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여야 국회의원 152명이 참여하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지난 1일 조찬 모임을 갖고 개헌 군불 때기에 돌입했다. 세월호특별법 논란이 일단락되며 국회가 정상화 궤도에 접어들자마자 물밑에서 논의되던 ‘개헌론’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개헌의 필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개헌 논의가 시작되는 것에 대해선 이해당사자들 간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정치권에서 개헌론은 그간 꾸준히 나왔지만 현재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해묵은 과제다. 개헌으로 영향을 받게 될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들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반면 국회에서는 찬성 쪽 의견이 여전히 많다. 청와대와 가까운 친박계 의원들 일부가 반대하고 있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찬성하는 입장이다.
불붙는 개헌론
세월호특별법 논의가 일단락되며 국회가 정상화 궤도에 접어들었다. 이와 함께 여의도발 개헌 논의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월호 정국에서 가라앉았던 개헌론이 다시 불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확실한 차기 대선후보가 없는 지금이 개헌을 추진하기 위한 적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매일경제>가 지난달 1~19일 국회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151명)의 93.3%(141명)가 개헌에 대해 ‘매우 필요’ 또는 ‘필요한 편’이라고 답했다. 현행 대통령제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은 셈이다.
<CBS 노컷뉴스>가 지난달 29일~지난2일까지 여야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설문에 응한 249명 중 231명(92.77%)이 개헌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의원은 “대통령에게 집중한 권한 때문에 대선에서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우고, 여기에서 모든 정치적 문제들이 야기된다”며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분권형 개헌에 여야 상당수 의원들이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류를 반영해 개헌에 찬성하는 여야 의원 모임인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지난 1일 조찬회동을 갖고 8개월 만에 활동을 재개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국회 일정상 지금이 개헌 적기 ▲개헌 현실화를 위해 10월 정기국회에서 개헌특위 구성 등의 논의가 이뤄졌다.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은 “개헌은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국회의장이 여야의 뜻을 받아들여 조속히 개헌특위를 구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은 “제가 여야 당대표와 국회의장까지 만나 개헌특위를 반드시 만들어달라고 했다. 국회의장도 동의했고,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수락했다”며 “다만 김무성 대표는 즉답은 안 했지만,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말했다. 국회의 주요 인사들 모두가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김무성 대표도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5년 단임제는 유능한 대통령에겐 너무 짧고, 무능한 대통령에겐 너무 길다”며 “강한 제왕적 권력과 승자 독식의 게임구조, 총선·대선 주기 불일치도 문제인 만큼 개헌으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야 의원 152명 포함된 국회 모임 “지금이 개헌 적기”
청와대, 친박계 의원 “국정동력 떨어질라…지금은 NO”
이처럼 국회의원들이 자체적으로 개헌 논의를 시작한 가운데 정의화 국회의장도 취임 초부터 줄곧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던 터라 실제로 개헌 작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정 의장은 지난 7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제헌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현행 선거제도는 대한민국의 대전환과 미래를 주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승자 독식의 현행 선거제도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하는지, 우리의 미래에 과연 합당한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차기 총선을 실질적으로 1년 반 남짓 앞둔 지금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헌의 핵심내용은 무엇일까.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분권형 대통령제, 4년 중임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변경하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권력인 청와대와 친박계 의원들은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원로친박 서청원 의원은 “개헌을 한 번 논의할 필요는 있지만 타이밍상 금년에는 개헌 문제에 대해서 활발하게 논의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이정현 의원도 “대통령 단임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기에 논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면서도 “개헌은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친박계 의원들이 현 시점의 개헌 논의에 대해 반대하고 나선 것은 사실상 키를 쥔 박 대통령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이라는 것은 거대한 이슈이기 때문에 한번 시작되면 블랙홀같이 모두 거기에 빠져들어서 이것저것 할 것을 못 한다”며 “올해는 다함께 우선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내야 할 때”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정적인 청와대
청와대의 부정적 기류와 개헌 시점 잡기의 어려움 등을 감안하면, 선거가 없는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면 또 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20대 총선 준비가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국회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 개헌 논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의 역사
1948년 7월17일 대통령 책임제를 골간으로 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제헌헌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5년도 채 못가고 1952년 한국전쟁 진행 중 대통령·부통령 직선제 및 국회의 국무위원 불신임 제도, 양원제 국회 등의 내용을 담은 1차 개헌(발췌개헌)이 이뤄진다.
이어 한국전쟁이 종료된 이후인 1954년 초대 대통령의 연임 금지 조항 적용을 배제하고 국무총리제 폐지 등을 담은 2차 개헌이 이뤄졌다. 4·19혁명이 끝난 직후인 1960년 6월에는 내각책임제를 도입하는 3차 개헌이 이뤄졌다. 이어 5개월 만에 3·15부정선거 관련자 및 부정 축재자 처벌에 관한 소급입법 마련을 위한 4차 개헌이 이뤄졌다.
이듬해 5·16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정권은 잡은 이후인 1962년에는 대통령 중심제, 단원제 국회, 국민의 기본권 조항을 체계화한 5차 개헌이 이뤄진다. 이어 1969년에는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6차 개헌(3선 개헌), 1972년에는 일명 유신개헌이라 불리는 7차 개헌이 이뤄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12·12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1980년 대통령 간선제, 단임(임기 7년)제를 골간으로 하는 8차 개헌을 실시했다. 그리고 전두환정권의 임기가 끝나는 해였던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및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9차 개헌이 이뤄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