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신 권력지도 대해부

‘친무계’ 쫓던 ‘친박계’ 청와대 쳐다본다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새누리당의 권력지도가 급변하고 있다. 친박(친박근혜)계에서 친무(친김무성)계로 당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7월 비박(비박근혜)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김무성 대표가 선출되며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권력의 이동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기존 주류였던 일부 친박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변화하기 시작한 새누리당의 ‘신(新)권력지도’를 들여다봤다.

“친박시대가 가고 이제는 친무시대다.”

김무성 대표 등장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변화한 새누리당의 현주소다. 지난 총·대선 때부터 당을 주도해온 친박계가 비주류로 밀려나고 새로운 권력자(김무성)를 중심으로 당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 신맹주
김무성 당대표

당 중심부에 여전히 일부 친박계 인사가 포진하고 있지만, 탄력이 붙은 김 대표를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선거의 여왕(박근혜)’이 떠난 새누리당의 새로운 맹주가 되기 위한 파워게임이 김 대표의 승리로 가닥이 잡히는 모양새다.

외형상 새누리당 지도부는 ‘친박 3(서청원·이정현·김을동)’ 대 ‘비박 3(김무성·김태호·이인제)’의 구성으로 계파 간 균형이 잡혀 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힘의 차이가 뚜렷하다. ‘친박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은 지난 7·14전당대회에서 김 대표에게 큰 표 차이로 패하며 무릎을 꿇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리는 이정현 최고위원은 이제 재선의원으로 다른 비박계 지도부 인사에 비해 ‘급’이 한참 달린다. 같은 재선인 김을동 최고위원은 친박 주류와도 거리가 먼 인사다. 사실상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비박 우위의 지도부인 셈이다.

‘당 3역’이라 불리는 원내대표(이완구), 정책위원장(주호영), 사무총장(이군현)에도 이완구 원내대표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박계 인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최근까지도 청와대 ‘인사파동’의 주역인 김기춘 비서실장을 공개적으로 감싸는 등 확실한 친박계로 분류된다. 일각에서는 이 원내대표가 물밑에서 김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눈에 띄는 효과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 원내대표를 보좌하는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미 지난해 NLL대화록 관련 김 대표의 비공개 당 최고중진연석회의 발언이 외부에 흘러나간 이후 누설자로 찍히자 황급히 김 대표에게 무릎을 꿇은 바 있다.

‘김무성의 사람들’ 신주류로 급부상
‘친박→친무’ 새누리 권력지도 급변 

중앙당직 인사에서도 비박계의 약진은 눈에 띈다. 당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은 친이(친이명박)계 출신으로 김 대표가 원내대표를 맡았던 2010~2011년 원내수석부대표로 호흡을 맞추며 인연을 쌓은 후 지금은 친무계로 이동한 이군현 의원이 맡고 있다.

이외에도 강석호 제1사무부총장, 정양석 제2사무부총장, 정미경 홍보기획본부장, 이한성 인권위원장, 정문헌 통일위원장, 박명재 지방자치안전위원장, 권오을 전 인재영입위원장 등 중앙 요직 대다수가 비박계 출신으로 현재는 김 대표와 가까운 친무계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친박계에서 친무계로 넘어온 인사도 있다. 이진복 전략기획본부장, 정해걸 실버세대위원장, 전하진 디지털정당위원장, 김희선 법률지원단장, 손인춘 제3사무부총장, 윤재옥 국민공감위원장, 권은희 대변인, 박대출 대변인 등은 당초 친박계로 분류됐으나 김 대표의 부름을 받으며 이제는 김 대표의 측근으로 불리고 있다.


김 대표가 사석에서 스스로 오른팔이라고 꼽은 바 있는 핵심측근 김성태 의원은 제4정책조정위원장을 맡고 있고, 왼팔격인 김학용 의원은 비서실장을 맡으며 김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또 다른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서용교 의원은 당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보수혁신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충청권의 맹주를 꿈꾸는 이인제 최고위원, TK(대구·경북) 정치권의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유승민 의원이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만 친무계에 비할 바는 아니다.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홍문종·윤상현 전 사무총장 등 친박 핵심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가 당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제는 ‘김무성의 사람들’이 당 요직 곳곳에 포진해 당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최 부총리가 입각하고, 홍문종·윤상현 전 사무총장이 당직에서 물러나며 구심점을 잃어버린 것이 친박계의 위축과 친무계의 부상을 가속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무성의 사람들’
당 요직 곳곳 포진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위한 김 대표의 회심의 카드인 보수혁신특별위원회에도 친박계와는 거리가 먼 비박계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김문수 위원장을 필두로 나경원·김영우·김용태·조해진·황영철·강석훈·민병주·민현주·서용교·하태경 의원, 안형환 전 의원 등 당내인사 11명은 대다수가 김 대표와 가까운 비박계 인사다. 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비박계로 분류된다.
 

특히 당의 근간인 지역당협위원장 인선을 주관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도 김 대표와 가까운 비박계가 사실상 장악했다. 지난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된 조강특위 인선 결과 당 사무총장으로서 당연직인 이군현 위원장을 포함해 강석호 제1사무부총장과 정양석 제2사무부총장, 함진규·강은희·김현숙 의원(이하 위원) 등 모두 6명의 위원이 선임됐다.

당 지도부와 마찬가지로 외형상 ‘비박3 대 친박3’의 균형 잡힌 구성이다. 하지만 친박계의 함진규·강은희·김현숙 위원은 초선·비례대표 의원으로 계파색이 짙거나 정무감각이 뛰어난 인사들이 아니어서 이들이 당내에서 잔뼈가 굵은 비박계 위원장 및 위원을 대상으로 조강특위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맹주 등극 위한 파워게임 ‘무대’ 승리
‘박근혜 그림자’ 걷어내기…친박계 반격?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조강특위에 포함된 친박계 위원들은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구색 맞추기로 들어간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 대표의 뜻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비박계 중심의 조강특위가 당협위원장을 선정하게 됨에 따라 김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가 친박계 당협위원장을 밀어내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하다. 여기에 지난달 실시된 원외 당협위원장 당무감사에서 홍문종 전 사무총장 때 지명한 40여명의 당협위원장 지역에 문제가 많다는 언론보도까지 흘러나오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 대표 측은 “언론에서 (계파간) 싸움을 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친박계에서는 이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친박계 의원은 “친박계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위기감이 크다”며 “홍 전 사무총장 때 임명된 당협위원장과 전대에서 김 대표를 지지하지 않았던 당협위원장들은 좌불안석인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홍 전 사무총장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 대표가) 당을 처음 맡아서 조강특위의 역할과 기능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제가 있을 때 한 40여명을 모셨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당협위원장을) 그만둔 자리에 모신 것이지, 있던 분의 목을 쳐낸 게 아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지금 당협위원장이 된 분들에게 그분들이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은 보복성 인사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질타했다.


친박 일각
불만 팽배

김 대표를 중심으로 친무계가 사실상 당을 완전히 접수하기 위해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친박계의 반발로 잡음이 불거지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친무계의 행보가 도를 넘어서게 될 경우 새누리당 내 ‘계파 갈등’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살아 있는 권력과 가까운 친박계가 궁지에 몰릴 경우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반격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친박계 한 관계자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지만 박 대통령 집권 초반 너무 이르게 권력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한동안 전국 선거가 없는 상황에서 일단은 관망하고 있지만 계기만 생긴다면 친박계가 전열을 정비해 반격에 나설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에 짙게 드리웠던 ‘박근혜 그림자’를 ‘김무성의 사람들’이 빠르게 걷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친박계가 반격에 나설 경우 당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견고해 보이는 새누리당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윤여준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한 방송에 출연해 “새누리당은 내분 때문에 무너질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예측이 맞을지, 아니면 친무계가 무난하게 당을 운영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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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