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약해지는’ 전경련 회장단 변천사

옛날엔 ‘못해’ 안달, 지금은 ‘안해’ 발뺌

[일요시사 경제팀] 한종해 기자 = 대안이 없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3연임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각이다. 책임 있는 선택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소수의 목소리에 그친다. 사실상 전경련이 유명무실해졌다는 극단적인 얘기도 나온다. '재계 본산'이었던 전경련이 언제부터 이렇게 추락하기 시작한 걸까.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세 번째 연임했다. 전경련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회원 기업 대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54회 정기총회를 열고 현 회장인 허 회장을 제35대 전경련 회장으로 선임했다.

계속 고사…
대안이 없다

허 회장은 취임사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2년의 임기 동안 미래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역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구조적 장기불황의 우려를 털어내고 힘차게 전진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반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어쩔 수 없이 회장직을 이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처음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된 2011년과 연임 때인 2013년 모두 회장직을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32대 회장을 맡고 있던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2011년 7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를 선언하자 전경련은 즉시 후임 인선 작업에 돌입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단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콜'을 넣었다. 이건희 회장의 초청으로 만찬에 참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주요 총수들은 만장일치로 이 회장에게 차기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 회장의 대답은 없었다. '예스'도 '노'도 아니었다. 사실상 고사한 셈이다.

전경련이 '이건희 바라기'에 빠져 있는 동안 전경련 회장직은 7개월간 공석이었다. 물망에 올랐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도 회장직 제의에 손사래를 쳤다. 결국 전경련의 선택은 허 회장이었다.

'하기 싫은데…' 허창수 회장 또 연임
이장한 종근당 회장 부회장 신규 선임

2013년 2월 정기총회에서 허 회장이 처음 연임될 때도 전경련은 또 한 번 진통을 겪었다. 허 회장은 정기총회를 앞두고 회장직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동안 허 회장은 "내 임기는 끝났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허 회장의 사임 의지는 헛된 바람이 됐다.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건강 등의 이유로 어려웠고 최태원 회장은 이제 막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이장에서 물러난 상태, 구본무 회장은 1998년 이른바 '빅딜' 사건 이후 전경련 행사에 발길을 끊었다.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과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굵직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반대가 심했다.

올해 역시 허 회장은 3연임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은 지난달 초 연임 여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업계는 허 회장이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반대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재계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달콤한 권력의 상징인 전경련 회장직을 재벌 총수들이 하나같이 기피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경련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전경련은 1961년 7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를 모방해 조직한 한국경제인협의회로 시작했다. 회장은 고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자가, 부회장은 고 전택보 천우사 창업자와 고 이한원 대한제분 창립자가 맡아 이끌다가 같은 해 7월 재계 유지 13명이 모여 경제재건촉진회 창립총회를 열고 우리나라 최초의 시멘트공장(대한양회) 설립자인 고 이정림 회장이 회장으로 선출됐다.

부회장 없어서…
재계 716위까지

같은 해 8월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꾼 전경련은 1968년 3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경련은 재벌을 대변하는 단체로서 그 위상이 하늘을 찔렀다. 정부의 대형 국책공사 물량이 나오면 전경련이 분배를 담당했고 업체 간 과당경쟁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때문에 전경련 회장직은 기업 오너라면 누구나 탐내는 자리였다.

전경련 역대 회장을 보면 초대회장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재임기간 1961년 8월∼1962년 9월)를 시작으로 고 이정림 대한양회 설립자가 2·3대 회장(1962년 9월∼1964년 4월), 고 김용완 경방 창업주가 4·5·9·10·11·12대 회장(1964년 4월∼1966년 4월, 1969년 4월∼1977년 4월), 고 홍재선 쌍용양회 회장이 6·7·8대 회장(1966년 4월∼1969년 4월)을 맡았다.
 

이후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13·14·15·16·17대 회장(1977년 4월∼1987년 2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8대 회장(1987년 2월∼1989년 2월), 고 유창순 호남석유화학 회장(전 국무총리)이 19·20대 회장(1989년 2월∼1993년 2월),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21·23대 회장(1993년 2월∼1998년 8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24·25대 회장(1998년 9월∼1999년 10월) 등 당대 재계를 대표하는 그룹 총수들이 이끌어 왔다. 

와병, 수감…
핑계도 제각각

전경련은 정주영 창업주가 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인 1977년부터 10년 동안이 최전성기였다. 여의도 전경련 회관이 지어졌고, 서울 올림픽이 유치됐다. 정 회장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전경련 앞에 '재계의 본산'이라는 말이 붙고, 전경련 회장이 '재계의 총리'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전경련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 당시 회장이던 최종현 회장이 강하게 반발했고, SK는 한동안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돼야 했다. 여기에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고 1998년 전경련이 빅딜을 추진하면서 내분이 생겼다.

2000년대 들어서자 재계와 노동계 간의 갈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갈등이 심화됐고 통상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 동반성장, 갑질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총수들은 전경련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김우중 회장을 마지막으로 국내 5대 그룹에서 회장을 맡은 적이 없다. 26·27대는 고 김각중 전 경방 명예회장, 29·30대는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31·32대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회장직을 맡았다.

전경련 회장 기피 현상은 회장단 구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전경련 회장단은 회장 1명, 상근부회장 1명, 부회장 18명 등 2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경련은 지속적으로 회장단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전경련은 올해 정기총회에 앞서 2013년부터 30대 그룹 총수에 한정됐던 회장단 자격을 50대 그룹으로 확대했다. 그룹 부도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과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사퇴하면서 생긴 빈자리를 메꿔야 했을 뿐만 아니라 재계 곳곳에서 전경련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회장단 자격 확대에 따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이수영 OCI그룹 회장,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등이 부회장 후보로 거론됐다. 허 회장과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직접 영입에 나섰다. 2~3명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됐다. 하지만 이들 모두 가입을 고사했다.

신규 영업된 부회장은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유일하다. 50대 그룹 수장으로 가입이 한정된 전경련 회장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사. 종근당의 재계순위는 716위(2013년 자산 기준)다. 이 회장도 처음에는 부회장 선임 제의를 고사하다 막판 수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경련 측은 이 회장 선임에 대해 "2003년경 업종별로 다양한 목소리를 전경련에 담아내자는 취지에서 각 업종 대표들이 부회장으로 선임됐는데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이 그 역할을 맡았던 적이 있다"며 "허 회장의 타계 이후 제약업계 목소리를 전해 줄 부회장이 없었는데 이번에 이 회장을 영입했고 그 역할이 주어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정치 일동제약 회장과 강정석 동아쏘시오홀딩스 사장이 전경련 이사로 신규 선임된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회장단 확대 시도 무산 21명→20명
절반도 안 되는 전경련 회의 참석률

현재 전경련 부회장은 이승철 상근부회장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구본무 회장, 김승연 회장, 조양호 회장, 정몽구 회장, 이준용 회장, 신동빈 회장, 최태원 회장, 이장한 회장, 박영주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등이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제대로 전경련 활동을 하는 인사는 적다. 이건희 회장은 와병 중이고 최태원 회장은 수감 중이다. 정몽구 회장은 전경련과 거리를 둔 지 오래다. 김승연 회장은 집행유예 상태고 박용만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고 있어 전경련 회장단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조양호 회장도 '땅콩 회장'사건 여파로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김준기 회장도 지난 2007년 전경련 운영에 불만을 표시하고 부회장직을 사퇴한다는 의사를 밝힌 뒤 현재까지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구본무 회장도 1999년 이른바 '빅딜 사건'이후 "전경련이 재계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발을 끊었다.

장세주 회장과 박용만 회장의 경우에는 활동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었다. 박용만 회장은 형인 박용현 회장에 이어 그룹 회장에 오른 시기가 2012년이기 때문에 2013년이 돼서야 선임됐고 장세주 회장도 같은 해 법정관리를 이유로 사임의사를 밝힌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빈자리를 채웠다.

전경련 관계자에 따르면 격월로 열리는 회장단 회의에 참석이 가능한 회장단은 10명 정도. 실제 참석은 6~7명 정도만 이뤄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참석률이 절반을 넘긴 경우는 손에 꼽는다. 지난해 1월9일 새해 첫 전경련 정기 회장단 회의에 국내 5대 그룹 총수 가운데 참석한 사람은 신동빈 회장 단 한 명뿐이었다.

두 달 뒤 신축회관 첫 회장단 회의 때는 회장단 21명 가운데 7명만 참여했다. 국가경제 현안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밝히는 자리가 아니라 소규모 친목 모임으로 전락한 것이다. 참석률이 극히 저조하자 회장단 회의는 아예 비공개로 바뀌어 개회 여부를 모르는 지경이다.

2011년 2월,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허 회장은 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10대 그룹 내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된 것이 무려 11년 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 회장은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는 동안 ▲초과이익공유제 추진 ▲기업별 동반성장지수 발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 ▲법인세 감세 철회 움직임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등 재계에 대한 정치권 압박이 거세졌지만 전경련의 대응을 없었다.

허 회장이 침묵을 깬 것은 취임 4개월 만인 2011년 6월 기자간담회서다. 이날 허 회장은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난하고 감세 철회 논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이 했다. 또 휘발유 가격과 동반성장 등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가진 간담회에서는 "오늘날 중요한 정책결정에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정부 압박 발언을 했다.

재계는 환영했다. 이제야 전경련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허 회장이 몇 차례 여의도로 호출된 후 전경련은 꼬리를 내렸다. 독설은 자취를 감췄고 전경련은 중립 노선을 탔다.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2013년 이후에도 전경련은 특별한 발전이 없었다. 회원사 문턱을 낮추고 회장단을 추가 영입키로 하는 등 사업·조직 개편에 착수했지만 2기 임기가 다 돼서도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부회장 추가 영입 시기를 연장하는 수준에 그쳤다.

섣부른 기대 금물
보여주기 될 수도

허 회장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3기 임기를 시작했다. 지금 전경련 앞에는 법인세 인상과 기업인 가석방, 반기업 정서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허 회장은 일단 나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취임식 후 기자들과 만나 "법인세는 낮춰야지 올리면 안 된다"며 "앞으로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재계는 이번만큼은 대놓고 반기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며 "지금 허 회장이 내고 있는 목소리가 앞으로도 죽 이어질지, 아니면 임기 초기 보여주기식으로 그칠지 두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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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