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약해지는’ 전경련 회장단 변천사

옛날엔 ‘못해’ 안달, 지금은 ‘안해’ 발뺌

[일요시사 경제팀] 한종해 기자 = 대안이 없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3연임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각이다. 책임 있는 선택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소수의 목소리에 그친다. 사실상 전경련이 유명무실해졌다는 극단적인 얘기도 나온다. '재계 본산'이었던 전경련이 언제부터 이렇게 추락하기 시작한 걸까.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세 번째 연임했다. 전경련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회원 기업 대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54회 정기총회를 열고 현 회장인 허 회장을 제35대 전경련 회장으로 선임했다.

계속 고사…
대안이 없다

허 회장은 취임사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2년의 임기 동안 미래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역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구조적 장기불황의 우려를 털어내고 힘차게 전진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반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어쩔 수 없이 회장직을 이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처음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된 2011년과 연임 때인 2013년 모두 회장직을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32대 회장을 맡고 있던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2011년 7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를 선언하자 전경련은 즉시 후임 인선 작업에 돌입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단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콜'을 넣었다. 이건희 회장의 초청으로 만찬에 참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주요 총수들은 만장일치로 이 회장에게 차기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 회장의 대답은 없었다. '예스'도 '노'도 아니었다. 사실상 고사한 셈이다.


전경련이 '이건희 바라기'에 빠져 있는 동안 전경련 회장직은 7개월간 공석이었다. 물망에 올랐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도 회장직 제의에 손사래를 쳤다. 결국 전경련의 선택은 허 회장이었다.

'하기 싫은데…' 허창수 회장 또 연임
이장한 종근당 회장 부회장 신규 선임

2013년 2월 정기총회에서 허 회장이 처음 연임될 때도 전경련은 또 한 번 진통을 겪었다. 허 회장은 정기총회를 앞두고 회장직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동안 허 회장은 "내 임기는 끝났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허 회장의 사임 의지는 헛된 바람이 됐다.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건강 등의 이유로 어려웠고 최태원 회장은 이제 막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이장에서 물러난 상태, 구본무 회장은 1998년 이른바 '빅딜' 사건 이후 전경련 행사에 발길을 끊었다.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과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굵직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반대가 심했다.

올해 역시 허 회장은 3연임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은 지난달 초 연임 여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업계는 허 회장이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반대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재계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달콤한 권력의 상징인 전경련 회장직을 재벌 총수들이 하나같이 기피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경련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전경련은 1961년 7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를 모방해 조직한 한국경제인협의회로 시작했다. 회장은 고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자가, 부회장은 고 전택보 천우사 창업자와 고 이한원 대한제분 창립자가 맡아 이끌다가 같은 해 7월 재계 유지 13명이 모여 경제재건촉진회 창립총회를 열고 우리나라 최초의 시멘트공장(대한양회) 설립자인 고 이정림 회장이 회장으로 선출됐다.


부회장 없어서…
재계 716위까지

같은 해 8월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꾼 전경련은 1968년 3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경련은 재벌을 대변하는 단체로서 그 위상이 하늘을 찔렀다. 정부의 대형 국책공사 물량이 나오면 전경련이 분배를 담당했고 업체 간 과당경쟁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때문에 전경련 회장직은 기업 오너라면 누구나 탐내는 자리였다.

전경련 역대 회장을 보면 초대회장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재임기간 1961년 8월∼1962년 9월)를 시작으로 고 이정림 대한양회 설립자가 2·3대 회장(1962년 9월∼1964년 4월), 고 김용완 경방 창업주가 4·5·9·10·11·12대 회장(1964년 4월∼1966년 4월, 1969년 4월∼1977년 4월), 고 홍재선 쌍용양회 회장이 6·7·8대 회장(1966년 4월∼1969년 4월)을 맡았다.
 

이후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13·14·15·16·17대 회장(1977년 4월∼1987년 2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8대 회장(1987년 2월∼1989년 2월), 고 유창순 호남석유화학 회장(전 국무총리)이 19·20대 회장(1989년 2월∼1993년 2월),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21·23대 회장(1993년 2월∼1998년 8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24·25대 회장(1998년 9월∼1999년 10월) 등 당대 재계를 대표하는 그룹 총수들이 이끌어 왔다. 

와병, 수감…
핑계도 제각각

전경련은 정주영 창업주가 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인 1977년부터 10년 동안이 최전성기였다. 여의도 전경련 회관이 지어졌고, 서울 올림픽이 유치됐다. 정 회장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전경련 앞에 '재계의 본산'이라는 말이 붙고, 전경련 회장이 '재계의 총리'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전경련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 당시 회장이던 최종현 회장이 강하게 반발했고, SK는 한동안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돼야 했다. 여기에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고 1998년 전경련이 빅딜을 추진하면서 내분이 생겼다.

2000년대 들어서자 재계와 노동계 간의 갈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갈등이 심화됐고 통상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 동반성장, 갑질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총수들은 전경련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김우중 회장을 마지막으로 국내 5대 그룹에서 회장을 맡은 적이 없다. 26·27대는 고 김각중 전 경방 명예회장, 29·30대는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31·32대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회장직을 맡았다.

전경련 회장 기피 현상은 회장단 구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전경련 회장단은 회장 1명, 상근부회장 1명, 부회장 18명 등 2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경련은 지속적으로 회장단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전경련은 올해 정기총회에 앞서 2013년부터 30대 그룹 총수에 한정됐던 회장단 자격을 50대 그룹으로 확대했다. 그룹 부도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과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사퇴하면서 생긴 빈자리를 메꿔야 했을 뿐만 아니라 재계 곳곳에서 전경련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회장단 자격 확대에 따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이수영 OCI그룹 회장,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등이 부회장 후보로 거론됐다. 허 회장과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직접 영입에 나섰다. 2~3명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됐다. 하지만 이들 모두 가입을 고사했다.

신규 영업된 부회장은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유일하다. 50대 그룹 수장으로 가입이 한정된 전경련 회장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사. 종근당의 재계순위는 716위(2013년 자산 기준)다. 이 회장도 처음에는 부회장 선임 제의를 고사하다 막판 수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경련 측은 이 회장 선임에 대해 "2003년경 업종별로 다양한 목소리를 전경련에 담아내자는 취지에서 각 업종 대표들이 부회장으로 선임됐는데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이 그 역할을 맡았던 적이 있다"며 "허 회장의 타계 이후 제약업계 목소리를 전해 줄 부회장이 없었는데 이번에 이 회장을 영입했고 그 역할이 주어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정치 일동제약 회장과 강정석 동아쏘시오홀딩스 사장이 전경련 이사로 신규 선임된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회장단 확대 시도 무산 21명→20명
절반도 안 되는 전경련 회의 참석률

현재 전경련 부회장은 이승철 상근부회장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구본무 회장, 김승연 회장, 조양호 회장, 정몽구 회장, 이준용 회장, 신동빈 회장, 최태원 회장, 이장한 회장, 박영주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등이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제대로 전경련 활동을 하는 인사는 적다. 이건희 회장은 와병 중이고 최태원 회장은 수감 중이다. 정몽구 회장은 전경련과 거리를 둔 지 오래다. 김승연 회장은 집행유예 상태고 박용만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고 있어 전경련 회장단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조양호 회장도 '땅콩 회장'사건 여파로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김준기 회장도 지난 2007년 전경련 운영에 불만을 표시하고 부회장직을 사퇴한다는 의사를 밝힌 뒤 현재까지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구본무 회장도 1999년 이른바 '빅딜 사건'이후 "전경련이 재계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발을 끊었다.

장세주 회장과 박용만 회장의 경우에는 활동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었다. 박용만 회장은 형인 박용현 회장에 이어 그룹 회장에 오른 시기가 2012년이기 때문에 2013년이 돼서야 선임됐고 장세주 회장도 같은 해 법정관리를 이유로 사임의사를 밝힌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빈자리를 채웠다.

전경련 관계자에 따르면 격월로 열리는 회장단 회의에 참석이 가능한 회장단은 10명 정도. 실제 참석은 6~7명 정도만 이뤄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참석률이 절반을 넘긴 경우는 손에 꼽는다. 지난해 1월9일 새해 첫 전경련 정기 회장단 회의에 국내 5대 그룹 총수 가운데 참석한 사람은 신동빈 회장 단 한 명뿐이었다.


두 달 뒤 신축회관 첫 회장단 회의 때는 회장단 21명 가운데 7명만 참여했다. 국가경제 현안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밝히는 자리가 아니라 소규모 친목 모임으로 전락한 것이다. 참석률이 극히 저조하자 회장단 회의는 아예 비공개로 바뀌어 개회 여부를 모르는 지경이다.

2011년 2월,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허 회장은 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10대 그룹 내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된 것이 무려 11년 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 회장은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는 동안 ▲초과이익공유제 추진 ▲기업별 동반성장지수 발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 ▲법인세 감세 철회 움직임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등 재계에 대한 정치권 압박이 거세졌지만 전경련의 대응을 없었다.

허 회장이 침묵을 깬 것은 취임 4개월 만인 2011년 6월 기자간담회서다. 이날 허 회장은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난하고 감세 철회 논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이 했다. 또 휘발유 가격과 동반성장 등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가진 간담회에서는 "오늘날 중요한 정책결정에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정부 압박 발언을 했다.

재계는 환영했다. 이제야 전경련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허 회장이 몇 차례 여의도로 호출된 후 전경련은 꼬리를 내렸다. 독설은 자취를 감췄고 전경련은 중립 노선을 탔다.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2013년 이후에도 전경련은 특별한 발전이 없었다. 회원사 문턱을 낮추고 회장단을 추가 영입키로 하는 등 사업·조직 개편에 착수했지만 2기 임기가 다 돼서도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부회장 추가 영입 시기를 연장하는 수준에 그쳤다.

섣부른 기대 금물
보여주기 될 수도

허 회장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3기 임기를 시작했다. 지금 전경련 앞에는 법인세 인상과 기업인 가석방, 반기업 정서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허 회장은 일단 나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취임식 후 기자들과 만나 "법인세는 낮춰야지 올리면 안 된다"며 "앞으로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재계는 이번만큼은 대놓고 반기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며 "지금 허 회장이 내고 있는 목소리가 앞으로도 죽 이어질지, 아니면 임기 초기 보여주기식으로 그칠지 두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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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