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명문대 출신의 부잣집 아들과 미국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꾸던 29세 여성 이방연씨가 사라졌다. 그녀의 사연은 지난 7월 한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됐다. 가족들은 그녀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실종 1년9개월째. <일요시사>는 이씨 여동생에게 못 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느라 수차례 말을 잇지 못했다.
올해 나이 서른살. 167cm의 키에 몸무게는 55kg, 긴 머리에 갸름한 얼굴. 예쁘장한 외모의 이방연씨는 치위생사로서 누구보다 빠르게 팀장을 맡을 정도로 자신의 일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공부도 더 하고 싶어 할 정도로 욕심도 있었다. 고향인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서 홀로 객지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들을 끔찍하게 챙긴 효녀이기도 했다.
진술 번복 왜?
이런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명문대 출신에 뉴욕 맨해튼에서 온 유명한 사업가 집안의 아들이라는 A씨다. A씨는 증권회사에 다니며 MBA 과정을 준비 중인 흔히 말하는 '왕자님'이었다. 4년 동안 사랑을 키워오던 이씨는 "미국으로 함께 가자"는 A씨의 청혼을 받았다. 고민 끝에 이씨는 미국행을 선택했다. 출국 예정일은 2013년 1월24일.
이씨는 다니던 치과를 그만두고 살던 월세방 보증금을 뺐다. 부피가 큰 가구와 가전제품은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줬고 출국 하루 전 경기도에서 식당을 하는 어머니를 만나서 작별인사를 한 뒤 휴대전화를 해지했다. 그렇게 그녀는 사라졌다.
이씨의 여동생 길옥씨에 따르면 처음 한 달간 가족들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언니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앞으로 한 달간은 연락이 안 된다'고 말을 했어요. 일주일 정도 신혼여행을 갔다가 미국에 가서 자리를 잡고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였어요."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그녀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결국 69일째 되던 날 가족들은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조사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A씨는 출국 예정일 새벽, 인터넷으로 휴대폰번호를 변경했다. 그날 아침에는 이씨가 미국에 가져가기 위해 챙긴 소지품을 모두 처분했다. 이틀간 렌트카업체에서 차도 빌렸다. 실종 4일째 되던 날에는 특수칼전문점에서 회칼을 구입했다. 일주일째 되던 2013년 1월31일부터는 이씨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모텔, 택시, 술집에서였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출국 전날 저녁 여자친구와 심한 다툼을 했고, 여자친구는 뛰어나갔다. 그 뒤는 나도 모른다"고 진술했다. 다툼을 벌인 장소에 대해 처음에는 한 모텔이라고 말했다가 인터넷 접속기록이 A씨의 집으로 나오자 다시 집인 것 같다고 말을 바꿨다.
이상한 행적에 대해서는 "여자친구의 가족들에게 연락이 올 것이 두려워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 "소지품은 아버지가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버렸다" "렌트카로는 집 근처 쇼핑몰을 다녀왔다" "칼은 자해·자살을 위해 구입했다" "신용카드는 나중에 갚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국행은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결혼 앞두고 실종…1년9개월 행방불명
실종 후 회칼 구입 등 남친 수상한 행적
사기만 인정 2년 선고 "억울하다" 항소
미국 상류층 일원이라던 A씨의 아버지는 혼자 살며 폐품을 팔아 하루에 2만∼3만원을 버는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고 A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조차 하지 못한 것. 증권회사에 다닌다는 것도 MBA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도 다 거짓이었다. 경찰조사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고 했지만 공무원 시험은 단 한 차례도 응시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씨가 A씨의 실제 정체를 눈치 채지 못한 이유는 뭘까?
"데이트 비용 대부분을 언니가 다 댄 것은 맞지만 오빠(A씨)는 기념일마다 언니에게 고가의 시계, 가방 등을 선물했어요. 일 때문에 호주에 다녀오기도 했고, 청혼하면서도 '지금까지 네가 나에게 해준 거 미국 가서 다 보상해주겠다. 집 걱정, 생활비 걱정 안 하게 해주겠다. 공부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언니를 안심시킨 걸로 알고 있어요. 영어스터디하는 친구들도 만나서 공부도 했고요. 명문대생 출신에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는 걸 확인할 수도 확인할 이유도 없었어요. 의심 자체를 해본 적이 없죠."
A씨의 이상한 행적은 그 후에도 이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씨의 실종에 대해 겉으로는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행동으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길옥씨에 따르면 A씨는 이씨를 찾으려는 어떤 노력도 없었다.
"언니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 한 번도 가족들에게 연락한 적 없었어요. 오히려 가족들의 연락을 다 피하고, 카카오톡 계정도 다 삭제했죠."
A씨는 이씨 실종 후 묘령의 여성과 싱가폴로 여행을 다녀왔다. 놀라운 건 이 여성도 A씨의 여자친구이며, 그녀 역시 이씨의 존재를 몰랐다고 했다. A씨는 비슷한 시기 4∼5명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A씨를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검찰은 A씨가 이씨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기소하지 않은 살인죄를 양형요소로 참작할 수 없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이마저도 억울하다고 항소한 상태. 항소심 선고는 오는 16일 내려진다.
"살아 있을 것"
"제가 한번 오빠 면회를 간적이 있어요. 오빠는 '언니 실종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속인 것도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해치거나 하지 않았다. 억울하다'고 했어요. 항소는 왜 했냐고 물어보니 '내가 빨리 나가야 언니를 찾을 수 있을 것 아니냐'고 했어요. 형사님들은 이 남자가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언니 찾는 것을 이용해서 수를 쓰는 것이라며 약해지지 말라고 했어요."
진실은 언제가 밝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진실보다는 이씨를 찾는 게 우선이다. 초점이 A씨가 살인을 했느냐 안했느냐에만 맞춰져 있는 게 안타깝다고 한다.
"방송이 나간 후로 많은 분들이 언니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다만 재판 결과도 중요하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남자가 벌을 받든 안 받든 상관없어요. 가족들은 언니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언니 사진이라도 한 번 더 봐주셔서, 언니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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