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해외순방 징크스 집중해부

대통령 비행기 타면 나라는 시끌시끌 “왜?”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징크스’가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해외로 떠날 때마다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이 발생하는 묘한 일이 이번 캐나다·미국 방문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된 것이다. 대통령의 임무 중 외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만큼 해외순방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해외순방 때마다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사건들이 매번 되풀이되는 것은 참으로 공교롭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26일 캐나다·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취임 2년도 채 안돼 이번까지 10번째 해외순방을 다녀온 박 대통령의 활발한 외교활동과 그에 따른 성과는 청와대가 자신있게 내세우고 있는 부분이다. 이번에도 국제무대에서 상당한 외교성과를 거두며 국격을 높였다는 것이 당·정의 자평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정치적 사건이 터지는 징크스도 재현돼 해외순방 효과가 반감되는 모양새다.

송광용 사퇴
징크스 재현

청와대 송광용 교육문화수석이 박 대통령의 캐나다·미국 방문 출발일인 지난 20일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고, 사표가 전격 수리됐다. 국제적 행사인 인천아시안게임이 막 돛을 올린 가운데 주무 수석이 갑작스럽게 물러난 것이다. 특히 송 전 수석의 사퇴는 임명 3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여러 가지 뒷말이 나왔다.

이와 같은 인사조치에 대해 당초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송 수석이 학교로 돌아간다고 했다”는 짤막한 말 외에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송 전 수석이 내정되기 사흘 전인 지난 6월9일 서울교대 총장 재직시절 도입한 ‘1+3 유학제도’가 교육부장관의 인가를 받지 않아 ‘고등교육법을 위반’한 혐의로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경찰이 지난 7월31일 송 전 수석을 입건했고, 지난 22일에는 서울중앙지검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됐다. 송 전 수석은 지난 6월12일 3기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서 수석으로 내정될 당시에도 논문표절 및 중복게재 시비로 구설에 올랐으나 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바 있다.


박 대통령 취임 후 총 10차례 해외순방
떠날 때마다 굵직한 정치적 사건 터져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지난 23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송광용 전 교육문화수석의 사퇴 관련 설명자료’에서 “지난 19일 민정수석실에서 송 전 수석이 서초경찰서에서 고등교육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20일 본인(송 전 수석)에게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청와대 수석의 신분을 유지한 채 수사를 받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사의를 표명해와 이를 수리하게 됐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인사검증에 또 다시 구멍이 난 것을 감추기 위해 ‘학교로 돌아간다’고 거짓 해명을 했다가 파문이 확산되자 뒤늦게 사실을 실토한 셈이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은 “경찰에 소환되어 조사까지 받은 인사의 임명을 강행한 그 오만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라며 “송 전 수석의 사퇴는 명백하게 박근혜정부의 고질병인 ‘수첩인사’에 따른 인사참사”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송 전 수석은 박 대통령 실소유주 의혹이 끊이지 않는 정수장학회에서 13년간 이사로 지낼 정도로 박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다. 박 대통령의 ‘수첩’에 충분히 오를 만하다는 얘기다.

이 외에도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 때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행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현지교민들의 시위가 곳곳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이 “조속한 막말과 유언비어로 대통령을 비방하는 일부 교민들의 행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스토킹 시위’는 우리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대통령의 순방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매국적인 행위”라고 논평을 낼 정도로 시위는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간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윤창중 사태
시작에 불과


문제는 이와 같은 일들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 취임 후 첫 해외순방인 지난해 5월 미국 방문을 시작으로 해외순방 때마다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들은 어김없이 발생했다.

우선 첫 해외순방인 미국 방문 때는 수행원으로 함께한 윤창중 대변인이 주미 한국대사관 인턴 여직원(21) 성추행이라는 초유의 대형사고를 치고 해외순방 중 전격 경질됐다. 윤창중 사태는 2013년 말 중국 <신화통신>이 ‘세계 8대 굴욕 사건’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국제적 망신이었다.

이 사태로 박 대통령도 귀국 후 성과 알리기에 앞서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국민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부터 해야 했다.

하지만 윤창중 사태는 시작에 불과했다. 박 대통령의 2차 해외순방인 지난해 6월 중국 방문 직전에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기습 공개해 여야가 수개월째 극한 대치를 이어가는 단초를 제공했다. 또 박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비상근무에 들어간 주중 한국대사관의 군사외교관이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낸 뒤 이를 은폐하려다 발각돼 소환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3차 해외순방인 지난해 9월 러시아·베트남 방문 때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이 불거져 취임 5개월 만에 옷을 벗는 대형사건이 터졌다. 이와 관련해 채 전 총장이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 사건 선거법 위반 기소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다가 선거법 위반 기소를 강행한 것에 불만을 품은 청와대가 찍어낸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아울러 이때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정치권을 강타하기도 했다. ‘내란음모’는 30년 만에 발생한 사건으로, 덕분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면 아래로 파묻히게 했다. 당시 야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공안정국을 조성해 위기 국면을 벗어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떠날 때마다
터지는 사건

4차 해외순방인 지난해 10월 APEC, ASEAN 정상회의 및 인도네시아 방문 때는 기초노령연금 공약파기로 국내에서 큰 파문이 일었다. 게다가 진영 보건복지부장관의 ‘항명 사퇴’ 파문까지 겹치며 박 대통령은 귀국 후 공약파기와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5차 해외순방인 지난해 11월 프랑스, 영국, 벨기에, 유럽연합 등 서유럽 순방에서는 현지 교민들과 유학생들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는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부정선거 규탄집회를 열어 국제적 논란이 일었다.

또한 이 기간에는 박근혜정부의 통진당 정당해산심판 청구라는 초유의 사건도 터졌다. 당시 법무부는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의 핵심적인 이유로 이석기 의원 등 통진당 핵심인사들이 북한과 연계된 ‘RO’ 조직원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때는 이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터였다. 때문에 야권에서는 “정당 해산심판 청구라는 초유의 사건을 박 대통령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해외순방 중 급히 추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쏟아냈다. 

6차 해외순방인 지난 1월 인도·스위스 방문 때는 사상 초유의 금융기관 개인정보 유출사태와 관련해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며 사태를 국민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해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또 순방 직전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돼 전국이 몸살을 앓기도 했다.

7차 해외순방인 지난 3월 네덜란드·독일 방문 때는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 조작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국정원 대공수사국 직원이 자살을 시도한 이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며 검찰의 ‘윗선’ 조사가 막히기도 했다.


‘윤창중 사태’부터 ‘송광용 사퇴’까지 징크스 지속
대부분 인사참사, 일부 사건은 일부러 터트리기도

8차 해외순방인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순방 때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담화 직후 원전 관련 행사 참석을 이유로 출국했다가 야당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대변인은 “세월호 사태에서 얻는 교훈은 이윤보다는 생명과 안전이 우선돼야 한다는 기본적인 철학에 대한 인식의 공유인데 그 행사(원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 것을 많은 국민들은 공감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대변인은 “모든 책임을 통감하며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해도 부족할 판에 안전과도 거리가 먼 원전 세일즈 해외순방이라니 할 말을 잃게 한다”고 꼬집었다.

9차 해외순방인 지난 6월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매니스탄) 때는 전군에 대비태세 강화 지시가 내려진 상황에서 4성 장군인 신현돈 1군사령관이 위수지역을 이탈해 고향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휴게소 화장실에서 볼썽사나운 음주추태를 부리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총리를 대신해 새 총리로 지명된 안대희 전 후보자가 과도한 전관예우 의혹에 휘말려 자진사퇴한 이후 2차 후보자로 지명된 문창극 전 후보자의 친일, 반민족적 교회 연설이 드러나 큰 파문이 일었다.

반복되는 참극
깊어가는 한숨


이처럼 박 대통령 해외순방 때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부분 인사참사였다는 점이다. 이는 시작부터 인사문제로 지적을 받아온 박근혜정부가 아직까지도 사람을 제대로 가려 뽑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물론 적재적소에 맞는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심각하다는 수준을 넘어선 인사 참사가 박 대통령이 해외로 떠날 때마다 되풀이되며 해외순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한숨만 깊어가고 있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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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