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조선백자 명인 도예가 정두섭

고고한 조선백자 자태 세계가 탐낸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일본 막부는 조선백자를 동경했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조선도공은 일본으로 대거 납치됐다. 후일 일본은 황금보다 비싼 '아리타(有田)자기'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다. 그에 반해 우리는 '원류'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을 겪고 나서는 도자를 찾는 수요마저 줄었다. 값싼 공산품은 생활 속의 예술인 도자를 대체했다. 그럼에도 지금껏 우리 전통의 명맥을 이어 온 이가 있다. 조선백자의 명인, 정두섭 작가다. 정 작가는 최근 강원도 춘천·양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세계가 탐냈다는 조선백자의 자태는 허언이 아니었다.

이달 강원도 남이섬에서는 의미 있는 전시가 기획됐다. 지난 20여년 동안 꾸준히 도예품을 제작해 온 정두섭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 것이다. 정 작가가 발표한 현대도자는 지난 1일부터 양구백자박물관(양구백자랑)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전통의 명맥 이어

전시 제목은 '양구백토 & 양구백자'전이다. 조선백자의 정신과 멋을 계승한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품 수는 20여점으로 강원도 양구에서 굴취된 양구백토가 재료로 사용됐다. 같은 제목의 전시는 양구근현대사 박물관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양구백토를 사용한 작품 40여점이 도자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두 전시는 같은 듯 다른 콘셉트로 준비됐다. 남이섬 전시가 백자에 현대성을 입힌 결과물이라면 양구 전시는 백자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고증한 집합체다. 정 작가는 두 전시를 통해 양구백자의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양구백자는 양구백토로 이뤄진 조선시대 전통 도자다. 해방 후 1970년대까지 명맥을 이었다. 양구 인근에서 굴취된 백토는 여말선초 때부터 백자 제작의 원료로 쓰였다고 한다. 도자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경기 이천·여주와 같이 양구에서도 오랜 기간 양질의 백토가 제공된 셈이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한국 도자의 '백토 산지'이자 '백자 생산지'로서 양구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드러냈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전시에 앞서 정 작가는 '양구백자'를 완벽히 고증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쓰인 백자를 원형 그대로 빚는 한편 유적발굴과 문헌연구를 병행했다. 나아가 그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서의 작품을 구상했다. 이 같은 노력은 창작물과 논문, 연구집에 오롯이 담겼다.

양구백토 & 양구백자전 열어
제작기법 고증 생생히 재현
100년 전 전통기법으로 구워

정 작가는 "예술가로서 양구백토를 만난 건 커다란 기회이자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천년에 걸쳐 내려온 전통을 발견하고, 그 핵심에 이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기회이나 더욱 진일보한 형태의 백자를 구현하고, 후대로 계승해야 한다는 숙제가 어깨에 지워진 것이다.

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의 평론을 일부 인용하면 정 작가의 작품들은 조선 후기백자의 고운 빛과 단순한 선, 해학 넘치는 생명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재현된 양구백자는 대부분 우리 선조가 실생활에서 쓰던 도자기인데 정 작가는 당시 태토와 유악 등을 한국세라믹기술원과 공동으로 분석해 특유의 질감을 살려냈다.

윤 교수는 "소박하고 수수한 조선 사기장들의 꾸밈없는 노력을 2014년 현재로 불러오는 일은 어떤 사명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평했다. 또 "전통을 대하는 작가의 겸허하고 존경을 다하는 마음은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거니와 앞으로 펼쳐질 작품세계의 자유로운 여정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구 토박이

정 작가는 양구에서 나고 자란 양구토박이다. 도예가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할 시기에 조선백자에 매료됐고, 그 전통의 깊이를 불러내기 위해 양구에 남았다. 도자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우리는 도자를 대하며 삶을 깊이 있고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때로는 인간을 닮은 도자의 부드러운 곡선을 음미하며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정 작가의 전시는 이달 31일까지다.

 

<angeli@ilyosisa.co.kr>

 

[정두섭 작가는?]

▲강릉대 산업공예과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13회·단체전 100여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서울 현대도예공모전 우수상 등 수상 다수
▲DMZ박물관 유물감정위원·춘천미술협회 이사 등 활동
▲현 양구백자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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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