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헌법기구 규제개혁위원회 대해부

‘정부 위의 위원회’ 넘어 ‘헌법 위의 위원회’로 군림?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의 권한이 한층 더 강화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이 소속 의원 대다수의 동의를 얻어 규개위에 힘을 더 실어주는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규개위는 권한은 막강한 반면 책임은 지지 않는 ‘숨은 권력’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터였다. 규개위의 권한 강화는 숨은 권력을 넘어 이제는 초헌법기구로 자리매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규개위는 정부의 규제 관련 정책을 심의·조정하고 정부의 모든 입법에 대해 규제 여부를 사전 심의하는 기구다. 사실상 정부의 규제 관련 법령을 좌지우지하는 만큼 ‘정부 위의 위원회’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규제개혁을 내세우고 있어 규개위의 비중은 더 커졌다. 그런데 가뜩이나 힘이 센 규개위에 더 큰 힘을 실어주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이 발의돼 파장이 일고 있다.

정부도 쩔쩔매는
규제개혁위원회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규제개혁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광림 의원은 지난 13일 소속의원 157명(전체 158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행복·일자리 창출·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규제개혁특별법 제정안(이하 규제개혁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전체 재적인원의 과반이 넘는 인원이 법안 발의에 참여한 만큼 법안 통과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규제개혁특별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란의 여지가 많다.

우선 규제개혁 적용기관과 대상을 국회·법원·감사원 등 헌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까지 확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회의 입법권과 지방분권 정신에 위배될 수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의원입법에 대해서도 규제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해 야권으로부터 “초헌법적 발상”이라는 거센 비난을 받고 물러선 바 있다.


둘째, 규제개혁 공무원 면책 조항을 신설됐다. 공무원이 규제개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을 위한 업무 중 중대한 과실이 없거나, 상급 행정기관이나 규개위의 의견을 들어 처리한 경우 문제가 되더라도 해당 공무원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다.

헌법 초월한 규제완화…권한 더 키워
국회·감사원, 지자체까도 심사 대상

이 조항은 지난 8월 ‘위헌 요소’로 인해 정부 입법안에서 삭제된 바 있다. 감사 면제는 헌법이 규정하는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을 제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박 대통령이 이 조항을 재검토할 것을 지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앞서 지난 3월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규제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공무원들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나중에 다소 문제가 생기더라도 감사에서 면책해 주는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 바 있다. 이 조항의 위헌적 요소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박 대통령의 지시는 집권여당에 전해져 의원 입법의 형태로 되살아났다.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헌법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공무원을 규제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기 위해 위험한 발상을 한 것”이라며 “위헌적 요소를 제외하고도 권한이 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특별법에는 규개위의 규제개혁 추진체계를 강화하는 ▲직무감찰 요구권 부여 ▲정부업무평가에 규제개혁평가 의무 반영 ▲규개위 상설화 ▲규제비용총량제 ▲규제개선 청구제 ▲규제일몰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위헌적 요소 가득
헌법 위의 위원회?


규제개혁특별법이 통과될 경우 정부 위의 위원회를 넘어 ‘헌법 위의 위원회’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실제로 야권에서는 지금까지도 모든 정부 부처의 규제와 관련된 법령을 심사하며 공직사회의 ‘갑중의 갑’으로 군림해 왔던 규개위에 규제개혁특별법 특혜까지 부여하면 삼권분립 위에 존재하는 초헌법기구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의원은 “법적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려가 없는 초헌법적 발상의 특별법이 통과되도록 할 수는 없다”며 “정부와 여당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 추진에 적극적으로 맞대응 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특별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삼권분립 원칙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법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경제단체들은 규제개혁특별법 발의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환영 메시지를 내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4단체는 공동명의 논평을 통해 “규제개혁은 돈 안 드는 대표적인 경제활성화 수단”이라며 “경제활력 회복이 중요한 현 시점에 국회가 앞장서서 규제개혁을 위한 특단의 법안을 발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호평했다.

재계의 적극적 환영은 누구를 위한 특별법인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규개위는 민간 위원장을 포함한 민간위원 18명 중 기업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인사가 4명에 이르고 시민단체 인사는 한 명도 없는 등 위원구성이 지나치게 경제계 쪽에 편중돼 ‘경제계를 위한 규제완화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재계 “돈 안 드는 경제활성화 방안” 대환영
편중된 위원·불투명 운영 등 규제완화 치중

이와 관련 지난 3월 규제개혁위원장직을 중도 퇴임한 김용담 전 대법관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법률상 규개위가 규제를 강화 혹은 완화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규제 완화 여부만을 심사하는 것으로 운영돼 왔다”고 말한 바 있다.

규개위를 지원하는 총리실 산하 규제조정실 관계자도 “원안보다 강화하는 결정을 내린 사례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무조건 규제를 풀기만 하는 것을 규제개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규개위의 이러한 활동 탓에 각 정부부처의 규제 정책은 신설·강화보다는 완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신설·강화 규제는 규개위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완화 규제는 아무런 제약 없이 국무회의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밀실 회의’도 규개위 활동에 대한 의혹을 키우고 있다. 규개위 운영원칙에는 회의소집은 ‘위원장이 일시, 장소 및 부의사항을 정해 회의 개최일 7일 전까지 각 위원에게 서면으로 통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열린 44차례 회의 일정 고지를 살펴보면 회의가 열린 뒤 사후 고지 29건, 일주일 이전 고지 불이행 15건 등 한 차례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심지어 505회 행정사회분과위원회 개최계획(5월30일)은 다섯 달 뒤인 10월21일에야 고지됐다.

게다가 규개위는 상세한 회의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고 있다. ‘위원회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위원장이 공익보호나 기타 사유를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위원회 의결로써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언론의 회의 참관 요청은 기피하고, 간략한 보고서 형태로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밀실 운영
의혹 키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003년 7855개였던 규제가 올해 10월말 기준 1만4987개로 급증하며 일부에서 ‘규제 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개혁이 필요한 규제도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꼭 필요한 규제도 있는 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논의를 거쳐 규제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무조건 규개위의 권한만 키워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carpediem@ilyosisa.co.kr>

 

[규제개혁위 인적 구성]

▲위원장 : 정홍원 국무총리, 서동원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경제분과 위원장 :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
▲경제분과 위원 : 김종일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원장
                         손원익 안진회계법인 R&D센터원장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조신 연세대 글로벌융합기술원장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한경희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이사
▲행정사회분과 위원장 : 전의찬 세종대 환경에너지융합과 교수
▲행정사회분과 위원 :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 교수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영수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 교수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손현덕 매일경제신문사 편집국 차장
                               이원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
▲당연직 정부위원 :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정종섭 행정자치부(구 안전행정부)장관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공정거래위원장(12월4일 정재찬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예정)
                            제정부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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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