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1호’ 공학박사 정국용의 작심토로

“10년간의 피와 땀 강탈당했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자유'를 꿈꾸며 대한민국에 온 탈북인 출신 1호 공학박사가 있다. 그는 탈북인들의 대한민국 정착을 위해 국내 유일한 직업학교를 세우고 지난 5년간 지원해왔다. 절반이 넘는 시간을 무급으로 일했고, 국군포로 보상으로 나온 부친의 집마저 담보로 잡히는 등 자신을 내놓고 일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직업학교마저 뺏길 지경에 처해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국용 한국입체교육정보원장. 6·25전쟁 때 부친이 포로로 잡히면서 원치 않게 북한에서 태어난 그는 '남조선괴뢰군포로의 자녀'라 불리며 갖은 차별 속에서도 청신광산금속대학에서 컴퓨터이론을 전공할 정도로 배움과 재능의 꿈을 키웠다. 그런 그가 '자유'를 위해 한국에 온 건 지난 2000년이다.

3년 급여 2700만원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에서 한국의 IT 기술에 놀란 정 원장은 야간에는 폴리텍1대학 자동차시스템학과에서 학문을 이어갔고, 주간에는 백석대학원 목회학과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서울과학기술대 대학원에 입학에 공학석사학위를 받았고 한세대학교에서 공학박사과정을 이수하며 북한이탈주민 1호 공학 박사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0년 입국부터 2009년 박사논문까지 정 원장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은 '언어장벽'이었다. 북한에서 똑같은 과정을 5년간 배우고 왔음에도 쓰는 언어가 달라 소용 없었기 때문. 그래서 그는 북한이탈주민만을 위한 전문교육기관을 만들기로 다짐했다.

정 원장이 노동부 직업훈련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인의 회사에서 일 하던 2009년 5월 T세무법인 소속의 한국인 S모씨가 찾아와 '직업학교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미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인맥이 넓어 대기업이나 지자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3D활용 교육을 하면 연수익 몇십 억대를 벌 수 있다는 말과 함께였다. 제안을 받아들인 정 원장은 북한이탈주민 직업능력개발교육 약정을 체결, 서울 응암에 '한국입체교육정보원'을 설립하고 노동부 지정 승인을 받게 됐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 수익은 발생되지 않았다. S씨는 폐업을 선언했고, 정 원장은 서울 구로로 한국입체교육정보원을 이동하여 다시 노동부로부터 직업학교로 승인받아 운영을 시작했다. 정 원장은 일체의 자금관리와 노무관리를, S씨는 세무회계업무를 담당키로 했다.

운영은 어려워져만 갔다. 북한이탈주민만을 위한 직업학교가 선례가 없었던 터라 노동부 예산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 원장의 무료 봉사는 2009년 8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 북한이탈주민에게 무료로 강의 해주고, 컴퓨터를 구매해줬다. 지금까지 정 원장이 무료로 수리해준 컴퓨터만 600대에 이른다.

2010년 4월, 앞선 2009년 7월 설립한 '새터민 직업능력 개발원'이라는 비영리법인이 통일부 산하 교육기간으로 인정받으면서 통일부로부터 예산 1700만원을 지원받았다. 급한 불은 껐지만 역부족이었다. 1년 뒤인 2011년 6월이 돼서야 통일부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승인 허가되면서 1억600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지원금은 건물보증금 6000만원, 1년간 월세 월 275만원씩 리스장비구입자금 7700만원으로 구성됐다. 건물보증금과 월세는 통일부에서 바로 건물주에게 전달되고 리스장비구입자금은 7달에 걸쳐 매달 1100만원씩 정 원장을 거쳐 리스업체에 전달되는 식이다.

북한이탈주민 위한 직업학교 분해 위기
정부 지원금 증발…소송 피의자로 몰려

S씨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T세무법인 모 지사 내에 리스업체를 설립하고 정 원장의 한국입체교육정보원에 장비 리스를 담당하기로 했다.

"일단 컴퓨터 70대, 빔프로젝트 3대, 서버 1대, 노트북 10대 등 7700만원어치의 장비를 구입하고 세팅을 해놓으면 실사 후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통일부 측의 말을 듣고 정 원장은 S씨에게 리스장비구입을 요청했다.

정 원장에 따르면 S씨는 정 원장이 기존 보유하던 22대의 컴퓨터를 새것처럼 만들라고 지시하는 한편 키보드·마우스가 없는 저가사양의 컴퓨터 30대와 본체 빈케이스 18개, 중고 빔프로젝트 3대를 보내면서 통일부의 실사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정 원장은 '통일부의 예산이 들어오면 새것으로 사주겠지'라는 생각에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통일부의 실사가 끝났다.
 

7개월 뒤 7700만원의 통일부 지원자금이 정 원장을 거쳐 S씨 소유 리스업체에 넘겨졌다. 하지만 새 장비 구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직업학교는 입소문을 타면서 학생들이 끊임없이 늘어났고, 후원금만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정 원장은 국군 포로였던 부친이 보상금으로 구입한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기에 이르렀다. 정 원장은 그 돈으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북한이탈주민들의 교육을 이어나갔다. 지방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운영했고, 점심 식사까지 제공했다. 그뿐이었다. 수입은 여전히 없었고 직업학교는 다시 재정난에 빠졌다.

결국 정 원장은 S씨와 T세무법인의 횡포를 통일부에 보고하고 직업학교의 상위 법인인 '한민족문화복지진흥원' 이사에게도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통일부와 한민족문화복지진흥원의 감사가 시작됐지만 정 원장의 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S씨가 횡령을 한 것은 맞지만 통일부는 정 원장과 약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책임은 정 원장이 져야한다는 게 통일부의 감사결과였다. S씨는 정 원장을 "무급으로 일하기로 했는데 급여를 가져갔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정 원장과 S씨가 체결한 약정서 어디에도 무급으로 일하겠다는 문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정 원장이 지난 3년간 받은 급여는 2700만원. 연봉이 900만원이었다는 얘기다.

S씨가 정 원장을 횡령으로 고발하게 된 배경에는 규칙적이지 않은 급여 수급에 있다. 정 원장은 그간 직원 월급과 관리 운영비용을 지불하고 남은 금액을 자신의 급여로 챙겼다. 어떤 날은 20만원, 또 어떤 날은 70만원이었다. 남은 돈이 없어 급여를 가져가지 못한 달도 부지기수였다.

무료봉사의 대가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과 2심에서 정 원장의 횡령혐의가 인정됐고, 현재 상고 중이다. 이밖에도 정 원장은 명예훼손, 모욕,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정 원장은 "나만 없으면 통일부 지원을 받는 직업학교가 T세무법인 소유가 된다"며 "S씨와 T세무법인이 북한이탈주민이 세무회계와 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직업학교를 뺏으려고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원장이 운영하는 직업학교인 한국입체교육정보원은 사단법인 한민족문화복지진흥원 산하기관으로 한민족문화복지진흥원 회장이 T세무법인 모 지점장이다. 북한이탈주민이 북한이탈주민을 위해 세운 직업학교가 북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무법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han10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