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vs 정의화, 개헌 동상이몽

솔~솔 부는 개헌바람…청와대·국회전쟁?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여야 국회의원 152명이 참여하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지난 1일 조찬 모임을 갖고 개헌 군불 때기에 돌입했다. 세월호특별법 논란이 일단락되며 국회가 정상화 궤도에 접어들자마자 물밑에서 논의되던 ‘개헌론’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개헌의 필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개헌 논의가 시작되는 것에 대해선 이해당사자들 간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정치권에서 개헌론은 그간 꾸준히 나왔지만 현재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해묵은 과제다. 개헌으로 영향을 받게 될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들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반면 국회에서는 찬성 쪽 의견이 여전히 많다. 청와대와 가까운 친박계 의원들 일부가 반대하고 있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찬성하는 입장이다.

불붙는 개헌론

세월호특별법 논의가 일단락되며 국회가 정상화 궤도에 접어들었다. 이와 함께 여의도발 개헌 논의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월호 정국에서 가라앉았던 개헌론이 다시 불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확실한 차기 대선후보가 없는 지금이 개헌을 추진하기 위한 적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매일경제>가 지난달 1~19일 국회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151명)의 93.3%(141명)가 개헌에 대해 ‘매우 필요’ 또는 ‘필요한 편’이라고 답했다. 현행 대통령제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은 셈이다.

<CBS 노컷뉴스>가 지난달 29일~지난2일까지 여야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설문에 응한 249명 중 231명(92.77%)이 개헌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의원은 “대통령에게 집중한 권한 때문에 대선에서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우고, 여기에서 모든 정치적 문제들이 야기된다”며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분권형 개헌에 여야 상당수 의원들이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류를 반영해 개헌에 찬성하는 여야 의원 모임인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지난 1일 조찬회동을 갖고 8개월 만에 활동을 재개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국회 일정상 지금이 개헌 적기 ▲개헌 현실화를 위해 10월 정기국회에서 개헌특위 구성 등의 논의가 이뤄졌다.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은 “개헌은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국회의장이 여야의 뜻을 받아들여 조속히 개헌특위를 구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은 “제가 여야 당대표와 국회의장까지 만나 개헌특위를 반드시 만들어달라고 했다. 국회의장도 동의했고,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수락했다”며 “다만 김무성 대표는 즉답은 안 했지만,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말했다. 국회의 주요 인사들 모두가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김무성 대표도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5년 단임제는 유능한 대통령에겐 너무 짧고, 무능한 대통령에겐 너무 길다”며 “강한 제왕적 권력과 승자 독식의 게임구조, 총선·대선 주기 불일치도 문제인 만큼 개헌으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야 의원 152명 포함된 국회 모임 “지금이 개헌 적기”
청와대, 친박계 의원 “국정동력 떨어질라…지금은 NO”

이처럼 국회의원들이 자체적으로 개헌 논의를 시작한 가운데 정의화 국회의장도 취임 초부터 줄곧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던 터라 실제로 개헌 작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정 의장은 지난 7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제헌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현행 선거제도는 대한민국의 대전환과 미래를 주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승자 독식의 현행 선거제도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하는지, 우리의 미래에 과연 합당한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차기 총선을 실질적으로 1년 반 남짓 앞둔 지금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헌의 핵심내용은 무엇일까.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분권형 대통령제, 4년 중임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변경하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권력인 청와대와 친박계 의원들은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원로친박 서청원 의원은 “개헌을 한 번 논의할 필요는 있지만 타이밍상 금년에는 개헌 문제에 대해서 활발하게 논의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이정현 의원도 “대통령 단임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기에 논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면서도 “개헌은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친박계 의원들이 현 시점의 개헌 논의에 대해 반대하고 나선 것은 사실상 키를 쥔 박 대통령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이라는 것은 거대한 이슈이기 때문에 한번 시작되면 블랙홀같이 모두 거기에 빠져들어서 이것저것 할 것을 못 한다”며 “올해는 다함께 우선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내야 할 때”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정적인 청와대

청와대의 부정적 기류와 개헌 시점 잡기의 어려움 등을 감안하면, 선거가 없는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면 또 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20대 총선 준비가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국회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 개헌 논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의 역사

1948년 7월17일 대통령 책임제를 골간으로 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제헌헌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5년도 채 못가고 1952년 한국전쟁 진행 중 대통령·부통령 직선제 및 국회의 국무위원 불신임 제도, 양원제 국회 등의 내용을 담은 1차 개헌(발췌개헌)이 이뤄진다.

이어 한국전쟁이 종료된 이후인 1954년 초대 대통령의 연임 금지 조항 적용을 배제하고 국무총리제 폐지 등을 담은 2차 개헌이 이뤄졌다. 4·19혁명이 끝난 직후인 1960년 6월에는 내각책임제를 도입하는 3차 개헌이 이뤄졌다. 이어 5개월 만에 3·15부정선거 관련자 및 부정 축재자 처벌에 관한 소급입법 마련을 위한 4차 개헌이 이뤄졌다.

이듬해 5·16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정권은 잡은 이후인 1962년에는 대통령 중심제, 단원제 국회, 국민의 기본권 조항을 체계화한 5차 개헌이 이뤄진다. 이어 1969년에는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6차 개헌(3선 개헌), 1972년에는 일명 유신개헌이라 불리는 7차 개헌이 이뤄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12·12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1980년 대통령 간선제, 단임(임기 7년)제를 골간으로 하는 8차 개헌을 실시했다. 그리고 전두환정권의 임기가 끝나는 해였던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및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9차 개헌이 이뤄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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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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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