거 결과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당초 새정치연합은 광주 서구을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선거전략을 세웠지만 이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정동영 전 상임고문이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합류한 국민모임과 정의당이 이 지역에서 후보를 내기로 한데 이어 천정배 전 법무장관도 무소속으로 광주 서구을 출마를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천 전 장관은 새정치연합이 모든 재보선 후보들을 권리당원과 일반시민이 50%씩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뽑기로 결정하자 탈당을 선언했다.
 

야권의 심장부인 광주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패한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천 전 장관도 광주 서구을 선거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그가 이번 선거에서 패할 경우 향후 정치권에 복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양측이 엉뚱하게도 텃밭에서 총력전을 치르느라 정작 다른 두 곳의 선거전략이 모두 뒤엉켜버릴 가능성도 크다. 국민모임과 정의당, 천 전 장관은 재보선 과정에서 단일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주 패배
문재인 직격탄


일각에서는 재보선 과정에서 호남권 비노계 의원들이 야권단일후보를 물밑에서 도우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싹트고 있다. 새정치연합 후보가 광주에서 패한다면 문 대표와 친노세력에게 직격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단행한 공천 결과에 불만을 가진 호남권 후보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해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라북도의 경우 기초단체장 14명 중 절반인 7명이 무소속으로 당선됐고, 전라남도 역시 22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8곳을 무소속에 내줬다. 당시 무소속 후보들이 호남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호남 국회의원들이 물밑에서 무소속 후보들을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4월 재보선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박지원 의원의 지지자들 사이에선 호남당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친노와 비노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mi737@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