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여행을 가면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줘야 한다. 일행 중 한명은 사진 속에서 빠지곤 했다. 대부분의 가족사진 속에는 대부분 아빠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전대미문의 도구가 등장했다. 셀카봉이다. 휴대할 땐 짧게 접었다가 사용할 땐 길게 늘려 사진 안에 모두를 담을 수 있다. 간단하지만 기발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 기발함만큼 그늘도 짙다. 누가 최초로 셀카봉을 발명했는지 알 수 없다보니 카피상품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특히 중국산 제품이 활개를 치고 있어 소비자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불량품 많아
여름부터 불기 시작한 셀카봉 열풍이 가을까지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다. 스마트폰 케이스에 이어 디지털 액세서리 부문 판매1위를 차지했다. 점차 셀카봉은 여행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올해 들어 판매량은 급속도로 늘었다. 오픈마켓에 따르면 셀카봉은 8월과 9월 전년 동기 대비 42배, 56배 급증했다. 10월에는 61배까지 뛰었다. 지난 한달 간 셀카봉 구매는 전년동기 대비 G마켓 4900%, 11번가 1012%, 옥션 305% 늘었다.
셀카봉은 촬영거리가 짧은 스마트폰 사진 기능을 보완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휴대할 땐 짧게 접었다가 사용할 땐 1m 정도까지 길이를 늘릴 수 있다. 낚싯대처럼 생겼다. 봉 끝에는 휴대폰 거치대가 달려있다. 여행갈 때 셀카봉을 가지고 가면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모습을 주위 풍경과 함께 담을 수 있다.
셀카봉의 종류와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가장 일반적 셀카봉의 형태는 휴대폰 및 카메라 고정 거치대와 약 20㎝에서 100㎝ 정도까지 잡아 뺄 수 있는 봉이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블루투스 및 리모컨 기능을 더해 편리함을 높인 셀카봉도 있다. 일반 셀카봉은 대략 2500∼1만원 사이, 블루투스 및 리모컨 기능이 추가된 셀카봉은 1만5000∼3만5000원 사이로 가격대는 다양하다.
게다가 셀카봉은 기존의 디카나 휴대폰도 담기 어려웠던 경이로운 화면을 제공한다. 온 가족이 셀카봉을 바라보며 한 바퀴 도는 영상을 찍을 수도 있다. 그러면 세상은 일행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돈다. 셀카봉을 바닥에 놓고 그 위로 펄쩍펄쩍 뛰면 아이들이 창공으로 날아가는 효과가 창출된다. 그동안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없었던 시각적 충격과 짜릿한 흥미를 선사한다.
이러한 셀카봉을 누가 발명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온갖 설만 나돌고 있다. 처음에는 다이애나 헤마스 사리라는 인도네시아의 21세 여성이 처음 발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최근에는 온라인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코간이 지난해 11월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시자에게 시제품을 보낸 것이 원조라는 설도 나왔다.
쉽게 망가지는 이유 알고보니…
시중 판매 제품 대부분 중국산
그만큼 셀카봉은 정품 여부를 가리기가 어렵다. 시중에 나오는 대부분의 셀카봉은 사실상 카피상품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중국산 불량제품이 국내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제조된 셀카봉이 국내에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단가를 낮추려다 보니 중국산 제품들이 대거 국내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불량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로 유통되는 중국산 셀카봉은 약 50만대로 추정된다.
관리 역시 허술한 상태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국내보다 품질에 대한 엄격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제품에 대한 고객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 셀카봉을 사용하다 피해를 입었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 부실한 손잡이 및 휴대폰 거치대, 작대기 등의 불량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상담 사례는 올해 8월 이후 급증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셀카봉을 사용하다 피해를 입었다는 소비자 민원은 총 31건이다. 8월 셀카봉에 대한 민원은 13건, 9월 7건, 10월 13건으로 집계됐다. 셀카봉이 1만원대 저가제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낮지 않은 민원 추이다. 셀카봉이 불량이라는 민원이 대다수였다.
한국소비자연맹에서도 중국산 셀카봉의 제품은 하자 입증이 어렵다 보니 불만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접합 불량이나 이탈로 인해 휴대폰이 부서지는 확대손해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셀카봉을 반품하는 절차가 복잡하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소비자와 판매사, 제조사 간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쉽지 않아서다. 중국산 제품의 경우 셀카봉으로 인해 스마트폰이 망가지더라도 반품이나 교환은커녕 A/S조차 받기도 불가능하다.
업체들은 불량상품을 피하려면 국가통합인증마크인 KC인증을 받은 상품인지 선별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셀카봉 수입업체 한 관계자는 “우리 회사 제품처럼 통합인증마크인 KC인증을 받은 상품은 제품에 하자가 있을 경우 A/S나 교환 및 환불이 가능하다”며 “불량 제품을 피하려면 KC인증 표시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시중에서는 품질인증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제품들도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에서 대량의 셀카봉을 들여온 판매사업자가 검사서류 사본을 소매업자에게 나눠준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어 제대로 된 품질 검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못 믿을 인증
한국소비자원, 한국소비자연맹 등 소비자 단체는 셀카봉 피해 사례가 더 늘어난다면 검토 과정을 거쳐 실태조사나 기능 실험을 진행할 방침이다. 피해상황을 지켜본 뒤 실태조사나 제품 결합 여부 검증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아무래도 배상책임을 물으려면 제품의 명백한 불량을 증명해야 하는데 판매업자가 소비자의 미숙한 사용법으로 탓을 돌리면 입증 여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며 “아직까지는 피해사례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서 일단 지켜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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