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후폭풍' 청와대-검찰 손익계산서

급한불 끈 '효자동' '서초동' 발등엔 불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정윤회 문건' 수사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검찰의 잠정 결론은 한마디로 '박관천 자작극'으로 요약된다. 박관천 경정이 허위로 문건을 작성, 유출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검찰 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60%가 넘을 정도로 검찰을 믿지 않는 국민들이 많다. 수사를 의뢰한 청와대와 '하명'을 받고 이행한 검찰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봤다.

이른바 '정윤회 파문'의 최대 관심사는 정윤회씨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십상시'와 함께 국정에 개입했는지 여부와 '정윤회-박지만 권력암투설'의 실존 여부를 밝히는 것이었다. 또 청와대 문건을 누가, 어떤 의도로 유출했는지를 밝히는 것도 관심사였다.

청와대가 만든 동선
따라 수사한 검찰

하지만 검찰 수사는 시작부터 길이 정해져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혹 제기 초반부터 "문건은 찌라시고, 문건 유출은 국정농단"이라고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의 초점은 유출에 맞춰졌다.

결국 청와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수사한 검찰이 내린 잠정 결론은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박관천 경정이 허위 문건을 만들어 유출했다"이다. 

'정윤회 문건'과 별개로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이 정씨가 자신을 미행한다고 의심하는 계기가 됐던 이른바 '미행 보고서'도 박 경정이 세간의 풍문을 모은 수준에서 허위로 작성, 박 회장의 비서 출신 전모씨를 거쳐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즉, '정윤회-박지만 권력암투설'의 단초가 됐던 '정윤회, 박지만 미행설'도 박 경정이 임의로 만든 작품이라는 의미다. 이는 청와대 말단 직원에 해당하는 행정관 한 명에 의해 국정이 농락당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당사자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문건 유출 공범으로 지목된 한모 경위는 "정윤회 문건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검찰이 <세계일보> 및 기업에 정보를 넘긴 당사자로 지목한 최모 경위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이드라인 충실…정치검찰 재확인
"청소부노릇 언제까지?" 부글부글

이에 따라 '정윤회 문건' 수사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고만 떠들썩하고, 실제 결과는 보잘 것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검찰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우선 얻은 것은 청와대의 신임이다. 청와대의 지침을 충실히 따른 만큼 박근혜정권의 신임은 확실히 얻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권력의 시녀'임을 재확인하게 한 수사로 인해 '역시 정치검찰 답다'는 비난 여론도 만만찮다.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 수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사법적 책임을 묻기 힘든 정치적 사안을 청와대가 수사 방향까지 제시해 떠넘긴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의 골치 아픈 사건을 청소하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며 "어떤 결론을 내리든지 국민들이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청와대는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 그렇게 믿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여론을 살펴보면 특검, 국정조사 등을 통한 재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법조계 내에서는 "검찰이 풀 수 없는 사안을 검찰에 떠넘겨 정치적 논쟁을 가열시켰다"라며 "정치적 사건을 정치가 아닌 검찰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 청와대 덕분에 검찰은 또다시 신뢰를 잃게 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의혹 벗은 '청'
시한폭탄 '째깍'

그렇다면 청와대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외형상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검찰 수사가 흘러가면서 각종 의혹에서 벗어나게 됐다. 골치 아픈 문제를 검찰의 손을 빌려 풀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많아 향후 청와대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청와대가 '정윤회 파문'으로 불신과 적폐의 아이콘이 됐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가이드라인 제시, 민정수석실의 관련자 회유, 7인회 모임 조작 의혹 등 각종 논란의 진원지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종 쟁점에 대한 현실적 판단 부재는 논란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청와대는 의혹들이 제기되면 일단 부정했다가 추가 의혹이 제기되면 말을 바꾸거나 침묵하는 식으로 '정윤회 파문'에 대응해 나갔다. 일례로 '정윤회-문고리 권력 3인방'은 오래 전에 관계가 단절됐다고 당사자들이 주장하다가, "정윤회가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지난 4월 통화했다"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증언이 나오자 별다른 해명 없이 "전화 통화만 했다"고 말을 바꿨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이번 사태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 대신 '고소'와 '입단속'으로 위기를 수습하려했던 태도도 청와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증가시키는 데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대응의 정점에는 결국 박 대통령이 있다. 박 대통령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정윤회 파문'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문건을 유출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태도를 줄곧 견지했고, 의혹의 대상자인 정씨와 문고리 3인방은 끝까지 감쌌다.

특히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한 문건 유출은 근본적 책임은 청와대의 허술한 문서관리에 있지만, 이 부분은 외면했다. 문건은 지난 1월 이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고, 지난 4월에는 문건이 대량 유출된 사실을 청와대가 파악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검, 골치 아픈 문제 일단 해결
청, 미완…더 깊은 수렁 위험

이 정도의 문제가 터지면 전반적인 내부 점검이 필요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은 외부 탓'을 하는 바람에 해법이 논의될 여지조차 없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집권 초기부터 누차 지적돼온 현 정부의 불투명한 국정운영 방식이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청와대가 최소한의 국정운영 동력은 확보하게 됐지만, 내부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여전히 안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일부에서는 '청와대 쇄신론'도 제기되고 있다.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윤회 파문'을 계기로 고강도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심재철 의원은 지난 17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이번 문건 유출 사건의 사실관계는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곧 판명날 것"이라면서도 "문제는 일반 국민들이 '찌라시' 수준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심 의원은 이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국정 동력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인사 혁신, 투명한 통치 시스템 작동, 대내외적 소통 강화 등 그간 제기된 지적들을 겸허히 받아들여 과감한 국정쇄신책으로 새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검찰
참혹한 현주소

한편 '한길리서치'가 지난 12∼13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및 청와대 문건 유출'에 대한 검찰 수사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63.7%로 조사됐다. 반면 검찰 수사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8.2%에 그쳤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달 대비 8.2%p 폭락한 40.7%로 나타났다. 반면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 비율은 과반이 넘는 52.3%로 지난달 대비 8.2%p 급증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심지어 박 대통령 지지도가 30%대로 폭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리서치뷰'가 지난 17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박 대통령 지지율은 31.3%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부정 평가는 56.3%로 조사됐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이것이 청와대와 청와대의 하명을 받아 수사에 임한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 그 참혹한 현주소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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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