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복지논쟁’ 가세 노림수

‘4자방’ 비리 감추려 복지논쟁 유도?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청와대가 보수와 진보의 진영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무상복지 논쟁에 가세했다. 표면적으로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교육감의 대립에서 촉발된 복지논쟁에 여야 정치권이 개입하고, 청와대가 여당의 편을 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와대가 이러한 논쟁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기류도 감지된다.

“누리과정(3~5세 아동 보육비 지원 사업)은 대부분의 교육계와 학부모가 원해서 이뤄진 것으로 무상급식과 달리 법적으로 장치가 마련된 의무사항이다. 반드시 교육재정에서 예산이 편성, 집행돼야 한다. 반면 무상급식은 (대선)공약이 아니었고 지자체 재량으로 하는 것이다. 의무사항이 아닌 무상급식에 많은 재원을 쏟아 붓고 누리사업에 재원을 투입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편 가르기 복지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의 지난 9일 정책브리핑 발언이다. 이는 청와대가 중앙·지방 정부, 여당에 누리과정을 우선해 복지문제에 대응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가 최근 불거지고 있는 복지논쟁에 직접 뛰어든 셈이다.

하지만 안 수석의 ‘편 가르기 복지’ 발언에 야당과 진보교육감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차별화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선별적 무상급식을 주장하다 직에서 물러난 이후 점차 확대 된 무상급식은 지난 3월 기준 전국 초등학교의 94.1%, 중학교의 76.3%, 고등학교의 13.3%에서 시행되고 있다.

물론 누리과정이 유아교육법·영유아보육법·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등에 명시된 법적 의무사항이고 무상급식은 지자체의 재량이 큰 것은 맞다. 그러나 관련법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2013년 개정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에는 “영유아 무상보육에 드는 비용은 예산범위에서 부담하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보통교부금으로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상위법인 영유아보육법에는 “무상보육 비용은 국가나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고 상반된 규정이 명시돼 있다. 정부가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해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 교육청에 떠넘기려 했지만 국회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국무회의에서 시행령만 개정한 것이다.

게다가 야당과 진보교육감은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고, 법으로도 규정된 만큼 ‘국가 사무’로 보고 국고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박 대통령도 인수위 시절 광역시·도단체장과의 만남에서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말한 바 있다.

무상복지 논쟁, 진영대결 양상으로 확전
여 “무상급식 NO, 무상보육 YES”
야 “큰 아이 밥값 뺏어 동생에게 주는 격”

그러나 현실적으로 재정이 부족한 만큼 청와대는 일단 공약인 누리과정부터 지키고 보자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야권 관계자는 “3년 전 오 전 서울시장이 아이들 밥을 선별적으로 줘야한다고 주장하다 직까지 내려놓게 된 이후 무상급식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교육청들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이 불가능한 것을 중앙정부가 알면서도 강요하는 것은 정부 책임이 큰 재정 문제를 무상급식 탓으로 돌리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무상보육은 반드시 법적으로 하는 것이고 무상급식은 재량사업이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는 것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 밥값을 뺏어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생에게 주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재정이 부족하다고 윗돌을 빼 아랫돌을 괴는 식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복지논쟁을 청와대가 조장하고 부추기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표면적으로 복지논쟁은 시·도교육감이 누리과정 중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하자,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고 맞받으며 격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안 수석이 지난달 1일 브리핑에서 “누리과정 예산은 이미 3년 전에 중앙과 지방이 합의해 예산을 확보했고 지방정부와 약속한 것도 다 이행했다”며 “학교의 시설개선비는 늘리지 않는 반면 무상급식이나 체육 등 교육 부수활동 지원은 대폭 확대하고 시설비 집행부진으로 매년 2조원 정도의 이월금이 발생하는 등 지방교육재정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질타한 이후 시작됐다.


안 수석의 발언이 나온 이후 “누리과정은 교육감이 해결해야 할 의무”(최경환 경제부총리·황우여 교육부장관) “공짜 급식에 더 이상 돈을 댈 수 없다”(홍준표 경남도지사·남경필 경기도지사) “무상급식 실태를 조사하라”(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의 누리과정을 옹호하고 무상급식은 비판하는 발언들이 릴레이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안 수석 발언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즉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부와 여당, 보수 지자체장이 움직였다는 얘기다.

불순한 의도?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박완주 의원은 “무상복지 논쟁은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4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를 감추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또 “무상보육은 되고 무상복지는 안 된다는 것은 큰 아이 것을 뺏어서 작은 아이에게 주라는 부끄러운 발상”이라며 “재정이 부족하면 어떻게 채워 넣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증세로 튄 무상복지 불똥

무상복지 논쟁이 정치권을 뒤덮고 있는 가운데 증세 논란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야당은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해 이명박정부 시절 이뤄진 법인세 감세 철회와 부자증세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경제위기론을 꺼내들며 야당의 요구를 반박하고 있다.

야 ‘부자증세’ vs 여 ‘경제위기’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이전으로 법인세율을 환원, 소위 부자감세를 철회하면 연 5조원 이상의 세수가 확보된다”며 “그러면 2조1000억원 정도의 누리과정 부족분에 대한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 원내대표는 이어 “재원이 부족하면 증세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 그것도 우선순위가 있다”며 “담뱃세와 자동차세 인상에 앞서 법인세부터 먼저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의 불가피성을 거론하면서도 전면적인 증세가 아닌 서민들의 조세 저항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경제살리기에 올인해야 할 시기에 국회에서 법인세 인상 논의가 불거지면 기업의 투자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며 “엔저 등 악화된 (국제)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사무총장은 “국내 고용상황을 생각하면 해외에 있는 기업을 국내로 다시 불러들어야 한다”며 “법인세 인상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심재철 의원은 “무상복지 위기는 야당의 책임이 크지만 여당과 청와대도 대중영합정책에 쏠린 공수표를 남발한 결과”라며 “무상복지 실현과 지속이 3년 만에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이제라도 재설계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무상복지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촉구했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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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