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2011년 2월, 안양시 만안구 소재의 가구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삽시간에 퍼져 주변 건물 태웠고, 가구점과 식당이 전소되고 주변 주택, 빌딩, 상가 등 8가구가 피해를 봤다. 가구점 주인은 경찰과 국과수 조사 결과에 따라 한전에 손배소를 제기했다. 1심 2심 법원은 한전 손을 들어줬다. ‘화재가 한전 책임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가구점 주인은 “억울하다”말하고 있다.
2011년 2월23일 새벽 4시30분경.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836-10번지 안양가구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은 2시간만에 잡혔지만 소방서 추산 1억원의 재산피해와 주변에 위치했던 식당, 주택, 빌딩, 옷가게가 전소되거나 연소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30년 가까이 가구점을 운영하던 양승환씨는 경기지방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전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도경·국과수
“인입선 문제”
화재현장 감식에 나선 경기지방경찰청은 “주상변압기의 전원선은 동 매장(안양가구점) 후면에서 다시 중단부 발화부 주변으로 이동하는 형태이며, 동 전원선에서 전기적인 특이점 일부 관찰된 사안이다”며 “동 부분의 인입배선에서 전기적인 특이점이 관찰됐지만 내부 배선의 전기적인 부분은 전소붕괴 및 발굴복원조사 불가로 논단 불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과수는 “안양가구점 후면 우측의 분전반 소락 부분에서 수거한 멀티콘센트 및 배선에서는 전기적인 특이점이 식별되지 않으며 분전반의 인입배선 수개소에서 단락흔이 식별됨”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단락흔은 전선이 합선되면서 녹은 흔적을, 소락은 불에 타서 아래로 떨어진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1심에서 한전의 손을 들어줬다. “단락흔이 발견된 배선이 한전의 책임 부분에 속하는 인입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불복한 양씨는 즉시 항고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결 또한 1심과 같았다.
재판에서 패한 양씨에게 돌아온 것은 화재로 피해를 입은 주변 상가, 가구 측의 손해배상소송. 결국 수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손해배상을 해주게 된 양씨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고 충격에 낙향했고 함께 가구점을 운영하던 형은 공장에 취직했으며 양씨도 시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양씨는 아직 “억울하다”고 말한다. 한전이 재판부와 양씨를 속였다는 것이다. 양씨는 “한전이 전기공급약관까지 무시해가며 재판에서 위증을 일삼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전은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양씨의 주장과 한전의 전기공급약관, 판결문, 현장감식 결과 등 자료를 토대로 몇 가지 의혹을 정리해 봤다.
첫 번째는 ‘인입선 연결방식’이다. 인입선은 전신주에서 각 가구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하는 전선을 말한다. 아파트나 요즘 지어지는 주택의 경우에는 인입선이 지하에 묻혀있지만 과거에 지어진 주택의 경우, 건물 주변 전신주에서 각 건물로 이어지는 검은 전선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검은 전선이 인입선이다.
3년 전 8가구 피해…원인 미궁으로
발화된 가구점 주인 한전 상대 소송
한전전기공급약관 제 6조6항에도 인입선은 ‘공중 및 진중전선로의 지지물(전신주)로부터 다른 지지물을 거치지 않고 전기사용장소의 연결점이나 인입구에 이르는 전선’으로 명시되어 있다.
전신주에서 출발한 인입선은 각 가정에 공급되기 전 인입지지물을 거쳐 계량기를 통한다. 약관에 따르면 한 건물의 인입지지물을 거친 인입선은 다른 가정으로 연결될 수 없다. 1인입선 1계량기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인입지지물을 거치기 전에 별도의 인입선을 연결해 다른 가정으로 연결할 수 있다. 연접인입선이라고 하는데 이는 전신주와 건물사이에 또 다른 건물이 존재해 직접 인입선을 연결할 수 없는 경우나 전신주와 거리가 너무 멀 경우에 사용된다. 흔히 ‘선을 딴다’고 표현한다. 선을 딴 지점은 ‘연접’이라고 부른다.
이밖에 공동주택 등으로서 한 건물 내 2개 가구 이상에게 전기를 공급할 경우에 사용되는 공동인입선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지어진 다세대 주택 등 공동 주택과 상가건물이 이에 해당한다. 1인입선 1계량기를 원칙으로 하는 기본인입선과는 사용전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그보다 두꺼운 인입선이 설치된다.
한전 전기공급약관 제 32조1항에서도 ‘한전은 건물 밀집장소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장소에서는 연접인입선이나 공동인입선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특히 공동주택 등으로 1건물내 2이상의 고객(1인입선으로 2개이상의 계량기)에게 전기를 공급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공동인입선으로 공급한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 안양가구점과 가장 가까운 전신주 사이에는 또 다른 가구점 A가 들어서 있었다. 안양가구점과 A가구점의 직선 거리는 13m에 달했다. 여기에 안양가구점은 1988년 1월 건축됐다. A가구점은 그 보다 뒤에 건축됐다. 당초 인입선이 전신주와 안양가구점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가 A가구점이 들어서면서 기존 인입선을 끊고 새 인입선을 A가구점과 연결 후 연접을 이용해 안양가구점과 연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인입선이 직접 연결되기 힘든 상황인 것. 연접인입선이 설치됐어야 했다.
사라진 인입선
대체 어디로?
양씨에 따르면 한전은 “안양가구점 인입선은 A에 설치된 인입지지물을 거친 인입선”이라고 주장했다. 인입지지물을 거친 A와 연결된 인입선이 다시 안양가구점으로 연결됐다는 주장인데 이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 화재 발생 후 안양가구점에 연결된 인입선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의심이 드는 부분은 A와 연결된 인입선에 연접 지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누군가 선을 따서 어딘가로 인입선을 연결했다는 얘긴데 이 역시 연접 지점만 존재할 뿐 인입선을 확인할 수 없다.
한전 주장처럼 안양가구점 인입선이 A에 설치된 인입선이라면 한전이 전기공급약관을 스스로 어기고 인입선을 설치했다는 말이 된다. 한전이 약관을 지켰다면 연접을 통해 안양가구점에 인입선이 연결됐다는 양씨의 주장이 사실이 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인입선의 두께도 쟁점 중 하나다. 증거물로 수집되어 단락흔이 발견된 인입선의 두께는 2.6mm. 한전은 “한전에서는 3.2mm의 인입선만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한전의 인입선이 아니라는 것. 이 주장 역시 의문이 든다. ‘배전편 설계기준 DS-3700’을 보면 인입선의 굵기에 대해 ‘전선의 굵기는 케이블인 경우 이외에는 2.6mm 경동선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세기 및 굵기의 절연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전기용량 5kVA 이하일 때 2.6mm의 인입선을 사용하도록 했다. 전체 인입선 길이가 15m 이내일 때 2.6mm를 적용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안양가구점의 전기용량은 5kVA 이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자료에는 전기 용량 5kVA이하부터 50kVA이하 까지 각각의 용량에 따른 인입선 굵기가 전부 달랐다. 가장 얇은 2.6mm부터 가장 두꺼운 150mm까지 다양했다. 양씨는 “2.6mm의 인입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들이밀자 한전은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일축했다”고 전했다.
1·2심 “증거 없다” 판결
이 과정서 위증 의혹 제기
한전은 ‘일반적인 주택이나 상가의 경우 한전은 3.2mm의 인입선만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의 연장선에서 수집된 2.6mm 단선이 양씨 측이 인입선과 계량기를 연결하기 위해 설치한 단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도 허점은 존재한다. 2.6mm 단선과 함께 수집된 1.4mm 단선과 멀티콘센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4mm 단선과 멀티콘센트에서는 단락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양씨는 “한전 주장대로 우리가 인입선과 계량기를 연결하기 위해 설치한 단선이 있다면 함께 발견된 1.4mm 단선이었을 것”이라며 “2.6mm 단선도 우리 것이라면 3.2mm 인입선에 2.6mm 단선을 연결하고 거기에 다시 1.4mm 단선을 연결하는 바보짓을 한 게 된다”고 말했다.
한전이 수집된 2.6mm의 인입선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인입지지물이다. 한전에서 인입용앵글이라고 부르는 인입지지물은 인입선이 계량기에 연결되기 전 거쳐야만 하는 지지물이다.
한전전기공급약관 제30조 3항은 ‘인입선 연결을 위해 전기사용장소 내에 구내전주 등 보조지지물을 시설하거나 고객의 희망에 따라 한전 규격품 이외의 완금 등 인입지지물을 시설할 경우에는 고객이 그 지지물을 시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양가구점 인입지지물로는 ㄷ자 모양의 철근이 설치되어 있었다.
양씨에 따르면 한전은 법정에서 “전기사용장소외벽에만 구멍이 뚫린 L자 철근을 한전만이 직접 설치하고 L자 철근 외에는 설치하지 않기 때문에 원고(안양가구점)가 주장하는 계략기 상단의 ㄷ자 철근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상은 달랐다. 안양 가구점 주위 여러 건물들을 돌아보며 인입지지물을 확인한 결과 못, 둥근철근, 일자철근, 아시바(철봉), 플라스틱 연통, 삼각앵글, 각목, 철콘테이너 홈, 공사용 철근, 옥상난간, 구멍없는 L자 철근, 옥상기와, 옥상기둥 등을 인입지지물로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인입지지물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전이 주장하는 L자 철근이 설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용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관련 의혹에 대해 양씨는 한전 본사, 한전경기본부, 한전안양지사 등에 답변을 요청했지만 ‘소송이 끝난 사항이라 답변의 의무가 없다’는 무성의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한전 고객의 소리와 다음 아고라, 국민 신문고 등에도 의혹을 제기했지만 같은 답변이 반복될 뿐이었다.
수차례 의혹 제기
한전 ‘모르쇠’
그렇다면 한전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규약인 전기공급약관까지 무시하면서까지 재판에 임한 이유가 뭘까? 사실 확인을 위해 제기되는 의혹에 대한 질의서를 한전 홍보팀에 보냈지만 “입장을 물어본 점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질의한 사항에 대해 한전은 법원의 판결내용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달리 밝힐 의견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수상한 목격자 진술, 진실은?
대부분의 화재 현장에는 목격자가 있기 마련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당국은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경위를 조사한다.
안양가구점 화재도 목격자가 있었다. 최초 목격자는 가구점 근처에서 거주하던 안모군(당시 18세)이다. 안군을 포함 도합 4명의 목격자가 소방서와 경찰서에서 최초 발화지점에 대한 진술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양씨에 따르면 한전은 준비서면을 통해 4명의 목격자가 한결같이 “가구매장 후면 중앙 주분전반 지점에서 펑하는 소리와 불길을 외벽 창문에서 보고 119에 신고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주분전반’이라는 용어다. 주분전반은 전신주에서 연결된 인입선이 각 가구에 공급되기 전 전력량기 다음으로 거치는 전기시설이다. 문제는 주분전반이라는 용어가 쉽게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통상 사용되는 ‘계량기’ ‘분전반’ ‘메인차단기’ 등의 용어가 있는데 4명 모두 주분전반이라고 진술을 했다는 점이 의아하다.
의혹은 최초 목격자 안군의 경찰 진술서를 보면 더 짙어진다. 안군은 경찰 조사에서 주분전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안군의 경찰 진술서에는 “잠에 들기전 창문 쪽에서 폭죽 같은 것이 터지는 소리가 나서 창 밖을 봤는데 안양가구점 가운데 약간 오른쪽 밑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며 “불난 지점이 우리집에서 봤을 때 가운데서 오른쪽 밑이였다”고 적혀있다. 이에 대해서도 한전은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