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산물 수입 재개 막후

원전사고 일어난 후쿠시마 생선 식탁 오른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정부가 2013년 9월부터 시행된 일본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의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정부가 WTO 제소까지 운운하며 우리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압박하자 한일관계 개선용 카드로 일본산 수산물 수입재개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방사능 오염 수산물이 우리 식탁에 오를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주변 8개 현의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가 조만간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5일 정부 관계자는 일본 수산물 수입 규제 해제 여부를 놓고 관계부처 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일본은 우리정부에 수산물 규제를 빨리 풀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법적인 근거가 약한 조치라 우리나라 전문가가 현지실사를 하고 있다. (양국 간 이견을)좁혀나가야 한일 경제관계가 다독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재개 임박?
 
이 당국자는 “올해가 한일 복교 50주년이므로 부담되는 사항을 빨리 털자는 게 외교부의 입장”이라며 “(수산물 수입규제 관련)유관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3월11일 후쿠시마 사고 당시 모든 나라가 일본 수산물 금수조치를 했지만 재작년 9월 방사능 오염수가 흘러나왔을 때 추가 수입제한 조치를 한 나라는 우라나라가 유일하다”며 “지금은 모든 나라가 조금씩 풀고 있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통상법상 수입규제의 법적근거를 제시할 의무가 수입국인 우리에게 있다”며 “지난해 12월에 했고 지금 일본에서 하고 있는 게 입증 작업이다. 조사해봤더니 과학적으로 위해성이 입증 안됐는데 계속 수입을 금지하면 아마 일본은 이 문제를 WTO(세계무역기구)로 가져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당국자는 “(수입 재개를)결정할 부서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조사를 진행 중이라서 조사결과를 받아보고 충분히 검토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며 “정부나 외교부가(수입규제를)해제하는 방향으로 검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외교부 노광일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우리 측 조사단이 과거에 한 번 실사현장을 가서 실사를 한 적이 있고 앞으로 그런 조치가 또 이뤄질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조치들을 통해 과학적인 안전성 등이 입증되면 거기에 따라 우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주변 8개현 수입금지 해제 검토
국민건강 버리고 국교정상화 선택? 
 
앞서 정부는 2013년 9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유출로 국민 불안이 가중되자 후쿠시마 등 8개 현에서 생산되는 모든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시켰고 일본 내 다른 지역 수산물에 대한 검사도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로 인해 방사능에 오염된 수산물이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본은 2007년 한 해에만 326억엔(한화 2996억원)어치의 수산물을 한국에 수출했으나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한 이후 지난해 8월까지 85억엔(한화 781억원) 수출에 그쳤다. 그래서 일본이 한국의 규제 강화에 대해 부당하다며 WTO에 제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어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우리정부가 일본에 숙이고 들어가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와 외교부에 일본 후쿠시마 주변 8개 현 수산물 수입재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21일 시민방사능감시센터·여성환경연대·환경운동연합 등 30여개 단체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외교부는 후쿠시마 주변 8개 현 수산물 수입재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나아가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재개가 아니라 일본산 모든 식품의 수입을 금지하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은 앞서 외교부의 입장에 따른 조치였다. 주최 단체들은 회견 도중 수입 재개된 일본 수산물을 먹는 한 가정의 모습을 퍼포먼스로 선보이기도 했다. 식탁에 일본 수산물을 올리는 외교부 모습을 표현하면서 외교부의 방침을 비판했다.
 
시민단체들은 외교부의 어설픈 태도를 두고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을 맞아 일본에게 주는 선물로 수산물 수입재개 조치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국민안전을 희생삼은 굴욕적 외교”라며 “외교부는 자신들의 무능으로 망친 한일 외교를 복원하기 위해 국민건강권을 내어주는 굴욕외교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사람도
안 먹는데…
 
앞서 우리정부는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에서 수산물만 수입하지 않았지 후쿠시마현 수산물가공품과 식품첨가물은 꾸준히 수입해왔다. 2013년 한국이 수입한 후쿠시마 현 가공식품 등은 6만3244kg에 이른다.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원전사고 이후 일본산 식품에 대해 어떠한 규제조치도 하지 않다가 방사능 오염수 사태가 벌어진 이후에야 수산물 수입만 중지하고 있다”며 “이에 반해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금까지 우리보다 훨씬 강도 높은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중국은 후쿠시마 주변 10개 현에 대한 모든 식품과 사료 수입을 중단했다. 대만은 5개 현에 대한 모든 식품의 수입금지와 5개 현 외에서 수입되는 과일, 채소류, 음료수, 유제품 등을 현지에서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러시아 또한 후쿠시마 주변 8개 현 수산물과 수산가공품 수입을 중지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는 여전히 바다로 방출되고 있으며 오염수를 통제할 어떠한 해결대책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일본 국민도 일본 정부 발표를 믿지 않고 후쿠시마 주변 농수산물을 먹지 않는 상황에 왜 우리나라 정부가 돈을 주고 방사능 오염 수산물을 수입해 국민들 식탁에 올리려 하느냐”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조경태 의원도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 검토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22일 조 의원은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주변국들은 강도 높은 수입 금지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반대로 수입 재개를 시도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그는 “원전 사고 이후 일본산 수산물의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도 수입 재개를 검토한다는 것은 국민안전을 희생삼은 굴육적인 외교로 보일 수밖에 없다”면서 “외교상 어떠한 문제도 국민건강보다 우선될 수 없다. 정부는 국민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결정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식품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9월 수도권 지역 만 20세 이상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일본 원전사고와 방사능에 대한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92.6%가 ‘일본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누출이 국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어패류 등의 수산물 오염’에 대한 우려가 52.9%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국내산 식품(72.5%)보다 일본산 수입식품(93%)의 안정성에 더 높은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소비자의 76.1%는 일본 원전사고와 방사능 관련 정보가 ‘국민들에게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68.9%는 일본 원전사고에 대한 정부의 조치 및 대응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49.8%는 TV방송으로 방사능 관련 정보를 얻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인터넷(31.3%), 신문(13.0%) 등의 순이었으며, 정부부처 및 유관기관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얻는 경우는 단 1.3%에 불과했다.
 
<일요시사>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입식품 중 방사능 검사현황 자료를 통해 일본 각지에서 수산물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원산지는 도쿄도, 교토부, 훗카이도, 오사카부, 야마구치현, 나가사키현, 사가현, 후쿠오카현, 히로시마현, 오이타현, 아오모리현, 이바라키현, 아이치현, 니가타현, 효고현, 지바현, 도치기현, 미에현, 나라현, 오키나와현, 기후현, 이와테현, 구마모토현, 사이타마현, 가고시마현, 가나가와현, 에히메현, 오카야마현, 군마현, 돗토리현, 도치기현, 와카야마현, 시마네현, 도쿠시마현 등이다.

일본에서 수입된 수산물 종류는 활돔(벵에동), 활가리비, 냉장돔(황돔), 활장어(먹장어), 냉동눈다랑어(횟감), 냉동눈다랑어(목살), 냉장명태, 냉장홍어, 활꼬막, 활꼬막(새꼬막), 활우렁쉥이, 냉장갈치, 활게(가시투성왕게), 냉동전갱이(흑점줄전갱이, 포장횟감), 냉동다랑어(남방참다랑어), 냉동다랑어(참다랑어, 횟감), 냉동방어(포장횟감), 냉동방어(잿방어, 포장횟감), 냉동어란(연어알, 횟감, 캐비아대용), 냉동큰실말, 냉동가리비살(자숙), 냉동가리비살(외투막), 활바리(자바리), 활전복, 활방어, 활돔(강담돔), 활돔(참돔), 냉장가오리, 냉장준치, 활해삼, 냉장민어(수조기), 냉동기름치, 냉동꼬막살(새꼬막, 자숙), 냉동상어(청상아리), 냉동멸치 등이다.

문제는 후쿠시마 인근 7개현(후쿠시마·이바라키·군마·이와테·도치기·지바·아오모리)에서 수산물가공품 등 식품이 계속 수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근 한 달 동안 수입된 품목은 이렇다.

▲후쿠시마현=수산물가공품, 혼합제제 ▲아오모리현=수산물가공품, 조미건어포류, 청주, 빵류, 드레싱 ▲도치기현=카레, 복합조미식품, 곡류가공품, 유탕면류, 장류절임, 식초절임, 청국장, 발효식초, 기타식초, 리큐르(알코올음료), 청주 소스류, 캔디류(캐러멜), 카라멜색소, 글리세린지방산에스테르 ▲이바라키현=과자(쿠키·비스킷·크래커·스낵과자), 효모추출물, 초콜릿가공품, 글리세린지방산에스테르, 혼합제제, 국수, 전분가공품, 기타가공품, 열량 및 영양공급용 의료용도식품, 젖산, 기타천연착향료 ▲군마현=복합조미식품, 떡류, 소스류, 청주, 혼합제제 ▲지바현=비타민, 볶은커피, 양조간장, 소스류, 당류가공품, 청주, 알긴산나트륨, 곡류가공품, 당류가공품, 액상커피, 카페인, 청주, 혼합제제 ▲이와테현=과자(크래커), 무기질, 청주 등이다.

수산물 가공품
계속 수입했다

세슘과 요오드는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본산 수산물 등 식품이 꾸준히 수입됐음에도 검사결과가 모두 ‘불검출’로 ‘적합’ 판정을 받은 것은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전수조사가 아닌 샘플조사여서 어느 정도 한계는 있다.

한 대기업 영양사는 “회사에 들어오는 모든 수산물은 국산으로 표기돼 있다”며 “일본산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산 수산물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김현 녹색당 전 사무처장은 “국민의 안전을 우선한다면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 단계서부터 규제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정부는 통상 외교에 더 무게를 두는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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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