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랩' 육영재단 사태-정윤회 파문 전격비교

그 집안 그 문제 ‘섬뜩한 데자뷰’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정국의 태풍의 핵으로 부상한 가운데 20여년 전 일어난 ‘육영재단 사태’와 유사한 흐름으로 사건이 흘러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두 사건에는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가족과 ‘최태민 일가’가 등장하고, 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이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결과도 유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로 닮은 육영재단 사태와 정윤회 파문을 전격 비교했다.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은 관련자들의 주장이 엇갈리며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작성한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유출 및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 청와대와 정윤회씨는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작성자 측(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전 행정관 등)에서 유출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십상시 vs 7인회
진실공방 돌입

실제로 청와대는 문건 작성을 주도한 조 전 비서관이 이른바 ‘7인회 모임’에서 허위정보를 양산하고,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의 내부 감찰조사 결과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가뜩이나 박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으로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던 터에 아예 쐐기를 박은 셈이다.

청와대가 적시한 ‘7인회’ 멤버는 조 전 비서관, 박 전 행정관, 오모 청와대 행정관, 고모 전 국정원 고위간부, 박지만 EG회장의 측근 전모씨, 언론사 간부 김모씨, 박모 대검찰청 수사관 등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7인회’에 박 회장의 측근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청와대가 조 전 비서관의 배후로 박 회장을 지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 측은 “7인 모임은 조작”이라며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시나리오를 짜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매체는 “정씨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면 그때는 박 회장이 직접 나설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두 일가 인물 등장에 비슷한 갈등 구조
사건 발단·전개 과정 유사……결과도?

‘정윤회 문건’에 나오는 십상시 모임을 부인하는 십상시 측 인사들이 청와대 감찰 결과 드러난 7인회 모임을 부인하는 7인회 측과 다투는 희안한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24년 전 1차 육영재단 사태와 유사한 점이 많다. 1990년 8월 당시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1982∼1990)은 동생 박근령·박지만씨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A4용지 12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사퇴한다.
 

2007년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된 편지에는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에게 철저히 속은 죄밖에 없다.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하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다. 언니와 저희들을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건져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최태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언니인 박근혜의 청원(최태민을 옹호하는 부탁)을 단호히 거절하는 방법 외에 뾰족한 묘안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최씨도 다스릴 수 있고, 언니도 최씨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최태민 vs 동생들
힘겨루기 결과는?

특히 편지에는 “최태민이 언니 박근혜의 말 한마디면 어떤 위기도 모면할 수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도 구출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며 그의 비위와 전횡을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다. 편지에 담긴 최씨의 전횡은 크게 ▲금전편취 ▲유가족에 대한 인격 모독 ▲부모님에 대한 명예훼손 등 20여건이다.


이 사태로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박근령씨가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는 것이 세간의 일반적 평가다. 외형상 측근 최태민과 동생들 간의 힘겨루기에서 동생들이 이긴 셈이다. 

그러나 당시 박근령·박지만씨가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쓴 이유는 박 대통령을 몰아내려는 의도보다 최씨를 쫓아내기 위한 조치였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동생들보다 최씨의 편을 들어줬다. 즉 동생들의 진짜 목적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내가 아는 한도에서 지금까지 최씨에 대한 의혹의 실체는 없다”며 “만약 최씨에게 문제가 있었으면 아버지 시대나 이후 정권에서 법적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변함없는 믿음을 보냈다.

사고 터져도 끝까지 감싸
혈육보다 우대받는 가신들

1994년 최씨 사망 이후에도 최씨 일가와 박 대통령은 매우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최씨의 다섯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순실씨와 박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내다 10·26 이후 말벗을 하며 깊은 신뢰를 쌓아왔고, 1995년 순실씨와 정윤회씨가 결혼한 이후에는 정씨가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정씨는 1998년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 비서실장 역할을 하며 현재의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인선도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04년 이후 공식적으로 박 대통령 주변에서 사라졌지만,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정윤회가 능력이 있어 실무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정씨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심지어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정씨에게 전화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과거도 현재도
혈육보다 측근?

결국 1차 육영재단 사태에서 최씨의 손을 들어줬던 박 대통령이 이번 정윤회 파문에서는 그의 사위였던 정씨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나 현재나 혈육보다 측근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노회찬 전 의원은 지난 9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 동생들이 ‘최태민 일가가 육영재단의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며 문제제기를 해 큰 알력 싸움이 있었다. 그 때 박 대통령은 형제가 아닌 최씨 일가의 편을 들었다”며 “그 최씨 일가가 오늘 날 어찌 보면 정윤회씨와 그 부부로 이름이 내려오는 것이다. 정씨와 대립하는 다른 한 축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과거 육영재단을 둘러싼 갈등이 재현되는 것처럼 보이다. 박 대통령이 그때와 비슷하게 형제보다 측근의 편을 들고 있다”고 말했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육영재단 사태는?


육영재단 사태는 크게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박지만 남매가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최태민씨의 비위 사실을 적시한 편지를 보내 최씨를 무턱대고 비호하는 박근혜의 행동을 저지해 달라고 요청해 벌어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최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최씨의 편을 들었고, 그해 11월 이사직을 동생 박근령에게 넘기고 육영재단에서 물러나게 된다. 당시 표면적 사퇴 이유는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재단 안팎의 사퇴 요구지만, 실제로는 동생들에게 밀린 강제 하차라는 분석이 많다. 

2차 육영재단의 사태는 2008년 당시 박근령 이사장을 밀어내기 위한 동생의 공격으로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박 이사장이 직을 내려놓게 되면서 박지만 EG회장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은 부지만 13만2000㎡(4만평)에 달해 개발할 경우 수조원의 차익을 올린 것으로 예상되는 알짜배기 재단으로 평가된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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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