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공간의 순례자' 서양화가 윤정선

과거를 되불러오는 그림의 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 24일부터 서울 인사동 갤러리그림손에서는 서양화가 윤정선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엠볼리움'. 엠볼리움(간극)이란 연극 상영 도중 막간의 진행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펼쳐지는 짧은 공연을 뜻한다. 윤 작가의 그림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삶 곳곳에 숨어 있는 엠볼리움을 발견한다.

긴 시간의 흐름 동안 묵묵히 역사를 목격한 사도회관이 서정적인 풍경화로 관객 앞에 펼쳐진다. 윤정선 서양화가는 건물이 지닌 기억의 이야기를 엠볼리움이란 전시로 풀어냈다.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외관과 바로 양 옆에 세워진 가로등 불빛은 그림 속 공간을 연극무대처럼 보이게 한다.

그림을 연극무대처럼

주로 빈 공간을 통해 작품의 모티브를 얻는 윤 작가는 의도된 연출로 화면에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는 데 일가견이 있다. 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지금 막 연극의 한 세션이 끝난 것처럼 고요하다. 누군가가 무대 뒤편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다음 세션의 막이 열리면 배우가 들어설 것 같은 장면도 있다.

그간 윤 작가는 유화와 아크릴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엠볼리움에서는 아크릴을 자제하고 유화작품을 대거 선보였다. 색이 더해지며 특유의 깊은 맛을 내는 유화의 강점을 빛의 대비를 활용해 극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야경을 위주로 한 공간의 표정과 적막으로부터 연상되는 상상의 내러티브는 한 작품에 녹아있다.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이전 작품보다 크기 면에서 대형화된 것이 눈에 띈다.

윤 작가의 삶은 그림의 소재가 될만한 곳을 찾아 떠돈 순례자를 떠올리게 한다. 하계훈 미술평론가의 평론을 인용하면 순례의 궤적은 작가가 열었던 몇 차례의 전시회를 통해 그림 속에 기록됐다. 윤 작가는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으로 조형수업을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때의 경험은 윤 작가에게 대체 불가한 무형의 자산처럼 남아있다.


역사 목격 사도회관 서정적 풍경화로
유화 강점 빛의 대비 활용해 극대화

윤 작가는 명동성당 언덕부근에 자리 잡은 사도회관을 이번 작품의 무대로 선택했다. 오래된 벽돌 건물에 해가 저물고 밤이 내려온 모습은 낭만적이면서도 쓸쓸한 감성을 전달한다. 몇 해 전부터 윤 작가는 야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단순한 우울감이 아닌 밤이라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무드에서 오히려 상쾌한 호흡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윤 작가는 작업실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소통의 단절을 털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귀가 시간에 인적이 드문 야경에서 사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밤의 이미지는 차분한 명상의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여러 일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제까지 윤 작가의 작품은 자신의 주변을 들추는 것에 관심을 뒀다. 유학 시절에는 런던의 거리와 북경의 자금성이 매개로 쓰였다. 한국에선 고궁과 북촌 부근의 오래된 집들이 캔버스로 들어왔다. 단순히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 담긴 이야기를 담으려했다. 그 작업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윤 작가의 눈길을 사로잡은 사도회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업지역이며 관광 명소로 불리는 명동 한복판에 있다. 그림 속 사도회관은 소란스럽고 번잡한 주변 분위기를 바꿔놓는 이질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사도회관에는 조선 말기 천주교 사제들이 미사를 집전했던 숨결, 순교자들의 기도, 전쟁 폐허 위에 남겨진 소시민들의 애환이 중첩된 이미지로 쌓여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민주화항쟁도 주마등처럼 스친다.

자유로운 상상

사도회관을 마주한 화가는 연극배우도 되고 동시에 관객도 되면서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과거를 되불러오는 힘을 가진 연극적 공간의 힘이다. 작가의 상상 속에선 늘 차원을 넘나드는 엠볼리움이 펼쳐지고 있다. 엠볼리움전은 올 30일까지 진행된다.

 


<angeli@ilyosisa.co.kr>

 

[윤정선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영국 브라이튼 대학교 순수미술 석사과정 졸업
▲중국 칭화대학교 미술학 박사과정 졸업
▲개인전 퓨전갤러리(2000) 관훈갤러리(2004) 모란갤러리(2005) 금호미술관(2006) 영은미술관(2014) 등
▲그룹전 타이난 문화예술회관(2004) 가나아트센터(2005) 인천시립미술관(2006) 인사아트센터(2007) Heiqiao Studio(2009) 등
▲수상경력 제1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1996), 금호 영아티스트 선정(2004), 제24회 석남미술상 수상(2005), 송은미술대상전 선정(2007·2009), 소마미술관 아카이브 등록(2012)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2014) 등
▲작품소장 대전지방법원홍성지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금호미술관, 용인인터컨티넨털 리조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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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