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붙은 국세청 vs 나무왕, 500억 탈세 공방전

구리왕·선박왕 무죄 완구왕 유죄…이번엔?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국내 거주자로 봐야한다." "세금 납부할 이유 없다." 국세청과 '나무왕' 승은호 코린도그룹 회장이 한판 제대로 붙었다. 국세청은 승 회장 부자를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양도세와 이자소득세 등을 내지 않고 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승 회장 부자는 "한국 세법을 적용해선 안 된다"고 맞섰다. 국세청이 밝힌 탈세액은 무려 500억원이다.

승은호 코린도그룹 회장 부자가 500억원대 역외탈세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지난 5일 승 회장과 두 아들이 해외 조세회피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코린도와 계열사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회사 주식을 거래하면서 양도세를 납부하지 않고 금융자산의 이자소득세를 내지 않은 혐의다. 검찰 조사는 지난 4월 국세청이 이 같은 혐의를 포착하고 승 회장을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관건은 승 회장 부자가 국내 거주자인지, 아니면 비거주자인지에 달렸다. 한국 세법은 개인을 거주자와 비거주자로 구분해 과세범위와 과세방법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거주하는 개인의 경우 전 세계 소득에 대해 납세의무를 부과하지만 비거주자는 국내원천소득에 대해서는 납세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거주? 비거주?
엇갈린 법해석

소득세법 시행령 제2조(주소와 거소의 판정)에 따르면 ▲계속하여 1년 이상 국내에 거주할 것을 통상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진 때 ▲국내에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 있고 또 그 직업 및 자산상태에 비추어 계속하여 1년 이상 국내에 거주할 것으로 인정되는 때를 국내 거주자로 본다.

▲계속하여 1년 이상 국외에 거주할 것을 통상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진 때 ▲외국국적을 가졌거나 영주권을 얻은 자가 국내에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 없고 그 직업 및 자산상태에 비추어 다시 입국하여 주로 국내에 거주하리라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때는 비거주자로 본다.

하지만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구분하는 것 '이현령비현령'이다. 가족상황, 재산상황, 직업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는 애매한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공개된 '2014 세법개정안'에서도 거주자 판정 기한을 기존 1년 이상에서 183일(6개월) 거소로 바꿨을 뿐 세부 규정은 그대로다.


이 때문에 법원의 판단도 엇갈린다. 실제로 논란이 됐던 역외 탈세 형사 재판의 대표적 사례인 '선박왕(권혁 시도상선 회장)'과 '구리왕(차용규 전 카작무스 대표)' '완구왕(박종완 에드벤트엔터프라이즈 대표)' 등은 똑같이 비거주자 요건을 이용해 국세청과 오랜 싸움을 벌였음에도 운명은 제각각으로 엇갈렸다.

지난 2011년 국세청은 카자흐스칸 구리 채광 제련업체인 카작무스 지분을 매각해 1조원의 차익을 남긴 '구리왕' 차 전 대표에 대해 역외탈세 혐의로 세무조사를 벌여 1600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차 전 대표는 세금 고지 전 불복 절차인 과세적부심사에서 '국내거주자가 아니다'는 이유로 "1600억원의 추징통보는 부당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적부심사위원회는 차 전 대표의 국내 거주일수가 1년에 약 1개월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같은 해 10월 국세청은 '선박왕' 권 회장을 국내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면서 탈세목적으로 조세회피처에 거주하며 사업하는 것처럼 속여 수천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로 사상 최대인 4101억원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승은호 회장 일가 역외탈세 검찰 수사
유령회사로 양도세 등 내지 않은 혐의

이후 검찰은 2200억여원을 탈세하고, 국내 조선회사들과 선박 건조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비용을 부풀려 일부를 돌려받는 방식으로 회사 돈 90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권 회장을 기소했다.

1심은 권 회장이 종합소득세 1672억원, 법인세 582억원을 각각 포탈한 것으로 보고 징역 4년과 벌금 2340억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원심을 깨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했다. 항소심은 소득세 2억4000여만원 포탈 혐의만 유죄로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고 시도상선의 홍콩법인인 시도카래리어서비스도 실질적 관리 장소를 국내에 둔 내국 법인에 해당해 납세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으나 "조세포탈 혐의로 형사처벌하려면 조세회피를 넘어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를 감행해야 하는데 피고인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감형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20번의 공판이 진행되는 등 2012년부터 2년 넘게 법정 공방을 벌여온 '완구왕' 박 대표는 1심에서 웃었지만 항소심에서 울었다.

박 대표는 홍콩법인 근도HK에서 낸 이익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빼돌리는 방법으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소득 신고를 누락해 종합소득세 437억원을 포탈하고 947억원의 재산을 국외에 은닉·도피시킨 혐의로 지난 2011년 불구속 기소됐다.  

'완구왕' 사건은 지난 2009년 국세청이 역외 탈세 1호로 고발한 첫 번째 역외탈세사건으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2012년 2월 1심은 박 대표의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관련 소득이 발생한 2000년 박 대표가 미국 영주권자였기 때문에 박 대표를 국내 비거주자로 봐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자유인이 될 뻔 했던 박 대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미국 국세청이었다. 같은 해 4월 말 미국 국세청이 '박 대표는 미국 거주자가 아니다'는 내용의 공문을 국세청에 발송하면서부터다. 결국 지난 6월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박 대표에게 징역 3년과 벌금 250억원 등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상고심에서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박 대표를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2000년까지 미국에 거주하던 박 대표가 한국으로 주거를 옮긴 2001∼2002년 170억원 상당의 탈세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항소심의 판단. 재판부는 "홍콩법인이 페이퍼컴퍼니에 송금하는 돈을 판매 수수료 등으로 허위기재하고 자신이 인출·송금 권한을 갖고 있는 유령 회사로 돈을 빼돌렸다"고 밝혔다. '구리왕' '선박왕'에게 연달아 굴욕을 맞은 국세청과 검찰이 '완구왕' 덕에 체면을 세운 셈이다.

"우리가 이긴다"
양쪽 모두 자신

이번 '나무왕' 승 회장 부자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역외탈세 관련 법원의 확정 판결이 없어서 법률검토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피고발인과는 접촉하지 않은 단계"라고 밝힌 뒤 "고발이 들어왔기 때문에 절차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국세청은 과세 기간 2년 가운데 국내에 1년 이상 머물면 '국내 거주자'로 분류하는 세법을 들어, 승 회장 부자를 국내 거주자로 봐야 한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승 회장 부자는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국내 거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 세금을 납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

승 회장이 이끄는 코린도그룹은 인도네시아에 적을 두고 있지만 승 회장은 국내 사업체에도 여러 곳 적을 두면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 회장은 지난해 자진 폐업한 애플투자증권의 지분 9.5%(우호지분 포함)를 보유했으며, 동화기업 지분 8.69%(약 13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승명호 동화그룹 회장의 금융업 진출이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자진 폐업한 금융투자업자 주주는 5년간 금융업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대주주 요건 조항에 따라 리딩투자증권을 인수해 증권업에 진출하려던 동화그룹은 물을 먹었다. 오히려 리딩투자증권 지분을 정리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승명호 회장은 승 회장의 친동생이다.

또한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골프장인 서서울컨트리클럽 운영사 서서울관광(주)의 주요주주인 외국계 자본도 승 회장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거주자" vs "외국서 사업"

코린산업도 있다. 93년 10월 설립된 코린산업은 코린도그룹의 한국법인으로, 목재, 상용차 부품 등 도매·무역 사업과 부동산임대를 영위하며 본사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소재하고 있다. 코린산업의 지분은 승 회장이 36%(1만8000주), 외국계 사모펀드가 36%(1만8000주), 서서울관광(주)가 28%(1만4000주)를 보유하고 있다.

승 회장은 지난해까지 동화홀딩스 사내이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의 담당업무는 경영자문. 지난 3월 동화홀딩스 주주총회소집결의에 따르면 승 회장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세법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승 회장은 '거주자'가 될 수도, '비거주자'가 될 수도 있다.

역대 역외탈세 사건에 비추어 볼 때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500억원에 이르는 승 회장의 역외탈세 사건 역시 검찰이 혐의를 얼마나 입증하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코린도그룹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국계 인도네시아 기업이다. 코린도(Korindo)는 코리아의 앞글자 Kor와 인도네시아의 앞글자 indo의 합성어다. 산림개발과 합판, 원목가공 등 목재사업을 주력으로 영위하며 신발, 컨테이너, 제지, 물류 등 계열사 30여개와 인도네시아 현지에 직원 3만여명을 거느린 대기업으로 인도네시아 재계순위 20위에 올라 있다.


생소한 코린도는?
인도네시아 대기업

코린도그룹의 모체는 고 승상배 창업주가 설립한 동화기업의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 인니동화개발이다. 승 회장은 승 창업주의 장남이자 승명호 동아홀딩스 회장의 형이다. 1948년 동화기업을 설립한 승 창업주는 60년대 말 인천에 저목장을 조성하면서 목자재 기업 기반을 닦았다.

69년에는 인도네시아 원목개발을 위해 인니동화개발을 설립했다. 코린도그룹의 시작이다. 초기에는 동화기업에서 필요한 원목을 공급하다가 70년대 인도네시아 정부가 원목 수출을 금지시키면서 로컬 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제지 사업으로 기반을 닦고 조림, 자원개발, 금융 등 다방면에 진출해 외형을 키웠다. 2007년에는 자동차 조립생산 판매사업으로 잠시 한눈을 팔았지만 뼈아픈 실패를 겪고 다시 목재 사업에 집중했다. 코린도그룹은 현재 7500만평에 이르는 농장에서 팜오일과 목재를 생산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갈리만탄에 3000만평 규모의 광산을 확보하고 석탄 개발도 하고 있다. 코린도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1조원에 달한다.

승 회장은 90년부터 24년째 인도네시아 한인회장을 맡으면서 현지 교민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99년부터 현지 한인상공회의소장직도 맡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아시아총연과 동남아한상연합회가 생긴 이래 회장직을 연임해 왔으며 지난해 6월에는 대통령 자문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 신임 부회장에 위촉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 코린도그룹이 있다면 한국에는 승 회장의 동생 승명호 회장이 이끄는 동화그룹이 있다. 동화기업, 대성목재, 동화엠파크 등의 계열사를 둔 국내 최대 목재기업이다. 동화그룹의 모체는 동화기업, 93년부터 그룹을 이끌어온 승명호 회장은 동화기업을 2003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2005년 한솔홈데코 아산공장, 뉴질랜드 레이오니아 MDF공장, 말레이시아 머복 MDF사 등을 인수하며 MDF 세계 4위권에 진입했다. MDF는 중밀도섬유판으로 목재를 일정한 크기의 조각으로 만들어 접착제와 함께 고온·고압으로 압착·성형해 판재로 만든 가공목재의 한 종류다.

다른 사업체들도
국적은 대한민국

승명호 회장은 지난해 8월 10년 만에 지주사 체제를 탈피했다. 동화홀딩스를 동화기업과 동화엠파크로 나눴다. 동화엠파크는 중고차 매매단지로 동화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꼽힌다. 목재 업계에서 승 회장 형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서로 힘을 합쳐 세계적인 목재기업을 일군 우애 깊은 경영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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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