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추상미술의 거장 윤명로

"내 그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지난 15일부터 한국의 대표 원로화가인 윤명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정신의 흔적(Traces of the Spirit)>. 한국 현대미술의 거대한 흐름 속에 독자적인 추상회화 세계를 구축한 그의 작품이 다음달 23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통해 이제까지의 작업을 정리한 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예술적 활기의 기원과 앞으로 나아갈  또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거장 윤명로 작가는 50년 넘게 독창적인 작업을 해왔다. 1960년대 엥포르멜부터 1990년대 액션 페인팅을 연상케 하는 추상화까지 윤 작가의 작업은 늘 변화를 시도했다.

이번 신작에서는 더욱 성숙해진 절제미와 노련함, 완급조절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작가는 마치 선승이라도 된 듯 여유로운 터치와 화면 어느 한 부분이라도 놓치지 않는 완벽함을 표현하고 있다.

독창적인 50년

윤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작품 안에 한 터치, 한 구석이 불편하게 느껴지면 자다가도 일어나 고치게 된다. 결국 정신과 행위의 흔적들이 나 자신의 근원인데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다. 눈 내리는 소리를 그리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생전 한 점이라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작품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지난 2009년부터 '훈색 (iridescence)'을 사용하고 있다. 물감에 섞인 훈색의 펄 성분은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관객이 서 있는 장소에 따라 이미지가 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관객은 이 미묘한 빛의 변화를 통해 작품 전체를 에워싸는 독특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윤 작가의 작업은 표현적인 측면에서 시대별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특유의 아방가르드한 감각은 전 생애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의 실험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작업은 작가만의 아이덴티티로 굳어졌다.

윤 작가는 "내 그림은 랜덤이다. 랜덤이란 내면적인 공간으로 접근하려는 숨결이다. 마음대로 형성되는 무질서가 아니라 충분한 사고 끝에 나타나는 정신의 흔적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랜덤이란 노장사상의 '무위'를 닮아 있다. 윤 작가의 작업은 정신에 따라 행할 뿐 인위를 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78세의 나이에도 아직 왕성한 창작욕을 유지하고 있는 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할 만한 신작 14점을 선보였다. 길이 4m에 달하는 대형 신작과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원형 캔버스에 그린 추상화들이 처음으로 조명 아래 놓였다.

서울 아라리오갤러리 개인전 <정신의 흔적>
펄 섞인 훈색 사용…실험적·진취적인 작업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난 윤 작가는 그가 3살 되던 해까지 함경북도 길주에서 살았고, 1948년 월남해 전주에 정착하게 된다. 유년 시절부터 미술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던 그는 서울대학교로 진학해 젊은 작가 13명과 함께 미술가협회를 설립한다(1960년). 이 시기 윤 작가는 '벽 B', '원죄 B' 등 격정적인 앵포르멜 추상을 선보인다.

박정희정권 당시 윤 작가는 미국으로 건너가 판화를 공부한다. 미국 록펠러재단의 초청으로 프랫 그래픽센터에서 1년간 그림을 배웠다. 그는 이때의 경험으로 '자'와 '균열' 등 파격적인 형식의 작품들을 잇달아 선보였다. 특히 윤 작가가 시도한 단색화는 절제된 색채, 반복적인 신체적 행위를 통한 표현으로 당시 한국현대미술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부각됐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윤 작가는 자신의 신체적 표현을 드러내는 '얼레짓' 시리즈를 발표한다. 무명천 위에 아크릴과 먹을 뿌리고 특수 제작한 붓을 사용해 화면을 채우는 방식이다. 1970년대에 드러났던 우연성과 비의도성은 이 시기 작가의 행위를 통한 표현적인 요소로 대체됐다.

 


1990년대 윤 작가는 이전 작품과는 차별되는 대형작품 '익명의 땅' 시리즈를 제작했다. 길이 13m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올라가 물감을 조율하면서 자연이 지닌 거대함을 격렬하게 표현했다. 2000년대 와서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를 창안한 정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겸재예찬'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때부터 윤 작가의 작업은 한층 여유롭고 완숙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끝없는 변화

그의 오랜 벗인 이우환 화백은 <윤명로의 회화공간>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회화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어중간한 장소일 수밖에 없지. 언제나 어디선가 본 듯도 하고 먼 미지의 것이기도 하면서 커다란 공간을 숨쉬게 하는 것. 이것이 자네 작품의 특성임을 새삼 깨닫네."

 

<angeli@ilyosisa.co.kr>

 

[윤명로 작가는?]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 졸업
▲주요개인전: 호암미술관(1991), 갤러리 가나보브르(2002·파리), 신세계갤러리(2004), 중국미술관(2010·베이징), 국립현대미술관(2013) 등 다수
▲주요국제전 및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2014), 국립타이중미술관(2013), 리움 삼성미술관(2011), 일본예술회관(2010), 로마건축협회회관(2004), 예술의전당(2001), 광주비엔날레(2000), 스페인 국립판화미술관(1999) 등 다수
▲주요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헤닝현대미술관, 리움삼성미술관, 대영박물관, 타이페이국립국부 기념관 등
▲주요 수상 : 옥조근정훈장(2002),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07), 대한민국보관문화훈장(2009) 등
▲주요 경력 :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1972∼2002), 도쿄 마쯔다 국제판화비엔날레 심사위원(1993), 광주비엔날레이사(1999∼2003), 대한민국예술원회원, 일본판화가협회명예회원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