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후폭풍' 최대 수혜자 & 최대 피해자

가만히 앉아있다 '대박' 치고 '쪽박' 찼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정윤회 문건 파동이 서서히 정리되는 모양새다. 검찰은 이미 해당 문건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는 자체 결론을 내고 출구전략을 고심 중이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 파동은 강력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단 몇 주간 지속된 이슈였지만 그 속에서 유력 정치인들의 명암은 크게 엇갈렸다. <일요시사>가 정윤회 문건 파동 속에서 울고 웃은 인물들을 살펴봤다.

정윤회 문건 파동의 표면적인 최대 수혜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이다. 정윤회 파문이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새정치연합은 선거에서 연전연패했고 내부 분란 등으로 정국 주도권을 새누리당에 완전히 빼앗긴 상황이었다.

심지어 당내 일각에선 분당론을 공공연히 언급하며 신당 창당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등판해 당을 추슬러야 하는 중책을 맡았던 문 위원장으로서는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영웅 문희상
새정치 탄력

그런데 마침 정윤회 파문이 불거지면서 이런 상황들은 한방에 모두 해소됐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폭락했고 새정치연합은 그 과정에서 반사이익을 누렸다. 당내 신당 창당 움직임도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흐지부지되는 양상이다. 어찌됐든 문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급한 불은 끄게 됐고, 결과적으로 위기에서 당을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만약 검찰이 해당 문건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고 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수차례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다는 논란을 겪은 만큼 문 위원장과 새정치연합은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 위원장과 새정치연합으로서는 이번 파문이 잃을 것이 없는 장사라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도 뜻하지 않게 이번 파문의 수혜자가 됐다. 박 의원은 지난 6월 이른바 ‘만만회(이재만 비서관, 박지만 EG회장, 정윤회)’가 비선에서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논란을 빚었었다.

문희상, 졸지에 당 구한 영웅
이명박, 박근혜 X파일 열었나?


이 과정에서 명예훼손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검찰은 만만회로 지목한 세 사람이 청와대 인사에 개입한 적이 없다며 박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 결과에 따라 박 의원은 자칫하면 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세 사람이 모두 검찰 수사를 받았기 때문에 박 의원은 명예훼손 혐의를 사실상 벗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의 숨겨진 최대 수혜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이계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윤회 파문이 불거지기 전까지 야권은 이른바 사자방(사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이명박정권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위해 야당의 협조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침 정윤회 파문이 터져 나왔다. 사자방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는 떨어졌고, 궁지에 몰렸던 친이계 의원들은 청와대를 쇄신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죽하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문건을 시중에 유출한 것이 친이계가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까지 들려온다.

이명박 건재
힘받는 친이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는 이른바 ‘박근혜 X파일’을 작성했었는데 당시 자료를 활용해 이번 파문을 일으킨 것 아니냐는 억측이다. 그만큼 시기가 절묘했다. 여야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개편과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빅딜하기는 했지만 이미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져 앞으로 제대로 진행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친이계에서는 정윤회 문건 파동을 덮기 위한 수단으로 친박계가 자원외교 국정조사 카드를 받아들인 것이라며 오히려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 내 개헌론자들도 정윤회 파문의 수혜자들로 손꼽힌다. 개헌 전도사로 불리는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정윤회 파문을 계기로 개헌 주장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원인이라며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 개헌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의 개헌 불가론에 막혀 개헌론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중국 방문 기간 개헌 봇물론을 언급했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사과까지 하고 바짝 엎드리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된 김무성 대표도 이번 파문의 수혜자로 볼 수 있다. 개헌론 파동 과정에서 박 대통령에게 사실상 완패했던 김 대표는 이번 파문을 계기로 다시 당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게 됐다.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새누리당은 친이계가 득세하며 빠르게 당을 장악해나가고 있었지만 친박계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이번 파문으로 당 내에서 친박계의 견제는 크게 줄어들었고 김 대표가 주창해온 개헌론도 탄력을 받게 됐다.

이번 파문으로 집권 2년 차 만에 레임덕 우려까지 하게 된 박 대통령은 앞으로 김 대표와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지게 됐다. 김 대표로서는 차기 대권을 위한 정지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정윤회 문건 파동을 계기로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그동안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왔던 당 내 일부 인사들도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현재 정부여당 내에서는 정윤회 문건 파동을 계기로 대규모 개각으로 국정쇄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개각은 물론이고 청와대 내부도 조만간 상당한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따라서 그동안 당내에서 소외됐던 인물들이 대규모 인사변동 과정에서 한 자리씩 꿰차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파동 과정에서 수혜자도 있었지만 피해자들도 있다. 물론 최대피해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런 와중에 의외의 유탄을 맞게 된 피해자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유력 대권주자지만 오랫동안 당을 떠나있었던 김 위원장은 당내 세력이 없다는 것이 최대 약점으로 꼽혀왔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최근 박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는 발언들을 이어가며 친박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윤회 문건 파동이 불거진 직후 김 위원장이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에서 특강을 하면서 사단이 났다. 서강대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일 특강에서 박 대통령을 강하게 두둔하다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특강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두고 학생들과 설전을 벌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후 해당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지지율이 소폭 하락했다.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친박계와 전략적 동맹을 맺으려던 김 위원장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내년 5월 원내대표 선거를 준비하고 있던 친박계 후보군들도 비상등이 켜졌다. 이번 이슈가 친박계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끝나고 나면 금방 잊혀질 이슈라 내년 원내대표선거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미 당내에서 친이계의 목소리는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역전시킬 마땅한 방법도 없어 친박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탄 맞은 김문수
친박 동맹 차질


박지만 EG회장을 비롯한 대통령의 친인척들도 유탄을 맞게 됐다. 박 회장이 실제로 국정운영에 개입해왔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 파문을 계기로 박 회장은 청와대와 완전히 멀어지게 됐다. 일각에선 박 회장이 박 대통령의 임기 동안 해외에 머물게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여론의 집중 감시를 받게 된 박 회장은 당분간 모든 활동에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 회장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에 유출된 청와대 내부 감찰 문건 중 상당수가 서 변호사에 대한 내용인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다른 대통령 친인척들도 이번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게 됐다. 청와대의 대통령 친인척 감시가 더욱 엄격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일부 친인척들은 자신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과 아무런 관련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인데 이번 사건으로 괜한 오해를 받게 됐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목소리 커진 친이, 궁지 몰린 친박
대통령 친인척 권력에서 멀어져


검찰과 경찰 조직도 피해자로 분류할 수 있다. 검찰은 이미 해당 문건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는 자체 결론을 내고 출구전략을 고심 중이다. 하지만 마땅한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박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는 더욱 추락하게 됐다. 


경찰 역시 이번 문건 파동으로 심한 부침을 겪고 있다.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최모 경위가 자살을 선택하면서 일선 경찰들의 사기는 떨어질 때로 떨어졌다. 최 경위가 유서를 통해 “힘없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경찰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경찰들이 이에 공감했고 경찰 조직 내부에서 최 경위에 대한 동정론도 일고 있다. 실제로 동료 경찰관들은 최 경위 유가족들을 위한 모금운동에도 나섰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도 난데없이 유탄을 맞았다. 이번에 공개된 청와대 문건 원본에 ‘이정현은 근본도 없는 놈이 VIP(박 대통령) 한 명만 믿고 설친다며 VIP 눈 밖에 나면 한 칼에 날리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개헌론 봇물
레임덕 우려

실제로 이 의원은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잇따라 맡아 일하다가 지난 6월 물러났다. 지난 7·30 재·보궐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하긴 했지만 출마 당시만 해도 당선 가능성이 낮다며 이 의원이 권력 중심에서 밀려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었다.

이 의원은 해당 문건이 찌라시에 불과하다면서도 “어떤 자리에서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기분은 영 거시기하다”고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정윤회 문건 파동이 지속되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수혜자와 피해자가 나오게 될까? 정치권은 이번 파문의 추이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십상시 비밀회동 중식당 유명세
"얼마나 맛있기에 정윤회가 단골일까?"

정윤회 문건 파동 와중에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수혜를 입게 된 곳이 있다.

바로 정윤회씨를 비롯한 십상시가 비밀회동을 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강남의 한 중식당이다. 이 중식당은 언론 보도 직후 기자들이 몰리면서 단골들의 발길이 끊기는 등 다소 영업에 지장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손님들이 몰려들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얼마나 맛있기에 정윤회씨가 자주 찾아왔는지 궁금해서 왔다”고 말했다. 저녁 코스요리가 5만원에서 11만원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요즘 해당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면 일주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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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