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증인 홍성열 위증 의혹

“국감장서 거짓말 했다”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이 위증 의혹에 휩싸였다. 로비 정황으로 거론된 마리오아울렛 선물리스트에 대해 홍 회장은 지인에게 준 단순한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직원들을 자르고도 이직은 패션업계의 특성이라고 둘러댔다. 정치권의 시각은 달랐다. 퇴사자들은 모두 정규직이었다. 지난해부터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선물리스트에 대한 문건은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피어도…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80년대 구로공단을 묘사한 노래 ‘사계’. 가사에는 옛 구로공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담겨 있다. 구로공단은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온 주역이기도 했지만 노동착취의 아픈 역사도 함께 안고 있다. 현재 가발·봉제 공장들로 빼곡했던 과거의 모습은 지워졌다. 첨단 정보기술(IT) 단지와 패션의 집단지로 변신한지 오래다.

구로공단은 2000년대 이후 디지털단지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노동은 여전히 소외됐다. 노동착취는 마리오아울렛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마리오아울렛의 눈부신 성장 뒤에는 대리점주와 직원들의 눈물이 서려 있었다.

‘선물 리스트’
사실로 드러나

지난 14일 한국산업단지공단(이하 산단공) 국정감사 증인 질의에서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을 강하게 질책했다. 전 의원은 ▲불법판매장 운영에 대한 산단공과의 법정공방 ▲산업직접활성화 및 공장설립(산집법) 규정의 전면적 규제완화 시점을 전후로 한 정관언론계 로비의혹 ▲경쟁사 입점을 핑계로 한 입점업체의 일방적 퇴출 ▲이직률 100% 이상을 기록하는 마구잡이식 고용조정 등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이 같은 주장에 홍 회장은 추석·설 명절 선물리스트에 대한 부분을 일부 인정했다. 다만 로비성 특혜가 아닌 지인들에게 성의를 보인 것이라는 게 홍 회장의 해명이다.

홍 회장은 “산단공의 유연하지 못한 처사 때문에 법정시비를 건 것”이라며 “추석·설 명절 선물리스트는 로비성이 아니라 지인들에게 성의를 보인 것”이라고 변명했다. 이어 “입점업체의 일방적 퇴출은 한 적이 없으며, 고용조정 또한 패션업계의 특성상 이직률이 높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여기서 홍 회장이 국정감사 증인으로서 위증소지의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 의원 측은 “선물리스트는 로비성이 아니라 지인들에게 성의를 보인 것”이라는 홍 회장의 발언을 위증이라고 보았다.

정 의원 측이 주목한 부분은 특혜성 로비의혹이 산단공과 법정시비가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던 2008년 추석부터 2009년 설 사이의 기간이다. 당시 정관언론계 인사에게 선물세트를 뿌렸다는 점과 관련돼 있다는 점을 조사했다. 전 의원이 공개한 선물리스트에서 마리오아울렛은 국회의원, 지자체, 언론사, 공공기관, 학계 등의 인사들을 S(특)급, A, B, C급 등으로 분류했다. 홍 회장은 매년 추석과 설날마다 이들에게 선물을 보냈다.

성공 신화 이면에…노동자 착취 도마
전순옥 의원 “증언 중 위증소지 발언”

산단공과의 법정공방은 2000년 마리오1관인 아파트형 공장을 건립하면서 시작됐다. 아파트형 공장에서 불법화된 판매장을 운영하면서 2001년 시작된 법정시비는 이후 매년 고발·고소 등 총 11건에 달했다. 이와 함께 판매장운영개선안 의견 제출 등 민원과 소송제기 등 불법적 위반, 시정 불복 등도 해마다 거르지 않고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도 홍 회장은 마리오 아울렛을 1관, 2관, 3관으로 확장해갔다. 이 과정에서 저리 자금융자 및 부동산 취·등록세 100% 면제, 이후 5년간 재산세 종합토지세 등 지방세 50% 경감 등 정부의 산업단지 입주기업에 대한 혜택을 받아왔다. 이런 식으로 마리오가 받은 지방세제 혜택은 총 11억2700만원에 이르렀다.


이어 2008년 산단공과의 입주계약해지조치 취하 소송에서 2심까지 패소, 패색이 짙었다. 홍 회장은 정관언론계 주요 인사들에게 추석과 설 명절마다 10만∼40만원 상당의 선물을 돌렸다. 산업단지 규정을 상습적으로 위반했음에도 마리오아울렛이 건재할 수 있던 이유다.

매년 퇴사자 수백명 달해
대부분 회장의 전횡 때문?

홍 회장의 ‘갑질’ 의혹도 도마에 올랐다. 전 의원 자료에 따르면 홍 회장은 반강제적인 권고사직에, 임금체불 등 부당노동행위, 입점업체에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지난해 6월 마리오에 입점한 27개 패션업체들이 갑작스런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지난 2년간은 수백명의 직원을 반강제적으로 사직시켰다. 아울러 지난 4월에는 소속 시설관리팀 21명 전원에게 권고사직을 강요했다. 외부 용역회사에 업무를 맡긴 사실도 드러났다.

잇단 권고사직
임금체불 질타

이직률은 123%에 달했다. 이에 대해 홍 회장은 패션업계의 특수성을 들어 퇴사자 대부분이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이라고 핑계를 댔다. 그러나 전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서는 퇴사자 모두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정규직이었다. 전 의원은 홍 회장의 발언이 “명백한 위증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지난달 마리오아울렛 취업자 121명 중 5년 이상 근속자는 12명에 불과했다. 이 중에서도 4명은 이미 권고사직 통보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가 된 시설관리팀 권고사직건과 관련해서도 홍 회장이 위증을 했다고 전 의원은 주장했다.

홍 회장은 직원들이 외주화를 사유로 권고사직을 인지한 시점이 2년 전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이들 직원은 올 초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 마리오아울렛 1관과 3관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시설관리팀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고, 공사가 완료되자 이들을 퇴사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전 의원 자료에 따르면 홍 회장이 지난1월 반강제적으로 단행한 디자인실 직원들은 권고사직 압박을 통해 모두 퇴사했다. 현재 그의 딸만 패션사업부 해외상품개발팀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디자인실 직원들 해고 후
친딸만 대리로 근무 중

마리오아울렛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전 의원이 주장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선물리스트에 대해서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호소했다. 30여년간 경제인, 패션업체, 지역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개인적 친분을 쌓아온 사람들에게 명절 선물을 줬다고 주장했다. 일반 기업에서 전달하는 명절 선물의 한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부연이다.

산업단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산단공이 2007년 ‘판매장 운영개선사업’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점을 들었다. 정부로부터 세금 혜택을 받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세제 혜택은 공단지역은 입주 유치 및 활성화를 위해 입주 업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혜택이라고 설명했다. 또 산단공 측에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라며 반박했다. 임대료는 산단공 측과 협의 끝에 합의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3관 11층에서 영업했던 준오헤어 매장 임대료가 평당 2만6000원이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책정했다는 것이다.

홍 회장이 시설팀 외주와 관련해 국감에서 한 발언에 대해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2년 동안 시설관리 직무를 외주 전문 업체와 진행하고, 이후 업무 평가를 통해 외주전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내부 경영진의 판단을 의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원들과 해결점을 찾아 가고있다며 호소했다.


정규직 직원의 높은 이직률을 주장하는 자료 역시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제공받은 자료는 정규직 직원 관련 통계자료가 아닌 계약직 및 아르바이트 등 15시간 이상 근무하는 상시근로자에 대한 자료라며 반박했다.
 

입점업체에 거래해지를 통보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단행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계약 만료가 되는 입주업체 중 업체 사정과 고객반응을 고려해 철수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점주 및 직원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가산패션단지 점주원들 사이에서는 마리오아울렛에 대한 악명이 높았다. 익명을 요구한 마리오아울렛 전 점주는 “당시 매출에 대한 압박이 너무 높아 그만둔 지 오래다”라며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의류매장을 차렸는데, 여기서도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마리오아울렛에서 장사를 하던 때는 매출이 낮으면 온갖 눈치를 주고 압박이 들어와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5월 마리오아울렛 인근에 현대 아울렛이 오픈하던 때 마리오아울렛의 많은 직원들이 대거 이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리오 측
“억울하다”

허허벌판이었던 구로공단에 터를 잡고 마리오아울렛을 키워낸 홍 회장. 그는 한때 구로공단의 개척자로 불렸다. 그러나 이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홍 회장은 가산단지에 아픈 역사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된다.

 

<dklo21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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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