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의심받고 있는 정윤회씨가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올해 초 정씨와 관련된 비위첩보를 입수하고 감찰을 벌이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가 윗선의 압박으로 사실상 해임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통상적인 인사였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정씨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의심받고 있는 정윤회씨가 끊임없이 구설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에 불거진 의혹은 올해 초 정씨와 관련된 비위 첩보를 입수하고 감찰을 벌이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이 보복성 인사조치를 당했다는 것이 골자다. 청와대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보복성 인사?
정씨는 박 대통령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진 고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씨의 전남편이다. 최 목사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에 대한 검증과정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이다. 최 목사가 박정희정권 당시 영애였던 박 대통령을 앞세워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주된 내용이었다.
최 목사의 딸인 최씨와 남편인 정씨는 박 대통령이 야인생활을 할 때 옆에서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정씨는 박 대통령이 지난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할 때 비서실장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정씨는 지난 2004년 최 목사의 사위라는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되자 정치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런 이력 때문에 정씨는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비선 실세 논란에 휘말려왔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정씨를 만났다는 낯 뜨거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던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는 현재 검찰에 기소돼 수사를 받고 있다.
한편 이번에 제기된 의혹은 청와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정씨가 인사청탁을 미끼로 금품을 수수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감찰에 착수했으나, 지난 2월 감찰 작업을 벌이던 경찰 출신 부하직원이 갑자기 경찰청으로 원대 복귀하면서 조 전 비서관과 청와대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는 내용이다.
조 전 비서관은 경북 대구 출신으로 수원지검 공안부장, 법무장관 정책보좌관, 국정원장 특별보좌관 등을 거친 엘리트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은 부하직원이 경찰청으로 원대복귀한 후 두 달만에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두 사람이 청와대를 떠나게 되면서 정씨에 대한 감찰은 모두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떨어져 있었던 인물로 현재는 아무런 직책도 가지고 있지 않은 민간인 신분이지만 과거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던 전력이 있어 조 전 비서관은 정씨를 ‘특수 관계인’으로 보고 감찰을 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청와대 측은 “통상적인 인사조치였고 개인 신상을 이유로 스스로 사표를 제출한 것일 뿐 청와대가 사퇴를 압박한 것도 아니며, 애초부터 정씨에 대한 감찰을 실시한 적도 없다”며 해당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정윤회 건드리면 경질? 더 커지는 의혹
본인은 아니라는데 자꾸 회자되는 이름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전후사정이야 어찌됐든 감찰부서에 있는 실무자가 인사시즌도 아닌 시기에 갑자기 전보조치가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누군가 감찰을 중단시키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당장 새정치연합의 유기홍 수석대변인은 “정윤회의 ‘정’ 자만 나와도 청와대까지 벌벌 떠는 것을 보며 국민들의 의혹은 깊어만 간다”면서 “정씨에 대한 감찰과 관련,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청와대는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하며 검찰의 즉각적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건의 당사자인 조 전 비서관은 사태가 불거진 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의 침묵으로 의혹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 모든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본인이 직접 나서서 속 시원하게 해명하면 될 일이다. 조 전 비서관의 침묵은 청와대와 조 전 비서관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의혹을 최초로 보도한 <세계일보>에 따르면 검찰 출신인 조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을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한 인연이 있다. 어찌 보면 악연이지만 박 회장은 당시 조 전 비서관의 강직한 성품에 반해 이후에도 계속 인연을 맺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박 회장과 정씨 간의 권력다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박 회장과 정씨 간의 파워게임은 그간 정치권에 정설처럼 떠돌았다. 급기야 지난 3월에는 박 회장이 정씨가 고용한 인물로부터 한 달 이상 미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박 회장은 자신을 미행하던 인물을 직접 붙잡아 정씨가 미행을 지시했다는 자술서를 받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정씨는 해당 의혹 보도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해당 언론사에 2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해 놓은 상태다.
정씨의 비선실세설을 의심케 하는 정황은 또 있다. 정씨는 지난 8월 독도에서 열린 한 콘서트에 참여했는데, 정씨는 해당 콘서트에 박 대통령의 유일한 공식 팬클럽인 ‘호박가족’ 회원들과 함께 참석했던 것으로 밝혀져 뒷말이 무성하다. 호박가족 회원들은 대부분 지난 대선에서 직간접적으로 박 대통령을 도왔던 인물들이다.
파워게임?
박 대통령의 선대위에 참여했던 대학교수도 있고, 박 대통령의 의상을 담당했던 디자이너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콘서트는 호박가족의 회장인 성악가 임산씨가 주최했고 한 대기업이 거액의 협찬금을 제공했다. 특히 정씨는 해당 콘서트를 보기 위해 독도에 들어가면서 정윤회가 아닌 정윤기라는 가명까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던 인물들과 함께 콘서트에 참석한 사실만 봐도 “현 정부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정씨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지난달 28일에는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이 정례 회동을 갖고 내부 정보를 유출한 정황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는 보도까지 이어지면서 정씨와 관련한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해 이들과의 송년모임에서 만나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시점을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다”면서 참석자들에게 정보지 관계자들을 만나 사퇴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보를 유포할 것을 지시했다.
이러한 감찰보고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아무런 직함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정씨가 청와대 내부인사들에게 지시를 내린 행위는 세간의 떠돌던 ‘그림자 실세’ 의혹이 사실임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정씨가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채용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번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왜 청와대는 정씨를 감싸고만 도는 것일까? 정씨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