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 문재인 당권도전 승부수 내막

잊혀지기 전에 당권 찍고 대권 직행?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가 유력시되고 있다. 문 의원은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친노무현)계의 수장인 데다 지난 대선의 야권 대선후보였던 만큼 출마만 한다면 차기 당대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그에게 전대는 기회이자 위기다. 정치적으로 도약할 수도, 추락할 수도 있다. 문 의원의 당권도전은 대권도전을 위한 승부수인 셈이다. 그러나 차기 대선까지는 아직 3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다. 문 의원이 조기에 승부수를 띄운 까닭은 무엇일까.

새정치연합이 전당대회 체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지난 10일 김성곤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전대준비위원회(이하 전준위)가 출범했고, 물밑에선 계파별·선수별 신경전이 치열하다. 내년 2월 열릴 예정인 전대 열기가 벌써부터 달아오르는 이유는 이번에 선출되는 대표가 당 혁신, 20대 총선 공천권, 선거구 재조정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등판 여부
전대의 향방 좌우

최대 관건은 문재인 의원의 등판 여부다. 당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그의 행보는 전대의 향방을 좌우할 핵심 변수다. 그런데 당 안팎에선 문 의원의 전대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문 의원과 측근들이 명확한 입장 표명은 유보하면서도, 출마로 굳힌 듯한 발언을 곳곳에서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 의원은 지난 7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대 출마 여부에 대해 “적당한 시기에 고민을 매듭짓겠다”며 “그렇게 멀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전당대회를 계기로 ‘문재인 정치의 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기대하세요”라고 답해 가능성을 높였다.

특히 그는 “당내 인사들 중 차기 대선후보로 최대 라이벌은 누구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박근혜정부 2년차라 대선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면서도 “우리 당이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다음 대선 때 정권교체를 이뤄낼 만한 지지받는 자원들이 새누리당에 비해 좀 더 풍부하다는 거다. 각자 영역에서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저는 당 혁신,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정을 잘하셔야 하고…. 정치는 알 수 없으니 나중에 언젠가 경쟁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건 다음의 문제”라고 당 혁신을 이끌 적임자는 자신임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문 의원 측 관계자도 “대선이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당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예산 심사가 끝나는 12월 초·중순쯤이면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비노 반발 뚫고 마이웨이 행보 강화
계파 갈등 해소·혁신 이끌 적임자?

당내 최대 계파(친노)의 수장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그가 전대에 나설 경우 당선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차기 대권을 노리는 문 의원에게 당권도전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미지수다. 대표가 될 경우 정치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지만, 당 혁신과 차기 총선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짊어져야 하는 탓이다.

특히 경선에서 패할 경우에는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에도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그간 친노계에서는 문 의원의 당권도전을 만류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의원이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도 있는 전대 출마로 기운 것은 지리멸렬한 당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 의원에게 가장 이상적 시나리오는 유능한 다른 인사가 당내 개혁을 책임지고, 자신은 대권주자로서 정책행보를 하며 국민 곁에 다가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 새정치연합 상황에서는 설령 대권후보로 낙점 되더라도 본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한 야권 관계자는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문 의원이 차기 대선후보로 낙점 받더라도 본선 승리는 어렵다”며 “문 의원이 당권을 잡아 당의 환골탈태와 차기 총선 승리를 견인한 후 대권으로 직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 의원은 지난달 28일 충남 천안 상록리조트에서 열린 새정치연합 소속 광역의원 워크숍 특강에서 “1년 내 우리 당을 바꾸지 못하면 집권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 총선과 대선도 이길 수 없고 존립조차 위태로울 것으로 생각한다”며 “1년 내 당을 완전히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문 의원이 비대위원으로 참여한 것 자체가 대표 출마를 위한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표 선출에 영향을 끼칠 전국 246개 지역위원회 위원장 선정에 관여하는 비대위에 다른 유력 당권주자인 정세균·박지원 의원 등 계파 수장들과 함께 참여한 것은 대표 출마를 위한 포석이었다는 얘기다.

적극적 친노
속타는 비노

게다가 문 의원은 최근 비노(비노무현)진영과 다른 당권주자의 견제를 뚫고 활발한 마이웨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장병완 의원, 경제통 홍종학 의원 등과 함께 토론회를 열고 ‘사람 중심’이라는 대선 당시의 캐치프레이즈를 강조하며 ‘문재인의 두툼한 지갑론’ 등 본인의 이름을 딴 경제 아젠다를 제시했고,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 대표이고 각자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헌법을 논의(개헌)하는 건 당연한 일로, 누구도 못하게 막을 수 없다.”(10월20일)

“대통령의 개헌논의 금지발언은 유신헌법 논의를 금지한 70년대 긴급조치를 떠올리게 한다.”(10월20일)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공약파기와 주권포기, 안보무능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10월27일)

문 의원의 이와 같은 강경한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구도를 형성해 야권의 대표주자라는 상징성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 의원의 적극적 행보에 속이 타는 쪽은 차기 당권에 대한 의욕이 강한 정세균·박지원 의원과 마땅한 선수가 없는 비노진영이다. 박 의원이 공개 방송과 페이스북을 통해 “대표는 싸울 때는 싸우고 협상할 때는 감동적으로 해야 한다. 상처 입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데, 대권후보는 정책을 제시하고 이미지도 관리하며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몸과 마음을 섞어야 한다”며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것도 위기감의 반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기회? 위기?…승부수 통할지는 지켜봐야
전준위 결정 마무리되면 공식입장 밝힐 듯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문 의원이 당권마저 장악할 경우 자신들의 입지가 더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비노진영도 문 의원의 불출마를 종용하고 있다. 비노계 한 의원은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야 한다”며 “대선후보는 전대에 출마하지 않는 것이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고, 대표 선출 이후에도 다른 계파의 오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준위 김성곤 위원장과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대권과 당권 분리 문제는 당헌 개정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며 “대선이 3년 정도 남은 상황에서 미래를 예단해 대선후보는 당권에 나오지 말라는 말에는 무리가 있다”고 문 의원에게 힘을 실어줬다.
 

다만 문 위원장은 최근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비대위원(문재인·정세균·박지원)을 불러 “당권 도전 의사가 있다면 (비대위원 사퇴 시점을)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경선 룰을 정하는 전준위가 활동을 시작한 상황에서 선수로 뛸 당권주자들이 심판역할을 하는 비대위에 있을 경우 다른 후보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의 공식적 입장 발표가 다소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 위원장의 발언에 맞춰 전준위 김성곤 위원장도 게임의 룰을 이달 중으로 결론 내릴 예정이다. 룰이 정해지면 문 의원을 포함한 당권주자들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대권까지는
산 넘어 산

문 의원에게 전대 출마는 징검다리 성격이 짙다. 대권으로 가는 하나의 관문이라는 뜻이다. 문 의원이 전대에서 대표에 올라 성공적으로 당의 혁신을 이끌고, 차기 총선도 승리로 이끈다면 그의 대권행보는 탄력이 붙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표를 역임하는 과정에서 상처만 입고 오히려 대권주자 이미지를 깎아먹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4개월간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잇단 실책으로 지지율이 폭락한 안철수 의원의 사례도 있다.

무엇보다 갈등의 골이 깊은 새정치연합의 계파갈등을 치유하고 혁신까지 이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40%대의 안정적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맞서 차기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보수언론의 흔들기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이에 앞서 비노진영의 강한 반발을 뚫고 전대 승리라는 1차 관문부터 통과해야 한다. 문 의원의 승부수가 통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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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