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몰린 홈플러스 막전막후

고객 호구 취급 “잘 되나 보자”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대형마트 홈플러스의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착한 기업’간판을 달고 있는 홈플러스. 고객들은 철저히 속았다.

 
지난 1일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이정수 부장검사)은 회원정보를 불법 수집하고 보험사에 판매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도성환(60) 사장과 김모 전 부사장 등 전·현직 홈플러스 임직원 6명 및 홈플러스 법인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회원정보를 받은 보험사 2곳의 관계자 2명도 함께 기소됐다. 
 
30억에 팔아먹어
임원 불구속 기소
 
합수단 조사에 따르면 도 사장 등 홈플러스 임직원들은 201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11차례 경품행사에 응모한 총 712만 건을 보험사 7곳에 팔아 고객정보 건당 1980원으로 148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홈플러스 쪽은 다른 방식으로도 확보한 고객 개인정보 1694만건도 보험사 2곳에 팔아 83억원을 챙긴 정황을 포착했다. 홈플러스는 보험서비스팀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개인정보 장사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합수단이 밝힌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불법 수집·유출 사건 수사 결과를 보면 ‘홈플러스 보험서비스팀’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서비스팀은 홈플러스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만든 부서다. 7명으로 구성됐으며 최근에는 9명까지 인원이 늘었다. 외형상 보험 업무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매출의 80∼90%는 고객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얻은 신상정보를 보험회사에 판매해서 얻는 수익이었다. 보험서비스팀은 매년 수익목표를 100억∼200억원씩 세웠다. 7∼9명이 이 같은 수익을 거두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합동수사단의 수사도 이 부분에 주목해 진행됐다.
 

조사결과 경품행사는 외견상 고객 사은행사였지만 사실상 응모 고객의 개인정보를 빼내려는 목적이 깔렸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통상 경품행사에는 응모권에 성명과 연락처만 쓰면 되지만 홈플러스는 생년월일과 자녀 수, 부모 동거 여부까지 적어내도록 했고 이를 기입하지 않은 고객은 경품추첨에서 배제했다. 응모권 뒷면에 고객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보험사를 기재했지만, 1㎜ 글씨로 적어놔 고객 대부분이 이를 알지 못했다. 개인정보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고객들의 분노가 터지는 대목이다.
 
고객 개인정보 712만건 불법매매
경품 미끼로 수집해 건당 1980원
 
지난해 경품사기 사건이 드러나면서 직원들을 경품사기에 동원했다는 홈플러스 노조의 증언도 나오기도 했다. 당시 홈플러스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는 홈플러스가 본사 차원에서 응모권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지침을 내리고 관리, 응모권 실적 올리기를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 경품 행사를 진행해왔다는 정황이 담겨있다. 말하자면 부당이익을 챙기기 위해 직원까지 사기에 가담하게 만들었다는 말이 된다.
 
합수단은 홈플러스가 개인정보를 팔아 얻은 수익을 추징하고, 대형 유통업체 등의 개인정보 장사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라이나생명과 신한생명이 홈플러스가 개인정보를 판매한 보험사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에 대해 홈플러스는 두루뭉술한 사과문과 진정성 없는 조치로 또 한번 고객들의 공분을 샀다. 일단 합수단은 국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2400만건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팔아넘긴 조직적인 범죄 행위라고 판단하고 있다. 
 
합수단의 발표가 있고 하루 뒤 홈플러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과문은 첫 화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홈페이지 맨 하단 왼쪽 아래에 공지사항 게시판을 클릭하고 들어가야만, ‘경품행사 건과 관련하여 고객님께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문구의 두루뭉술한 사과문을 볼 수 있게 꼼수까지 썼다. 더 나아가 홈플러스는 뻔뻔한 태도까지 보였다. 합수단의 발표가 있고 난 뒤 “이번 검찰의 수사결과를 통해 밝혀진 사항에 대해 철저히 개선토록 하겠다”며 표면적으로는 사과 태도를 보였다.
 

두루뭉술 사과
집단소송 추진 
 
그러면서도 “다만 법령 및 업계 보편적 기준에 부합하는 문구로 고객 동의를 받은 부분과 업계에서 유사하게 진행하는 마케팅 활동을 범죄 행위로 보는 부분에 대해 재판과정을 통해 성실히 소명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요약하면 ‘일단 사과는 하겠지만, 잘잘못은 법정에서 가리겠다’는 뜻이다.
 
홈플러스의 이런 파렴치한 사과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경품 사기와 정보 유출 사건이 처음 터질 당시에도 ‘직원들의 개인 비리’라고 선을 그었다. ‘회사 차원에서 관여한 바 없고 회사 임원들도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고객들에게 경품 상품을 미지급한 것에 대해서도  "3주 동안 지속적 개별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경품을 지급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한 경품행사 관련자는 (홈플러스가) 행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당첨자에게 적극적인 연락을 취하지 않는다며 궁색한 변명을 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소비자단체들은 고객 개인정보를 불법 매매한 홈플러스를 상대로 불매 운동에 나선다. 4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10개 소비자단체는 성명을 통해 “비도덕적인 사태를 일으킨 홈플러스에 대해 불매운동으로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며 “소비자의 권리 침해 및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진행을 검토 중이며 향후 공동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불법 매매에 대해 정부 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며, 홈플러스는 즉각적으로 불법 매매한 피해자 및 판매 정보내역, 유출 시점, 판매 보험사 등에 대한 공개와 함께 대국민 사과와 조속한 피해배상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불매 운동이 확산될 전망이다. 
 
지난해도 홈플러스는 8∼10월 3개월 매출이 이전 3개월(5∼7월) 대비 2∼3% 정도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온라인 회원 가입률은 6% 정도 하락하고, 회원 탈퇴율은 12% 정도 늘었다. 소비자가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의 소리’ 등록 건수는 올 8월 한 달 동안 전달보다 65% 증가했다. 이런 타격의 원인은 끊이질 않는 사건 사고로 인한 이미지 악화를 꼽을 수 있다. 
 
나아가 홈플러스 퇴출을 주장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연합)은 3일 홈플러스가 소비자를 기만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판매했다고 질타하면서 홈플러스 같은 기업을 퇴출시킬 수 있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대표 김성훈)는 이날 논평을 통해 “홈플러스 사태는 <경품이벤트를 가장하여 ‘고의로’ 개인정보를 불법 취득했다는 점><해킹에 의한 유출이 아니라 ‘부당이득을 위한 판매목적’으로 유출했다는 점><개인정보를 거래한 시기가 지난해 카드사 및 KT의 개인정보유출 사태로 온 국민이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던 시기와 일부 동일하다는 점> 등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면서 “따라서 소비자를 기만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판매한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이를 불법적으로 구매한 보험회사까지 일벌백계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고 엄중처벌을 촉구했다.
 
지난해부터 펑펑
날개없는 추락
 
정치권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일 대형 유통사인 홈플러스가 경품행사 등을 통해 입수한 고객 개인정보를 여러 보험사에 불법적으로 팔아넘겨 막대한 수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난 것과 관련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책 마련을 촉구했다.
 
새정치연합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에서 “골목상권 죽이기, 갑질횡포가 만연하다는 지적을 받는 대형마트에서 고객의 개인정보까지 팔아치웠다는 수사결과가 발표됐다”며 “홈플러스가 경품행사 하겠다며 응모한 고객정보를 고스란히 보험사에 넘기고 1건당 1980원씩 받아 챙겼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 정보가 1980원에 보험회사에 팔려가고 그 돈은 대형마트가 챙기는 줄 알았다면 경품에 응모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런 행위를 한 홈플러스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 “홈플러스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박근혜정부는 이와 같은 범죄행위 재발을 위한 제도개선책 또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사법당국은 이 같은 범죄행위를 명명백백 밝혀야 할 것이고, 타사에서도 이런 불법행위가 없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새정치연합 김진욱 부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홈플러스의 보험서비스팀이 하는 주된 일이 경품행사에 응모한 일반인과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판매하는 것이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고객정보를 편법으로 모으고, 이를 불법으로 팔아넘겨 온 것이 업계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납될 수는 없고, 용서되어서도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홈플러스가 고객을 속이고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판매사업을 한 것은 고객을 속인 행위이고, 개인정보 보호에 앞장서야 할 기업이 고객정보를 팔아넘기는 데 앞장선 대표적인 정보보호불감증의 예”라며 “검찰의 이런 봐주기 혹은 솜방망이 처벌은 고객의 피해에 대한 소극적 대처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범죄에 대한 일벌백계는 고사하고, 또 다른 범죄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자초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검찰은 파렴치하고 비도덕적인 홈플러스 대표 등을 구속하지 않고 봐주기식 솜방망이 처벌을 한 명확한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라며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고객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끊임없이 기업에 의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각종 컴퓨터 범죄와 개인의 사생활 침해 등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로서 원래의 명칭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정치권 안팎 비난 봇물
소비자 불매운동 확산
 
국가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등 공공기관은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를 본래의 목적 외로 이용하거나 제공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또한, 부당하게 개인정보를 제공받아 사용한 자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받는다.
 
우선 개인정보보호는 근본적으로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철저히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어떻게, 어느 범위까지 타인에게 전달되며 이용될 수 있는지를 그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때문에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행정청의 위법 혹은 부당한 처분이나 부작위로 인해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를 받았다면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권리침해가 다수 정보주체에게 같다거나 비슷한 유형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분쟁조정위원회에 집단분쟁조정을 의뢰하거나 신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집단소송은 손해배상 보상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고, 소송절차 등이 복잡해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2년 KT 고객 피해자 2만8000명은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책임으로 KT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다. 이들 피해자 2만8000명은 각각 소송단을 구성해 KT를 상대로 6건의 소송을 냈는데, 2012년 8월 피해자 대부분이 해당된 5건 병합 사건에서 1인당 10만원씩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이진화 판사는 피해자 100명이 KT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한 사람당 10만원씩 모두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 판사는 “KT가 피해자들의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면서 “당사자들이 스팸 메시지 등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KT는 고의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고객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는 의도적으로 고객정보를 불법 매매했기 때문에 보상 및 관계자들은 형사 처벌까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실련은 정부와 국회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구제가 이루어지고, 사업자들에게는 부당행위에 대한 대규모 피해배상으로 기업이 존폐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도 조속히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은 그 보상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고, 소송절차 등이 복잡해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에 나서기 어렵다”면서 “이렇듯 기업에 형사적 책임 외에 민사적 책임 등 관련 책임을 온전히 묻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기업들의 안이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집단소송제 도입의 시급성을 거듭 강조했다. 
 
“당장 수갑 채워”
구속 수사 촉구
 
취임 1년반 만에 4번의 국정감사 증인출석이라는 전례를 남겼던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이 이번에는 현역 유통업계 사장으로서 재판장에 나서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홈플러스가 경품을 미끼로 고객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보험사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면서 기업의 도덕성은 물론 도 사장의 경영능력 또한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또한 홈플러스는 모기업 테스코의 분식회계, 매각설, 짝퉁 운동화 판매 등에 이어 경품추첨 비리, 고객정보 불법판매까지 사실로 드러나며 ‘도성환 체제’는 끝 모를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홈플러스 기막힌 돌려먹기
 
홈플러스는 당첨을 자체적으로 조작해, 당첨 고객들에게는 문자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지난 2011∼2013년 진행한 3차례의 경품 행사에서 시가 6200만원 상당의 1㎏짜리 순금막대(골드바), 아우디 A4(4470만원), BMW320d(4370만원), 뉴SM7(3100만원), K7(2935만원) 등의 경품 당첨자를 선배와 친구 등으로 조작한 뒤 수령한 경품을 팔아 약 2억1000만원을 나눠 가졌다. 
 
자신이 원하는 추첨 결과를 조작해 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당첨자가 당첨 사실을 알고 연락해 와도 다이아몬드 등 애초 내건 경품 대신 홈플러스 상품권 등을 주고 넘어간 경우도 잦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조작한 직원 2명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정모 과장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같은 팀 최모 대리에게는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