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공백기 심각한 ‘무선거 증후군’ 실태

민심 외면한 ‘그들만의 리그’…“민심이 뭔데요?”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7·30재보선이 끝난 이후 2년가량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선거 공백기, 정치권에 ‘무선거 증후군’이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와 여당은 대선공약이나 민심과는 괴리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고, 야당은 극심한 계파 갈등 속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야·정의 이러한 행태는 가까이에 선거가 있었다면 일어나기 힘든 정치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7·30재보선 이후 2016년 4월 총선까지 21개월간은 전국단위 큰 선거가 없다. 정부와 국회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를 심판하는 잣대가 없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민심과 괴리된 정치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밀어붙이는 당·정

아니나 다를까. 작금의 정부와 국회의 행태는 민심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한창이다. 우선 정부와 여당은 추석연휴가 지나자마자 담뱃값, 주민세, 영업용자동차세 인상 등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 부담이 커지는 ‘서민증세안’을 줄줄이 꺼내들었다. 이는 지난 총·대선 과정에서 “증세 없는 복지확대”를 외쳤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약속을 깨는 것이다. 또 부자들은 봐주고 서민들의 호주머니만 터는 셈이어서 조세 정의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담뱃값 인상의 경우 정부가 내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국민 건강을 위한 흡연율 감소’지만, 보건복지부가 아닌 기획재정부에서 이를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부족한 세수확보 때문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때문에 야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지난 이명박정부에서 추진됐던 이른바 ‘부자감세’ 철회가 우선이다”라는 요구가 높지만 당·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최대 현안인 세월호특별법 제정과 관련해서도 당·정은 초강경 입장을 고수하며 파행 국정운영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세월호 지우기’를 노골화하고 있다는 정황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세월호 사고 직후 살릴 수 있었던 수많은 생명을 왜 살리지 못했나?’라는 의문이 여전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대부분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제 국가혁신을 추진해야 할 때다”라며 “하루빨리 세월호법을 통과시키고 유가족 피해보상 처리를 위한 논의에 시급히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실효성 있는 진상규명을 위해 세월호법으로 만들어질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넣어야 한다는 요구에 수개월째 침묵했던 박 대통령의 느닷없는 이러한 언급은 “(세월호는) 이제 끝났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국가의 직무유기를 시간만 끌다 덮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특히 박 대통령은 희생자 유가족들의 요구에 대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면서도 “(특별검사 추천위원회의 여당 몫 추천위원을 야당과 유가족의 동의를 거쳐 추천한다는) 여야의 2차 합의안이 마지막 결단이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법 입법에 대해선 국회의 영역이라며 삼권분립에 위배돼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도 여야의 2차 협상안이 마지노선이라고 밝힌 것은 논리적 모순을 넘어 이것이야 말로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삼권분립 운운하면서 세월호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모순적 통치행위”라며 “박 대통령이 국회에 최후통첩을 날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결국 청와대가 뒤에서 (세월호법 협상을) 지휘했음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정, 민심 괴리된 정책 행보 속 ‘세월호 지우기’
무기력한 야당…계파 갈등에 매몰돼 존재감 상실

모순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으로 비춰진 박 대통령의 발언에 여당은 ‘2차 합의안 이상의 양보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심지어 교육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주도하는 ▲애도리본 달기 ▲점심 단식 ▲세월호법 제정 요구 학교 앞 1인 시위 ▲세월호 관련 공동수업 등에도 제동을 걸며 세월호 지우기에 나섰다. 교육부가 각 시·도 교육청에 이를 금지하는 공문을 내려 보낸 것이다.

교육부가 내세운 명분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가치판단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이다. 그러나 애도리본 달기조차 교육부가 나서서 막으려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감정마저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강한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이석문 제주교육감은 지난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리본을 달고 떼는 것은) 자기 마음의 표정들일 텐데, 이것을 간섭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비주류 맏형격인 이재오 의원은 “출구를 열어주는 정치를 해야지 출구를 있는 대로 탁탁 틀어막아 버리면 결국 그 책임은 정부·여당에 돌아간다”며 “협상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는 인내와 서로 간의 양보를 통해 하나의 결실을 이뤄내는 것인데, 청와대부터 당까지 일사불란하게 ‘이게 마지막’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돌직구를 날렸다.

사실상 삼권분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정황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정치검찰이라는 오명 속 신뢰도가 바닥까지 떨어진 검찰은 <산케이신문> 가토 지국장의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한 기사를 문제 삼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사법처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검찰이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며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일본은 물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국경 없는 기자회 등 해외언론과 언론단체들은 한국의 언론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혐의에 대한 1심 재판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가 “선거 기간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라는 요지의 판결을 내놓은 것을 두고도 사법부가 청와대의 눈치를 살핀 끝에 나온 재판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수원지법 김동진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 올린 ‘법치주의는 죽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며 “재판장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따라 정말 선거개입의 목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이 나왔다”고 적었다.

그는 또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는 정치개입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궤변”이라며 “(원세훈 선거법 무죄 판결은) 정의를 위한 판결인가, 아니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을 위해 사심을 담아 쓴 판결인가. 나는 후자로 생각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무기력한 야당

야당도 민심을 외면한 그들만의 리그가 한창이다. 지난 총선부터 시작해 7·30재보선까지 주요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전패한 야당은 세월호법 정국에서 갈피를 못 잡고 심각한 내부 계파 갈등에 매몰돼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는 견제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정치주체들의 이러한 행태는 가까이에 선거가 있었다면 일어나기 힘든 정치행위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무선거 기간이라고 민심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쌓였던 민심은 다음 선거에서 폭발할 수도 있고 시위 등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정부든, 국회든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아 국가를 운영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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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